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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과 박정희 군사혁명
이글을 쓰기전에 밝힌다.
나는 절대 박정희 추종자는 아니다.
그러나 말은 바로 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NGO의 역활이라는 것은 밝혀 두고자 한다.
나는 4.19가 일어나는 해에 고등학생이었다. 세상일을 어느 정도 알만큼 알고 있었고 그 당시 사회가 새로운 혁명을 목마르게 갈구하던 시절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누군가 돌파구를 터트리기만 하면 봇물 터진 물 같이 터져 버릴 것 같은 숨막히는 분위기가 지속되어 졌던 것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그 해 4월 18일,
나는 시청앞에서 옆구리에 책가방을 낀채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데모를 하는 행렬에 끼여 있었다.
우리는 눈물을 흘릴수 밖에 없었다.
정의감에 불타는 많은 시민들이 길거리에 나와 양동이에 물을 담아놓고 학생들에게 먹여주며 같이 눈물을 흘리던 상황을 직접 경험한 사람이다.
누가 시켜서 한일이 아니다.
모두가 자발적으로 생명의 고귀함도 잊은채 오로지 정의감에 불타고 있었던 것이다.
왜 생명의 고귀함을 모르겠는가?
그러나 어느누구도 무서워 하지 않았다. 목이 터져라 외치고 부정부패한 정권의 퇴진을 외쳤던 것이다.
우리가 을지로4가를 거쳐 종로4가쪽으로 방향을 틀어 얼마쯤 갔을때였다. 그 곳은 천일 극장 앞이었다.
별안간 선두가 우루루 무너지며 사람들이 픽픽 쓰러지면서 대오가 흐트러지는 것이다.
그러자 누군가가 크게 소리치는게 들려 왔다.
'깡패다' '깡패들이다'
깡패들은 손에 손에 몽둥이들을 들고 있었다.
얼떨결에 가방으로 깡패들의 몽둥이를 막아냈지만 등어리에 몽둥이 세례를 받고는 얼른 옆골목으로 몸을 피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도망가지 말아라. 깡패들에게 덤벼라.' 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도망가던 학생들이 뒤에서 돌멩이를 들고 깡패들에게 집어 던지며 대항을 하기 시작했다.
한참만에 상황은 역전되었다.
오히려 깡패들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힘없는 학생들이 뭉치니까 결국 조직적인 깡패들도 무너지는 것을 직접 목격도 했다.
다음날 4월 19일날, 학교에서는 수업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다칠까봐서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기를 바라고 전부 집으로 돌려 보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가방을 방에 내려 놓은채 부모님 몰래 집을 빠져 나와서 다시 시청쪽으로 발길을 향했다.
시내에는 교통수단이 전부 마비된 상태였다.
한참을 걷다보니 을지로 입구 원각사 앞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 당시 그곳은 내무부가 있었다.
언뜻 보기에 입구에 기관단총이 설치된 것같이 보였다.
그래도 데모대들은 겁도 없이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며 '부패정권 물러가라' '이승만 정권 물러가라'를 외치며 데모를 하고 있었다.
얼마 정도였던가. 순식간인것 같았다.
땅땅땅, 총소리가 울리며 선두의 학생들이 픽픽 쓰러지는게 보였다.
나는 얼떨결에 원각사 옆골목으로 도망을 가서 청계천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런데 창덕여고학생(그때 창덕여고는 베레모를 쓰고 있어서 쉽게 알수 있었다.)
하나가 배를 움켜쥐고 신음을 하고 있었다.
얼른 보니 옆구리에서 피가 샘솟듯 솟구치고 있었다.
그때 같이 도망가던 대학생 하나가 '어, 배가 터졌네'하고는 창덕여고 학생을 들쳐엎고 청계천쪽으로 함께 도망을 했고 가는 도중 그 창덕여고 학생은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때의 이야기는 훨씬 더 많다. 여기 저기 총소리가 서울 시내 곳곳에서 콩볶듯 들려왔고 사람들이 공포에 떨었던 기억을 할수 있다.
그래도 정의를 외치는 국민들한테 결국 부패 정권은 물러가고 말았다.
내가 이 얘기를 왜 쓰는지 알겠는가?
지금 쓰는 이글이 괜히 기분나는 대로 쓰는 글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해 주기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4.19혁명 이후 우리나라의 실상은 어땠는가?( 나는 실제로 눈으로 목격을 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위의 글을 쓴 것이다.)
날이 갈수록 좋아지기는 커녕 더욱 더 혼란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사회는 더욱 혼란하여 지고, 그야말로 길거리에 혼자 다니기 조차 겁이나는 공포의 분위기였었다.
그대로 계속 지속 되었다가는 결국 나라는 산산 조각이 날 것 같은 분위기가 팽배했고 어떤 특단의 조치가 내려지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스스로 자멸할 것 같이 만 보였었다.
그때 일어난 것이 5.16 군사 혁명이었다.
아마 그당시 민주당원이나 정권을 잡았던 사람들은 아쉬워할 줄 모르지만 거의 모든 국민들이 군사 혁명을 지지했고 환영했던 것은 사실이다.
또한 그들은 너무나도 일들을 잘 해 주었다.
무엇이든 시원 시원하게 결단을 내리고 주저함 없이 부패를 일소시키고 부정한 자들을 처벌하며 사회를 다시금 명랑하게 이끌어 주었던 것이다.
지금의 우리나라가 올림픽도 개최하고 월드컵도 개최하며 북한을 도와 줄수 있도록 경제 성장을 이룩 할수 있었던 기반은 솔직히 5,16 군사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아직도 요원했을거라는 것은 그 당시를 살아본 사람이라면 확실히 알고 있을 것이다.
필리핀을 예로 들면 쉽게 알수 있을 것이다.
필리핀은 우리나라가 감히 따라갈수 없는 선진국에 속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필리핀은 우리나라와 게임이 되지 않는다.
그런것이 누구의 덕인가를 우리 국민들이 너무들 모르고 있다.
이 정도 떠들수 있고 자유를 누릴수 있게 된 기반은 솔직히 군사혁명이 아니었다면 감히 꿈도 꿀수 없었다는 것을 너무 인정을 해주지 않고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 많은 무리수도 따라올수 있었다.
반대자를 억압하고, 사상적으로 확실한 선을 긋고(색깔의 구분),.......
허다 보니 억압당한 사람들의 반발이 거세어 지고 그러한 와중에 '유신헌법'이라는 최악의 수를 택한 것이 흠이 되어 박정희 정권의 붕괴를 가져오게 되고,
군사정권의 억압상이 들어나게 되었고, 정권을 이어 받은 자가 계속 군사정권(전두환, 노태우)으로 이어가며 그들의(전두환, 노태우) 파렴치한 행적이 결국은 박정희정권의 공과 보다는 나쁜면들만 크게 부각되어진 것이 현실이다.
친일파는 분명히 색출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정치논리로 시작되고 정치논리로 매듭 지어질때 절대 올바른 판단을 할수 없다는 것도 말하고 쉽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잘못한 것은 분명히 선을 그어서, 모든 것이 투명한 결론이 내려질때 비로소 과거사는 정리 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작금의 상황은 무언가 잘못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편가르기를 일삼는 정치상황은 절대 용납 되어서는 안된다.
박정희가 민족의 반역자인가?
그렇다면 반드시 가려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그것도 반드시 인정해 주어야 한다.
일시적인 편가르기 형식으로 떠들기만 한다면 우리 모두에게 절대 좋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전혀 변하지 않고 있는데 대한민국만 자꾸 변해야 한다는 논리는 누구를 위한 논리인가?
그렇게 논리를 전개하니 다시 색깔론 같은 말이 나오게 되고, 또 그것을 정치적으로 악용을 하고, 그것을 젊은이들을 동원하여 전두환, 노태우와 같은 자로 몰아 버리고, 그것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정치인들로 인하여 나라는 서서히 양분 되어 가고 있는 현실,
바로 북한이 제일로 바라고 있는 상황으로 변해가고 있는 현실이 걱정이 된다.
우리의 현명한 젊은이들이 올바른 시각을 가져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댓글 4개
바램!! 친일파/ 공산주의자/ 이들에 대해 언제부터 / 누가/ 무엇을 / 어떻게 / 캐자는 것인가?? 그걸 캐서는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뚜렷한 기준을 정해서 정확한 방향으로 추진했으면 한다. 조상이 잘못한 것이 밝혀지면 그 자손은 이 땅에서 살지 못한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것은 바랄 것이라 생각한다. 조국에 민족의 분열과/ 지역주의 / 공산주의/ 친일파/ 친미파/ 는 없었으면 하는 것은 우리 국민 모두의 바램 일 것이다. 고등학교 때 정학/ 무기정학/ 퇴학/ 재적/ 맞은 학생이 교수/ 과학자/ 기업가/ 국회의원/ 대통령 하면은 ~~~~~ 또한 주위의 탄압에 억눌려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 의사대로 못하고 타의에 의한 행동을 했다고 그들을 몰아 봍이는 것도 또한 잘못이라 생각한다. 바로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군부 구 태타 / 일도일사라 하는 제도가 잘못이라 하고 거리에 나와 떠들은 언론인 또는 정치인 있었는가???? 또 대통령선거에 그 들을 찍지 않았는가? 우리 국민 모두가 반대 했으면 어떻게 그들이 대통령을 했었을까???????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타의에 의해서 했는지 아니면 자의에 의해서 친일/ 공산주의/ 친미를 했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실속을 차리기 위해 이러한 얄팍한 수를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박정희 대통령도 기준을 정해서 이 부분은 잘했고 / 이 부분은 잘못했다?? 하는 평을 했으면 한다. 세종대왕 후궁이 00명이고 어떻게 돌아 가셧는가? 태조 왕건은 부인이 00명인가?? 우리들을 이분들을 어떻게 평하는가??
정말 너무나 크나큰 공감이 간다. 현재의 젊은이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얘기들이다. 너무나 단순하게들 생각하고 너무 쉽게 감정에 휩쓸려 버리는 경향이 있다. 산 역사는 어느 누구도 지워 버릴수가 없는 것이다. 감정에 쉽게 힙쓸리지 말고 냉정히 생각하여 국가의 미래가 밝게 이어 졌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우리나라의 모든 젊은이들이 '사색의 향기'에 있는 작가가 쓴 글의 109 번과 나의 이 글을 모두 한번씩 읽어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나는 나 자신을 알리기 위해서 결코 이 글을 쓰지 않았다. 4,19 때 바로 내 눈 앞에서 젊은 여학생이 피를 흘리며 숨을 거두는 것을 목격했고 그 자리에 있던 나는 운이 좋아 지금까지 목숨이 남아 있다. 그러나 지금 같은 이러한 시국에 젊은이들에게 사실의 이야기들을 사실대로 얘기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긴다. 어떻게 보면 무책임한 말들이 너무나 많이 오고 가고 싸이버상이라 하지만 젊은이들의 오고가는 말들이 그냥 보기에 너무나 책임없는 욕설과 언어로 얼룩지는 것을 대하고는 정말 큰일 났구나 하는 마음이 들고, 가슴이 찢어지는듯 아파오는 것을 숨길수 없다. 피를 토하며 울부짖고 싶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나는 이 나라를 정말로 사랑한다. 포스트 386세대라 일컫는 젊은 세대들이여! 국가의 미래는 당신들의 손과 마음에 따라 어두워 지느냐 밝아 지는냐 하는 순간에 놓여 있는 것 같으니 부디 올바른 판단을 내려서 올바른 국가가 이룩되도록 힘을 써 주시기를 두손모아 빕니다. 이렇게 글을 쓸수 있게 된 이 모든 것이 보았던 모든것을 지금 같은 이러한 시국에
너무도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친일파를 청산한다'는것 오로지 이것 하나만 수긍이가고, 그외 모든것이 잘못되엇습니다. 시기, 방법 모든것을 잘못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한심하고 우울합니다. 이 불황이 서민에게는 최고 10년간도 간다는데... 참으로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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