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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들꽃
바람이 잠시 멈춰
홀로핀 들꽃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언제나 외롭게 지내던 들꽃은
바람이 쉴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주었고
둘은 오래전부터 알고있던 것처럼
너무도 쉽게 가까워졌습니다.
바람은 들꽃에게
산너머 유유히 흐르는 강과
채우고 덜어내기를 반복하는 바다의 이야기와
밤이 오기전 부지런히 내일의 우편물을 챙기는
서쪽 하늘 끝 노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들꽃은 땅속 깊은 곳을 부지런히 오가는 두더쥐와
더 깊은 곳에서 이 넓은 땅을 따스하게 데워주는 거대한 아궁이와
새벽이면 투명한 구슬이 되어 먼지 낀 몸을 씻겨주는 이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잠시라던 머무름은 이틀, 사흘,,,
일주일이 지나고 또 한달이 지났습니다.
바람은 들꽃 곁에서
들꽃은 바람 곁에서
둘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그런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아침이슬에 몸을 씻어내던 바람은
낯익은 소리를 들었습니다.
포르르 포르르... 울어대는 노란새의 울음
졸졸거리며 흐르는 시냇물과
철썩 철썩 세차게 들려오는 파도의 소리
그동안 잊고 지내던 모든 것들이 귀와 눈과 마음에
심한 떨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바람은 들꽃이 자기를 붙들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예전처럼 자유롭게 이곳 저곳을 떠다니며 편하게 살고싶다는 생각이 너무도 간절했습니다.
들꽃은 바람이 변해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전같던 부드러움은 간데없이 세찬 몸짓만이 자신을 흔들어대는 것을 알았습니다. 들꽃은 몹시도 겁이 났습니다. 나를 두고 저멀리로 떠나버릴까봐, 다시금 혼자가 되어야할까봐
어느날이었습니다.
바람은 언덕 아래에 피어있는 넝쿨장미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저기 언덕 위에 들꽃 하나 피어있는데 나를 붙잡고는 놓아주질 않으니, 네 날카로운 가시로 들꽃을 가두어다오 그러면 너를 저 먼곳의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데려다 줄게... 라고요.
넝쿨장미는 바람의 얘기를 듣곤 흥쾌히 그러하겠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따가움에 눈을 뜬 들꽃은 몹시도 놀랐습니다. 늘 자기를 감싸주던 바람은 보이지 않고, 날카로운 가시의 넝쿨장미가 꽃이며 잎새며 뿌리까지도 움켜쥐고는 점점 세게 조이는 것이었습니다.
들꽃은 눈물을 흘리며 제발 그러지 말라고 애원을 했지만 넝쿨장미는 결코 들꽃을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들꽃은 기운이 다해 고개를 떨구었고, 넝쿨장미는 바람을 불러 약속을 지켜달라고 했습니다. 홀가분한 마음의 바람은 넝쿨장미를 띄워보내려 했습니다. 그러나....
기운이 다하도록 넝쿨장미를 밀어도 땅속 깊숙히 박힌 뿌리탓에 꿈쩍도 하질 않았습니다. 넝쿨장미도 바람이 미는 탓에 잎이며 꽃마저 다 떨어져 앙상한 줄기만 남게 되었습니다.
결국 바람은 어쩔 수 없다며 네 운명을 탓하라고 말하곤 그만 떠나버렸습니다.
어느 따스한 날,
언덕을 지나던 바람은 말라 죽어있는 넝쿨장미 안에서 하얗고도 포근한 꽃을 보았습니다. 그곳이 갑갑하지 않냐고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으로 가고싶질 않냐고 꽃에게 물었습니다.
들꽃은 그러고 싶지만 이 안에 갇혀 아무데도 갈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바람은 소리없는 미소를 짓더니 후~하며 너무도 부드러운 바람을 들꽃에게 불었습니다.
그러자 대롱끝에 매달려있던 하얗고 부드러운 홀씨들은 공중으로 하늘로 떠올랐습니다.
민들레 홀씨는 바람에게 살짝 기대어
가장 따스하고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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