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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그날

박상덕 2008. 10. 03. 오후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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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월의 기행(奇行)  #6 유월의 그날

유월의 그날


  반향(反響)없이 사라지는 자유의 소리를 들었는가? 암혼(暗魂)의 바다에 패대기쳐진 좌절의 아우성과 절망의 나락(奈落)에서 울부짖는 갈망의 몸짓을 보았는가?
  양심을 정죄(定罪)하기에 충분할 만큼의 빛은 언제나 거기에 있었음에도, 악의 신 테스카틸포카(Tezcatilpoca)1)의 매몰찬 눈초리의 모멸보다도, 브라흐마(Brahma)의 죽음의 여신2)이 보내는 싸늘한 미소의 경멸보다도, 더한 탐욕이 만든 마법의 그물은, 우리의 초조와 탄식을 조롱하며, 저주의 굴레로 벗을 수 없는 멍에가 씌워진 채 굶주림에 허기진 아귀(餓鬼)인양, 자유에 목마른 의지를 부질없는 바람처럼 남김없이 쓸어갔다.
  탐욕의 허방다리는 저 잔혹한 주데카3)의 바다를 그 속에 감추고 있다. 광풍(狂風)을 일으켜 분기(憤氣)에 불붙이고, 지혜의 빛을 안개로 가리고, 모순에 싸인 왜곡된 정의를 만들어 끊임없이 파멸의 길로 몰아넣는다. 한껏 뭉친 독선(獨善)과 자의(恣意)로 이성을 무너뜨리고, 이기(利己)와 아집(我執)을 불러내 영혼조차 오염과 불신과 증오로 물들여 헤어날 수 없는 그 속으로 빠뜨렸다.
  교화(敎化)가 배제된 지배의 욕망은 적의(敵意)로 가득하여 황폐하게 하는 것4)들로 넘쳐나게 하였으니, 너희 자신을 거룩하게 하라5)는 신탁(神託)조차 부정하게 만들었다. 노(怒)한 하늘마저 우리를 돌아섰는가? 이제는 오로지 슬픔만이 존재의 가치 있는 이유와 자유를 향한 진정한 맹서와 도전에 대한 시련이라는 모두의 고뇌를 불쌍히 여길 뿐이다.
  인류가 창조한 3백만 년은 음(陰)의 역사가 대부분이나 그 가운데에 길게 잡아 겨우 5천년에 불과한 양(陽)의 역사를 만들고는 문명을 이루었다고 오만(傲慢)의 날개 짓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피로 치장한 문명일 뿐이다.
  밀림의 법칙에나 있을 법한 약육강식과 강자독식과 일방독주의 패권주의에 휩싸인 인류가 내세운 모든 체제는 보시기에 좋은6) 진정한 밝은 문명과는 거리가 멀다. 토인비(A. J. Toynbee)가 분류한 인류가 이룩한 13개의 위대한 독립문명과 15개의 위성문명에도 오로지 피의 역사만이 존재할 뿐이다.
  인간이 위대한 것은 자유를 지킬 줄 아는 고귀한 품성이 있기 때문이요, 인간을 숭엄하게 만드는 것은 비록 광막한 벌판에 버려졌거나 칠흑의 어둠속에 갇힌 속박 속에 있다 해도 자유의 희망을 버리지 않는 불굴의 의지와 용기가 있기 때문이다.
  신(神)이여! 어떻게 우리의 정직을 나타내리까? 자유의 쟁취는 그 어느 것보다도 더 큰 도전에 대한 응전이었고, 자유의 대가는 더 많은 희생의 피를 요구하였고 지불하였다.
  \"인간이 환상적인 희망에 빠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는 고통스러운 진실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기 쉽고, 저 '사이렌의 노래'를 귀담아 듣기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우리는 사이렌에 홀려 가축(家畜)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것이 자유를 위해 위대하고도 벅찬 싸움에 참가하는 슬기로운 사람들의 역할입니까? 우리는 현세적(現世的)인 구원의 관심사나 다름없는 일에, 눈을 갖고도 보지 않고 귀를 갖고도 듣지 않는 자들로 처신하고 싶다는 말입니까?….
  여러분이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무엇을 가지고 싶다는 것입니까? 쇠사슬과 노예의 대가로 얻어지는 고귀한 생명입니까, 달콤한 평화입니까? 단연코 그런 일이 없도록 바랍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나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길을 택하려는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나에게 자유를 달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달라'를 알 뿐.\"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는 공명정대한 하느님의 심판과 자유를 향한 거룩한 큰 뜻을 가진 민중의 힘으로 자유를 쟁취하자고 역설하였다. '자유를 위한 전쟁이라면 기꺼이 응하겠다. 자, 전쟁이여 올 테면 오라! 다시 말하지만 올 테면 오라!' 우리는 반세기전에 독재의 발굽이 온 나라를 짓밟을 때에 똑같은 행동으로, 치욕을 뒤집어 쓴 정의(正義)를 위하여 앞장을 섰다.
  그렇다. 항복하고 노예가 되는 것은 패배자의 모습. 너희는 자유롭고 스스로 행하는 것이 허락되었다고 하늘은 말했다. 우리가 깨닫고 찾은 것은 하늘이 준 자유의지(自由意志)였다. 해와 달을 다스리는 신이여, 우리의 소리를 들으소서. 우리에게 자유의 길을 열어주소서. 우리의 갈구는 하늘로, 하늘로 향했다. 이제는 모든 행위에 있어서 그것이 옳은 일인가 그른 일인가를 고려하기만 하면 되었으며, 그것은 고귀한 결정이었고 양심에 따라서 행한 당당한 행위였다.

* 1) 마야 신화 : 테스카틸포카(Tezcatilpoca)는 창조와 문명의 신인 케찰코아틀(Quetzalcoatl)과 싸웠던 악의 신.
* 2) 인도 신화 : 창조의 신 브라흐마(Brahma=Brahman)는 탄생과 죽음을 함께 주고, 죽음의 나라를 관장하는 죽음의 여신을 만들었다.
* 3) 주데카 : 유대의 옥(獄), 《신곡》「지옥편 34곡」
* 4) 마태복음 24:15, 다니엘 9:27
* 5) 레위기 11:44
* 6) 창세기 1:1-31

  자유와 민주의 새순이 질곡(桎梏)의 세월을 걷어내며 힘차게 솟아올랐던 그해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급 중학교로 진학하였다. 중학교는 들뜬 마음이상으로 학교 분위기가 주는 첫 느낌부터 기대감을 충족시키기에 나무랄 데가 없었다. 초등학교는 밝은 색이 도는 붉은 벽돌로 지은 3층높이의 바로크풍의 교사(校舍)에다 담장도 같은 벽돌로 어른 키보다 더 높이 단정하게 쌓아올려 산뜻하고 정돈된 분위기를 주었으나 어딘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빈틈없는 모습으로 자연스러움이 적은 느낌이었는데 새로운 상급중학교는 그 점부터 많이 달랐다.
  한눈에 보는 교정(校庭)은 무위(無爲)의 정경(情景)이요, 천연(天然)의 모습이었다. 학교주위는 빙 둘러 잡목을 단단하게 엮어 울타리를 두르고, 군데군데 돌아가며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와 포플러를 지지대처럼 심어 잡목의 허술함을 거목이 주는 듬직함으로 채워 놓았다. 그 모습은 큰 운동장 북쪽의 한 단계 높이 잡은 토대(土臺)위에 옆으로 기다랗게 단층으로 늘어선 본관(本館)의 정연(整然)함과 대칭을 이루었다. 담장이에 둘러싸인 본관 앞쪽으로는 십여 그루의 수양버들을 나란히 배열하여 딱딱하게 흐르기 쉬운 교정 분위기를 자유로움으로 누그러뜨리려는 세심한 배려도 빼놓지 않았다.
  잡목 울타리가 주는 질박(質樸)함에 어울리는 양버즘나무와 포플러의 우직함이 더욱 돋보이고, 언제나 흐느적거리는 수양버들의 분방함에 더해 줄기차게 뻗어가는 담장이 덩굴의 면면(綿綿)한 무한(無限)의 소유욕이 만든 조화로움도 빼놓을 수 없다. 특이하게 보이는 것은 무한의 담장이에게 유한(有限)을 분별케 하려는 생각에서인지 단층건물인 본관위로 올려 더한층 깊은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자연스러우면서도 무엇 하나 허술히 다룬 것이 없을 정도로 충분히 고려하여 지어지고 배치해 놓았다.
  그늘이 넓은 양버즘나무는 가을에 솔방울만한 열매가 가지 끝에 달려 한 겨울을 보낸다. 작년 가을에 달렸던 작은 열매는 칼날 같던 매서운 추위와 눈보라를 견디고 완연한 봄날에도 여전히 그대로 붙어있었다. 올봄에 새로 나온 털 복숭이 애송이 잎은 반지르르한 광택을 발하며 더욱 파릇하게 보였다. 어느 선생님은 그것을 보고는 올 신입생은 예년에 비해 좋은 학생이 많이 들어 온 모양이라고 껄껄 웃었다.
  하늘에 걸린 몇 점의 흰 구름은 높이 솟은 포플러와 어울려 밑에서 올려다보면 장대 끝에 매달린 깃대처럼 보였다. 모네의 '에프트 강변의 포플러'만큼은 아니더라도 포플러의 위용은 넘친다. 넓게 퍼진 어린 양버즘나무와 어울리니 키다리와 땅딸보를 보는듯한 느낌의 조화가 리드미컬하여 보는 이를 즐겁게 한다. 한껏 쏟아내는 봄날의 햇살을 맞으며 생동하는 교정의 식구들은 새뜻한 멋을 뽐낸다.
  상급학교에 새로 입학한 새내기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고 서먹서먹하다.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새로 대하는 학교선생님도 여럿이라 두려움도 느끼고, 호기심도 갖게 된다. 불도저의 성격을 닮은 어느 선생님의 저돌적인 수업방식에는 놀래기도 하지만 자상한 선생님을 대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한다. 여러 선생님 중에는 하버드대의 인기과목이라는 계약법의 킹스필드 교수와 닮은 선생님도 분명이 존재한다. 그러한 선생님을 보면 위압적인 억압의 권위가 아니라 인품에 따른 포옹력의 권위가 걸맞게 어울려 범접할 수 없게 만든다.
  중학교에 입학한지도 몇 개월이 지났다. 물상시간이라 과학실에서 수업을 받게 되었다. 물상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수업의 대부분을 과학실에서 실험으로 진행하였다. 당시는 나라의 사정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교육시설이 열악하였다. 가장 필요한 시청각교재도 터무니없이 부족하였다. 그러나 물상선생님은 사비(私費)를 들여 고가의 실험기재나 재료를 구입하시곤 하였다. 새 학기 첫 수업이 시작되면 제일성이
  \"지식을 얻는 것은 깨치는 것보다 훨씬 쉽고도 많을 수 있다. 단순히 책만 보고 외우면 되니 큰 노력을 요하지 않아도 된다. 어찌 보면 좋은 방법인 것 같으나 그렇게 터득한 지식은 수박의 겉만 보는 것과 같아 속에 숨겨진 진리를 깨닫지 못한다. 과학도는 언제나 실험기재를 달고 살아야한다. 배운 이론대로 실제로 그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진정한 학습이고 깨침이다.\"
  누구도 그분의 지론(持論)에 토를 달지 못했다. 언젠가는 장학관이 시찰하다 그 애기를 듣고 감격하여 없는 예산에 별도로 실험기자재를 보냈다. 선생님은 뛸 듯 기뻐하며 그렇게 좋아하였다.
  무엇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진한 감동을 준다. 그것은 우리가 평소에는 잃어버린 귀한 존재들을 다시 생각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물상선생님이 보여준 남다른 제자사랑에는 바로 인간에 대한 지극한 존중이라는 의식이 깊이 내재되어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어린 학생들에게 감성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침은 물론이고 인격도야에도 좋은 토양이 되지 않겠는가.
  모네의 '에프트 강변의 포플러'를 얘기했지만, 모네는 포플러를 주제로 하여 여러 작품을 그렸다.
  어느 날 모네는 쥬베르니 근처의 리메츠를 산책하면서, 에프트강변에 줄지어 자란 포플러에 매료되었다. 그런데 한 포플러 나무에 붉은 천이 감겨져 있었고, 이 나무들이 경매에 붙여져 곧 근처의 제재소로 실려 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포플러 나무의 경매 연기를 신청했는데 각하되었고, 그래서 입찰 희망자를 찾아가 낙찰 가격보다 많은 돈을 줄 테니 그림을 다 그릴 때까지 참아 달라고 간청했다. 포플러 연작은 이래서 탄생했다. 쭉쭉 솟아 오른 몸뚱이, 무성한 잎 새, 햇빛이 닿으면 여러 색깔로 변한다. 그 뿐이랴 에프트강에 투영된 그림자 또한 일품이었지.\"
  모네의 포플러 연작(連作)에 얽힌 사연에서 보듯이 이 또한 자연에 대한 지극한 존중이 있었기에 그 일이 가능했던 것이다.
  선생님은 까만 겉표지에 커다랗게 흰 종이를 붙이고, '사랑'이라고 검정색 먹물로 표지를 쓴 대학노트 두 배쯤 되는 출석부 비슷한 생활기록부를 늘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저승사자라고 불렀다. 명부사이에는 회초리를 끼우고는 어디를 가든지 옆구리에 끼고 다녔다. 학생들은 그 모습을 보고 '회초리 선생님'이라고 별명을 지었다. 선생님은 학교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잘못하는 학생이 눈에 띠면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낮은 목소리로 학생을 불렀다.
  \"학새∼ㅇ\"
  그 소리를 들으면 누구나 귀가 번쩍 뛴다. 학생을 앞으로 오게 하는 방법도 별다르다. 내리깐 안경너머로 학생을 보면서 집개손가락을 위쪽으로 올려 한두 번 선생님 쪽으로 천천히 움직인다. 그 사이에 선생님 앞까지 재빠르게 도착하면 제 벌을 받지만 늦으면 벌은 배가 된다. 어쩌면 장난스럽기까지 하였지만 누구하나 그 권위에 도전하지 못했다.
  학년반과 이름을 '사랑의 명부'에 적은 후에 벌을 내렸다. 가벼운 위반은 손바닥을 한 대씩 때렸다. 물론 심한 잘못을 저지르면 회초리는 걷힌 바지아래 드러난 맨살의 종아리에 가차 없이 폭격을 가했다.
  과학수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회초리 선생님이 우리들을 향해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창문을 내다보지 마라!\"
  우리의 눈은 일제히 창문 쪽으로 달려가 밖을 내다보았다. 모두가 진짜로 깜짝 놀란 것은 그 다음이었다. 대머리 때문에 평생을 끙끙대던 동네 세탁소 아저씨가 깜짝 놀랄만한 일이 생겼다. 언제 봐도 허여멀겋던 민둥산에 새까만 무엇인가가 갑자기 내려앉은 모습이다. 산위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까만 색 병풍을 두르듯이 시커멓게 보였다.
  학교 뒤쪽으로 가까운 거리에 그렇게 높지 않은 조그마한 야산이 있었다. 산이라고 부르기엔 뭐한 조금 높은 구릉이었다. 그 산은 너머 동네에 사는 친구를 따라서 이따금씩 넘어 다니기도 하였다. 산에는 키 작은 잡목이라도 나무는 몇 그루 없었고 잡초만이 띄엄띄엄 자라고 있었을 뿐으로 민둥산이라고 불렀다. 학교에서 바라보면 산위 꼭대기까지 똑똑하게 잘 보였다.
  언제나 별 볼일 없이 조용하기만 했던 민둥산이 갑자기 저녁거리 시장바닥처럼 많은 사람들로 북적되고 있었다. 야트막한 잡목사이에는 적게는 십여 명이고, 많은 쪽은 수십 명씩 무리를 짓고 있었다. 까만 교복을 입은 것으로 봐서는 고등학교 형들 같았다.
  손으로 나팔모양을 하고 소리치고 있었으나 무슨 소리를 외치는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교실 안은 놀란 학생들의 웅성거림으로 크게 울렸다. 회초리 선생님은 회초리로 또 다시 교탁과 칠판을 부서져라 두드리며 다시 한 번 고함을 질렀다.
  \"주목∼!\"


  큰 소란이 났는지 집으로 돌아오는 길거리는 어수선하였다. 가끔가다 한 무리의 데모대가 우르르 몰려왔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잠시 후에는 트럭으로 경찰들이 가득 실려 왔다. 그들의 어깨에는 소총이 한 자루씩 메져있었다. 길에 있던 행인들은 질겁하여 도망가거나 숨기에 바빴다. 깨진 벽돌과 잔 돌멩이가 어지러이 나둥글어 전쟁터나 다름이 없는 아수라장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부모님은 학교이외에는 일체의 외출을 금한다는 엄명을 내렸다. 학교에서도 정상적으로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애들은 공부는 제쳐두고 매일매일 벌어지는 고등학교 형들의 데모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예 별관옥상에 올라가서 구경하는 학생들도 더러 있었다. 선생님들도 혹시 어린 학생들이 멋모르고 행동하다 불상사라도 생기지 않을까만 걱정을 했지 그 외에는 모른척하며 내버려뒀다. 나중에는 형들이 외치는 구호뿐만 아니라 그 사정도 속속히 알게 되었다.
  회초리 선생님은 세상이 크게 달라지고 있으니 어린 학생이지만 정도껏은 알아야한다면서 몇 번에 걸쳐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는 말로 끝을 맺은 패트릭 헨리(Henry, Patrick)의 유명한 연설문의 내용과 그 정신의 시원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었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하늘이 내려준 천부권(天賦權)에 대해 눈뜨기 시작하면서 인권을 쟁취하기 위하여 절대 권력과 끊임없는 투쟁 끝에 얻은 대헌장(大憲章,Magna Carta)과 그 이념이 차후에 잉글랜드의 권리청원과 인신보호령으로 발전된 것은 물론이고 이후 프랑스대혁명과 미국의 독립정신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강의로 수업을 대신하였다. 비록 어린 중학생이었지만 무언가 세상이 크게 변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공포는 나날이 더해가고, 사회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그런 와중이니 무엇보다 또래의 소식이 궁금하였다. 한번은 엄마에게 어렵게 허락을 얻어 또래를 찾아갔으나 대문만 굳게 잠겨있을 뿐이고 집안에서는 인기척이 전혀 없다. 그 애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이 4월 초순이었거나 4월 중순쯤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또래의 고모가 거처하던 별채를 헐어버린 직후였었다. 그 이후부터는 아예 볼 수가 없었다.
  궁금증이 더해지자, 나중에는 부모님 몰래 또래가 다니던 인근 학교에까지 가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애는 학교에도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을 뿐으로 더욱 이상한 생각만 들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한참동안 그 집 주위를 서성거리며 망설였으나 그대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날따라 희뿌옇게 변한 날씨만큼이나 가슴이 답답하고 눈앞이 어지러웠다. 그 집을 다녀온 후에는 며칠간은 섬쩍지근하여 편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민심은 더욱 흉흉해지고 사나워지기 시작하였다. 해결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지 급기야는 학교에도 휴교령이 내려졌다. 이제는 데모하다 사람이 죽었다는 뉴스도 간간이 들렸다. 그런지 며칠 후에 라디오에서는 긴급뉴스로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하야(下野)소식을 연이어 전하였다. 흔들림이 없는 회초리 선생님마저 크게 흥분하며 모두에게 말했다.
  \"고귀한 것을 얻으려면 하늘이 시험하는 그만큼의 고난을 이겨야하는 것이다. 작렬하는 태양과 목 타는 가뭄만이 알찬 열매를 맺는 것이다. 거짓을 감싼 위선의 옷을 버릴 용기를 갖고, 미움과 질시의 벽을 허물고, 진실성을 담보로 세워야 한다.
  부활을 바라는 자여! 레테의 강으로 오라! 진정 어리석음이 어리석음이 아니요, 어리석은 줄 모름이 진정 어리석음이다. 모든 죄는 나로부터 비롯됨을 깨닫고, 진심으로 참회해야 한다. 마음으로 지은 죄는 마음으로 뉘우치고, 몸으로 지은 죄는 몸으로 참회의 눈물을 흘려라. 에우노에의 물을 마시고, 새 생명을 얻어라!
  그들은 순수함을 무엇보다 앞세울 줄 알게 되었다. 새하얀 가슴에 겸손을 담는 지혜도 아울러 갖게 되었다. 어제까진 서로를 불신하고 미워하는 벽을 세우고,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는 인색과 고집으로 주어진 자유를 스스로 속박하는 어리석은 짓과 가식의 올가미에 꽁꽁 묶인 바보 같은 허울로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음을 이제야 알았다. 자유라는 값진 가치는 그만한 고통과 인내의 대가와 같음도 이제야 깨달았다.
  오∼자유의 목마름이여! 오늘에서 모두가 하나임을 스스로 일깨우고, 기쁨으로 가득 찬 다시 찾은 자유의 소리를 듣는다. 주체할 수 없는 뜨거운 정의가, 식을 줄 모르는 불타는 의지가, 반목과 대립을 이겨낸 용기를 만들었다. 거짓의 껍질을 벗겨내고 그 자리에 믿음을 심었다.
  하늘을 보라! 자유의 햇살이 쏟아지는 천상의 밝은 하늘을 보라! 새로운 날의 여명(黎明)이 사위(四圍)를 밝히며 어둠을 깨웠다. 오늘은 진정한 자유를 찾은 날이다. 오늘은 진정한 우리를 찾은 날이다.\"
  하지만 나의 관심사는 대통령의 하야(下野)보다는 또래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에 들떴다. 그러나 그 후에도 오랜 동안 그 애의 소식을 들을 수 가 없었다. 뉴스가 나온 지 꼭 달포쯤 지난 후였다. 이상한 일이 벌어져 온 동네가 벌집을 들쑤셔놓은 것 같이 큰 소동이 벌어졌다. 정확히 말하면 그 애 일가족이 몰래 이사를 가버린 뜻밖의 일이 생긴 것이다. 그것도 밤에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다. 보았다는 사람의 얘기로는 트럭으로 짐과 함께 집에서 은거하고 있던 나머지 사람들을 황급히 싣고는 서울 쪽으로 부리나케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는 감당할 수 없는 충격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날은 집안에 혼자 틀어박혀 왼 종일 울기만 하였다.
  그 후로는 동네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별의별 얘기가 다나왔다. 이상한 소문도 무성하였다. 그 중에 하나는 그 애의 고모가 법정 점염병인 폐결핵 환자였었다는 사실이고, 발설하면 좋지 않은 요양시설에 강제로 입원조치를 당하니 그 애의 아빠가 그 사실을 숨기고 집에서 요양을 시켰다는 애기이고, 또 하나는 그 애의 아빠가 전 집권당 지역 간부였는데 된서리를 맞았으며, 나머지 가족은 그 애의 외가 쪽 친척이 모두 데리고 잠적했다는 얘기였다.
  끔찍한 일이 벌어진지 며칠이 지난 후였다. 그 날은 새벽부터 찌뿌듯하더니 기어이 초여름의 더위를 식히려는지 동틀 녘부터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비포장인 동네 길은 적은 비만으로도 금방 물줄기가 생기고 진흙탕으로 변했다.
  그날은 아침부터 또 다시 동네가 시끌벅적해졌다. 진흙탕 빗길을 뚫고 지프차에 장정 서너 사람이 타고 와서는 그 애의 집으로 향했다. 그 집 대문에다 나무판대기를 대고 큰못으로 단단히 못질을 하였다. 그리고는 빨간 글씨로 '출입금지(出入禁止)'라고 쓴 무명천을 가로댄 나무판대기에다 붙들어 매놓고 돌아갔다.
  제법 줄기차게 내리는 여름비는 그것이 못마땅했는지 하얀 천을 뻘겋게 물들였다.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난 듯이 유월에 내리는 빗소리에는 애수(哀愁)만이 잠길 뿐이다. 그러나 또다시 바빠진 동네 사람들의 머리는 진흙탕처럼 정신없이 갈팡질팡해질 것이다.
  다행이었는지 어제는 그 집에 몰래 들어가 사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조금은 무서웠지만 그 애를 생각하며 집안을 살폈다. 집안 내부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였다. 몇 년 전 전쟁이 나자 살림도구도 챙기지 못하고 황급하게 피난 갔었다던 부모님이 말씀하던 그때와 비슷하게 보였다. 문짝은 떨어져나가 박살나고 벽의 일부는 사람이 드나들 정도로 훤하게 뚫려있었다. 무엇하나 성한 것이 없는 그야말로 폐가가 되었다.
  나는 우리의 '비밀의 정원 작은 꽃동산'이 궁금하여 그곳으로 올라갔다. 맑은 유월의 하늘에는 어김없이 하얀 뭉게구름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거기에는 또 다른 '게르니카'의 아비귀환이 있음을 말하는 듯하였다. 둔덕의 여기저기 탐스럽게 피어있는 야생화는 저마다 맵시를 뽐내고 있으나 아무도 보아주는 이가 없었다. 오롯이 지나가는 유월의 바람만이 그들의 슬픔을 다독거릴 뿐이고, 정적만이 주위를 감돌았다. 나의 슬픈 유월의 결말은 그렇게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Lascia Ch'io Pianga』

(Sarah Brightman/George Frideric Handel)

    Lascia ch'io pianga
    날 울게 하소서
    비참한 나의 운명,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나를 울게 하소서
    비참한 나의 운명,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이 슬픔으로 고통의 사슬을 끊게 하소서.
- Lascia ch'io pianga는 헨델의 Rinaldo 2막에서 여주인공인 Almirena에 의해 불리어지는 아리아이다. 십자군전쟁이라는 미명아래 벌어지는 추악한 탐욕의 불구덩이 속에서 꽃피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문명의 패권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동서 문명권의 충돌을 배경으로 영웅 Rinaldo와 연인인 Almirena의 지순한 사랑에 Rinaldo를 사모하는 사라센왕의 마법사인 Armida의 질투가 낳은 삼각관계 속에서, Armida에 납치되어 포로가 된 Almirena가 산속의 요새(마술궁전)에 갇힌 자신을 한탄하며 자유를 잃은 운명을 탄식하는 비탄의 노래이다. 자유를 향한 애절한 마음으로 억압에서 풀려나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영화 파리넬리(farinelli)의 삽입곡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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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아풀 2008. 10. 05. 오후 08:19

몇십 년 전 과거로 타임머신을 타고 간 느낌입니다. 비록 그 시대의 상황을 직접 겪거나 알지 못하지만 글 속 모든 것이 마치 현실처럼 생생하네요. 배경음악, 아리아도 감사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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