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글

게시물 상세보기

여우와 늑대 11

한민 2008. 04. 14. 오후 03:34
3783
 

  그랜드 호텔 로비에 한 사내가 밤바다에 시선이 고정된 채 앉아 있었다.

  입가에 작은 미소를 머금은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조 혜미.’

  그의 입가에 흐뭇한 웃음이 배어나고 있었다.

  그는 전화기를 두 손으로 잡고 바쁘게 엄지를 놀리기 시작했다.

  ‘한 시간만 드라이브, 어때요.^^’

   

  5분 후 그의 전화기에 문자가 왔음을 알리는 이모티콘이 선명했다.

  ‘어디세요^^’

  ‘1층. 엘리베이터 앞 소파.’


  혜미는 무언가에 홀린 듯 객실 안을 우왕좌왕 좌충우돌 하다가 겨우 진정하고 나설 차림을 하고 일어섰다.

  혜미의 친구들이 저마다 그녀에게 한 마디 씩 했다.

  “드디어 사냥하러 가는 거냐?”

  “가랭이 함부로 벌리지 마라!”

  “슘페터 만나러 가는 거지?”

  혜미는 문을 열고나서며 손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굳 나잇!”


  까만 밤바다를 오른 쪽에 두고 까만 콘돌이 꼬불꼬불한 해안도로를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차안에는 내용을 알 수 없는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혜미는 차마 다른 음악으로 바꾸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왜 이렇게 된 거지. 그 당당한 혜미는 어디 간 거냐고. 코스닥 시세와 슘페터에 원투펀치 맞고 이대로 쓰러지는 건가?’


  한영준이 입을 열었다.

  “클래식 좋아해요?”

  “별루요. 가요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이곡은?”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이죠.”

  한영준은 머리 위의 CD 케이스에서 CD 한 장을 꺼내들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CD를 바꿔 넣었다.
  이내 익숙한 음악이 조용히 흘러 나왔다.

  ‘언제부터인지 그댈 멀 게 느낀 건 누군가와 함께 있는 걸 본 후’

  최근 리메이크 된 곡으로 하얀 겨울이라는 곡인데 지금 흘러나오는 노래는 원곡인 듯 했다.

  ‘제법 센스 있고, 매너도 .......그런데 하필 하얀 겨울이지?’

  음악은 Repeat 이 되어서 반복해서 같은 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가 좋아하는 곡이죠.”

  “겨울을 좋아하시는 군요. 아니면 여름이라서 시원한 느낌 때문에?”

  “그냥 좋아해요. 가사가 좋잖아요.”

  얼마를 달렸을까.

  시커먼 바다는 어둠 속에서도 쉬지 않고 철썩 철썩 포말을 잘도 만들어냈다. 포말은 순간적으로 달빛에 반사되어 하늘 위로 바다 위로 그리고 시커먼 바위 위로 고르게 퍼져나갔다.


  간절곶.

  가로등불이 해안선을 따라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도로의 안쪽으로는 바람개비가 돌아가고 있었고 멀리 방파제까지 일렬로 늘어선 횟집은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간절곶 입구 삼거리의 포장마차 하얀 등대.

  늦은 시간이었지만 시원한 바닷바람을 즐기려는 남녀들로 가득 했다.

  동그란 비닐 창이 완전히 열려있었고 시원한 바다 바람이 상큼했다.

  삼파장 전등불은 형형색색으로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혜미와 한영준은 어색한 침묵의 길이를 가늠하는 듯 했다.

 

  혜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한 시간만 드라이브 하자고 하셨잖아요.”

  “이제 딱 한 시간이 흘렀거든요. 더 이상의 드라이브는 곤란합니다.”

  “한방 먹었군요.”

  “물론 상호 동의 하에 시간은 조정할 수 있습니다.”

  “작업하시는 수준이 보통이 넘어요.”

  “작업이라면 그 쪽이 훨씬 경험이 풍부하신 것 같은데.”

  “잘 보셨어요. 하지만 눈에 차는 사내를 만난 적은 없어요.”

  “그렇다면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건가요?”

  “그게 사랑이라면 사랑이겠지만 지우기에는 애틋하고 간직하기에는 다소 부담이 가는 그런 어릴 적 첫사랑 정도는 있죠.”

  “혜미씨 같은 미인께서 의외군요.”

  “일만 했어요.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남자 사냥을 하기도 해봤지만.”

  “소득이 없었군요.”

  “그렇지만도 않아요. 지금 이러고 있는 걸 보면.”

  “혜미씨가 선수 같아요. 멘트가 장난이 아니거든요.”

  “진실을 말하면 다 프로 같은가 봐요.”

  “혜미씨는 짝사랑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혼자 하는 사랑은 의미가 없다고 봐요.”

  “만약에 혜미씨를 짝사랑하는 사람을 알게 된다면요.”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너무 앙큼한가?”


  두 사람은 포장마차의 어두운 조명이 서서히 익숙해지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댓글 2개

포아풀 2008. 04. 15. 오전 10:40

시와 소설의 다름은 무엇일까요. 저는 소설은 모르지만 소설의 세계가 무척 궁금하지요. 시는 감추고 절제하는 것을 미학으로 둔다면 소설은 어쩌면 솔직하고, 화끈하고, 그래서 보다 구성지고 절절한... 그런 미학 같아요. 맞는 소리를 한건지... 한민님, 도와주세요.

한민 2008. 04. 15. 오후 03:05

끊임없이 고민한다는 공통분모를 제하고 나면 서술방법의 차이가 아닐까요. 학창시절 예수는 시인이고 부처는 소설가와 같다 라는 내용의 글을 접한 적이 있지요. 이문열님을 접하고 글 쓸 자신이 없어져서 20년을 글을 뒤로하다가 용기내어 적어봅니다. 아마추어는 그저 행위 그 자체에 기쁨을 느낄 뿐이죠. 관심 감사드립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