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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는 지우고 싶다

박상덕 2008. 09. 26. 오후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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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월의 기행(奇行)  #5 그해는 지우고 싶다

그해는 지우고 싶다


  창백한 하늘은 깨질듯이 푸른 냉기로 탱탱하다. 적막한 겨울의 스산함은 핏기 잃은 앙상한 나목(裸木)을 휘감아 돌고, 한 무더기 회오리는 마른 대지 위를 훑듯이 소용돌이치며 거친 걸음으로 지나간다. 빗장을 굳게 걸고 심통을 부리는 회색빛 고집의 기승(氣勝)이지만, 계절의 순환은 태초(太初)이래의 섭리인줄 알면서도 변화하는 계절의 끝자락에 설 때마다 감사나워지는 것은 아직도 못 다한 아쉬움이 남아 발끝이 무거워졌거나 아니면 유한(有限)의 숙명에 유감이 많아서가 아닌지…
  계절의 시계는 저만치 지나쳤건만 늦겨울의 심술은 잔설뿐인 산야와 계곡의 얼음장을 두드리며 빛바랜 위세로 법석을 떤다. 그래도 늦은 겨울바람에는 봄소식이 들어있어 밉지가 않다. 계절의 재촉에 약이 오른 땡초 같은 매서움 뒤에는 고즈너기 집어넣은 남녘의 따스함이 숨어있다. 아직도 거칠게 없는 시퍼렇게 날선 날카로움 속에는 남녘에서 들려오는 수런거리는 봄의 소리가 섞여있다.
  봄은 그렇게 사뿐히 다가왔다. 봄바람은 산야와 계곡을 가로질러 신나게 달리며 봄의 전령사를 깨우기 시작했다. 계곡가의 갯버들과 난쟁이 돌단풍위에도 봄소식을 전하고, 잔설(殘雪)에 묻힌 복수초나 산수유, 목련, 매화, 진달래, 개나리에게도 어김없이 봄이 오고 있음을 알렸다.
  매양 추위 속에서도 해는 가고 또 오는 것이다. 차가운 얼음장 밑에서 숨을 쉬는 물고기처럼 어둠과 두려움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간직하고 기다리면 새날은 밝는다. 파릇한 미나리 싹이 봄날을 꿈꾸듯 우리의 '비밀의 정원 작은 꽃동산'도 청자 빛 화려한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 봄바람은 완연해진 따뜻함으로 삭막해진 둔덕의 메말랐던 생명의 샘에 훈훈한 봄소식을 그 결에 전해주었다.
  둔덕위의 식구들도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연초록빛 새 생명들이 하나 둘씩 고개를 들었다. 새싹은 태초부터 그네들의 조상들이 한 것처럼 두꺼운 땅거죽을 뚫고 힘차게 솟아올랐다. 겨우내 거무칙칙하게 변질된 둔덕의 무감각을 깨우고, 구석구석을 새롭게 다듬고 꾸미며 생동하는 제 모습으로 빈틈없이 다져나갔다.
  함초롬히 아침이슬을 한껏 머금은 어린 싹들은 투명한 진주방울을 뽐내며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이제는 제어미를 닮은 큰 줄기와 커다란 잎으로 바뀌어 연약함에서 탈피하였다. 활짝 핀 진달래와 매화는 홍백의 환한 미소로 봄이 무르익었음을 알렸다.
  그 집에서 유일하게 큰 나무인 자작나무도 처음 보는 희한한 모양의 꽃을 소담스럽게 피워냈다. 우리는 수수깡도 아니고 강아지풀도 아닌 이상한 막대 모양의 꽃을 보면서 그 밑에서 깔깔대고 웃곤 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꽃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형태다. 자작나무 꽃은 원통형의 유이화서(葇荑花序,꼬리 모양 꽃차례)로 웅화수(雄花穗, 암수술)는 무병(無柄, 자루가 되는 부분이 없음)으로 아래로 드리워지지만 자화수(雌花穗, 수수술)는 단지에 곧게 서있다. 과실이 되면 웅화수처럼 아래로 처진다. 아무리 봐도 그 꽃은 몸집이 주는 위상(位相)에는 걸맞지가 않았다.
  둔덕은 어느 새 녹색으로 가득하게 채워졌다. 이제는 우리들의 비밀의 정원도 어느 정도 완성되어갔다. 왕성한 생명의 소리는 새잎마다 묻어나고, 활기찬 엷은 초록의 분주함은 진한 청록의 제 모습으로 바꿨다. 고고(孤高)한 거인인 이집의 수호신도 더 커진 덩치만큼 넓은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우리는 가방과 웃옷은 벤치에 던져놓고 양산 쓴 누나의 등 뒤에 몰래 숨어들기라고 하듯이 응달진 잔디밭에 나란히 누어 낄낄댔다.
  두 팔 벌려 하늘을 향하니 까슬까슬한 풀잎이 목 언저리를 살며시 찌른다. 조그만 동공(瞳孔)을 가득채운 파란하늘에는 뭉게구름이 가득 피어올랐다. 흰색의 농담(濃淡)으로 채도와 명도를 맞추어 이리저리 모양을 바꾸면서 한 폭의 명화를 수(繡)놓듯 그리고 있다. 그곳에는 신(神)을 거역했던 '게르니카'의 아비귀환이 있었고, '깔레의 시민'이 처한 고뇌도 있었다. 더한 것은 절절한 아픔으로 '흰소'가 원망(願望)하고 희구(希求)하였던 민족애였다. 그것도 잠시 후에는 모든 것이 백치(白痴)가 되었다.
  세상은 두 가지로 나뉜다. '깔레의 시민'처럼 신(神)을 경외(敬畏)하는 부류(전 3:14)가 하나이고, 나머지 하나는 사악(邪惡)하여 죄악을 일삼는 어리석은 부류(전 3:17, 전 5:4, 전 7:26)인 '게르니카'가 그것이다. 여기서 어리석다는 것은 단순히 지혜가 없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완악(頑惡)하여 신의 뜻을 무시함으로 불손하게 행한다는 의미를 말함이니, '게르니카'의 저주(詛呪)는 신(神)을 거역한 패역(悖逆)한 무리들에 대하여 적절한 대답이 들어있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 수 없는 것이니, 그의 음성은 오히려 그로 말미암아 그들이 더욱더 귀머거리가 되게 하고, 불빛을 밝히지만 오히려 그로 인하여 더욱더 소경의 상태에 빠지게 한다.
  그렇다면 '흰소'를 내세웠던 이 백성은 어디에 속했을까? 구름은 멈추듯이 잠시 뜸을 드린 후에는 그 위에다 다시 그림을 그렸다. 이번에는 애들 방에 걸린 김길상화백의 사랑과 평화와 행복이 넘치는 꿈의 세계를 소박한 조형언어로 시각화한 童心-피리를 불며의 누운 황소의 여유로움을 하늘 가득 그렸다. 우리가 바라는 세상의 모습이 아닐까.
  우리는 갖가지 그림을 감상하다 다음에는 무슨 그림을 그릴지 맞추는 확률도 없는 내기를 하며 더위를 이겼다. 엇박자로 춤을 추는 어린아이의 다음 율동을 맞추듯이 어쩌다 맞추기라도 하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청포도 익어가는 내 고향 7월의 여름은 바야흐로 정점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바람 하나 없는 탁탁 튀는 더위에는 장사가 없었다. 동네 유일의 국기 게양대인 인천극장위에 높이 달린 태극기도 더위에 지쳤는지 풀죽은 모습이다. 그러나 그해의 여름은 숨이 턱에 차는 더위보다 몇 배나 괴로운 일이 벌어져 어린 나에게 감당할 수 없는 큰 고통을 안겨준 기억하기도 싫은 해였다.
  당시에는 어린아이가 즐길만한 변변한 놀 거리나 놀 곳이 없었다. 동네 애들은 놀 곳을 찾아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어느 때는 동네에서 야구를 하거나 그것이 싫증나면 공원에 올라가 놀기도 하였다. 어쩌다가 동네 형이나 어른들 틈에 끼어서 인천중공업 뒤편이나 화수조합 부둣가에서 낚시를 하기도 하였다.
  놀이 없는 썰물일 때는 만석동 한국유리 뒤편의 갯벌로 직접 나가 장난을 치거나 근처 얕은 바닷가에서 물텀벙(아귀)을 잡아 풍선처럼 불기도 하였다. 지금은 물텀벙 요리가 귀한 미식(美食) 중에 하나로 여기지만 그 당시는 지천으로 깔린 물고기로 생선으로 쳐주지도 않았고 당연히 먹지도 않았다. 어부들도 그물에 물텀벙이 걸리면 재수 없다고 고수레로 털어버렸다. 얼마나 못생기고 볼품이 없었으면 먹을 것이 귀하던 그 시절에도 내다 버렸을까?
  어린이들은 하루는 육군으로 놀고 다음날은 해군으로 놀았다. 여름이 한창이든 그날도 인천중공업 공장 뒤편에서 낚시질을 하였다. 그곳은 수심이 깊은 바다와 직접 맞닿아 급경사가 진 곳이 여러 곳이 있었다. 출입이 금지된 위험지역이지만 당시에는 그 정도의 경고는 대부분 무시하고 다녔으며, 아무도 말리거나 제지하는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회사의 경비원 아저씨들조차 보고도 못 본체하고 그대로 지나쳤다.
  해와 달이 비록 밝으나 엎어 놓은 동이 속을 비출 수는 없으며, 그릇된 재앙이 횡화(橫禍=뜻하지 않은 화)이긴 하나 삼가는 집의 문에는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였으나 인정(人情)이 어디 그러한가. 급하니까 무시하고, 편리하니 손쉽게 하고, 남의 일이니 무관심이다. 모든 일이 제하고 싶은 대로 행하다보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안전시설도 없이 방치된 그곳은 공장을 지을 때 깨지고 파여진 그대로 방치하여 파도가 쳐서 바닥에 물이 고이면 몹시 미끄러운 곳이다. 당연히 발이 삐끗하면 넘어지거나 잘못하다가는 바다로 빠질 수도 있었다. 그런데 우려하던 사고가 생겼다. 하필이면 같이 낚시하며 놀던 동네 또래친구 하나가 그곳에서 발을 헛짚어 깊은 바다 속으로 빠지는 사고가 생겼다.
  \"아이가 바다에 빠졌어요!\"
  경비초소에 대고 다급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그 소리에 놀란 경비대 아저씨는 어느 곳인지 전화를 하고는 부리나케 달려왔다. 나는 그길로 그 아이내 집으로 죽을힘을 다해 뛰어갔다. 그 애 누나한테 본 대로 말하고 동네 어른들께도 알렸다. 동네에서는 금방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동네 형들과 같이 앞장을 서며 그곳으로 안내하였다. 현장에는 이미 공장에서 보트 한척이 출동하여 빠진 애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애의 엄마와 누나는 발만 동동 구를 뿐이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얼이 빠져 핏기 없는 얼굴은 눈물과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석양의 노을빛이 사라지고 땅거미가 드리우는 어둑해진 늦은 저녁쯤에 그 애의 시신을 찾았다. 올렸다 내렸다 하며 바다 밑을 휘졌던 긴 장대의 끝에 겨우 걸려서 물위로 올라왔다. 어른들은 애들을 멀찍이 내쫒았지만 그 애의 주검을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었다. 그날 처음으로 사람의 죽은 모습을 보았다.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한동안은 그 애와의 만남과 이별에 얽힌 죽음의 환상에 시달리며 지냈다.

  찌는 여름도 순환이라는 자연의 법칙에는 버틸 재간이 없었는지 어쩔 수 없는 후퇴로 그 자리를 물러났다. 그해 여름의 끔찍했던 사고의 충격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나 안정을 찾았다.
  둔덕의 작은 왕국은 모두가 갈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아직은 서리가 내리기 전인데도 벌써부터 잎의 언저리가 건들바람의 서늘한 기운에 탈색되어 점박이로 변하는 것도 있었다. 초록왕국의 수호신으로 빛접게 서있던 자작나무의 활기찼던 청록의 생명도 그 수명을 다 한 듯이 가을 색으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생기가 사라진 둔덕 위는 몰락하는 초록 왕국의 현실을 보여주듯 본래의 색을 빼앗긴 채 짧은 한해의 여정의 끝에 섰다.
  그해의 첫눈은 예년보다 일찍 찾아왔다. 아침부터 함박눈이 끝이 없는 듯이 내렸다. 둔덕의 수호신도 안감 힘을 다했으나 예전의 호방(豪放)함은 간데없고 애련(哀憐)한 모습만이 남았다. 애면글면 붙잡고 있던 하나 남은 마지막 잎마저 힘에 겨워 놓치고, 이제는 볼품없는 앙상한 가지만을 생명 없는 표본인양 내보였다. 첫눈은 자작나무의 서러움을 달래려는 듯이 가녀린 가지 끝에 서설(瑞雪)의 눈꽃을 활짝 피어 예우(禮遇)를 해주었다. 수북이 쌓인 첫눈은 한해의 삶에 찌든 고통스러웠던 상처를 보드랍게 만져주고 감싸주었다.
  둔덕 위의 겨울은 소리 없이 깊어갔다. 첫눈이 함박눈이 내려서인지 그해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 어젯밤에도 많은 눈은 소리 없이 내렸다. 순백의 무명천으로 세상의 오염(汚染)과 파괴(破壞)를 덮으려는지 온 누리가 수북하게 쌓이도록 내렸다. 생명줄이 단절된 둔덕의 좌절하는 허망함에도, 덩그렇게 놓여있는 바위의자의 궁색해진 초라함에도, 등받이가 빛바랜 나 홀로 벤치의 지친 기다림에도, 둔덕의 한쪽 귀퉁이에 외로이 서있는 자작나무의 영락(零落)한 쓸쓸함에도 깊은 겨울의 흰 눈은 덮을 듯 감싸듯 소복하게 내렸다.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밤사이에 소리 없이 고이 내렸다.
  그렇게 사계절을 몇 번을 보낸 후에 둘이는 제각각 다른 중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중학생이 된 이후로는 전과같이 그 애와 만나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만나던 회수가 이제는 일주일에 두세 번으로 줄었다. 잠시 학교생활에 대한 얘기나 하다가 헤어질 때도 있었고, 어느 때는 사춘기의 고민을 가지고 밤늦도록 얘기를 나눈 적도 있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우리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비밀의 정원 작은 꽃동산'이었고, 그에 대한 사랑에는 변함이 없었다.
  한 가지 지울 수 없는 진한 슬픔으로 남은 것은 꽃동산에서 더 이상 아름다운 꽃들의 향연을 볼 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 애의 고모는 우리가 중학교에 입학했던 그해 봄에 그렇게 좋아하던 진달래꽃을 찾아 꽃 나라로 먼 여행길을 떠났기 때문이다.
  \"애들 고모의 잔재는 모두 없애라!\"
  또래의 아버지는 오랜 동안 감당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겼다가 어느 날 그와 같이 말했다고 그 애는 나중에 귀띔해 주었다. 고모가 기거했던 별채는 얼마 후에 철거되고 잔디만 무성하게 자라는 공터로 남아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였다. 나는 가끔가다 나무 등걸에 앉아 나를 보고 싱긋 미소 짓던 고모를 떠올리곤 하였다. 아직은 어린 나이라 죽음의 깊은 슬픔을 깨닫지는 못했으나 흐르는 눈물은 주체하지 못했다.
  그 일이 있기 몇 개월 전이었다. 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한해도록 나눴던 정(情)을 아쉬워하던, 깊은 가을의 연민(憐愍)에 빠질 때, 한편의 시(詩)로 이별을 거부하며 그토록 강렬하게 생명의 의지를 보여주었던 고모가 아니었던가. 한손에 시집을 움켜쥐고 힘주어 말하던 의연했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날따라 또래의 귀가가 늦었다. 비밀의 정원 꼭대기 넓은 평상을 나 혼자 차지하고 나라를 호령하던 왕처럼 근엄한 표정을 짓고는 식구들을 내려다 봤다. 무르익은 가을의 여린 빛으로 생명의 시간이 촉박했음을 모두에게 알려 주었다. 작은 꽃동산의 식구들은 일정에 맞추듯이 한 해의 끝을 빈틈없이 마무리하려고 열중이다.
  그때 뒤에서 소리 없는 웃음이 들렸다. 또래의 고모는 한 손에 시집을 펴들고 나에게 말했다.
  \"네 모습을 보니 애내들의 왕처럼 보이네.\"
  나는 남세스러워 얼굴을 숙였다. 고모는 이내 괜찮다며 말했다.
  \"내가 아주 좋아 하는 시인데 한 번 들어 봐 줄래?\"
  \"네\"
  나는 주저 없이 좋다고 대답했다.
  고모는 내게서 조금 떨어진 작은 바위의자에 앉았다. 유치환(柳致環)의 '생명의 서'라고 제목을 읽어주며 삶의 고마움을 언제나 생각하며 진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네가 알아듣기에는 벅찬 것이지만 그래도 말하고 싶어. 생명이 있다는 것, 살아 숨 쉰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줄 모르지? 이 시(詩)를 읽으면서 얻은 깨달음이야. 삶의 꽃과 그 열매가 얼마이던 그것을 진심으로 반길 줄 알아야하고, 자신의 삶에 대하여 경의와 찬사를 표할 줄 아는 강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어.
  사람들은 말하지, 왜 삶의 진실을 찾기 위해 그렇게 애써야 하느냐고. 끝도 없이 한 가지로 묻고, 그에 대한 유일한 답을 얻으려고 줄기차게 갈망하지.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는 그토록 원하던 진실을 보기도 전에 안타까움만 생기게 될 뿐이야. 그렇다고 우리가 삶의 진실에서 벗어 나느냐하면 결코 그럴 수가 없어. 왜냐하면 우리는 언젠가는 죽어야하는, 이는 세상이 하나로부터 열릴 때에 정해진 것으로 바꿀 수가 없지, 유한(有限)의 굴레에 갇혀있는 운명이므로 마지막 때에 남는 것이 삶의 본질인 자아(自我)뿐이기 때문이야.
  태초에 창조(創造)가 있었어. 무(無)에서 형(形)을 받아들고, 사유(四維)의 음과 양을 합하고, 격(格)을 만들었어. 우주는 밧줄로 이어 해와 달과 별을 빛내게 하였으며, 사방팔방은 끝없이 퍼지고, 높이는 가늠 할 수 없게 되었으며, 깊이 또한 헤아릴 수 없게 하였어. 하나에서 시작되어 모든 것이 생겨났으며, 만들어진 모습 또한 각각 다르게 되었어. 그것들은 분류대로 만물을 이루었으나 서로 통할 수가 없고, 그 대종(大宗)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게 되었으며, 이를 모두 합쳐 사물(事物)이라 칭했어.
  그러나 없음(無)에서 있음(有)으로 해서 천지와 만물에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유한(有限)의 섭리가 굴레로 씌워지게 되었어. 시작에 종말이 있고, 종말에 다시 시작이 있게 되는 것이야. 이처럼 생성과 사멸이라는 생명의 순환질서가 생기게 된 것은 영겁(永劫)에 비한다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흔적 없는 찰나의 시간에 불과해도, 반드시 개개에게 시종(始終)이란 질서가 주어진 실체(實體)가 되었기 때문으로 이는 영원의 빛을 잃었기 때문이야.
  생명은 그런 와중에서 귀한 선택으로 받은 거야. 지금 주어진 시작과 끝은 내 차례의 몫이야. 그러니 우리는 현재의 삶을 환희와 감사로써 받아들여야할 뿐만 아니라, 모두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유익하게 이용할 줄도 알아야 돼. 원시 그대로의 겸손함을 잊지 말고, 허위와 위선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생명체의 삶을 살아야 해. 그것이 쓸데없는 망상(妄想)에서 벗어나는 현명한 삶의 길이고, 그토록 찾으려고 헤매던 삶의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야.
  죽은 뒤에 어디로 갈 것인가 만을 고민하는 삶이나, 능히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 갈수 있으며, 형태 이전인 태초의 세계로 갈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선택받은 귀한 생명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짓이야. 죽은 뒤의 삶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이승의 삶은 그 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지.
  그러니 이승의 삶을 가볍게 보거나 내생(來生)에만 치중하는 것은 오늘의 내 삶을 놓치는 사람으로 그는 다른 모든 것도 놓치게 돼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는 거야. 만약에 사후(死後)에도 별다른 세계가 있거나 태초로 돌아갈 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서도 지금의 삶에서 경험했던 것과 똑같은 것과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야. 이생에서 선(善)한 행위를 쌓았다면 선한대로, 그것이 아니라면 아니게 존재하고, 인도되기 때문이야.
  이 시(詩)는 극도의 고독이라는 극한의 고통을 통해서 지금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우쳐주었고, 잃어 버렸던 자아(自我)와 생명의 참모습을 찾아주었단다. 삶의 진실이란 바른 '나'를 보는 것이며, '나란 나의 생명이란' 물질인 육신의 나(我)와 비물질인 영혼의 나(吾)를 같이 구원하는 것이야.\"

              생명의 서(書)
                                유치환(柳致環)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懷疑)를 구(救)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沙漠)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白日)이 불사신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永劫)의 허적(虛寂)에
  오직 알라의 신(神)만이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孤獨)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對面)ㅎ게 될지니.
  하여 '나'란 나의 생명이란
  그 원시의 존연한 자태를 다시 배우지 못하거든
  차라리 어느 사구(沙丘)에 회한없는 백골을 쪼이리라.

  고모의 꿋꿋한 모습은 지금까지도 지워지지 않을 만큼 뚜렷하게 남아있으나 그 말의 뜻을 당시로서는 알기가 어려웠다. 그보다 안타까운 것은 그 날이 또래의 고모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눈 슬픈 날로 각인됐다는 아픔이다.
  우리의 삶은 때도 없이 바뀌고 언제나 변한다. 우리가 변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조용히 잠들었을 때일 것이다. 하지만 '이별이란? 헤어진다는 사실의 설명 보다는 헤어지는 슬픈 감정을 강조하는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자꾸만 되 내이게 되는 그런 변화는 싫다.
  두 번의 주검을 어린 가슴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컸으며, 그 후에는 기억하기 싫은 잔인한 추억으로 남아 언제나 나를 향해 덮쳐온다. 할 수만 있다면, 이제는 그해의 아픔을 내 기억에서 영원히 지우고 싶다.
  그러나 버리고 갈 수 있는 추억이 있는가? 그나마 다행으로 신(神)은 우리에게 지난날을 무디게 만드는 세월이란 묘약을 주었고, 웃음을 쥐어주는 내일이라는 희망도 자리하고 있음으로 큰 위안을 얻는다.

「Hope has a place」

(Enya)

댓글 1개

포아풀 2008. 09. 30. 오전 12:40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망각이라는 선물이 있기 때문이라네요. 때로 기억하고 때로 지우고... 그러나 기억한다는 것, 추억의 힘이라는 것도 삶의 힘이 되기도 하지요. 아픈 기억이 있으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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