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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와 늑대 7
혜미는 창밖으로 까만 밤바다를 보았다.
순간 해마다 무엇인가에 화풀이하듯이 여름사냥을 애써 즐기던 그녀 자신을 되돌아보며 까만 바다가 자신의 미래와 어울릴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동시에 그녀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신천초등학교 6학년 교실.
혜미는 겨울방학을 이틀 앞두고 크리스마스 이브가 끼인 주의 월요일에 평소 좋아하던 남자친구, 최창균에게서 카드를 받았다.
그녀는 그가 손수 그린 그림과 정성스럽게 써내려간 글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더구나 그녀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었던 상대였기에 더욱 그랬다.
그녀는 세상 모든 것을 얻은 것처럼 느껴졌고 하루 온종일을 구름 위를 걸어가는 기분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창균의 카드를 보고 또 보기를 수십 차례 한 덕에 잠까지 설치고 말았다.
다음날 종업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혜미는 심혈을 기울여 밤새 카드를 만들었고 크리스마스 이브날 저녁에 창균의 집 대문 사이로 그것을 가만히 두고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집으로 되돌아 왔다.
그녀는 그녀의 집 앞에 다다랐을 때 커다란 검은 물체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그녀의 같은 반 다른 남자 친구인 정창옥이라는 친구였다.
창옥은 덩치는 크지만 말이 없었고 항상 교실 뒤에서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친구였다.
“네가 어쩐 일로?”
“그냥, 난 카드를 한 장 만 만들었다.”
“웃기는 애네, 누가 물어 봤니? 남자친구들에게는 안주니?”
“아빠가 집 팔아서 서울로 이사 간대.”
“물어봤냐고?”
횡 하니 돌아선 혜미는 대문을 쾅 닫고 들어 가버렸다.
혜미는 창균의 반응을 기다렸지만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를 데리고 방학 내내 서울과 진주를 오가면서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댁을 비롯하여 다른 친지들을 찾아다니며 인사를 하고 사업자금을 마련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녀와 함께 여행하면서 도저히 농사일로는 제대로 자식 교육을 시킬 수가 없어서 조그만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전답을 담보로 친척들에게 돈을 빌리고 있다는 걸 그녀에게 설명하면서 겸사겸사 친척들과 얼굴도 익히면서 초등학교 마지막 방학을 의미 있게 보내라고 당부했다.
금새 졸업식 날짜가 다가왔다.
졸업식 때 창옥은 보이지 않았다.
혜미는 읍내에 있는 제일여중으로 진학을 하고 창균은 중앙중학교로 진학을 했다.
혜미의 아버지는 읍내로 이사를 하면서 작은 옷가게를 열었다.
창균과 함께 통학버스를 타고 다닐 것을 기대했던 혜미는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옷가게는 크게 번창을 하였고 번화가의 건물을 사들여서 브랜드 양복점을 내기에 이르렀다.
혜미의 아버지가 혜미에게 가정교사를 붙여가며 철저히 감시하는 바람에 창균과 만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기에 이르렀다.
그녀가 중3겨울 방학되던 해.
전국적으로 롤러스케이트가 유행이었다.
혜미는 고등학교 입시시험에서 제일여고 장학생으로 뽑히게 되었다.
그녀에게 모처럼의 자유가 주어졌고 그녀는 친구들과 ‘뽀빠이 롤러스케이트장’ 에 놀러갈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미 그녀는 근동에서는 꽤 알려진 소위 ‘잘 나가는’ 존재였다.
큰 읍이라고 해봐야 겨우 인구 이만이 겨우 넘는 작은 도시에서 부잣집 장녀에 미모와 학식마저 빼어났으니 많은 사람들의 선망이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가 롤러스케이트장에 나타나자 남학생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책임자로 보이는 남학생이 그녀에게 접근했다.
“처음 신어보는 거죠? 이걸 신으세요.”
대부분 롤러의 발목은 짧았는데 그가 내미는 신발은 흰색부츠에 바퀴가 달려 있었다.
그녀가 위태위태하게 걸어가고 있을 때 아까의 그 남학생이 같은 색깔의 롤러를 타고 롤러장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한바퀴를 쉑 소리를 내며 돈 뒤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기저기에서 흰 자위를 심하게 드러내놓고 혜미를 꼬나보는 여학생들의 눈빛이 장난이 아니었다.
혜미와 함께 온 친구들의 얼굴에 불안감마저 드리워졌다.
정신없이 허우적거리는 사이 한 시간이 휑하니 흐르고 혜미는 모처럼의 운동으로 기분이 상쾌해졌다.
흐르는 땀을 닦고 있는 그녀에게 손수건을 내미는 남학생이 있었다.
놀랍게도 그는 바로 창균이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지만 훌쩍 커버린 훤칠한 키에 부리부리한 눈, 그리고 건장한 체구로 변해있었지만 틀림없는 창균이었다.
to be continued.....................
댓글 1개
봄바람을 타고 드디어 한민님의 글이 도착했네요. 여세를 몰아 글이 잘 풀리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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