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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의 소리 』

유민자 2006. 11. 12. 오후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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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네의 소리 』                                                      

                                                                                                                                                                        

   아장아장 멈칫거리고 오는 환영은 무엇일까?  

  가로등 불빛 아래있는 빈 그네에 아이 모습이 그려진다. 잔바람에 살랑거리는 그네는 웃는 얼굴로 동심을 부르고 있다. 하루 수십 명의 아이들이 다녀간 그네.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와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귓바퀴를 간질이며 동심을 모아온다. 나이들은 내가 부끄럼 없이 아동그네에 턱! 걸쳐 앉는다.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연기, 색동옷 갈아입은 ....“

  창작 동요제 20여년전 대상곡인 <노을>이 저절로 떠올려진다. 부드럽고 깨끗한 마음이 가사 말처럼 내 가슴 안으로 모락모락 피어난다.

  그네에 앉아 입속말로 고운 동요를 흥얼거리며 동무찾아 핸드폰 번호를 급히 누른다. ‘거울에 비친 내 마음을 닮은 동무, 누구 없을까?’ 신호음에 무반응인 벗들. ‘함께 힘을 실어 쌍그네로 하늘 높이 새처럼 오르고 싶은데....’ 갑자기, 옛 기억속의 그네모습들이 내 가슴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다.


  옛 놀이터에는 구름사다리, 철봉, 뺑뺑이, 시이소, 미끄럼틀 그리고 그네가 있다. 꽁꽁 묶이고 꼬인 채 높이 매달려있는 고장 난 그네. 나보다 힘이 세고 커다란 아이가 타고 있는 그네. 차례를 기다리는 애태우는 그네. 아이는 지쳐 그 앞에서 흙과 모래를 만지작거린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뺑뺑이도 재미나지만 그네는 개구장이 아이들에게 인기 최고의 놀이공간이 되어준다.

  “요이,땅! 올라간다...날아라!”

천진난만한 아이의 외침소리가 흥에 겨워 그네와 함께 하늘을 둥둥 떠다닌다. 그네를 타는 마음은 하늘구름을 헤치며 가로지르는 독수리가 되었다가, 또 다시 비행기로 변신하며 요술봉을 휘두른다. 아이는 상상의 나라에서 자유분망한 꿈을 꾼다. 까르르 꽈르르 경쾌한 웃음소리로 땅기운을 흔들어, 활짝 피지 않은 꽃봉오리들을 깨워 고운 자연 세상을 가슴으로 느끼며 받아들인다. 텅빈 공간에 남아도는 그네는 신기하게도 재미나지 않은 아이들. 기다림 끝에 오는 달콤한 세상맛을 느껴가는 아이들. 놀이터에서의 동심은 함께하는 시간을 가르치는 소중한 시절일까? 


  그네는 청소년기 숨은 사춘기 고민공간이 되어준다. 어린 동심의 아이는 성장하며 환상을 좇는다. 집에 다가와 들어가지 않고 놀이터 후미진 그네에 앉아 친구와의 우정을 헤아리며 흔들흔들 발을 구른다. 아이는 가슴으로 자기만의 방을 가꾼다.

  그네와 함께 풀숲이 있는 땅을 떠나 넓은 시야 속에 하늘을 느끼며 자연사랑을 시작한다. 너른 세상에서 번민과 회의를 들고 그네에 오르고, 고민덩이를 하늘 높이 던지고 그네를 내린다. 누군가를 짝사랑하며 그네에 살며시 걸쳐 앉는다. 성숙하게 자란 아이는 긴장을 풀고 동네 텅 빈 놀이터를 사랑한다.  빈 공간인 나 홀로의 시간이 귀엽게 살곰거려, 어두운 밤에 꽉 낀 아동그네에 엉덩이를 들이민다. 두 다리를 털며 사랑이란 언어에 힘을 준다. 호주머니에 간직한 추억의 잔돌을 놀이터에 휙 내던진다.

  ‘퐁당퐁당 돌을 던져라. 누나 몰래 돌을 던져라. 냇물아 퍼져라 멀리 멀리 퍼져라’ ....

  잔잔한 가슴에 돌을 던지는 사람은 누구일까?

  사랑 그림자를 찾지만 그리움은 생활이다. 함량부족인 이성이 사랑 싹을 키우며 감성에 휘들리며 의미를 느끼는 모든 것에 느낌표를 찍는다. 사회를 비방하며 술과 담배로 슬픈 영혼을 위안하는 척 나를 버리려한다.


  그네는 성인아이를 향해 속삭인다. 그냥 쉬어가는 의자에 편히 앉으라 한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결에 마음을 태우고 땅 숲에 ‘보여지는 나’를 내려 놓으라한다. 땅속에 살아가는 지렁이, 진드기,노리개처럼 징그럽지만 숲의 쓰레기를 치우는 중요한 청소부역활을 하는 작은 벌레를 보라한다.  숲속의 친구되어 동물과 식물의 먹이가 되고 새들에게 푹신한 둥지로 침대가 되어주는 이끼를 닮으라한다. 이름모를 들꽃들이 내 발아래 밟혀도 잠시 누웠다가 다시 일어서는 강한 의지를 내 것으로 만들라한다.  아름다운 사랑의 속삭임들은 자아를 찾는 시간의 만남으로 위험에서 나를 보호하고 성장의 키를 훌쩍 키운다.


  이제는 단단한 나뭇가지에 묶인 민속그네를 찾아 나선다. 역사를 재연한 민속촌. 인간이 다듬어 놓은 옛 궁궐 정경이 어우러진 사이 길에 나뭇가지에 동앗줄로 매어 단 민속그네가 서 있다. 그 곳은 많은 사람들이 노력과 땀으로 정성을 들인 청정지역이다.

  민속그네는 출발선에서 열정을 지니고 앞으로 높이 구르고, 다시 중심점에서 점검을 한 후 뒤로 엉덩이를 밀며 높이 오르는 반원 모양의 추(抽)모양으로 힘껏 내지른다. 하늘로 오를 때의 생글거리는 희열은 기분 좋은 날이고, 땅을 향해 내려갈 때의 움추러 드는 서늘함은 우울한 날을 닮아있다. 민속그네는 맑은 공기와 얼굴을 스치는 바람결에 깊은 심호흡을 하게 만든다. 현재진행형으로 내달릴 때 생명을 지니고, 한 번 구르고 두 번 구르면서 무거움을 털고 힘찬 희망을 가르친다. 햇살은 여러 각도를 세워 다양한 빛을 그네에게 건네주어, 함께하는 어른아이는 마음에 창을 열어 보인다.

  ‘민속그네는 자연의 창을 열고 도심의 그네는 문명의 창을 여는 것일까?’


  동심을 껴안은 기억속의 영상 숲으로 들어가 본다. 내 몸 안에 노을 진 나이를 새롭게 쓴다. 곱게 노을이 진 그 다음 날은 하늘이 맑다고 한다. 고개를 치켜들고 시리도록 눈부신 하늘을 보며, 놀이터 앞을 또 다시 서성인다. 오늘은 이해받고 인정받고만 싶어하는 인간의 삶이 무안해, 그네 주변의 휴지조각, 병조각, 담배꽁초들을 모두 줍는다. 쓰레기조각들을  정성껏 치우고 나니, ‘그네는 함께 나르자’고 나에게 윙크를 보낸다.

  양지바른 곳에 앉아 그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삐거덕거리는 그넷줄의 소음마져도 바이올린 고음인 음악소리로 들려온다. 내 머리끝에 그늘을 만들어주는 미려한 나무는 잎사귀를 살랑거리며 따사로운 햇살을 나눈다. 두 나뭇가지가 맞닿은 「연리지」도 보인다.

 

  눈을 감고 그네와 약속을 한다. 이제는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벗이 된다. 둘이 하나가 되어 개성을 지닌채 함께하는 마음은 사랑이다. 연리지(連理枝)는 다른 나무였는데 가지가 하나로 되어 한 몸이 되는 것이고, 비익조(比翼鳥)는 혼자서는 날수없는 두 마리가 합쳐져야 한마리의 새가 되는 새이름이다. 아직 남겨진 미래가 쌕쌕 숨을 내어쉰다.

‘연리지에 우정, 사랑, 미래의 삶을 묶자. 비상을 꿈꾸며 비익조가 되어 날아보자.’ 

  삶의 시계 바늘을 돌려본 시간. 긍정의 마법에 걸려든 오늘이 사랑스럽다. 세상에 은혜를 돌려주는 것은 동심을 안고 사는 것은 아닐까?


  그네 위로 나비 한 마리가 앉아 날개짓을 한다. ‘아, 그네는 나비를 닮았을까...’ 사르락 사르락 바람결에 흔들리는 그네의 목소리가 들린다. 정지선에서 서 있는 그네를 생각한다. 준비자세로 양팔을 벌린 채 세상사람 모두를 반기며, 끊임없이 황량한 영혼을 위로하는 그네. 누구에게나 눈빛을 나누는 그네사랑을 온 몸으로 느낀다.

  텅 빈 의자에 쉬어가라며 손짓하는 그네가 감사하여 함께 웃는다.

  인생 길에 그네를 닮은 친구 한 명 갖고 싶다.




영상/ \"언덕넘어 하늘향기\"에서 펌 

글/ 유민자- 《 POST  MODORN 》2006년 가을호에  『그네의 소리 』 실려있는 글 

댓글 4개

은비녀 2006. 11. 13. 오후 07:12

고향집에 작은 처소를 마련한 다음 제일 처음으로 만든것이 그네였지요. 핑게는 조카녀석들이었지만 그네는 언제나 비어있질 않습니다. 그 위에 앉아 흔들리며, 흔드리며 부르는 노래속에 유년이, 젊은날의 시간들이 있었네요. 그래요, 인생길에 그네 같은 친구 하나 갖고 싶다는 그 대목에서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좋은 글 감사해요^^*

유민자 2006. 11. 14. 오전 09:43

은비녀님! '아, 미리 물어 아는 척을 할 것을....' 저는 은비녀님의 반기는 눈빛과 몸짓이 마음으로 전해왔어요. 저도 많이도 반가웠어요. 정말로 짧은 만남, 아쉬운 마음을 전해요. 은비녀님과 '인생길을 함께가는 은밀한(?) 대화'를 해 볼 것을....^&^ 은비녀님, 늘 건강한 하루! 맛난 하루를 보내세요.!

박문임 2006. 11. 15. 오후 06:09

문학기행에서 뵌분이군요.반가워요 그네를 가지고도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쓰시는 유민자님이 부럽군요 .사실적으로 사물을 바라볼줄만 알지 그속에 담긴 의미나 생각은 읽을줄 모른는데 그네에 앉아 상념에 젖은 유민자님을 그려봅니다.

박정은 2006. 11. 22. 오전 11:42

유민자님의 소녀같은 인상과 조용조용하던 목소리를 떠올리며 그네에 흔들 흔들 동심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환영처럼 다가오네요. 아름다운 글 .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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