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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야망 5부 우정 아버지의 이름으로

한민 2007. 11. 01. 오후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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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침묵이 흘렀다.

  침묵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정삼식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한지 오래되었지만 영문을 모르겠다는 투의 얼굴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현중이 아랫 입술을 깨물며 입을 열었다.

  “정회장님, 제 부친의 존함이 종자, 섭자를 쓰십니다.”

  순간 정삼식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

  스스로 모든 가능성들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있던 그였다.

  그는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영문도 모를 일로 치부하고 해외도피 방안을 논의하기위하여 이것저것 생각하는 중이었다.

  현중이 자신의 치부를 하나 정도 만들어서 약점으로 삼으려는 의도 외에는 아무 것도 달리 생각한 바가 없는 그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그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의지해야 하는 현중이 이미 감당할 수 없이 커버린 호랑이 새끼라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되었다. 하지만 산전수전을 다 겪은 정삼식이었다. 무수히도 많은 고비와 우여곡절을 겪은 그의 머리가 재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정삼식은 여태까지 본 적이 없는 교활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억지로 여유 있는 척 등받이에 몸을 파묻고 현중을 곁눈으로 보면서 말했다.

  “이사장 마지막 가는 길에 혼자 가면 외롭지 않겠나. 국정원에 잘 아는 후배가 있지. 그 친구에게 자네가 저지른 사건 개요를 일러준 게 맘에 걸리는 군. 내가 숨이 붙어 있어야 그 일이 잘 마무리가 될 텐데.”


  한참동안 현중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정삼식은 자신의 크로스 카운터의 효과를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중의 눈에는 정삼식을 향한 조소의 빛이 역력했다.

  현중은 차분한 목소리로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회장님, 그동안 보살펴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는 심정으로 미안한 마음을 한 구석이나마 지니고 평생 짐이 될 뻔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오히려 홀가분합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모든 사실을 아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타협의 여지가 남아있다고 판단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던 정삼식은 더 싸늘해진 현중의 눈빛을 보면서 몸서리치는 전율을 느껴야 했다.

  당황한 정삼식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말인가?”

  “유정학은 사직서를 쓴 상태입니다. 그리고 문승덕의 건으로 대철이 자수하기 위해서 출발했습니다. 지금 이시간 이후로 정회장님은 변명할 기회가 없으실 겁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요.”


  현중은 악마의 미소를 머금고 냉정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원수를 위하여 일 해왔던 그간의 행위를 자조하며 동시에 정삼식을 조소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정삼식이 자신을 돌봐준 은공을 모르는 바 아니어서 일말의 부담감을 가지고 있던 중이었는데 정삼식이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을 보자 오히려 편안해진 자신을 느꼈다.


  낭패감으로 정삼식의 얼굴이 다시 한번 크게 일그러지는 것을 확인한 현중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조일규에게 신호를 보냈다.    

  조일규는 고무장갑을 끼고 쓰레기봉투를 뒤집어 쓴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정삼식에게 다가갔다. 정삼식은 순간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미 늙어버린 그는 조일규의 손아귀를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조일규는 정삼식을 향해 무자비하게 칼을 휘둘렀다.


  정삼식의 사무실은 온통 피바다를 이루었다. 조일규는 피 묻은 칼을 최춘호에게 건넸다. 최춘호는 비장한 표정으로 오른 손에 칼을 쥔 채로 품속에서 약병을 꺼내들었다.


  조일규는 정삼식의 전용 화장실로 가서 쓰레기봉투 고무장갑에 불을 붙였다. 호화로운 정삼식의 화장실에 고무 타는 냄새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창문을 열자 창문 너머에서 비가 그치고 난 뒤라서 모처럼 신선한 서울의  밤공기가 바람에 실려 날아들었다.


  화장실을 나온 조일규는 정삼식의 목에 검지와 중지를 갖다 대고 완전히 숨이 멎은 것을 확인하고 최춘호를 내려다봤다. 최춘호는 약을 쥔 손을 부르르 떨면서 한입에 약을 삼키고 발버둥을 치며 목을 움켜쥐고 쓰러졌다.


  조일규는 다시 화장실로 가서 불에 타다 남은 잿더미에 물을 부은 후 그것들을 변기통에 넣고 물을 내렸다. 밖으로 나온 그는 미리 준비한 야구방망이로 자신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그리고 그는 정삼식의 방문이 부서질 만큼 온몸으로 부딪히고 비서실에 길게 드러누웠다.


  밖으로 나온 현중은 네온이 켜지기 시작한 명동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아버지, 살아만 계십시오. 아버지.’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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