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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시장 할아버지

김봉길 2008. 04. 11. 오전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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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시장 할아버지
1.
아현시장 할아버지 옥수수 강냉이를 담으신다
웅크러드는 몸뚱이보다 널찍한 봉다리
눈보다 높은 강냉이 봉다리 털어 잡고
쌀 보리 강냉이 꼭꼭 담으신다
다롱다롱 작은 봉다리 입술 잡고
뉘 색깔 손가락 생각에 한 공기 한 공기 담으신다
밤 공기 간지르르 머리 넘어가면 갈 수록
강냉이 한 웅큼 곁 지나는 사람 향해
보아라 보아라 내 남은 시간 보아라 강냉이 담으신다
사람들아
숨맛이란 사랑하면 할 수록 강냉이 닮아간단다
가슴에 담아 두었던 군침말이과라 내뱉아라
함께 뱉은 말이 어찌 강냉이 맛보다야 나을까
앉아서 먹고
앉아서 싸고
앉아서 비 맞아
한 곳에 앉아야만 한 세상 보인다는 강냉이 말
사람들아 들어 보아라
그래
산다는 것은 부끄러움을 조금씩 줄여 가는 일이야
죽어 간다는 것은 자랑거리를 조금씩 줄여 가는 일이야
그래 그래
사람 보는 일을 줄이는 수 밖에
그러면 들리느니 새 혹은 쥐 웃음소리거나
강냉이 틈새를 지나는 그대 코끝 바람소리거나
그래
보이는 것은 모두 지나는 것이야
보이는 사람은 그냥 사라져야 하는 것이야
먼지카락 냄새 아현 시장 사람들 발자국 소리 같은 것
복숭아 포도 꽃집 떡복이 아저씨 아줌마 할매
이내 강냉이 먹는 소리 같은 것이야
2.
아현시장 할아버지 새 동무들과 노래하신다
누렁아, 그래 누렁아 거기 있었구나
알록이 오리는?
오호라 그랬구나, 얘들아, 심심하지?
아현시장 할아버지 손춤을 추신다 달팽이 더듬이 만지듯
아하, 두 달만에 누렁 강아지야
청둥오리 닮은 눈꺼풀 누런 아하 지금은 미운 오리야
너희들은 생일이 같단다 그렇다 시간도 같단다
태어난 곳은 아현 시장 쓰레기 모둠 덩이덩이 아래
네가 살고 있는 고향은 향기로운 쓰레기 동산
랄라랄라 여기보다 향기로운 곳은 없을 것
랄라랄라 내 옆보다 포근한 곳은 또한 없을 것
그러나 나보다 즐거운 그대들은 없을 것
나보다 더러운 것을 갖고 있는 그대들은 없을 것
내 안의 것을 툭툭 보여주는 그대들은 없을 것
입술을 묻혀 모든 것을
보아라 보아라 던지는 그대들은 없을 것
하루에 한 번만 크게 웃어라
아하 그리고 두 번은 크게 짖어라
아니면 세 번 울어 울어라 누렁아 알록아
목숨이란 강냉이 같은 것
땅맛이란 강냉이 같은 것
땅 집고 헤엄치는 사람은
똑 같은 웃음소리를 흉내내지 못한단다
순간마다 흘리고 다니는 울컥 소리
꿈에서도 맛있게 씹어 당키는 소리들 말이다
3.
아현시장 할아버지 물 휘청 놓았다 놓았다 들고 오신다
할머니 몸보다 무거운 시간의 물 생명의 물이다
아현시장 할아버지 뉘 기다려 하모니카를 부신다
나의 물을 부어줄 사람 위해 노래를 부르신다
커피 자판기를 열려면 언제나 이 쪽 아니면 이 쪽
이 열쇠거나 아니면 또 이 열쇠
그러니까 이 쪽 그래서 이 쪽으로 돌리시라
오호 그렇네 한 쪽으로만 돌리시게라
오호 밤을 보시기 두려우신가
아니 아니 세상이사 세상살이 어두운 길만 보셨는가
옳거니 가슴팍 옷깃틈이 뉘엿뉘엿 어두우시럿다
자 여기 나의 가슴팍이다 커피 자판기 가슴팍이다
가슴팍까지 나의 물을 올려다오
포도 파는 아저씨야 나의 가슴팍까지 올려다오
그대 코끝 눈꼽보다 키보다 높은 곳
마음껏 들여다보고 같은 가슴팍이랏다 마음껏 부어다오
할아버지 고맙다는 손짓 없이 문을 닫으신다
이 쪽으로 이 열쇠 아니 이 열쇠 이쪽으로
할아버지 웃으시며 자판기를 잠그신다
세살 소리 여든에야 아신다 생각하셨을까
할아버지 허연 머리카락 구부려 사람들 올려다본다
하모니카 끝에 비치는 얼굴이 맑다
세상은 늙은 손때를 타야 맑게 빛나는 법
아하, 아현시장 할아버지 하모니카를 다시 부신다
떨어지는 소리 따라 땅바닥 오래 바라보신다
땅 위에 하모니카 소리 그림자가 선명하다
서너개 너덧개 예닐곱개
아니 여나무개 눈물자국 될성스레 선명하다
사람아 하모니카를 다시 불고 싶어 사람들아
움먹움먹 눈물처럼 달아나기만 하는
보고 싶었던 사람 얼굴이 눈물 방울 틈마다 생각나
이 소리는 언제 들었을 거야 분명 사람아
그러나 지금은 잊고 있는 사람아 들어라 들어라
이렇게 보고 싶은 사람이 자꾸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니
어찌 그대들 소리가 서로 같을 수 있을까
어찌 같은 느낌으로 나를 멈추게 할 수 있을까 사람아
내 커피 자판기 내 가슴팍이라며 잠그듯
어찌 내 소리를 잠글 수 있을까 사람들아
4.
아현시장 할아버지 바람틈 사람틈에 안보이신다
십분을 순간마디마다 멀뜩 넘어 다시 본다
할아버지 편찮으신가 보다
아니 할아버지 냄새 맡으러 가셨나?
오래오래 두고 온 눈물 냄새가 그리우신가?
하늘냄새 땅냄새 사람냄새 이름냄새 침냄새 하얀냄새
하핫 그림자냄새
아니 아니 몸엣것 내다버리시럿나
그래도 이렇게 버릴 수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이야
한 번 숨을 쉬는 것과
한 발자국 그대를 향해 가는 것과
그대 향해 몸엣것 버리는 것
그 어찌 뻔한 곳에서 구분할 수가 있겠느냐구
걱정 마시게 혼자 떠나진 않으리니
내가 살아있어 어떠하다고 말한 것에 대하여
내가 묻고 내가 대답하는 것에 대하여
확인해야 하니 걱정하지 마시게
나를 걱정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언제나 한 곳에 있어야 하는 것
그러나 다가서지 못하는 그대들을 위해
언제나 그대들의 그 곳에 있어야 하는 것
알고 있네 그 곳을 지켜야 하는 것 알고 있네
언제나 늙은 사람들의 몫이라는 것
늙은 사람들이 침묵하는 결과라는 것
걱정마시게 그저 잠시 숨어있는 것이러니
그대 손짓 발짓 구분해 보려함이러니
5.
아현시장 할아버지 화가 나셨다
가파른 한 숨에 막걸리를 드신다
떨리는 도토리묵이 한 입에 가볍다
먹던 막걸리 잔과 묵 그릇을 땅에 놓으신다
한 줄기 땀을 닦으신다
저녁 바람이 막걸리 이슬이라며 입술을 핥는다
할아버지 보다 더 깊이 고개를 가슴을
아니아니 허리 다리 숙이신 할머니
서둘러 집으로 갈 준비를 하신다
할아버지 화가 나셨다
흥, 내일은 또 내일이지
내일은 또 웃음이지 강냉이 같은 웃음이지
내일은 나의 시간을 팔고 싶어
나의 시간을 팔아먹고 한꺼번에 살고 싶어
그대들은 그대 시간 팔아 먹고 살아라
그대여 시간을 마음대로 팔고 마음껏 살아가기를
6.
아현시장 할아버지 개미 보듯 천천히 일어나신다
할아버지 걷는둥 마는둥 춤을 추신다
강냉이 동산 보일듯 말듯 숨박꼭질 하신다
눈에 스친 하고많은 것들이
뭐 하나 닮고 싶지 않은 것들이
뼈 소리 뒤로 살갗 소리 뒤로 부끄러워라 숨어버리는
눈물 혹은 웃음 아니면 외로움 같은 춤을 추신다
차근차근 걷는 것은 너희들이 할 일이야
내가 이렇게 춤을 추며
더 차근차근 걷는 것은 나를 준비하기 위함이야
내가 잘 곳을 내가 앉을 곳을
그리고 나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야
잠깐 지팡이를 짚는 것이야 내 어찌 부끄러워하리
달이 반쪽만으로 간다거나
내 뻥티기가 더 많이 없어진다거나
내 앞에 의자 밑에 그대만의 쓰레기가 있다는 것이
한쪽 지팡이를 짚는 것과 같다는 것을
그대들에게 알리기 위함이야
아, 나는 더 차근차근 걸을 수 있을까
나를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해
더 차근차근 더 차근차근 다가갈 수 있을까
오래 서있지 못해 떠난 사람들은
그래 그들은 자기 발걸음을 세지 못하고 걷지
내가 이렇게 나의 걸음을 셀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나 때문이었어
내가 가졌던 자랑거리
내가 가졌던 사람들의 목소리
아니 그보다 내가 그동안 세어왔던 밥그릇
그래 물그릇 수를 헤아려 보는 것이었어
이제 그대 발자욱 소리를 듣고 싶어
더 늦게 더 차근차근 그리고 정확하게 걷는
그대의 발자욱 소리를 듣고 싶어
나보다 더 한 곳에 서있는 그대의 것을 말이네
7.
아현시장 할아버지 마음껏 펼쳐 놓으신 당신 것들
한 숨에 먼지 날려버리듯 한꺼번에 바라보신다
바라보시라 건드려 보시라 만져보시라
아하, 있는 그대로 나의 것 가져가시라
나의 것은 100원 200원 500원 1000원
나의 친구들이여 그 이상 것은
나에게 웃음을 웃음소리를 다오
그러나 나는 그 이상 것을 여기에 놓고 팔지 못한다네
뒤돌아보면 오, 그곳은 언제나 나의 뒷모습 때리고 지나가는
그래서 빨리 지나가고 싶은 나의 꿈들이라네
뒤돌아보기 싫은가 그대들이여
그대들이 놓고 간 웃음조각들
뒤돌아보기 싫은가
지금 바라보시라 지금 건드려보시라 지금 만져보시라
아하, 있는 그대로 나의 것 가져가시라
더 가지고 있어 웃을 일 없는 나의 것 가져가시라
8.
할아버지 지는 해를 누구의 것이라 보고 계시다
가장 편하게 앉으셨나요
잠시 아픈 허리결은 깊이 잠에 들었나요
오늘은 노란 해
내일은 하얀 해
구름이 그 옆을 가리면 더욱 노래지는
할아버지 갈라진 손톱 끝에 걸린 노란 해
오호 그렇구나
저쪽은 나의 웃음이 닿지 않는 곳이로구나
오호 나의 눈물이 닿지 않는 곳이로구나
9.
아현시장 할아버지 강냉이 일을 끝내신다
이것은 저 곳으로 저것은 이 곳으로
오늘도 청소를 하시는 할아버지
아, 나의 것들 여기 있었구나
나의 강냉이가 여기도 있었구나
반갑다 오늘도 인사를 할 수 있구나
내일은 다른 때가 묻고
내일은 다른 사람들이 보고
내일은 다른 숨결로 눈길로 너희들이
오호 조금은 다른 장소에서 나를 볼 것이다
할아버지 하나하나 손때를 묻히신다
강냉이 하나하나에 시간들을 묻히신다
손때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며
저마다 때를 가진 사람들의 몫이라며
땅 쓰다듬는 손길로 손때를 묻히신다
10.
아현시장 할아버지 강냉이 봉지가 반짝거린다
닫힌 문을 보시다 강냉이 봉지를 흔드신다
웃거나 우는 일이
더욱 싫어지는 아하, 사람 멀득한 날
웃지 않고 할아버지 몰래 보기
울지 않고 할아버지 몰래 보기
못 본 척 지나치기
노래 부르며 먼저 지나가기
내 노래 소리는 내가 부르고 내가 듣는다 사람아
이 세상은 모두 노래 소리야
살아가는 것은 모두 노래야
밥을 먹거나 숨을 쉬거나 걷는다거나 사람아
내가 부르고 내가 듣는 노래야
그러나 긴지 넓은지 높은지
그러나 알고 부르는 것은 노래가 아니야
모르고 그냥 부르는 것이 노래야
제 숨에 숨이 차면 기침을 하고
그래서 기침이 노래가 되고 숨결이 노래가 되면
아름다움만 순간만 남는 것
강냉이와 손가락과 구름과 눈빛과 하늘이
부딪치다가 떨어지는 순간 순간만 남는 것
사람아 내 노래 소리는 내가 부르고 내가 듣는다
사람아
* 주 ; 당키다 : 애써 당겨 삼키다.
 


댓글 4개

김문숙 2008. 04. 11. 오전 09:38

이렇게 숨 찬 시는 처음입니다. 활화산 같습니다.-- 이 세상은 모두 노랫소리 숨결마다 노래 소리 --- 강냉이를 다듬어도 구부정한 노인이어도 그 노래가 즐거운, 기쁨 감사의 노래가 많기를 바랍니다.

한기식 2008. 04. 13. 오후 04:05

\"아현시장 할아버지 옥수수 강냉이를 담으신다 \"에서 옥수수와 강냉이는 어떻게 다른것입니까 옥수수 틔긴것을 강냉이라고 한다면 쌀 틔긴것은 쌀강냉이 입니까 본인이 알기론 옥수수는 표준말이고요 강냉이는 경상도 지방에서사용하는 사투리고요 각지방마다 옥수수깡 또는 옥수시개등으로불리고 있는줄로 압니다만...... 이렇게 좋은글에..... 죄송합니다 ]

김봉길 2008. 04. 14. 오전 10:05

강냉이와 옥수수는 같은 뜻. '옥수수 강냉이'라고 한 것은 강냉이를 더 강조하려던 욕심이었던 것 같군요. 욕심이란 결국 스스로 살아가기 위해 만드는 원동력인 듯.

포아풀 2008. 04. 14. 오전 10:44

\"사람들아 숨맛이란 사랑하면 할 수록 강냉이 닮아간단다 \" 구수한 강냉이 맛이 생각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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