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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식사

이태훈 2007. 06. 21. 오후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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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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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룩주룩
계속해서 비가 오고 있어요.
어젯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그칠 줄을 몰라요.
나뭇잎으로 겨우 몸을 가린 채 오돌오돌 떨며 밤을 지샜어요.
날개는 물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축 늘어져 버렸지요.
날개죽지에 둥지를 튼 물방울들은 좀처럼 나갈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냇가로 날아오려고
얼마나 날개를 퍼덕거렸는지 몰라요.
이렇게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질 때는
날개죽지를 잘 다듬어야 해요.

잘못하면 기름기가 몽땅 빠져 나가
영원히 날지 못할 수도 있거든요.
잠자는 곳이 냇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라
참 다행이에요.
사실 비가 오면
배가 고파도 몇 끼 정도 그냥 굶어야 할 때도 있거든요.
아니, 사실은 그냥 우아하게 먹이찾기를 포기한다고 봐야죠.
생각해 보세요.
청승맞게 비를 추적추적 맞으며
먹이를 구한답시고
냇가를 어슬렁거리는 제 모습을요.

왕족 출신인 백로와 친척인 제가
어떻게 한 끼 배고픔을 위해
종일 비를 맞으며 부리를 딱 벌린 채 돌아다니겠어요.


하지만 오늘 아침은 달랐어요.
하루이틀 오다 그칠 비가 아니었거든요.
어떻게 아냐구요?
새나 동물들은 온 몸으로 그걸 느낄 수 있어요.
엊그제 이틀 동안 내리 비가 왔을 때에도
숲 속 둥지에서 벌레들로 대충 때웠죠.

그러나 오늘은 아니에요.
장마가 시작된 것이기도 하지만
예년의 장마와는 달라요.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런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체면이고 우아함이고 다 던져두고
냇가로 날아온 거예요.
오늘, 아침을 먹어 놓지 않으면
며칠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할 거 같았어요.


날이 밝았어요.
물론 해님은 떠오르지 않았지요.
개구리 울음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개구리들은 밤에 울잖아요.
우리들 잠 못 자게 말이에요.
낮에도 그렇게 신나게 울어준다면
고생하지 않고 쉽게 배를 채울 수 있을 텐데.
그렇지만 벌써 두 마리나 잡아 먹었어요.
우아하게 걸음을 옮기지만
개구리가 내 눈을 피해가긴 힘들어요.

다행히 두 번째 놈은 상당히 컸어요.
발버둥 치는 걸, 긴 부리로 콕콕 쪼고
부리 사이에 물고는 숨통을 조였죠.
얼른 삼키고는 물을 몇 모금 마셨어요.
소화를 잘 시키려면 물도 배 속에 넣어줘야 해요.
아, 냄새.
정말 이 곳을 떠나고 싶어요.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물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어요.
개구리 숫자도 부쩍 줄어들었죠.
사람들도 많이 나타났어요.

사람을 피해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먹이를 구하는 것도 피곤해요.
신경이 많이 쓰이거든요.
엄마가 이 곳을 떠나
다른 곳에 둥지를 만들라고 했을 때
들었어야 했어요.

귀찮아서 그냥 살던 곳에 집을 짓겠다고 하니까
하는 수없이 엄마가 다른 곳으로 갔어요.
그러면서 아침을 꼭 챙겨 먹으라고 어린아이처럼 당부를 했죠.
요즘 날씨가 미쳐가고 있다고.

비가 점점 많이 오고,
날씨가 뜨거워지고,
새들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오고 있다고요.


처음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먹이도 풍성했고
공기도 맑았고
물도 시원했거든요.

아, 그러고보니
물이 점점 따뜻해졌어요.
공장에서 내버리는 물이 합쳐진다고 했어요.
큰 공장이 들어섰어요.
시큼한 냄새가 나는 물을 쏟아 냈어요.
그 뒤로 개구리가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쓰레기도 쌓이기 시작했고요.
아이들 자전거도 물 속에 빠트리고,
커다란 곰 인형도 버리는 아이가 있었어요.
하지만 나는 이 곳을 떠날 수 없었어요.
엄마와 함께 살던 내 고향인 걸요.

비가 며칠씩 계속 내리던 날
배를 쫄딱 굶고
며칠 만에 냇가로 날아갔어요.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어요.

물은 불어나 내 키를 훌쩍 넘겼고
콸콸콸
붉은 가슴을 드러낸 채
아래로 마구 흘러가고 있었어요.

개구리는커녕 앉을 만한 자리도 없었어요.
물푸레나무도 가지가 부러진 채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있었어요.

온갖 쓰레기가 징검다리 아래에 모여
미친 듯 춤을 추고 있었어요.

나는 그날
하염없이 주변만 맴돌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죠.


그 때 엄마 말을 생각했어요.
이젠 비가 오더라도 아침을 꼭 챙겨 먹어야겠다고요.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비가 퍼붓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오늘은 단단히 마음을 먹고 냇가로 날아왔지요.
그래도 운이 좋았어요.
마침 폴짝거리는 개구리를 발견할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두 번째 개구리가 그러는 거예요.
자기가 마지막 개구리라고요.
아, 그러면서 한 번만 살려달라고 애원을 했죠.
하지만 전 그 말을 무시했어요.
오늘 아침을 먹지 못하면
일주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할 수도 있는데,
개구리 말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겠어요.

엄마도 그랬어요,.
개구리 말은 절대로 믿지 말라고요.
청개구리가 생긴 건 예쁘장해도
거짓말을 잘 한대요.


그런데,
그런데,
거짓말이 아닌가 봐요.

이제 눈을 씻고 찾아봐도
개구리가 없어요.
물고기도 없고요.


그게 마지막 개구리라면
어쩌면,
나도 여기에서
마지막 왜가리가 될지도 몰라요.

그 생각을 못 했어요.
어쩌면 좋지요?
살려 주었어야 했는데
새끼를 낳고
그래서 올챙이가 생기고
다시 개구리가 개골개골
이 곳을 가득 채워,
밤이 새도록 울도록 놔뒀어야 했는데


이제 여기 원천천에서
우아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개구리를 잡는
왜가리를 보는 것도
여러분이 마지막이에요.

사람들이 와도 도망가지 않을게요.
자세히 보세요.
마지막 왜가리를요.

여러분 기억 속에서라도
남아 있을 수 있다면
그나마 행복한 일이겠죠.


비가 빨리 그쳤으면 좋겠어요.
날개가 점점 무거워져요.

힘이 빠지고
눈꺼풀이 내려앉아요.
물살이 나를 힘들게 해요.

이렇게 비가 오는데
잠이 쏟아지는 건
왜 그런가요?

정말 잠이 쏟아져요..

댓글 4개

포아풀 2007. 06. 22. 오전 12:35

설마 그 잠이......? 안타깝지요? 힘이 빠지고 눈꺼풀이 내려앉고.. 잠은 쏟아지고.. 제가 그랬네요. 어찌나 기운을 빼는 날씨이던지.. 좋은 글 고맙습니다, 이태훈님. 이태훈님의 그 순수성이 마음을 따듯하게 합니다.

박영근 2007. 06. 22. 오전 06:23

정말 잘읽었어요 가슴아파요,

이옥경 2007. 06. 22. 오전 10:32

인류의 끔찍한 종말이 연상되어 정말 마음이 아프네요. 우리의 편리를 위한 삶 때문에 환경이 파괴되어 식물들도 동물들도 마침내 사라지고..그것들을 원천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은 이제 무엇으로 연명하며 살아갈까... 하나 남은 개구리마저 먹어버린 왜가리의 마지막 식사는 희망이 아닌 절망이 되었네요.. 이제 선택의 여지는 없는 것일까요..정말 슬프다^&^

한민 2007. 06. 29. 오후 06:23

마지막 식사를 읽으면서 연상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늪' 이라는 단어입니다. 지구가 마흔다섯살이라고 볼 때 이렇게 황폐화 된 시점은 44년10개월 째 부터랍니다. 발바닥이 닿지 않는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늪'. 진정 구원의 밧줄은 없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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