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글
게시물 상세보기
그해는 지우고 싶다
유월의 기행(奇行) #5 그해는 지우고 싶다 그해는 지우고 싶다 창백한 하늘은 깨질듯이 푸른 냉기로 탱탱하다. 적막한 겨울의 스산함은 핏기 잃은 앙상한 나목(裸木)을 휘감아 돌고, 한 무더기 회오리는 마른 대지 위를 훑듯이 소용돌이치며 거친 걸음으로 지나간다. 빗장을 굳게 걸고 심통을 부리는 회색빛 고집의 기승(氣勝)이지만, 계절의 순환은 태초(太初)이래의 섭리인줄 알면서도 변화하는 계절의 끝자락에 설 때마다 감사나워지는 것은 아직도 못 다한 아쉬움이 남아 발끝이 무거워졌거나 아니면 유한(有限)의 숙명에 유감이 많아서가 아닌지… 바람 하나 없는 탁탁 튀는 더위에는 장사가 없었다. 동네 유일의 국기 게양대인 인천극장위에 높이 달린 태극기도 더위에 지쳤는지 풀죽은 모습이다. 그러나 그해의 여름은 숨이 턱에 차는 더위보다 몇 배나 괴로운 일이 벌어져 어린 나에게 감당할 수 없는 큰 고통을 안겨준 기억하기도 싫은 해였다. 당시에는 어린아이가 즐길만한 변변한 놀 거리나 놀 곳이 없었다. 동네 애들은 놀 곳을 찾아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어느 때는 동네에서 야구를 하거나 그것이 싫증나면 공원에 올라가 놀기도 하였다. 어쩌다가 동네 형이나 어른들 틈에 끼어서 인천중공업 뒤편이나 화수조합 부둣가에서 낚시를 하기도 하였다. 놀이 없는 썰물일 때는 만석동 한국유리 뒤편의 갯벌로 직접 나가 장난을 치거나 근처 얕은 바닷가에서 물텀벙(아귀)을 잡아 풍선처럼 불기도 하였다. 지금은 물텀벙 요리가 귀한 미식(美食) 중에 하나로 여기지만 그 당시는 지천으로 깔린 물고기로 생선으로 쳐주지도 않았고 당연히 먹지도 않았다. 어부들도 그물에 물텀벙이 걸리면 재수 없다고 고수레로 털어버렸다. 얼마나 못생기고 볼품이 없었으면 먹을 것이 귀하던 그 시절에도 내다 버렸을까? 어린이들은 하루는 육군으로 놀고 다음날은 해군으로 놀았다. 여름이 한창이든 그날도 인천중공업 공장 뒤편에서 낚시질을 하였다. 그곳은 수심이 깊은 바다와 직접 맞닿아 급경사가 진 곳이 여러 곳이 있었다. 출입이 금지된 위험지역이지만 당시에는 그 정도의 경고는 대부분 무시하고 다녔으며, 아무도 말리거나 제지하는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회사의 경비원 아저씨들조차 보고도 못 본체하고 그대로 지나쳤다. 해와 달이 비록 밝으나 엎어 놓은 동이 속을 비출 수는 없으며, 그릇된 재앙이 횡화(橫禍=뜻하지 않은 화)이긴 하나 삼가는 집의 문에는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인정(人情)이 어디 그러한가. 급하니까 무시하고, 편리하니 손쉽게 하고, 남의 일이니 무관심이다. 모든 일이 제하고 싶은 대로 행하다보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안전시설도 없이 방치된 그곳은 공장을 지을 때 깨지고 파여진 그대로 방치하여 파도가 쳐서 바닥에 물이 고이면 몹시 미끄러운 곳이다. 당연히 발이 삐끗하면 넘어지거나 잘못하다가는 바다로 빠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우려하던 사고가 생겼다. 하필이면 같이 낚시하며 놀던 동네 또래친구 하나가 그곳에서 발을 헛짚어 깊은 바다 속으로 빠지는 사고가 생겼다. \"아이가 바다에 빠졌어요!\" 경비초소에 대고 다급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그 소리에 놀란 경비대 아저씨는 어느 곳인지 전화를 하고는 부리나케 달려왔다. 나는 그길로 그 아이내 집으로 죽을힘을 다해 뛰어갔다. 그 애 누나한테 본 대로 말하고 동네 어른들께도 알렸다. 동네에서는 금방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동네 형들과 같이 앞장을 서며 그곳으로 안내하였다. 현장에는 이미 공장에서 보트 한척이 출동하여 빠진 애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애의 엄마와 누나는 발만 동동 구를 뿐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얼이 빠져 핏기 없는 얼굴은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석양의 노을빛이 사라지고 땅거미가 드리우는 어둑해진 늦은 저녁쯤에 그 애의 시신을 찾았다. 올렸다 내렸다 하며 바다 밑을 휘졌던 긴 장대의 끝에 겨우 걸려서 물위로 올라왔다. 어른들은 애들을 멀찍이 내쫒았지만 그 애의 주검을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었다. 그날 처음으로 사람의 죽은 모습을 보았다.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한동안은 그 애와의 만남과 이별에 얽힌 죽음의 환상에 시달리며 지냈다. 찌는 여름도 순환이라는 자연의 법칙에는 버틸 재간이 없었는지 어쩔 수 없는 후퇴로 그 자리를 물러났다. 그해 여름의 끔찍했던 사고의 충격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나 안정을 찾았다. 둔덕의 작은 왕국은 모두가 갈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아직은 서리가 내리기 전인데도 벌써부터 잎의 언저리가 건들바람의 서늘한 기운에 탈색되어 점박이로 변하는 것도 있었다. 초록왕국의 수호신으로 빛접게 서있던 자작나무의 활기찼던 청록의 생명도 그 수명을 다 한 듯이 가을 색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생기가 사라진 둔덕 위는 몰락하는 초록 왕국의 현실을 보여주듯 본래의 색을 빼앗긴 채 짧은 한해의 여정의 끝에 섰다. 그해의 첫눈은 예년보다 일찍 찾아왔다. 아침부터 함박눈이 끝이 없는 듯이 내렸다. 둔덕의 수호신도 안감 힘을 다했으나 예전의 호방(豪放)함은 간데없고 애련(哀憐)한 모습만이 남았다. 애면글면 붙잡고 있던 하나 남은 마지막 잎마저 힘에 겨워 놓치고, 이제는 볼품없는 앙상한 가지만을 생명 없는 표본인양 내보였다. 첫눈은 자작나무의 서러움을 달래려는 듯이 가녀린 가지 끝에 서설(瑞雪)의 눈꽃을 활짝 피어 예우(禮遇)를 해주었다. 수북이 쌓인 첫눈은 한해의 삶에 찌든 고통스러웠던 상처를 보드랍게 만져주고 감싸주었다. 둔덕 위의 겨울은 소리 없이 깊어갔다. 첫눈이 함박눈이 내려서인지 그해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 어젯밤에도 많은 눈은 소리 없이 내렸다. 순백의 무명천으로 세상의 오염(汚染)과 파괴(破壞)를 덮으려는지 온 누리가 수북하게 쌓이도록 내렸다. 생명줄이 단절된 둔덕의 좌절하는 허망함에도, 덩그렇게 놓여있는 바위의자의 궁색해진 초라함에도, 등받이가 빛바랜 나 홀로 벤치의 지친 기다림에도, 둔덕의 한쪽 귀퉁이에 외로이 서있는 자작나무의 영락(零落)한 쓸쓸함에도 깊은 겨울의 흰 눈은 덮을 듯 감싸듯 소복하게 내렸다.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밤사이에 소리 없이 고이 내렸다. 그렇게 사계절을 몇 번을 보낸 후에 둘이는 제각각 다른 중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중학생이 된 이후로는 전과같이 그 애와 만나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나던 회수가 이제는 일주일에 두세 번으로 줄었다. 잠시 학교생활에 대한 얘기나 하다가 헤어질 때도 있었고, 어느 때는 사춘기의 고민을 가지고 밤늦도록 얘기를 나눈 적도 있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우리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비밀의 정원 작은 꽃동산'이었고, 그에 대한 사랑에는 변함이 없었다. 한 가지 지울 수 없는 진한 슬픔으로 남은 것은 꽃동산에서 더 이상 아름다운 꽃들의 향연을 볼 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 애의 고모는 우리가 중학교에 입학했던 그해 봄에 그렇게 좋아하던 진달래꽃을 찾아 꽃 나라로 먼 여행길을 떠났기 때문이다. \"애들 고모의 잔재는 모두 없애라!\" 또래의 아버지는 오랜 동안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겼다가 어느 날 그와 같이 말했다고 그 애는 나중에 귀띔해 주었다. 고모가 기거했던 별채는 얼마 후에 철거되고 잔디만 무성하게 자라는 공터로 남아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였다. 나는 가끔가다 나무 등걸에 앉아 나를 보고 싱긋 미소 짓던 고모를 떠올리곤 하였다. 아직은 어린 나이라 죽음의 깊은 슬픔을 깨닫지는 못했으나 흐르는 눈물은 주체하지 못했다. 그 일이 있기 몇 개월 전이었다. 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한해도록 나눴던 정(情)을 아쉬워하던, 깊은 가을의 연민(憐愍)에 빠질 때, 한편의 시(詩)로 이별을 거부하며 그토록 강렬하게 생명의 의지를 보여주었던 고모가 아니었던가. 한손에 시집을 움켜쥐고 힘주어 말하던 의연했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날따라 또래의 귀가가 늦었다. 비밀의 정원 꼭대기 넓은 평상을 나 혼자 차지하고 나라를 호령하던 왕처럼 근엄한 표정을 짓고는 식구들을 내려다 봤다. 무르익은 가을의 여린 빛으로 생명의 시간이 촉박했음을 모두에게 알려 주었다. 작은 꽃동산의 식구들은 일정에 맞추듯이 한 해의 끝을 빈틈없이 마무리하려고 열중이다. 그때 뒤에서 소리 없는 웃음이 들렸다. 또래의 고모는 한 손에 시집을 펴들고 나에게 말했다. \"네 모습을 보니 애내들의 왕처럼 보이네.\" 나는 남세스러워 얼굴을 숙였다. 고모는 이내 괜찮다며 말했다. \"내가 아주 좋아 하는 시인데 한 번 들어 봐 줄래?\" \"네\" 나는 주저 없이 좋다고 대답했다. 고모는 내게서 조금 떨어진 작은 바위의자에 앉았다. 유치환(柳致環)의 '생명의 서'라고 제목을 읽어주며 삶의 고마움을 언제나 생각하며 진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네가 알아듣기에는 벅찬 것이지만 그래도 말하고 싶어. 생명이 있다는 것, 살아 숨 쉰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줄 모르지? 이 시(詩)를 읽으면서 얻은 깨달음이야. 삶의 꽃과 그 열매가 얼마이던 그것을 진심으로 반길 줄 알아야하고, 자신의 삶에 대하여 경의와 찬사를 표할 줄 아는 강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 사람들은 말하지, 왜 삶의 진실을 찾기 위해 그렇게 애써야 하느냐고. 끝도 없이 한 가지로 묻고, 그에 대한 유일한 답을 얻으려고 줄기차게 갈망하지.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는 그토록 원하던 진실을 보기도 전에 안타까움만 생기게 될 뿐이야. 그렇다고 우리가 삶의 진실에서 벗어 나느냐하면 결코 그럴 수가 없어. 왜냐하면 우리는 언젠가는 죽어야하는, 이는 세상이 하나로부터 열릴 때에 정해진 것으로 바꿀 수가 없지, 유한(有限)의 굴레에 갇혀있는 운명이므로 마지막 때에 남는 것이 삶의 본질인 자아(自我)뿐이기 때문이야. 태초에 창조(創造)가 있었어. 무(無)에서 형(形)을 받아들고, 사유(四維)의 음과 양을 합하고, 격(格)을 만들었어. 우주는 밧줄로 이어 해와 달과 별을 빛내게 하였으며, 사방팔방은 끝없이 퍼지고, 높이는 가늠 할 수 없게 되었으며, 깊이 또한 헤아릴 수 없게 하였어. 하나에서 시작되어 모든 것이 생겨났으며, 만들어진 모습 또한 각각 다르게 되었어. 그것들은 분류대로 만물을 이루었으나 서로 통할 수가 없고, 그 대종(大宗)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게 되었으며, 이를 모두 합쳐 사물(事物)이라 칭했어. 그러나 없음(無)에서 있음(有)으로 해서 천지와 만물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유한(有限)의 섭리가 굴레로 씌워지게 되었어. 시작에 종말이 있고, 종말에 다시 시작이 있게 되는 것이야. 이처럼 생성과 사멸이라는 생명의 순환질서가 생기게 된 것은 영겁(永劫)에 비한다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흔적 없는 찰나의 시간에 불과해도, 반드시 개개에게 시종(始終)이란 질서가 주어진 실체(實體)가 되었기 때문으로 이는 영원의 빛을 잃었기 때문이야. 생명은 그런 와중에서 귀한 선택으로 받은 거야. 지금 주어진 시작과 끝은 내 차례의 몫이야. 그러니 우리는 현재의 삶을 환희와 감사로써 받아들여야할 뿐만 아니라, 모두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유익하게 이용할 줄도 알아야 돼. 원시 그대로의 겸손함을 잊지 말고, 허위와 위선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생명체의 삶을 살아야 해. 그것이 쓸데없는 망상(妄想)에서 벗어나는 현명한 삶의 길이고, 그토록 찾으려고 헤매던 삶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야. 죽은 뒤에 어디로 갈 것인가 만을 고민하는 삶이나, 능히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 갈수 있으며, 형태 이전인 태초의 세계로 갈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선택받은 귀한 생명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야. 죽은 뒤의 삶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이승의 삶은 그 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지. 그러니 이승의 삶을 가볍게 보거나 내생(來生)에만 치중하는 것은 오늘의 내 삶을 놓치는 사람으로 그는 다른 모든 것도 놓치게 돼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는 거야. 만약에 사후(死後)에도 별다른 세계가 있거나 태초로 돌아갈 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서도 지금의 삶에서 경험했던 것과 똑같은 것과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야. 이생에서 선(善)한 행위를 쌓았다면 선한대로, 그것이 아니라면 아니게 존재하고, 인도되기 때문이야. 이 시(詩)는 극도의 고독이라는 극한의 고통을 통해서 지금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우쳐주었고, 잃어 버렸던 자아(自我)와 생명의 참모습을 찾아주었단다. 삶의 진실이란 바른 '나'를 보는 것이며, '나란 나의 생명이란' 물질인 육신의 나(我)와 비물질인 영혼의 나(吾)를 같이 구원하는 것이야.\" 생명의 서(書) 고모의 꿋꿋한 모습은 지금까지도 지워지지 않을 만큼 뚜렷하게 남아있으나 그 말의 뜻을 당시로서는 알기가 어려웠다. 그보다 안타까운 것은 그 날이 또래의 고모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눈 슬픈 날로 각인됐다는 아픔이다. 「Hope has a place」(Enya) |
댓글 1개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망각이라는 선물이 있기 때문이라네요. 때로 기억하고 때로 지우고... 그러나 기억한다는 것, 추억의 힘이라는 것도 삶의 힘이 되기도 하지요. 아픈 기억이 있으셨군요.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