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글
게시물 상세보기
바뀐 식객
고향 집에서의 아침은 공중에 떠서 맞는 아파트의 아침과는 사뭇 다르다.
온갖 새들이 마당 끝에까지 와서 합창하고 개구리들은 밤을 지새고도
쉬지 않는 목청으로 아침잠을 깨운다.
간밤에 제사로 늦게 잠든 식구들은 모두 늦잠에 빠져있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새벽 낚시를 하러 가는 남편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어 밖으로 나갔다.
미명이 막 가신 산속의 공기는 상쾌하다 못해 달디달다. 이곳에서 살면
분신처럼 달라붙어 있는 편두통쯤은 잊고 살 것 같다.
마당 끝에서 바라보이는 건너편 개울가에 머윗잎이
앙증맞은 우산처럼 펼쳐져 있다.
작은 바구니를 들고 개울을 건너는 발길에 이슬이 흠뻑 젖는다.
조금 큰 것은 데쳐서 쌈을 싸먹고 작고 연한 것들은 된장과 고추장에 버무려 먹으면
쌉싸름한 맛이 향이 그만이다. 한참을 비탈에 엎드려 뜯으려니 허리가 아프다.
기지개를 켜는 머리위로 산 뽕잎이 연한 잎을 이제 막 펼치고 있다.
요즘 사찰음식에 관심을 가지면서 알게 된 뽕잎에 대한 음식이 생각나서 이젠
허리를 펴고 뽕잎을 따기 시작했다. 잎이 피면서 오디도 같이 열리는지
조그맣고 파릇한 오디가 어느새 달려있다.
봄 누에치기가 끝나면 금새 검게 익어서 우리들의 간식거리가 되곤 했던 오디가
같이 떨어질세라 조심스레 한가지 한가지씩 따다 보니 어느새 한 바구니 가득하다.
작은 연녹색의 뽕잎들은 얼마나 깨끗한지 햇살에 반짝거린다.
금새 따온 뽕나무 잎을 데쳐서 들기름 양념 해서 아침상에 올려놓았다
다들 처음 먹어본다면서 이게 무슨 나물이냐면서 간밤 제사 음식들은 뒷전이고
접시가 금새 비워진다.
뽕나무 잎이라고 했더니 그건 누에가 먹는 나뭇잎이지 사람이 먹느냐면서
그제야 의야 해한다. 맛도 좋고 의학적으로도 아주 좋다는 설명을 듣고는
모두 이거야 말로 웰빙 음식이라면서 아침 먹고 다들 뜯으러 간다고 야단이다.
모처럼 고향에 가면 앉아서 쉬는 잠깐의 시간이 아깝다.
평일에는 형제들 모두가 그곳에 살지 않으니 주말을 이용해서 씨도 뿌리고
김도 매 주어야 한다. 나무를 돌보는 일은 남자들의 몫이지만 상추나 쑥갓 등
각종 야채를 돌보는 일은 여자들의 몫인데 오늘 아침은 모두들 산으로 올라가선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다.
고사리도 꺾고 취나물과 뜯어도 뜯어도 지천인 머위와 돋나물등……
도시에선 다 사야 먹을 수 있는 자연산 무공해 식품들이 그저 널려 있다.
그 중에서 오늘 아침에 맛본 뽕나무 잎에 매료된 고모와 새 언니는
모든걸 다 제치고 봉지 한 가득 뽕나무 잎만 뜯고 있다.
지금은 고향분들 누구도 누에를 치지 않는다.
그러나 삼사십년 전에 우리 마을 사람들은 거의 집집마다 누에를 쳤다.
봄 가을 한달 이면 되는 양잠업은 보리고개에 짧은 기간에 고 소득을 올리는
주 수입원이었기 때문이다.
누에는 넉잠을 자는데 한참 먹고 나면 하루쯤 잠을 자고 나서 다시 먹곤 한다.
넉잠을 자는 동안 성충이 된 누에는 한꺼번에 무척 많은 양의 뽕잎을 먹기 때문에
어머니는 새벽부터 밤중까지 뽕잎을 따야만 했다. 누에가 무서워서
잠실엔 들어가지도 못하니 누에 밥 주는 일은 도와드리지도 못하고
가끔 주말엔 뽕잎을 따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당연 누에나 먹는 뽕잎을 이제는 누에는 보이지 않고
사람들이 먹겠다고 달려들어 뽕잎을 딴다.
요즘도 양잠을 하는 농가들이 있으나 요즘은 비단을 얻기보다는
약효가 알려진 누에 가루를 얻기 위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 하니
농업의 변천사 중에서도 이색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때 심었던 뽕나무들은 이제 밭둑에 조금씩 남아서 고목이 되어 산 뽕나무들이 되어있다.
봄 한철 동동거리던 어머니의 발걸음도 이젠 저 언덕 위에서 고인이 되어
편히 뉘이시고 하교 길에 책보자기 허리춤에 묶고 입이 새카맣게
오디를 따먹던 친구들은 모두들 머리에 서리가 내리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강산이 수 없이 변할 만큼의 세월이 지난 지금 연두 빛으로 반짝이는 작은 이파리 위로
햇살만은 변함없이 투명하게 내리 쪼이고 있다 .
일렁이는 추억을 따듯이 한 잎 한 잎 세월을 따 담는다.
흰구름 둥실 그림자를 몰고 가는 평상위로
아침에 나물을 맛있게 먹은 오빠가 뽕잎을 먹었으니 이제 한잠 자야 한다면서
벌렁 누워서 봄 한낮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다.
댓글 4개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나네. 은비녀의 고향집에 갔을 때 누에가 어떻게 생겼는지, 무얼 먹고 사는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는데... 처음엔 어찌나 징그럽던지 손 끝으로 누루면 터질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는데... 어느새 세월이 많이 흘러가버렸네.
뽕잎을 그렇게 해서도 먹는군요. 저도 며칠 전에 뽕잎을 따왔는데 그냥 씻어서 말려 놨거든요.진작 알았으면 .... 얼마전 이사한 동네에 공터가 있어 감자 옥수수 들깨 농사꾼이 된 기분이 되어 희망에 차 있답니다. 흙의 진실을 알아 볼려구요 뿌린대로 거두는... 공감하는 부분이 많네요.난 누에랑 같이 잤는데
감사합니다. 요즘 가뜩이나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에 짜증이 나 있었는데, 은비녀님 따라서 좋은 여행과 맛난 음식 먹고 온 듯 합니다. 그리고 맛나는 글 감사합니다. 아쉽습니다. 한 숨에 읽어버려서 더 읽을 거리를 안남겨뒀네요. 가끔은 맛있는 것은 아껴먹어야 되는데 그랬네요. 한탕 두탕 세탕 우리고 우려서 읽어야 겠습니다. 거친 것이 없고 한 호흡에 읽히는 것이 이렇게 쓰는 것이구나 느껴집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___^
오랜만에 흙냄새가 물씬한 고향을 찾은 것 같습니다. 신선한 바람, 때묻지 않은 햇볕, 수정같이 맑은 실개천..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선합니다. 이런 자연속에서 복잡한 머리속을 정리하면서 잊고 지내고 싶은 충동으로 가슴이 뛰는군요.. 이런 아름다운 고향에서 할일을 찾은 은비녀님은 무척이나 행복하겠습니다...좋은글 자주 부탁합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