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글

게시물 상세보기

말을 꽃피우다

포아풀 2008. 04. 18. 오전 10:24
4063
골목 돌아 나오는 길 빼꼼히 열린 초록 철대문 사이로 환한 철쭉들 고개를 내민다 호기심으로 밖을 훔치는 그들을 기린 목이 되어 들여다본다 손수레 가득한 모자를 훑다가 줄곧 눈을 맞춰오는 하나를 집어 머리에 얹으며 값을 물었다 주인은 대답대신 양손가락을 펼쳐보였다 어지간히 지친 탓이라고, 입도 열기 싫은 탓이라고 짐작하는데 잘 어울린다는 듯 그녀는 엄지를 세우며 조용히 웃었다 그랬구나. 그녀의 굳은 혀 밑에 숨은 수많은 말들이 모자에 환하게 열린 철쭉의 꽃술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철대문을 경계로 있는 대로 고개 돋워 내다보는 낯익은 꽃들 그들이 전하는 뜨거운 말의 바다에 배를 띄운다 물살의 중심으로 노 저어 갈수록 가슴 점점 뜨거워진다

댓글 12개

김문숙 2008. 04. 18. 오후 12:52

말의 바다 포아폴님의 일생의 항해에 큰 축복이 임하시기를

포아풀 2008. 04. 18. 오후 09:53

감사합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 손수레에 모자를 놓고 파는 부부가 있지요. 휴일이면 사람들이 꽤 많이 모이더군요. 그 부부는 말을 못합니다. 대신 손으로 가격을 말하지요. 오래전 철쭉꽃무늬 모자를 샀습니다. 그래서인지 철쭉을 보면 그 여인이 생각나요. 그녀의 소리 없는 수많은 말들이 철쭉의 환한 꽃술로 흘러내릴 듯 하지요.

김문숙 2008. 04. 19. 오전 05:52

포아풀님은 사람을 아름답게 여기도록 만드는 재주가 있습니다. 저도 과히 비싸지 않은 모자 하나 사러가야 할 것 같습니다.

4월의 옆모습 2008. 04. 19. 오전 09:09

빛과 정신 사이의 골목길 인식과 오류 사이의 철대문이 빼꼼히 열리고기린 목이 되어 배타적인 모더니즘의 담을 넘어 가는데 타자의 마음으로 열린 철죽이 침묵과 언어 사이에 환하게 웃고 있네요 꽃술에 흘러 내리는 아프리오리한 야생의 사유가 짙은 향기로 깊은 우주의 표면에 뜨거운 물살을 일으키네요 4월의 시선 끝에 신록의 모자를 쓴 포아플님의 목소리가 시 한자락 낭송 하고 있네요

박은정 2008. 04. 19. 오후 02:17

여름 문학기행 때 쓰셨던 그 철쭉꽃무늬 모자이군요^^* 포아풀님께 잘 어울렸지요. 말을 꽃으로 피울 수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이 향내로 가득하겠지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어지네요^*^

2003002 2008. 04. 19. 오후 02:45

박은정님은 모숩도 얼굴도 마음도 글도 어쩌면 그렇게 예쁘십니까 ? 신기합니다.

포아풀 2008. 04. 19. 오후 10:04

4월의 옆모습님을 훔쳐봅니다. 예리하면서도 이지적이고 따듯한 모습... 4월과 5월의 경계에서, 신록의 사이에서 싱그러운 웃음을 지어봅니다. 그리고 시 한자락 낭송합니다. 들리시나요? 박간사님, 맞아요. 그 때 그 모자... 박간사님만큼 모자가 잘 어울리는 분도 드물겁니다. 사진 속 모자가 잘 받으셔요. 늘 환한 날 되시기를 바래요.

산수재혜랑 2008. 04. 20. 오전 07:44

가만이 읽고 갑니다.. ^^

유민자 2008. 04. 20. 오전 10:35

저도 포아폴님의 화사한 미소를 떠올리며 \"가만히 가만히 읽고 갑니다...\"

손일갑 2008. 04. 20. 오후 01:54

포아풀님 반갑습니다 포아풀님의 말의 바다에 띄우는 배에는 어떤사람이 타야합니까 정지용시인의 \"말\"시에는 너는 왜그리 슬퍼뵈니라고

김문숙 2008. 04. 20. 오후 10:52

아름다운 것 뿐 아니라. 연약한 중에도 강인한 인내와 열정의 힘, 과로만 조심하신다면 남보다 더 큰 저력이 있어 더 화사한 꽃밭을 일궈내실 분이십니다. 기대합니다. 건강하시기를 .

포아풀 2008. 04. 21. 오전 09:42

말의 바다에 배를 띄워 천천히 노 저어 가면 소리없는 뜨거운 말들이 귓전으로 흘러와요. 같이 들어보시렵니까? 꽃들의 말을, 그녀가, 세상이 전하는 말들을... 산수재혜랑님, 유민자 수필가님, 손일갑님, 김문숙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뜻깊은 하루 보내세요. 꽃들이 환하게 웃는 월요일입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