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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 완

한민 2007. 06. 26. 오후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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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직된 얼굴을 하고 얼떨떨해 하는 서차장의 손을 잡아끌며 서둘러 나왔다.

 

  다음날 공장장실.

  “자넬 몰라봤네. 제발 한번만 살려주게.”

  “저는 대한자동차에 뼈를 묻을 겁니다.”

  “이미 앞길은 다 준비돼있네. 자네만 원한다면 동참함세.”

  “저는 대한자동차에 뼈를 묻을 겁니다.”

  “얼마면 되겠나. 큰 거 한 장?”

  “저는 대한자동차에 뼈를 묻을 겁니다.”

  “큰 거 세장.”

  신이사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알았네. 다섯 장. 그이상은 나도 힘들어. 퇴직금과 이적금을 통틀어 류과장과 적당히 만들어 보겠네.”

  “이번 경영손실분의 규모를 잘 아시잖습니까?”

  “알았어. 10장 이걸로 끝내. 그래도 자네와 나 사인데. 앞으로 종종 볼 거고. 그리고 공장장으로 자넬 추천하겠네. 이미 자네는 방법을 다 알았으니 해결하기 위해서 결국 자네가 필요할 거야. 나가보게. 현금으로 자네 트렁크에 싫어 놓을테니 오늘 나랑 술 한 잔 하세. 중앙사우나 지하주차장에서 퇴근하고 7시 까지 와. 난 지금 가서 준비할 테니.”

 

  공장장이 모든 책임을 지고 돌연 사퇴한 사건은 많은 노동자들을 진정시키는데 크게 일조했다. 책임자가 사표를 냄으로써 일을 하지 못하는데 대한 불만을 드러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공장장 대행으로 일사분란하게 현장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동방호스는 밴다에서 제외시켰다.

  10억은 새로운 호스 회사를 설립하는 비용으로 손색이 없었다.

  현장방송제어기 요원이 공장장실로 들어왔다.

  종이를 꺼내고 그가 보이도록 급하게 글을 휘갈겼다.

  ‘이제, 이 방은 제외시키시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기 아랫부분에서 조그만 소형기기를 떼어냈다.

  그 사내는 소형기기를 돌려서 분리시키고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봉투를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며 작업복 안주머니로 가져갔다.

  “수고했네.”

  “제 일인데요, 뭘. 그나저나 지난번 공장장님도 살신성인의 자세로 상당히 존경을 많이 받으셨지만 신임공장장님께서도 인기 좋으시던데요.”

 

  호탕한 웃음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그 사내가 공장장실을 나서자 긴장이 풀리면서 쿠션 좋은 소파에 등을 깊이 묻고 머리를 뒤로 제끼며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폭풍 같은 시간들이 흘렀어.’


  천천히 녹음기를 꺼내 재생버튼을 눌렀다.

  이어폰너머로 수백 번도 더 들었던 그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왔다.

  “류과장, 내만 믿게. 손실금액의 일퍼센트야. 그것만으로 십억은 족히 돼.”

  “직접 듣기 전에는 행동하기 힘듭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이리로 오고 있는 중이야. 도착할 때가 다 됐지.”

  “공장장실로 말입니까?”

  “등잔 밑이 어둡잖아. 경비실에는 내 손님이라고 미리 말해뒀으니까. 문제없을 거야.”

  치 - 치 -

  “월드자동차 인사부장입니다. 이 서류에 서명하시면 현금보관증을 바로 드리겠습니다. 지금 리콜을 해서 대한자동차의 수준으로 손실금액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금액으로 환산하면 두 분의 수령예상액은 가 5억 정도가 됩니다.”

  “라인에 트러블을 줘서 가동률을 떨어뜨려도 인정해 주실 수 있습니까?”

  “좋은 묘안이라도 있습니까?”

  “전산에 직접 참여했었습니다.”

  “그럼 약 두 배 정도가 되겠죠. 물론 각각 입니다.”

  “알겠습니다. 한번 해보죠.”

  치- 치

  “내일 천해레스토랑에서 부서장 회의가 있어. 자네만 따로 오라고 했는데 의논 할 게 있으니까 30분 일찍 오게.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고.”


  서차장은 시계바늘 같은 사람이다.

  마침 그는 항상 그렇듯이 그날도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있었다.

  나 혼자가 아니라 증인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서차장은 가장 적절한 증인이었다.

  하지만 서차장은 아무런 내막도 모른다.

  그날 천해레스토랑을 나와서 들어간 호프집에서 서차장과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서차장, 저 사람들 미워하지 말자. 그냥 깨끗하게 옷만 벗기자. 여태껏 모셨는데. 내가 어떻게 고발하겠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내가 바보지.”

  “그래 선배, 잘 생각했어. 아까 얘기했던 프로젝트 잘되면 앞으로 술은 내가 살께.”


  문을 열고 사무실을 내다봤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모든 사원들은 분주하게 움직였고 저마다 앞을 지나가면서는 공손하게 인사하고 지나간다.

  나는 겸손한 표정으로 그저 웃을 뿐이다.


  인생은 어차피 요지경이니까.

댓글 4개

한민 2007. 06. 26. 오후 08:16

이 글의 모티브는 제가 울산의 모 자동차 회사를 쉬고 싶어서 사직서를 내었을 때 모 과장이 제게 한 말입니다. \"한민씨 어디로 가? 나도 데려가 줘.\" 10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 밖의 얘기는 모두 일상을 근거로 했고 극의 전개는 픽션입니다. 물론 그 이후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구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옥경 2007. 06. 26. 오후 11:49

인생은 정말 요지경이군요. 물고 물리는 정신없이 어지러웠던 산업 전쟁속에서 진정한 승리자는 과연 누굴까요.. 마지막 7장을 읽으며 연장선상에서 다른 장을 넘긴다면 주인공 송차장 아니 공장장으로 승진 된 송상무는 또 하나의 신상무의 신세가 되어있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의 여지가 마음을 무겁게 하네요... 또 다른 송차장과 류과장 그리고 서차장이 꾸준히 어디선가 목표인 무엇인가를 놓고 음해의 낮은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인생이란...내가 가지기 위해서는 그렇게 가차없이 자르기도 하고 함께 공범이 되기도 하는 것인가 봐요. 승자의 겸손한 표정의 미소도 사실은 위선의 포장이었겠지요. 읽으면서 너무도 적나라한 인간의 모습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이런것이 아닌 존경스러운 인품의 향기로 세상의 악취나는 모든것들을 응징했으면 했는데...현실은 그리 여유롭거나 풍요롭지 않게 흘러가고 있네요. 그런 현실이 안타깝고 힘없음에...^&^

이태훈 2007. 06. 27. 오후 06:49

결말이 의외군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치밀한 구성이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하네요.^^

한민 2007. 06. 27. 오후 09:48

감히 인생을 논하자고 기획한 글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정의를 부르짖는 자는 어렵게 살아가고 정의를 부르짖는척 하는 자는 교묘하게 부를 이룹니다. 우리 사회는 행복의 척도가 부의 절대량으로 환산된지 오래되었습니다. 송차장같이 몸을 도사리지 않는 캐릭터가 한번 쯤 이기는 상황도 인생의 한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옥경님, 이태훈님 격려와 관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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