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글

게시물 상세보기

인생 2

한민 2007. 06. 23. 오후 02:45
3856

  하지만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어 보이는 것은 다름 아닌 보고 계통이었다.
  왜냐하면 생산에 관한 한 공장장에게 보고하는 경로는 생산관리부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었다.

  ‘감히 이것들이 ...’

  마음 같아선 확 뒤집어엎고 싶었지만 기분대로 막 나갈 순 없었다.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지만 일단 현장을 수습 하는 게 우선이었다.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면서 머리속이 다시 정리되기 시작했다.


  컴퓨터와 연결된 도장공장은 프로그램에 의하여 움직이고 있었다.
  컴퓨터에 의한 자동화 공정은 작업의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것 같지만 미세먼지나 단순 오류조차도 인간의 감지 및 판단 기능이 조금이라도 허점을 보인다면 어느 때고 대형사고를 일으킬 소지를 갖고 있었다. 프로그램 상에 버그가 발견되었지만 생산에는 지장이 없다는 전산과의 해명을 떠올렸다.


  도장공장에 들어서자 도장로봇을 둘러싸고 기차장과 기술과장, 품질과장, 생산과장들이 서로 심각하게 논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라인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문제가 발생한 분위기와는 달리 기차장의 얼굴은 여유 만만한 얼굴이었다. 차라리 편안한 쪽에 가까웠다.


  갑자기 지난 주말 간부회의 장면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도장공장의 생산성이 다른 공장의 생산성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업무 보고가 있었다. 즉, 도장공장만 원활하게 가동되면 생산성 향상을 추가로 도모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업무보고는 정례적으로 생산관리부에서 하는 것이어서 생관부서장인 내가 했고 그 자리에서 도장부서장은 한마디로 죽사발이 난 적이 있었다.

  “야, 이 ** 야, 서울대 졸업장 갖고 와봐 ** 야. 정말 그 학교 졸업한 거 맞아? 혹시 국민 윤리과 나온 거 아냐? 왜 너 네 공장에만 들어가면 차가 빌빌대냐고?”

  신상무의 호통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도장공장부서장인 기차장은 일류대 출신의 뛰어난 인재였다.
  아랫사람들과는 상당히 원만한 편이었지만 융통성이 없어서 윗사람들에게는 미운털이 박혀있었다.
  그가 없었다면 도장공장의 자동화 공정 자체가 불가능했다 할 정도로 뛰어난 업적을 쌓아온 그였지만 가동률이 항상 그의 발목을 잡았다.
  전반적으로 상승무드를 타고 있는 다른 부서들과의 비교는 그로서는 참으로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후배들이 여럿 있는데서 인간이하를 대하는 듯한 발언을 견디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처음 부서장 발령을 받고 마련된 자리에서 그가 선배입장이라며 한 말이 스치고 지나갔다.

  “송 차장, 당신을 보면 야생마가 생각이나, 하지만 직장 생활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산을 오를 때 전문 산악인은 자신의 에너지의 삼분의 일만을 사용하지, 왜 인지 아나? 삼분의 일은 다른 사람을 구조하기 위해서, 나머지 삼분의 일은 자신이 위험에 처했을 때 사용하기 위해서라네. 우리 직장인은 적어도 칠팔십 퍼센트의 능력으로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능력을 갖추기 위해 애를 써야하네, 그런데 자네는 현재 백 프로를 다하고 있어. 오히려 더 하고 있지. 그래서 자네는 여유가 없는 걸세. 주말도 없고. 그로 인해 자네가 다소 나아보일지 모르지만 결국 자네 인생은 없는 걸세.”


  드러난 문제점은 없으나 기차장의 반발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장의 자작극일까? 일반적인 문제라면 보고계통을 무시한 것인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해.’


  여유있는 표정의 원인을 알고 싶은 심정으로 그에게 다가가면서 나직이 말했다.


댓글 2개

포아풀 2007. 06. 25. 오전 12:15

인생이란 무얼까요. 사회생활은 늘 긴장과 갈등의 연속일까요. 아닐 경우가 더 많지만 소설 속에서처럼도 가능하겠지요. 픽션도 어느정도는 현실에 근거해서 만들어지는 것이겠지요. 다음을 기다립니다, 한민님.

한민 2007. 06. 25. 오후 06:14

현실의 골격은 일부이지만 경험치를 근거할 수 밖에 없지만 등장인물의 개별 특성및 사건 진행은 순수 창작입니다. 행여 지금 현장에서 열심히 하시는 선배및 동기,후배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