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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것과 넋두리

박상덕 2008. 10. 08. 오후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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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월의 기행(奇行)  #7 남겨진 것과 넋두리

남겨진 것과 넋두리


  유월의 여정은 영롱(玲瓏)하게 반짝이는 희망의 빛을 갖고 출발하였으나 아쉽게도 암울하고 쓸쓸한 그림자만 남겼다. 꿈 따라 활기차게 나섰던 흥분도 좌절의 예리한 창끝을 피하지 못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변하여 뒤를 눈물겹게 만들었다. 이번에도 유월의 회귀(回歸)는 또 다시 회한(悔恨)으로 끝을 맺을 것 같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우둔함을 스스로 책망할 뿐이다.
  삶이란 하나의 괴로움인 것을 깨닫고 그 때문에 온갖 욕망을 물리침으로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것을 아는 것이 온전한 깨달음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평소부터 나만은 무거운 짐을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살고 있다고 누구나 그렇게 믿고 있지만, 어리석게도 거꾸로 점점 더 많은 짐을 지는 것이 우리네의 삶이 아닌지 모르겠다. 하기야 끌리는 빛깔을 보고 마음으로 미혹(迷惑)하여 덧없다 보지 않고 아름답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인진데. 세속(世俗)에 거하는 범인(凡人)이 진실이 아닌 것을 어찌 알 수 있으랴.
  이 글을 쓰는 것도 짐을 더는 것인지 아니면 더욱 지게 되는 것인지 이 또한 알 길이 없지만 이왕 시작했으니 끝을 맺어야 하겠고, 그전에 몇 가지만 집고 싶다. 우선 이 시리즈를 쓰면서 여러 번 언급했던 '이별의 인천항'에 대해 좀 더 말하고 넘어갈까 한다. 어째서 '이별의 인천항'이 청보핀토스라는 야구단과 성쇠(盛衰)를 같이 하였을까하는 궁금증이다. 이는 평소에 가지고 있던 의문이기도 하여 이번 기회에 간략하게나마 짚어보고 싶다.
  청보핀토스는 삼미수퍼스타즈를 넘겨받은 1985년 5월 1일부터 태평양 돌핀스에게 되넘긴 1987년 10월 6일까지 2년 반 동안 구단을 운영하며 숱한 화제를 낳았던 인천을 본거지로 하였던 프로야구단이었다. 여의치 않은 여건으로 짧은 기간을 뒤로하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지만 인천시민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야구단이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인천을 본거지로 하는 야구단이 없어진 것도 아니요, 그 노래에 갑자기 금지곡이라는 올가미가 씌어져 된서리를 맞은 불상사가 생긴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이별의 인천항'이 야구단의 사가(社歌)로 채택되어 강제로 불러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청보핀토스 야구단과 부침(浮沈)을 같이 했을까?
  그렇다면 또 다른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무슨 이유로 세상이 떠나가라 자발적으로 그렇게 외쳤던 노래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무대에서 사라졌을까? 먼저 '이별의 인천항'이라는 노래의 속에는 무엇이 담겨있는지를 살펴보고, 밖으로는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었는지를 알 수 있다면 쉽게 이해가 될 것 같다.
  아픈 과거가 있다는 사실은 말하기조차 슬프다. 그렇다고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과거가 불우했다고 지금 과거를 원망한다면 불우했던 과거는 영원히 너의 영역의 사생아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어느 노동운동가(全泰壹의 일기)의 피맺힌 절규를 되새겨 보게 된다. 우리는 시대가 주는 절망감을 감내하며 살아야했던 기막힌 숙명을 타고난 세대이지만, 그런 과거까지도 지극한 사랑으로 감싸 안아야하는 특별한 짐을 진 세대이기 때문이다.
  팔십 년대는 압제의 시대요, 좌절의 시대였음을 상기하여야 한다. 털끝하나 건드릴 힘이 없었던 민초들은 오로지 현실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감에 젖어 있었다. 위기감은 모든 것을 체념하게 만들었으며, 당연히 액서더스(Exodus)에 대한 동경심(憧憬心)을 누구나 가지게끔 하였다. 거기에 인천이라는 공통의 연고를 가졌다는 인식이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노래에 담겨있는 제멋대로의 아전인수식 해석도 시대적 공감인 아픔과 너무나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왜냐하면 그 시대의 우리에게는 손에 쥐어질듯 하면서도 쥐어지는 것이 없는 허무맹랑함이 판을 치는 공염불의 시대였으며, 이는 들고나는 항구의 내일이 없는 사랑과 별반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시절의 자학(自虐)과 자조(自嘲)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다. 모두가 광대놀음에 미친 바보 같은 시대에나 가질 수 있는 모순덩어리라 할 수 있다.
  강력(强力)의 손아귀에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던 압제의 시절에 변변한 항의마저 억압의 구실이 되었던 민초들이 안심하고 화풀이할 수 있는 곳이 야구장이었으며, 이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이 되어 야구장으로 모여들었다. 그곳은 너무나 안성마침인 엑서더스 끝에 찾은 신대륙이었다. 서슬이 퍼런 그 시절에 합법적으로 눈치안보고 실컷 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곳에서 응원의 노래로 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제까진 귀가 솔깃한 달콤한 말로 우리를 다그치지 않았느냐. 우리는 '오늘밤도 그라스에 맺은 인연'을 지키기 위해 주어진 할일을 다했다. 그러나 오늘 나에게 돌아온 것은 '물새들도 눈물 짖는 이별의 인천항구'의 쫒긴 이별처럼 망망대해로 내몰리는 신세로 눈물만 흘렸다. 우리는 쓰다버리는 일회성 소모품이 아니다. 우리에겐 인간다운 삶이 필요하다.\"
  열심히 일을 해도 내손에 들어오는 것이라야 대가에 훨씬 못 미치는 보잘 것이 없었던 민초들에게는 상실감으로 텅 빈 속이나마 후련하게 욕으로 채울 수가 있었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목청이 터져라 욕을 한 것이다. 막힌 가슴이 뻥하고 뚫리도록 그래서 맺힌 한(恨)이 하늘높이 날아가도록 고래고래 소리치듯 응원가를 부르며 욕을 한 것이다.
  노래에 가타부타가 어디에 있었겠나. 그 속에다 시대의 아픔을 토(吐)하는 절규를 합쳤을 뿐이다. '아침이슬'을 그 험한 시절에 그렇게 부르면서 속을 삭였던 경험을 떠올린다면 이해가 될 것이다.
  우리가 천부(天賦)의 자유를 잃었을 때, 《리날도》의 알미레나처럼 운명을 탄식하는 비탄의 노래를 부르면서 자유를 향한 애절한 마음으로 증오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만을 기원하겠는가? 진정한 용기란 대지가 있는 한, 하늘이 별을 품고 있는 한, 남겨진 시간은 어떤 종국(終局)도 모른다는 사실로, 몰락의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으며, 결코 돌아서지 않는 인내와 끈기로, 그 가치가 자신과 이웃에게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생각해 역동적으로 시대와 맞서 싸우는 행동이다.
  어려운 시대였지만 자아(自我)의 새로운 발견은 살아있는 그를 통해 우리의 내면으로부터 끊임없이 자유의지(自由意志)를 끌어 올렸으며, 드디어 1987년 6월의 민주항쟁은 자유의 피를 헛되이 버리지 않고 압제자를 굴복시켰다.
  좋은 일이 지나면 궂은 일이 오는 것인가? 한 달이 크면 한 달이 작다고 하였듯이, 불행하게도 그 후로는 예전만큼 화풀이용으로 그 노래를 부를 필요성이 반감되었으며, 자연스럽게 부르는 횟수도 잦아졌다. 그런 와중에 기가 막히게도 청보핀토스마저 때를 맞추듯이 막을 내렸던 것이다. 그 후로는 '연안부두'가 새로이 등장하며 그 자리를 대신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이별의 인천항'은 그러한 시대적 사명을 갖고 태어난 노래가 되었다. 저항운동의 한 의미도 담고 있었던 특별한 가치를 지닌 노래가 되었다. 하지만 그때로 되돌아가 다시 생각해보니 단순히 좋아서 부르던 노래가 시대의 아픔과 서글픔을 한껏 외치게 하는 수단으로 바뀌게 된 것은 진한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 이제는 노래만이라도 제 위치에서 제 멋에 맞게 부를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개인적으로 '이별의 인천항'이 좋은 이유는 아픈 그리움이 속속히 어려 있음에도 가사 속의 이면에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구석에서 눈물이 메이는 감격을 새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쌍고동이 울어대는 이별의 인천항구∼♬\"라는 노래가 주는 숨어 있는 정감(情感), 그것이 진정으로 좋아하게 된 진짜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양쪽 손에 기쁨과 슬픔을 하나씩 쥐고 있다. 그중 한쪽 손에 있는 노래가 기쁨을 주었다면 나머지 한쪽 손에는 슬픈 노래만이 남는다. 내게도 지금까지 얻은 즐거움보다도 몇 배나 더 큰 괴로움의 노래가 한쪽 손에 남아있다. 격랑의 소용돌이가 지난지도 반세기가 되어가건만 잃어버린 친구를 위한 구원의 노래를 아직도 찾지 못했다. 그토록 노래를 좋아했던, 내성적인 성격을 가졌지만 노래할 때만큼은 누구에 못지않게 활달했던 살붙이나 다름없던 친구. 잊을 수 없는 노래박사 또래친구는 반세기가 다되도록 장구한 기다림 속에서 아직까지 오리무중으로 남아 있다.
  기쁨과 슬픔을 저울추로 달아보았다면 처음에는 한 치의 틀림도 없이 균형을 잡아 서로가 상쇄 되었을 것이다. 그런 것이 이제는 지나온 세월만큼 크게 벌어지고 한쪽으로 심히 기울어, 이제껏 얻은 즐거움보다도 몇 배나 큰 괴로움으로 남아 나의 영혼을 짓누르고 있다.
  또래가 전생(前生)에서 무슨 업(業)을 갖고, 하늘로부터 어떠한 사명을 받고, 이 세상에 태어낫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만약에 그것이 그 애의 운명에 족쇄를 채웠다면 더 이상 우리에게는 어떻게 할 수 있는 힘이 없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스스로가 불행으로 가는 길을 만들었고, 마른 장작에 불을 지펴 흔적도 남기지 않을 요량으로 활활 태워버린 어리석음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또래가 신의 이름으로 그렇게 태어난 것이 죄(罪)라면 오직 그 시대에 그렇게 태어난 유일한 그 죄밖에 없다.
  친구여, 죽음의 날개가 우리의 생애를 흐트러뜨려 사라지게 할 때까지 함께 하리라고 저 위대한 신의 맹서에 다짐한 우리의 맹세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서로의 잔을 채워주고, 서로가 자기의 빵을 나눠 주며,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주자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다짐하고 가슴 속에 간직하였던 우리의 순수함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세상의 미움 속에 살면서 미워하지 않음이여. 내 삶은 더없이 행복하여라. 사람들이 서로서로 미워하는 그 속에서 나만이라도, 나 혼자만이라도 미워하지 말고 바람처럼 물처럼 살아가자고 그렇게 다짐했던 우리의 호연지기(浩然之氣)는 다 어디로 갔는가? 그대가 없으니 마치 산을 오르는 이에게 산은 벌판에서 더욱 선명하게 보이듯이 더욱 뚜렷이 그대가 드러나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얏습니다.'고 시인은 절규했다. 님을 보낼 때도 차마 볼 수가 없어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고 마음으로 말했다. 그러나 눈은 벌써 멀찍이 떠나가는 님과 함께 붙어가고 있었다. 소리 없이 바라보며 다시 돌아올 때에는 그대로의 옛 모습에 보태서 더 부(富)하고 더 강(强)해지기를 기도했다.
  그리고 세상이 한 바퀴 돌아 제자리를 잡을 때에 시인의 간절한 바람대로 적어도 한 나라는 그렇게 변모되었다. 시인이 그렇게 원했던 '님의 침묵'에서는 그랬다. 그런데도 감히 나라의 운명과 비견(比肩)조차 할 수 없는 극히 작다면 작은 한 목숨에 대해서는 어째서 지금까지 하늘은 오불관언(吾不關焉)하며 내버려두는 걸까?
  지나간 세월만큼 들은 얘기야 무수히 많았지만 사실인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안타까움 속에 시간만이 그렇게 흘렀을 뿐이다. 정성이 부족해서 그랬을까? 차(茶)를 지극히 사랑한 노동(盧仝)이 친구인 맹간(孟簡)이 보내준 차(茶)를 받고 흥이 돋아 칠완다시(七碗茶詩)의 음다가(飮茶歌)를 지으면서 시(詩) 한수에 차(茶) 한사발로 단번에 일곱 사발까지 마셨다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질렀다는데, 친구를 위하여 이 정도의 파격(破格) 쯤은 되어야 정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가? 매일 매일의 기도 가운데에 당신의 안위(安危)를 생각하며 평안을 갈구하던 반세기의 기원마저도 정성으론 태부족이었던가? 하늘은 미동(微動)조차 하지 않는다.
  \"친구여, 나의 넋두릴 들어 보겠나? 그 동안 가지고 있었던 가슴속에 있는 것을 이제는 하나도 남김없이 털어놓고 싶네. 시간은 캠프파이어처럼 우리 주위에서 밤새도록 불타오르게 하고, 밝아진 대지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든 옆으로 반쯤 들어 눕든 각자가 편한 자세를 하고 얘기하여보세. 졸음에 겨워 머리를 끄덕이는 영혼은 그때마다 목소리를 크게 하여 깨우면서 말일세.
  자네는 가끔가다 나의 꿈속을 항해하였었는데 기억할 수 있겠는가? 얼마나 재빠르고 능숙한 솜씨로 움직이는지 자네를 몇 번이나 잡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었건만 날렵하게 스쳐가는 자네의 뒷모습의 희미한 그림자가 남기는 흔적만을 쫒을 뿐. 나의 갈망의 그물은 언제나 허공만을 가를 뿐이었네. 그래도 꿈의 전령은 그것이 자네일 것이라는 암시를 끊임없이 주었다네.
  보고 싶은 당신이지만, 이제는 당신을 보려는 생각조차도 솔직히 겁이 나고 두렵네. 세월은 기억을 무뎌지게 하는 영약(靈藥)보다 그리움을 강하게 하는 묘약(妙藥)을 더 많이 만들었는지, 흐릿하게 지워지는 기억보다 아쉬운 한숨만이 더 높이 쌓였다네. 그러니 마음속 깊은 생각 끝에 나오는 것조차도 걸러지지 않은 슬픔뿐이니 그것을 건드리는 것은 너무나도 괴로운 일이 아니겠나. 당신을 생각하는 것이 그 자체가 슬픔이 되는 것은 나의 영혼마저도 흔들어 놓는 견디기에 힘겨운 일일세.
  우리는 지금쯤 어디에 있는가?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의문을 던지지만, 이는 우리 스스로가 혼돈의 세계에 서서 갈 곳을 잃어버렸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네. 시간이란 유한(有限)을 가진 객체 모두가 겪는 실존적 경험의 기본요소이며, 상대적 개념으로의 시간은 되돌릴 수 없는 이른바 평형의 상태가 비평형의 상태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비가역성(非可逆性)이 있음으로 매 순간마다 특유의 질서를 갖게 되네.
  그 말은 자연은 그 자체로 고정된 불변의 대상이 아니므로 당연히 예정에 따른 것이든 또는 돌발적인 것이든 관계없이 섭리에 의해 운행되며, 필연적으로 비가역(非可逆)의 분기점을 통과하게 됨으로서 비로소 평형을 유지하려고 하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혼돈으로부터 동태적 균형(動態的 均衡)을 갖춘 바른 질서를 찾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네.
  유월의 회귀(回歸)라고 말하지만, 이는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는 것으로 돌아올 수 없는 시간대로 가는 비가역적(非可逆的) 세계의 여행이라고 말할 수 있네. 혼돈으로부터 새로운 세계가 창조되면 우리는 그 전의 지나간 세계에 단순히 과거라는 음의 부호를 주어서 기억하게 되네. 하지만 그 세계를 단층 촬영하듯 들여다보면 단속(斷續)된 시간의 일정한 묶음들 속에는 이해 못할 절절한 사연들이 수도 없이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네. 친구여, 그것을 돌아보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와 인내를 필요로 하고, 고통을 견뎌야하는 끔찍한 일인 줄 알겠는가?
  인간 중에는 사악하여 죄악을 일삼는 어리석은 부류의 못된 인간들이 많다네. 참람(僭濫)하는 일이 넘쳐나는 세상이니 상도(常道)를 이탈하는 짓도 비일비재하고, 심하면 인륜을 저버리는 자가 없을 수가 없겠지. 그 와중에는 영웅이 되려는 자들도 있기 마련이고, 간혹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서서 사람들을 현혹하려는 자들도 있다네.
  하지만, 인간의 힘으로 세상사를 다루면서 공평(公平)과 중정(中正)만으로 만사를 이룰 수가 있겠는가? 설령, 그런 자가 정의로운 자라도 사악한 자의 행위와 별반 다르지 않을 만큼 결백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니 그들의 짓거리는 섭리를 거슬리게 될 것이고, 하늘의 이치에 반하는 행동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네. 예견되는 것이지만, 끝에는 탐욕의 높이가 태산준령을 넘게 되고, 위선의 바다는 사해를 덮고도 남을 만큼 커질 것이네.
  예부터 세상에는 한 가지 일이 일어나면 반드시 한 가지 해로운 일도 생긴다고 했네. 그러니 하늘의 이치를 따르지 않으면 원혼이 생기게 마련이 아니겠나.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가 단속(斷續)된 시간을 들여다보면, 양단 되어버린 그것들 중에는 목표도 없는 수많은 갈망이 난잡하게 흐트러져 있고, 쌓인 것이 끝도 없는 근심뿐이었네.
  죽으면 몸에서 떨어져나간 넋은 무한한 우주의 끝으로 공간이동을 한다고들 하지. 물론 인간의 상상력이나 예지로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멀고도 먼 곳으로 말일세. 하지만 떠나지 못한, 아물지 않은 영혼의 조각들은 아직도 그곳에서 끝없이 허공만을 난무하고, 그에 따른 고통의 산물은 그 주위에 빈틈없이 둘리어져 있었네. 악(惡)이여! 어째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여 영혼마저도 혼탁케 하는가? 여섯 개의 눈과 세 개의 입을 가진 루치페르(魔王)의 농간인가? 주테카를 피눈물로 물들인 세 개의 마귀상(魔鬼相)이 던진 저주인가?
  친구여! 그것을 바라보며 보낸 통고(痛苦)의 날들은 너무나 길었고, 악령이 되살아나듯이 소름끼치는 고독의 밤들도 견딜 수가 없었다네. 그러니 어찌 고통이 따르는 후회가 없었을 것이고, 극에 달한 이별의 고독을 되 뇌이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당혹스럽다 해도 모두가 우리가 만들고 버린 것이 아니가. 더구나 자네와 나 사이에 관계된 일이니 외롭다거나 슬프다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네. 고통이나 고독이란 단어도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네. 그것들은 헤어짐에 비하면 크나 큰 사치가 아니겠나. 그러니 지금은 외로움도 없고 슬픔도 아닐세.
  그보다는 익지도 않은 어린 가슴에 평생을 짊어질 멍에를 지우고, 이제는 절망과 체념으로 끊어지고 녹이 슨 쓸모없는 사슬로 변하여 이을 수 없는 우정의 끈으로만 남아, 유월의 하늘을 바라볼 때마다 지키고 가꿨어야할 소중한 과거를 잃어버렸다는 쓰라린 상실감(喪失感)과 저미는 자괴감(自愧感)보다 더한 것을 찾아내 변명이라도 하려는 것뿐이네.
  어느 철인(哲人)이 그랬다네. '그대들 각자는 고독하게 하라.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각자 고독한 기타 줄처럼.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간직하지는 말라. 오직 삶의 손길만이 그대들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각각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을. 참나무, 사이프러스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서러움과 아쉬움이 크지만, 좋은 말로 생각하여 위로받고 싶고, 그 말을 믿고 따르고 싶네. 우리는 친구사이니까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겠나. 언제가 교통할 날을 기다리며 말일세. 모르는 사이라면 그럴 필요도 없을 테니 안 그런가? 친구여. 그런데 말일세. 애들 같은 바람이지만 정말로 나에게 허락 된다면 '우리들의 비밀의 정원 작은 꽃동산'에서 놀던 그때로 시간을 되돌려 놓고 싶네. 뭉게구름 보면서 낄낄대던 그때로 말일세.\"
  잠착히 앉았노라면 지나온 삶이 부끄럽게 떠오른다. 지난날의 빛바랜 사진 속에는 삶에 지친 신산(辛酸)의 모습만 있을 뿐이요, 고뇌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돌은 강해서 물을 채우게 하고, 물은 부드러워 빈틈없이 가득 채운다고 했다. 나는 강한 돌이었나? 아니면 부드러운 물이었을까? 물끄러미 내면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를 뿐이다. 자신의 일조차 해결하지 못했던 헤로도투스의 평균의 개념만을 가지고 세상을 살았다. 너도 좋고 나도 좋은 편한 세상만을 보며 쫒았다. 돌처럼 담아주는 역할도 못했고, 물처럼 빈틈없이 채워주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늦은 것은 아니다. 이제는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다. 멍한 얼굴을 한 채로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흐르는 눈물만 흠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세월은 그리움은 키우고, 기억의 인자(因子)는 무디게 만드는 약이라고 하지 않던가. 정신을 가다듬고 스스로를 달래어 내 앞을 돌아보자. 지금부터는 시대의 억압에 눌려 선악(善惡)의 업(業)을 짊어진 모든 이를 대신하여 나의 노래박사 또래친구에게 갚아도 갚을 수 없는 유월의 빚을 갚는 일에 앞장서야한다.
  오늘로서 열 번째의 회귀는 언제나와 같이 아픔과 후회만을 가득안고 끝났다. 괴롭고 어렵다 해도 내일부터는 또 다시 열한 번째의 성공을 위한 회귀를 준비하여야한다. 나무뿌리가 깊고 굳세면 비록 끊으려하나 다시 나는 것처럼 이제는 유월이란 언제나 시작이고 끝이다. 그것은 벗어날 수 없는 나의 숙명이며, 잃어버린 또래와의 언약을 지키는 일이요, 예의다.
  아∼. 어찌 잊을 건가! 어찌 꿈엔들 잊을 건가! 정(情) 붙은 우리의 미망(迷妄)함은 모두가 실유(實有)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다시금 기쁨을 갖고 싶어 또 다른 희망안고 준비하련다. 동방박사 이끌어 준 '베들레헴의 별'을 기다리며, 언젠가는 틀림없이 만날 그날을 위하여!

『Evergreen(언제나 푸른 사랑)』

(Susan Jacks)

Sometimes love would bloom in the spring time
Then my flowers in summer it will grow
언제나 푸른 사랑 봄이면 가끔씩 사랑이 움트고
여름이면 내 사랑의 꽃이 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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