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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을 삼키며

김봉길 2005. 10. 01. 오전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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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을 삼키며


사내는 제 등짝보다 두텁고 넓은 배낭을 휘청거리며 벗었다.
어디로 벗어 놓아야 할까.
밤 11시를 넘긴 전철 안
벗어둘 곳을 찾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껍데기 둘 곳을 찾는 그는 눈꺼풀보다 입술을 먼저 거풀거렸다.
숨소리가 나기 전에 목대울이 꿈틀거렸다.
덜 고인 침 맛을 느낀 것은 사내의 눈과 마주친 순간이었다.

그렇구나, 그래 맞아.
우리는 수없이 침을 삼키면서도
그 오랜 시간 침을 삼키는 걸 잊고 사는구나.
길을 걷거나
소나무 곁을 지난다거나
그래, 그러그러하다가 문득 침 삼키는 걸 느끼노라면,
그렇게도 맛있게 느껴질 때가 있고 말이야.
침 삼키는 일을 오래 잊을수록 그래.
아, 숨쉬고 있구나.
손과 코와 입이 움직이고 있구나.
그래, 가장 맛있는 침은 숨보다 더 오래 삼키는 것이야.
물론 침을 숨과 함께 삼켜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

그의 얼굴을 피하는 순간,
겨우 참았던 침이 이내 의사와 상관없이 꼴깍 소리를 냈다.
그가 아주 천천히 숨결을 찡그리고 앉는 순간이었다.
무거운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는 그의 손이 파릇 떨렸다.
나처럼 자리에 앉아 있거나,
그처럼 힘들여 서서 있거나,
침을 삼킬 때 고개를 끄덕여야 하는 것
우리네 보통 사람들 모습은 분명했다.
그러나 혼자 침 맛을 보기 위해 입술을 물고 있는 사람이라면,
몸을 꿈쩍 않고 계속 침을 삼킬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모습을 철저히 부수는 첫 번째 행위라는 것에
떳떳이 오른손을 들 것이다.
조금이라도 침 맛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웃지 않고 입술만 벌린다.
맞는 말이라고.
사내 뒤 형광등에 매달려 있는 나방이
그 대신 노려보고 있으니, 어찌 맞는 말이 아니겠는가.

땀을 씻으려는 듯, 그의 손등이 이마를 스쳤다.
번들거리는 사내의 손등.
둥근 배낭 손잡이를 잡은 그 손목에서 엇기침이 새어 나왔다.
그것 봐.
우리 주위엔 잡을 것이 많아.
전철 손잡이를 생명줄인양 잡고 있는 손목 핏줄이 유독 퍼랬다.
이것이 지금 나의 전철 손잡이야.
그러나 누구라도 마지막엔 제 손 잡아 마지막 침과 숨을 맛보겠지만,
그는 미리 연습 삼아 침 삼키듯 또한 제 손을 잡고 있는 듯.
몰래 숨어,
숨어있는 시간보다 더 길게 침을 삼키고 싶어 하는 사람이야
세월 가면 갈수록 더 많아진다는 것과 같아.
참 재미있는 현상 아니겠어.
그의 뺨에 까만 점이 두 개 번뜩였다.
입을 다시는 소리가 들렸다.
밤에만 침을 삼키며
밤에만 밥을 맛있게 먹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에겐 언제나 보이는 것 모두 밥 먹는 동작이라며
경쾌한 4박자 행진곡을
맨손으로 마음밭을 휘저으며 지휘하고 있을 것이다.

그의 눈이 다시 껌뻑였다.
세게 약하게 또 길게.
눈을 감고 침을 삼키는 것에 익숙해질 때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의 얼굴을
몇 번이고 느껴도 지나치는 순간 인사를 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몰라서가 아니라
삼키는 침 맛을 잠시라도 잊고 싶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빨리 침이 말랐으면 좋겠다.
아주 자그마하게 고이는 맛을 보기 위함이기도 하려니와
살아있다는 고마움을 고이는 시간만큼 나누고 싶은 까닭이다.
누가 크게 웃으면 어떨까.
크게 웃거나 울 때는 침이 빨리 고인다고 하니까.
맞아 물을 먹지 않으면 침이 없어지겠지.
가장 맛이 좋은 침이 그러면 마지막에 가서는 남을 꺼야.
어떤 맛일까.
마지막 살아 있다는 순간의 맛이 어떤 것일까.
아무래도 단 한 번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쉽게 맞을 수 없을 것이다.

아무렴. 

내가 많이 사랑했던 사람들 앞에서 크게 말하는 거야.
이 맛이야.
지금 이 침 맛이야, 라고.
목소리는 아마 개미 발자국 소리 같아 잘 들으려 하지 않을지도 몰라.
아, 이것이 나의 맛일까.
맞아, 이 맛?
사내 배낭을 노려보았다.
말 없는 사내 배낭.
그도 대답이 없다.
누가 옆에 있는지 상관없이
침을 삼키기 위해 살아 있다는
사내 침 삼키는 소리를 누구도 들어 주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나는 그 답을 미리 적어 놓고 기다려야 한다.
맞아, '나의 맛이야'라고.
나는 누구의 답을 또 기다리는 것인가.
혹시 이 사내를 다시 만나는 날,
같은 맛 같은 침을 삼키고 있어야 할 나를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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