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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비를 맞으며
겨울비를 맞으며
겨울비를 맞았다
차가운 전철역 출구
처음부터 제 세상인 양 반짝이는
빗물
아, 비가 왔구나
우산을 살까 하다가
몇 신문지를 펼쳐 이마를 가렸다
키 작은 나뭇가지 아래
보도 블록 틈틈 구구단 세듯
빠르게 걸었지만
빗방울이 발걸음을 잡았다
땅으로 가지 못한 비는
서로 어디로 갈까 하늘 쳐다보고
나는 살살 피해 다녔다
점점 겨울비가 따스해졌다
간밤
비 오는 소리에 잠을 설치더니
시간이 멍청해진 모양이다
비올 줄 알며 우산을 놓치고 나온
덩달아 멍청해진 겨울비였다
꼭 한번 멍청해지리라고
그래서 꼭 한번 이 길을 지나치고
언제 흘릴지 모를 눈물이라며
내 겨울은 보아라 흘리는가
세상은 저마다 움직이는 것
아픔이든
웃음이든
차가움이든 누구 것이든
무디어져 가는 제 것을 느끼는 것
저마다 남은 내 것이라며
맛도 크기 주인도 없는
침을
숨을
빗물인가
눈물인가 꾹꾹 삼키는 것
더 맞아라
내 것 사라질 때까지 맞아라
겨울비 더 맞아라
뉘 찾을 이 없는 겨울 거리
이렇게 하루 살아 저렇게 걷나니
오늘은 겨울 끝 닿을지 몰라
세상 끝 닿을지 몰라
그래 내 시간 끝 닿을지 몰라
점점
접어 쓴 신문지가 무거웠다
빗물보다 늦게 신문지를 내렸다
이마며 뺨이며 입술 목덜미
닿다가 속삭이다가 사라지는
아하, 빗물 모두 내 것이었구나
가벼운 겨울
나보다 가벼운 세상이 되어버린
내 겨울비 맞는 날이었다
댓글 1개
나보다 가벼운 세상이 되어버린 내 겨울비 맞는 날... 초겨울의 어느 날, 우산도 없이 걷던 이, 바로 시인님이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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