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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도시'를 위한 스필만의 비망록 중에서

김봉길 2005. 06. 21. 오전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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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도시'를 위한 스필만의 비망록 중에서



  
피아니스트 스필만과 영화

영화 <피아니스트>를 보았다. 1939년, 전쟁, 공포, 주검 그리고 피아노. 폴란드 바르샤바. 침공, 독일군 또 유대인.
  세계 연주를 기획하고 있던 유대계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 28살. 녹음 시설이 좋지 않던 시대의 라디오 프로그램에선 직접 연주해야 했던 때. 쇼팽 야상곡. 계속 폭음 소리가 커져오고, 불안해지는 피아노 소리.
  유유상종(類類相從). 좋은 사람 모여라! 싫은 사람은 보이지 마라. 한 곳에 가두어라.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누가 사라지던 관심 없는 법. 유대인 강제 거주지역. 게토. 
  점점 줄어드는 생활을 하던 스필만과 그의 가족을 포함한 모두는 최악의 생활로 몰리고. 그리고, 집단 학살. 죽음으로 가는 기차. 그것은 진정 천국으로 향하는 기차였다.
  기차에 오르려는 찰라, 스필만을 알아본 몇몇 사람들로부터 그는 죽음을 모면한다. 가까이 지냈던 이들과 가족을 죽음으로 보내고 혼자 남은 스필만.
  가까운 사람들의 도움으로 나치들의 눈을 피해 숨어 다닌다. 숨 크게 한 번 쉬지 못하는 곳에서 배고픔과 외로움을 견디며, 폭격으로 폐허가 된 어느 건물에 자신의 은신처를 만든다.
  무서움, 외로움. 그 속에서 마지막까지 자신을 지켰던 스필만. 반대 힘이 커질수록 자신을 도와주던 몇몇 사람마저 떠난다. 이제 혼자다. 만나는 것은 주검 뿐. 혼자 있을 곳을 찾아가는 그는 결국 자신의 무덤을 찾아가는 심정이었을 것.
  좋은 친구, 나쁜 친구. 그래도 친구가 있는 것은 좋은 것. 모두 목숨을 구해준 고마운 친구들이다.
  다락방. 세상 속에 있으며, 세상과 고립된 다락방. 어둠과 추위로 가득한 폐건물 속 다락방에서 먹을 거라곤 오래된 야채 통조림 뿐.
  스필만은 보아두었던 장소, 피아노소리가 들렸던 그 근처에서 통조림 깡통을 따다가 독일 장교에게 발각된다.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한눈에 유태인 도망자임을 눈치챈 독일 장교. 스필만은 자신이 피아니스트였다고 말한다.

모든 것을 포기하면, 진정 자신의 시간은 자신에게 되돌아오는가. 한동안의 침묵을 깨고 스필만에게 연주를 명령하는 독일 장교. 지상 마지막 연주의 순간. 스필만은 33년 간의 영혼을 쇼팽의 소리에 얹기 시작한다.

꿈속의 비망록을 더듬으며

오늘은, 오랫만에 일기를 쓰고 싶었다. 10년 만에, 아니 30년 만에. 아니 아니, 48년을 살아있으면서 독불장군격, 아직은 더 참고 있어야 한다던 일기를, 뭐 하나 쓸 것 제대로 갖지 못했던, 그래서 더 쓰고 싶었던 일기를 쓰고 싶었다. 참으면 참은 만큼, 그래서 한 주먹 움켜쥐고 싶었던 것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을 것 같아 일기 같은 이 감상문을 쓴다. 
  며칠동안 짧은 꿈들을 꾸었다. 젊은 피아니스트는 뭐가 부끄러웠을까, 계속 숨어다니기만 했을까. 아, 그래, 한 번만이라도 죽음 앞에 떳떳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래서 먼저 죽어간 가까운 이들에게 더 이상은 슬프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꿈을 깨고 나면, 가슴 한 쪽으로 계속 사라지는 슬픈 조각들. 점점 작아지기만 하는 조각들. 그것은 아스름 흐드적거리는 스필만의 비망록이었을까. 조각 조각에 써있는 스필만 글씨들. 오래 전에 사라져 버렸을 그 글자들을 억지춘향 옮겨보고 싶어진다.


비망록 중에서 - 다가오는 공포들

오늘은 어떻게 될까? 무슨 소리가 어디에서 울려나올까? 내가 지금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듣기나 할까? 아무렴, 그럼, 많이 듣고 있을 거야. 무엇인가 참으려면, 좋은 일에 푹 빠져야 하거든. 마지막 나를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 아니 내가 마지막 듣는 사람이 된다 하더라도, 그래 나는 내 일에 푹 빠져야 하거든.
  바로 눈앞에서 큰 소리가 난다. 점점 커진다. 소리가 크면 클 수록 사람 심장은 빨리 뛴다. 그래서 빨리 움직이는 사람들, 그 소리도 커졌다.
  한꺼번에 소리가 크게 들렸다. 내게서 나는 소리들은 이제 하늘로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는다. 소리에 밀려 넘어졌다. 숨이 멈췄다. 잠깐, 몸 한 두 곳에서 울음소리를 낸다. 그래, 잊자. 지금은 울음소리를 듣지 말자. 

  우리 이제 그 곳으로 가야해

  헤어져야 해
  그 곳
  무엇을 가지고 가지
  옷, 돈, 빵
  아니 아니
  시간을 가지고 가고 싶어
  아름답게 지냈던 작은 시간들을 

   <계속>
http://blog.naver.com/kimbongkil/140000524497
 

댓글 1개

이은자 2005. 06. 24. 오전 12:00

전부터도 느꼈지만.. 참 독특한 글쓰기를 하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참 잘 쓰시네요. 늘 잘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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