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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수필] 누나야!

최인구 2005. 09. 03. 오전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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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뼘수필] 누나야!

 맛있는 반찬을 앞에 두고 나는 아주 많은 고민과 망설임을 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가 국민학교 시절
이였는데, 집안 사정이 어려워 외삼촌 집으로 이모 집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했던 시절…눈치밥 먹으며
자랐다고 하면 그래도 어렵던 시절 키워 주신 외숙모나 이모에게 죄송스럽고, 그냥 여느 아이들 보다 조금
다른 처지에서 생활했다고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외삼촌 집에서 그랬고, 이모 집에서도 그랬는데 난 밥 먹는 시간이 정말 싫었다. 왜냐하면 같은 또래 정도의
사촌들과 눈치 아닌 눈치를 봐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주 흔한 반찬이 되어버렸지만 20년 전만 해도 오뎅
반찬은 고급반찬 중에 하나였고, 계란말이를 자주 먹는 집은 그럭저럭 괜찮게 사는 집으로 여겨졌고, 소시지
반찬을 자주 먹는 집은 확실한 부잣집으로 인정받던 때, 혹 계란말이나 소시지 반찬이 올라오는 날이면 난 어린
나이에 정말 많은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 먹고 싶은데... 한 번만 더 젓가락질을 하고 싶은데…
하지만 딱 한 번 젓가락질을 하고는 난 더 이상 그 쪽으로 젓가락질을 할 수가 없었다. 왜 그래야 하는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그냥 그래야 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이리저리 잠자리와 학교를 자주 옮겨 다닐 때 누나는 항상 내 곁에서 나를 지켜 주었다. 잠을 자도 누나랑은 같이 잤고 밥을 먹어도 누나랑 같이 먹었다. 그리고 누나는 맛있는 반찬에 절대 손을 대지 않았다. 그냥 국에 밥을 말아 김치하고만 먹곤 했는데…왜 그랬을까? 아마도 나를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아 미안스럽다

 이모 집에서 지내고 있을 때 동네 아이들이랑 저녁 늦게 까지 놀고 있으면, 엄마들이 줄줄이 나와 동무들에게
집에 가서 저녁 먹자며, 하나 둘 엄마 손 붙자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가끔 마지막 까지 혼자 남아 있을 때면 방앗간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엄마를 부르며 운적도 있었는데.
그 때 엄마 대신 나를 데리러 온 사람 역시 누나 였다. 누나는 나 보다 두 살이 많았지만, 생각하는 거나 행동하는 거나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워 보였다.

 국민학교 시절 전부를  친척집을 전전하며 살다가 중학교 1학년 즈음 집안 형편이 조금 나아져 아빠, 엄마, 누나,
나 이렇게 네 식구가 한데 모여서 같이 살게 되었는데 그 때 난 너무 행복했다. 누나도 좋아서 내 어깨에 두 손을 언지며 '진수야 이제 너가 좋아하는 계란반찬 눈치 보지 말고 맘대로 먹어도 돼' 하며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던
것이 뚜렷하게 기억난다.

 누나는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특별히 어디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고, 미술학원을 다니면서
전문적으로 배운 것은 아니지만 천성적으로 그림을 잘 그렸다. 그래서 난 미술 숙제로 그림 그려 오기가 나오면
누나에게 숙제 내용을 말해주고 밖에 나가서 뛰어 놀면 됐다. 눈치 빠른 누나는 나의 수준을 감안해 약간 어설프게
그려 놓았지만 그래도 누나가 그려준 미술 숙제를 제출하면 나도 덩달아 그림을 조금 잘 그리는 학생으로 통했다.

 그래서 누나는 고등학교를 미술부가 있는 학교로 진학 하였는데 덕분에 전혀 관심도 없는 원예과로(지금의 조경과) 진학하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 이지만 원예과는 종고(종합고등학교) 중에서도 인근 중학교에서 제일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진학하는 학과였다. 그래서 누나는 3년을 장학금 받으며 학교를 다녔는데 미술부가 있어서
종고로 갔다고는 하지만 아마도 집안 호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미술부 핑계를 부모님에게 한 것 같다.

 누나가 고등학교를 진학하고 나도 고등학교 진학 문제로 고민하게 되었는데, 부모님은 내심 공고로 진학해서
졸업 후 직장생활 하기를 바라시는 것 같았다. 만약 내가 대학교 진학을 위해 인문계로 가겠다고 하면 반대는
안하시겠지만, 우리 집안 형편은 시간이 흘러도 별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공고로 진학
하기로 결심하고 부모님에게 공고 나와서 직장생활 빨리 시작하겠다고 말씀 드렸고, 부모님은 아무  말 없이 그냥
고개만 끄덕이셨다. 그 날 저녁 누나가 나를 조용히  밖으로 불렀는데... '진수야 공고에 들어가도 3학년이 되면
진학반으로 들어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어, 그 때 진학반으로 옮겨, 진수가 3학년이면 누나가 고등학교 졸업해서
직장생활 하니깐 너 대학 등록금은 내가 마련해 줄께... 그러니 너무 상심하지 말고 공부 열심이해'
하며 부모님
대신 나를 위로해 주었고, 꿈과 희망도 동시에 주었다.

 누나 말대로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진학반으로 반을 옮겼다. 다른 인문계 학생들 보다 적게 배운 부분을 채우기 위해 입 악물고 새벽 부터 일어나 공부하였고, 마침내 내가 원하던 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공고에
서 4년제 대학 합격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누나의 각별한 관심과 응원 덕분에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누나는 내 모의고사 시험성적이 나오면 어느 대학교 어느 학과를 진학 할 수 있는지 면밀히 체크 해주었고,
학교에 진학상담 선생님이 계셨지만 난 누나의 말 만 들으면 충분히 그것으로 해결되었다. 그리고 누나는 약속대로 내 대학교 등록금을 내주었고, 입학 선물로 폼 나는 양복도 한 벌 맞춰 주었다.

 누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읍내에 있는 피아노 학원에 취직을 하였다. 누나 친구가 피아노 학원에 다녔는데 재미 삼아 따라 다니며 어깨 너머로 배운 피아노 실력으로 피아노 강사까지 하게 되었는데, 원래 예능 계통으로 손질이 있던 누나는 독학으로 피아노 공부를 계속 하였고 아침 일찍 학원에 출근해서 청소며 각종 서류 정리까지 온갖 잡다한 일을 군소리 없이 한 탓에 원장 선생님이 누나를 꽤 예뻐했다. 그래서 월급도 처음 직장생활 치고는 조금 여유 있게 받았는데, 월급의 반은 부모님에게 드렸고 나머지 자기 용돈 조금 빼고 전부 적금을 부었는데,
난 그 적금 덕분에 학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누나는 다 좋았는데 눈이 나빴다. 그래서 항상 안경을 쓰고 다녔고 직장생활하면서 자기 용돈이 조금 생기자
렌즈를 했는데 안경을 벗은 누나의 모습이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이 예뻐지는 것같았다.
학교 다닐 때 부 터 성격도 착하고 얼굴도 예쁘장하게 생겨 남학생들에게 인기도 꽤 많았다.렌즈가 익숙해질 무렵 누나는 눈병을 심하게 앓았는데, 그래서 렌즈도 못 끼고 안경도 별 소용이 없었다. 학원에 얘기해서 며칠 쉬라고 했는데, 자기가 빠지면 원장 선생님 혼자서 힘들다며 아픈 눈으로 계속 출근을 하였다.

 아픈 눈이 완전히 낳지 않은 채로 며칠째 근무를 하다 보니 눈병은 더 심해졌고 누나도 말은 안 하지만 힘들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도 안쓰러워 내가 학원까지 데려다 준다고 해도 괜찮다며 혼자 고집으로 출근을 하였다.
오전 수업이 끝날 무렵 학과 조교가 나를 찾아 왔다. 그리고는 도립 병원으로 빨리 가보라 했다.
순간 본능적으로 누나 얼굴이 떠올랐고 하늘이 멍해졌다. 제발…제발…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기도하며 도립병원에 도착했다. 근데 엄마가 영안실 옆으로 동네 아줌마 부축을 받으며 나오는 것이다.

 난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했다. 한참을 지나 영안실로 가보니 아버지도 와계셨다.
아버지에게 어찌된 거냐고 울면서 물으니 동네 앞 도로 신호등 앞에서 사고가 났다고 하는데…눈이 아파서
파란색불이 깜빡깜빡 그리는 것을 못 보고 건너다가 과속으로 달리던 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참 기가 막혔다. 내가 데려다 준다고 할 때 그냥 가만히 있지 쓸데없는 고집 부리다가 스무 한 살 그 곱디
고운 나이에 뭐가 급하다고 그리 급하게 가버린 것일까…

 오늘이 누나가 세상을 떠난지 십년이 되는 날이다. 누나와 같이 쓰던 낡은 책상 서랍을 오랜만에 열어 보았다.
그리고 옛날 누나가 쓰던 일기장을 들춰 보았다. 몇 장을 읽어 내려가다... 난 눈물을 감당해 내지 못하고 펑펑
쏟아 냈다. 일기 내용 중에 '오늘 진수 대학교 입학식이 있는 날이었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내 동생이 대학생이
되었다고 하니 정말 기쁘다. 학교 마칠 때 까지 학비는 내가 마련해 주어야 한다. 진수가 공부 잘 해서 좋은 직장
을 갖게 되면 그 때 미술공부를 본격적으로 해 보아야겠다. 어릴적 그 힘든 남의 집살이를 이겨낸 동생을 생각하면 이 정도 희생은 난 아무렇지 않다.'
  아~ 누나야!!! 미안하다.
글 / 최인구

댓글 2개

余宣 2005. 09. 03. 오전 12:00

가슴 먹먹한 아침입니다, 비바람치지 않는 삶의 언덕이 어디 있겠어요. 근데도 그 모진 언덕을 잘 넘어오셨네요.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을 거고요.

최인구 2005. 09. 03. 오전 12:00

여선님! 안녕하세요? 아침부터 괜히 먹먹하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새로 장만하신 집에서 항상 상쾌한 아침 맞이 하시겠네요... (참고로 이 수필은 약간의 실화가 바탕이 되었지만 그냥 픽션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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