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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밖 풍경 *
내 창을 통한 창밖은 늘 푸르다. 좋은 생각을 지닌 아침은 시작점이 상큼하다. 나는 한 가족의 구심점이고 사회를 이루는 수많은 점을 이루는 하나의 구성원이다. 창밖 세상은 순한 눈길로 미소를 띤다.
때로는 홀로 지독히 막힌 길에 들어서 앞이 보이질 않아 방황도 한다. 알수없는 아픔이 잔잔한 마음으로 고개를 들고 아른거린다. 현실은 처절한 외로움으로 홀로임을 알아간다. 그리고 미래의 참모습인 함께하는 사회를 생각한다.
지하철 안에서의 하루이다. 누군가 갑자기 손을 들이민다. 화상을 크게 입은 사람이 작은 지갑을 열은 채로 서있었다. 일그러진 모습으로 도움을 구하는 몸짓이 무표정이다. 무심히 1000원 한 장을 내어 주었다. 잠시 후, 여자 대학 봉사단이라며 2명이 모금함의 취지를 밝힌 후 한바퀴를 돈다. 1000원 한 장을 또 꺼내어 모금함에 넣어 주었다. 내옆을 지키던 벗이 이야기 한다. 요즈음은 너무 많아서 진위를 가릴 수도 없고 주고픈 마음이 없다며 주지말라 한다.
'거짓된 시선으로 보고 싶지 않아. 나부터 사회를 신뢰의 눈 안에 두고 싶어져.'
쉽게 살아가는 길. 노력없이 얻으려는 텅빈 마음. 희망의 얼굴은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림자일 뿐이다. 세상은 하나의 원이 아닐까? 만약 그네들이 진실 된 모습이 아니었더라면 우리가 건넨 모금함의 돈을 다 쓴 후, 거짓된 스스로의 삶을 후회하며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까?
무신경한 작은 시선에 고개를 끄덕이는 벗의 모습이 감사했다.
비좁은 지하철이기에 신세대인 아이들 어린 대화가 저절로 들려온다. 입이 험하다. 욕을 즐기며 디지털시대라 외치는 아이들. 공부에 치인 해방감이 욕으로 옷을 바꾸어 입었을까? 아이들의 표현이 익살스럽다고 말하고 싶은데 웃고 즐기는 언어치고는 친근감과는 거리가 멀다. 한글이 욕이 아닌 욕으로 몸살을 앓는 모습이 안쓰럽다. 말의 몸살은 무방비로 유행어를 남발한다. 혹, 세종대왕이 나타나 아이들을 혼내주려나?
변화를 이루어 내는 세상 모습들. 창밖의 이면을 모르는 세대인 깔깔거리는 순진한 아이들. 어른들은 아이들이 더불어 사는 현재의 삶을 고운 눈으로 창밖을 보기만를 소망한다. 이제는 어른과 아이가 하나되어 공감대를 형성하여 신뢰의 얼굴을 만들어 내야만하는데...
흐르는 시간 속에 우리가 존재한다. 가끔은 스스로를 폐기처분을 하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우를 범한다. 안개가 자욱한 창 밖을 본다. 자연은 나를 보라 명하듯 사계의 변화로 고른 숨을 쉰다. 삶은 늘 현재보다는 과거의 빛 바랜 사진하나를 들여다 본다.
사회성이 발달된 두뇌는 먼 창 밖을 보며 외치지만 가슴은 창안을 호소한다. 우리는 행복한 동행으로 서로의 서툰 눈짓에 웃고 황당한 몸짓에 울어도 봐야한다. 사랑보다 미운 정을 통한 안타까움을 통해 잔정이 들지않을까?
참한 내 모습은 좋은 사회를 만드는 문화의 발상지이다.
비오는 날 아침, 창밖의 비를 닦아보자. 촉촉히 스며드는 이슬비로 내안의 창을 닦자. 누구에게나 공평한 사랑을 주는 따사로운 햇살에 감사하자. 말과 행동을 하나로 묶어 가슴에 깊이 넣어두자. 우리도 주머니에 아기를 담고 다니는 애정어린 캥거루처럼 신뢰주머니를 마음에 담자.
창안에 날아든 사랑의 화살촉은 사회를 밝히는 창밖의 푸르름이리라!
글/유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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