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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와 늑대 4
혜미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생각했다.
‘일단 어디까지 끌고 가는지 두고 보자.’
그녀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그런데 언제 그렇게 다 준비하셨어요?”
“질문이 많은 여자는 호기심과 의심중 하나가 많죠. 어느 쪽이죠?”
“드디어 그 쪽도 질문을 하셨네요.”
“하하, 그렇게 됐나요?”
“이 대 이, 또 질문하셨어요.”
“하하하하!”
한영준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크게 웃었다.
혜미는 이따금씩 부딪혀오는 그의 어깨를 느꼈다.
한영준은 전혀 느끼지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혜미씨는 취미가 뭐죠?”
“노래 부르기도 좋아 하구요, 춤추는 것도 좋아해요.”
“참 요가를 하시니까.”
“요가와 댄스는 별개죠. 좋아하세요?”
“좋아하기는 하지만 몸치 수준이에요.”
“선수들이 처음에 다 그런 식으로 얘기하죠.”
“선수를 알아보는 걸 보니 혜미씨도 선수 같은데요.”
혜미는 뜨끔하면서 얼른 화제를 돌렸다.
“요즘 불황이라는데 그쪽 경기는 어때요?”
“아무리 불황이라도 서태지나 박진영은 살잖아요.”
“잘 되신다는 말로 들리네요.”
“슘페터의 혁명이론에서..........”
눈을 치켜들고 한영준을 힐끔 바라보던 혜미는 냉랭하게 고개를 획 돌리더니 종종걸음으로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한영준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천천히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태양은 어느새 서산 너머로 넘어가고 어느덧 백사장이 끝나고 커다란 주차장이 나타났다.
주차장을 가로질러 들어가니 까만 바다가 훤히 보이는 커다란 유리창 옆에 이미 푸짐한 상이 가득하게 차려져 있었다.
혜미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한영준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다.
하지만 이렇다할 특징 없는 평범한 식사로 혜미의 맥이 풀리는 듯 했다.
식사가 끝날 즈음 혜미의 전화벨이 경쾌하게 울렸다.
부산으로 오고 있는 그녀의 친구의 전화번호였다.
그녀는 변화를 위하여 하늘이 주시는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전화기를 귀에 갖다 대면서 그녀는 화사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어디쯤이야?”
“구포를 막 통과했어, 저녁은 먹었니?”
“너희랑 같이 먹으려고 참고 있지, 배고파 죽겠어. 빨리 와!”
“그래, 도착하는 대로 전화할게.”
“귀여운 것들.”
그녀는 전화기를 내려놓으면서 한영준의 표정을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한영준은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다급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오나 보죠?”
“네, 친구들이 오고 있어요. 무박이일의 결사대원들이죠”
한영준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럼, 식사만 하고 들어가신다는 말씀이신가요?”
‘빙고, 상대방의 여유를 내 것으로 만들어라!’
혜미는 피곤한 것처럼 눈을 깔고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 피곤하네요. 우리는 오늘 일단 밤새 우리끼리 한잔 할 거예요.”
한영준은 자신의 잔에 술을 한잔 따르고 가볍게 마신 뒤 잠시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상대방이 댕기면 약간 댕기다 놓고 상대방이 놓으면 양껏 당겨라!’
여유 있게 한영준이 버티는 것은 그녀 자신이 시간이 많아보여서라고 판단한 혜미는 시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하게끔 이끌어가고 있었다.
‘이제 저 사내는 마지막 판단을 할 것이다. 길게 갈 것인가? 속전속결로 끝낼 것인가? 젠틀한 척 하는 스타일로 봐서는 계획을 길게 잡을 것 같은데 그러면 오늘로서 땡이다. 쿨하게, 진하게............’
혜미의 머리 속이 유행가 가사를 떠올리며 초속 스무 바퀴 정도 팽팽 돌아가고 있을 때 한영준이 입을 열었다.
“역시 저는 운명을 믿어선 안 되는 것이었어요.”
“무슨 말씀이죠?”
“오늘 저는 인생에서 제 자신의 반쪽을 만났다는 필을 받고 언제 이야기를 꺼내나하고 고민 중이었거든요. 아!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평소에 저는 아는 체를 많이 해서 말이 좀 많은 편이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자꾸 입술이 말라서 술만 계속 마시고 아무 말도 못했어요. 주량이 소주 두병인데 벌써 세병을 저 혼자 다 마셨잖아요.”
‘헉, 세다! 준비한 멘트냐, 아니면 진실이냐! 어떻게 나와 같은 연인관을 가졌단 말이냐! 혜미야! 정신차려!!!!’
하지만 이미 그녀의 가슴은 헤비메탈 그룹이 클라이막스에 다달았을 때 무대 앞 앰프에서 들리는 소리처럼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댓글 2개
둘 다 선수같은데요? 여자보다는 남자가 더 고단수인지도...
남자가 더 고단수인거 같죠 그것을 알아차린 포아줄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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