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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안영 하셨어요. 제2신

윤화진 2009. 01. 22. 오전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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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안녕 하셨어요, 제2신
                                                     윤화진
    
     어제, 윗동래 갇다가
     돌아오자 마자 
     급히 제2신을
     이메일로 드리게 됬어요
     메일주소는
     kingdom-of-heaven.com 이지요?
     그런데, 개발이다
     재 개발이다
     그 개 발 때문에,
 
     철거다, 보상이다 
     철보 거상 때문에,
 
     여러사람이 때 못 마치고
     윗동래로 이사했어요
     
     알고 보면
     모두 똥그라미 때문이지요
     그놈의 돈이 무었인지...
     빛과 사랑을
     돈으로 계산하면
     얼마나 될까요
     돈 좀 찍어서
     여기 아래 동래로
     보내 주면 안 되겠어요
     돈이 우리에게 
     자유와
     선택의 자유를 주지요
     없으면 원망스럽지만
     참 좋기도 해요
     그렇게 어렵사리
     가르쳐준 이웃 사랑은
     아직, 간 곳을 몰라요 
     서로 손가락질로
     핑게 대고 설교 하고 
     얼굴색이 말이 아니지요
     돈때문에 사람들이
     아래 위로
     자주 이사해요
     
     부족의 경제학은
     이제 그만 그 형벌에서
     벋어나게 해주세요
     세계은행
     구라파은행
     아프리카은행  
     아세아은행
     한국은행 말고
 
     천국은행
     하나 더 만들었으면 해요
     이자 없이, 윗 동래에서
     싸인 만 주시면
     만기없이 대출해 주게요
     아랫동래에서
     정직하게
     잘 만 살다 돌아가면
     원금 이자 모두 탕감해 주게요.
     제가 은행에서 일한 경험이 있거든요
     마껴만 주시면 잘 할 텐데...
   
     다음에는 좋은 소식 전하도록 할게요     
     안녕히 계십시요.
 
                                                    09/1/23-24/;1;45-6;25
     @ 하느님과의 이메일은 계속하려 합니다.. 비극적인 내용의 comic은
        언어의 유희는 아니고 \"눈물과 웃음\"을 합성 하느 反詩 (Antipoetry)
        기법 이지요. \"유모어를 잃으면 흉기를 들게 된다\"고 Parra는
        갈파 했지요
        깊이를 더 얻으려고 \" 빛나는 통속적(산문적) 화법-Glaringly Prosaic
        Discourse\"를 열심이 공부하려 합니다.
        (정성홍 회장의 일일 통속적 화법의 反詩 -예, 냄비와 엠비-
         는 그 반시의 경지에 있읍니다. 축하 합니다)
    

댓글 12개

최인구 2009. 01. 22. 오후 12:37

안녕하세요? 윤화진 님! 님의 글들을 쭉 읽으면서 의문이 생기는 것이 있어 몇 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question mark 1(?) 한글 기본 맞춤법에서 벗어 난 표기는 작가님의 의도된 기법인가요? 만약 comic화 라든지 다른 反詩(반전통시) 기법에서 비롯된 표현이라 하더라도 저는 이해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일반화된 두음법칙이나 경음화현상 등을 개성있게 표기하는 작가들이 있긴 하지만 한글의 기본적인 틀은 존중하는 것 같습니다. question mark 2(?) 이 방은 문학의향기 방이고 옆 방에 \"생활의발견\" 이라는 방이 있습니다. 그 방 맨 위에 이 곳을 관리하시는 운영자님께서 공지하신(부탁) 글이 있습니다. \"정치적 종교적으로 편향된 글은 배제합니다.\" 혹 읽어 보셨습니까? 윤화진 님의 개성있고 본인이 추구하는 문학의 가치관이 뚜렷하신 것에는 반론이 없으나, 공동구역에서는 적당함도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어른께 실례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윤화진 2009. 01. 22. 오후 03:56

최인구님; 감사합니다. 모든지적은 있는그데로 받아드리고 감사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정치젹 종교적 편향으로 쓴글이 아님은 분명히 밝혀 둡니다. Antipoetry 의 표현 방식을 문제삼으려면 좀더 차세히 양식이나 표현을 보시고 말씀 하시면 감사 하겠읍니다.

윤 화진 2009. 01. 23. 오전 05:29

위 의\" 2신\"에서 말한 주제는 \"돈\"입니다. 그 주제를 다루는 사항 설정은 혹시 도발적일 수도 있지만 우리주변에서 일어난 가장 비극일 수있는 돈에 관한 사항 설정의 배경을 발견 한 것이지요 이것은 창작의 자유이지요. 하느님, 성경구절, 은행, 융자, 이자, 대출, 아래동래 윗동래, 빚 탕감 등이 등장 하면서 자장 진부한 일상어로서 빈부와 경제적 어려움을 전하려는데 \"하느님과 대화\" 형식을 빌어 독자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접근하려 한 것입니다. 반시는 역설이나 반어만을 의미하지는 않고 노벨문학상에도 거론되었던 질레 의 시인 Nicarno Parra 의 시적 기법인 \"빛나는 통속적 화밥\" 이나 풍자와 \" 비극적 요소의 희극적표현\", 냉소주의의(Cynicism) 의 \" 이면적인 완곡한 진정성\"을 모두 포괄하는 새로운 경향을 다루고 있는 중입니다. 시의 냉소주의는 행동주의를 무력화 시킬수도 있읍니다. 반시의 단어의 뜻이나 정의를 논할 여유는 없고, 몇시냐고 묻는데 \"시계의 정의\"부터 말씀드리는 우를 범하지는 안으려 합니다. 우리가 가장 아파하고, 때로는 기피하고 천착하는 돈을 반시적으로, 서사적으로, 가장 진부한 표현으로 하면, \"좋고 도 더러운\" 것이 라고 하지요. 위의 2신이 정치적, 종교적 편향되것으로 이해됬으면 시의 본질적인 언어의 불합치성이나, 사람의 생각을 옳고 그름, 찬성과 반대로 보는 편향성 때문이 아닌가요. 저의 시의 실험을 잘앍어 주셔서 감사하고 한글 철자,두음 의성등 이나 한글의 표현력 부족을 부끄럽게 생각 합니다. 한글 부터 공부해야 겠네요. 돈을 서정적으로 감성적으로 다룰 수있는 아름답고 여러분들이 좋와하는 서정시로 적을수 있기를 기대 해봅니다. 잘 되가요? 저는 그런 시기는 지나고 있지요 몇자 더 보태면, 반시의 주장과 기법, \"시의 행위주의\"와 의 접목을 위해서 Nicarno Parra의 \"The Technique Of Antipoetry \" 를 연구중이고 근간, 칠레도 방문 하여, 反詩의 생성과 시문학사의 위치, 행동주의 와의 결합또는 접합성등을 연구할 계획입니다. 시는 저에게 즐기는 수단이나 기구가 아니라, 행위적 신앙이며, 삶 자체임을 밝혀두지요. 감사하지요.

윤화진 2009. 01. 23. 오후 12:08

\"창작의 자유\"는 창작의 훼손을 방지하려는 다른 한편의 노력이지요. 이공간은 창작을 하는 공간으로 정해 졌으니 \"발견\" 하시는 분은 정확하고 편향없는 발견을 해야 하겠지요. 계속 잘 노력 하세요.

윤 화진 2009. 01. 24. 오전 05:48

위의 올린 하느님 시리스 2신은 실패작 임을 자인합니다. 아무리 배경 설정이 창의와 창작의 자유라고 주장했지만 저돌적, 직설적, 비극적인 요인을 여과 없이 설정한 것이 그 방식이 반시적인 것 이라 하드라도 서툴렀다는 지적을 면치 못할것 같읍니다. 가장 모자랐다고 생각 되는 점은; 첫째, 주제에 대한 직설적인 표현으로서 작품성을 떠러트린 것 같읍니다. \"천국은행\" 설립은 냉소적인 유모어라고 할수 있지만 우회적인 진정성의 결어로 \"웃음도 눈물\"도 자아내지 못했읍니다. 두째로, 반시에서 통속적인 언어구사가 작가와 독자사이의 이해를 어렵게 합니다. 이를 극복하는데 성공 하지 못했읍니다. 다만, 고전적인 화려한 시적표현(Classiclally Decorous)을 피하느데는 거칠지만 다소 접근 한 듯 함니다 다만, 이점은 Nicanor Parra도 늘 고민 했던 것 입니다. 셋째, 주제의 심각성과 적절한 유모어와의 합성(sythesizing)이나 재료의 병렬 (Juxataposition)에도 실패한 작품입니다. 능력부족도 있지만 작가의 거드름 떨이가 작품성릉 떠러트리고 즉흥성 고발성시로 전락햇읍니다. 독자의 오해나 운영자의 불편한점이 있을가해서 위에서 말한데로 수정 보완하는 작업을 거쳐 다시 올리 도록 하지요.

포아풀 2009. 01. 24. 오전 11:42

\"풍자는 부조리, 불합리한 세상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라는 점에서 그 공감의 효과가 크다. 다시 말하면 통렬한 비판의 언술에 기댈 때 그 울림이 더욱 강렬해 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칫 풍자시는 강렬한 의미에 비해 시적 여운이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응축된 서정의 힘내지는 따듯한 휴머니티가 가미된 풍자라면 사정은 달라질 것이다. 날카로운 풍자의 칼이 비리와 부조리와 불합리에 시퍼런 날을 세우지만, 그 날이 지나간 자리에 고이는 해학과 유머와 따뜻함이 자리 잡고 있다면 상황은 명백히 달라진다.\" 어설픈 글을 올려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반어, 역설, 풍자 또한 시적표현방법의 하나이겠지요. 이들을 反詩라는 용어에 묶어둘 수 있을지는 저도 더 공부를 해봐야겠습니다. 화답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시에 대한 열정은 대단하시네요. 좋은 글 많이 쓰세요.

윤 화진 2009. 01. 24. 오후 04:02

좋은 글 올리셨읍니다. 서로의 의견을 나놀 수있으니 창착행위 보다 재미있지요. 반시의 경향은 바로 서정성(Lyrics) 에한 反旗이지요. 이를 고전적 장식(classically Decorous)이라 하고, 반시는 Humanity를 중요시하지만, 비서정적인 반시의 양식으로 다루고 있지요, 달,구름, 꿈, 나비, 바람, 겨울 나무 보다는 공원의 부서진 벤치, 쓰래기통, 시체, 넝마 깨진병, 그리고 더 험학한 타죽은 사람,천국은행 등으로 반시적인 품자와 유머어을 통해서, 주제에 더 결사적으로 닥아가고 있지요. 서정성의 배제가 반시의 주류 기법이지요. 서정시에서 반어,풍자 역설를 구사하는 것 과는 다른 반시부류의 경향이고, 하나의 Movement 인것은 분명합니다. 일상적이 것을 복잡하게 표현하기 보다는 복잡한 것을 통속적인 속어(slang)의 화법으로 닥아가고 있지요 서정시인에게는 거칠게 그리고 웃습게 들리지요.그레서 초현실적이고 반이성적이고, 반서정적인 反詩가 탄생하게 되지요. 포아풀님의 \"반시의 정리\"에 공감도 되지만, 서정성을 가춘 반시가 나오게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포아풀님, 떨리는 좋은시 부탁합니다. 저도 고전적 서정시, 보드레르의 초현실주의 시 T S Ellliot의 지성시를 아직도 탐독 하고 있읍니다. 요지음 발견한 좋은 예 \"슲은 거짓이 없다\" 이지요. 좋은 서정을 발견하고 좋아 했지요. 고은, 김지하등의 한국 현대시는 저에게 아직은 지루 해요. 명시라고들 하든가요. 노벨상급? 글세요. 시의창작성은 훌륭해도 그시를 지지해줄 일관작인 주의 주장이나 시의 경향을 바꿀수 있는 양식등이 보이지 않고 잘 이해 할 수가 없어요. Nicanor Parra의 Antipoetry 충격은 가슴을 떨리게해요. 그의 좋은시 하나 보낼게요. 당분간 여기에 살어야 해요. 잘부탁 합니다.

윤화진 2009. 01. 25. 오전 12:53

콤퓨터가 방해를 하네요. 반시를 싫어 하나봅니다. 위에 바이러스로 엉킨 내용은 \"슲음은 거짓이 없다\" 이지요. 기쁨은 거짓이 있을 까요? \"거짓 미소\", \"슲은 미소\" \"마지막 첫 사랑\" 같은 것 인가요. 이런 풍자와 역설은 반시적이기에는 너무 서정성이 있어요. \"서정적 반시\"라고 할 수 있을지 여러면에서 고민해 보아야 겠읍니다.

윤화진 2009. 01. 25. 오전 12:57

슬픔은 거짓이 없다. 역시 철가 잘 안되네요. 고쳐서 보세요. 그 뜻은 있으니까 마치, 반시의comic 을 하라고 콤푸터가 도와 주기도 하고.

김문숙 2009. 01. 26. 오후 10:29

최인구 님의 시 사랑의 의협심은 젊은이 기상 답지오 윤화진 님의 시 사랑은 어떤 용어를 쓰신다 해도 배물리 젖을 먹고 난 아가처럼 만족한 시사랑애 푹 젖어 있는 표정입니다. 포아풀님의 안타까운 응원도 저는 시 사랑의 같은 맥략으로 보여요 저에게는 세분이 각각 아름다운 다른 색의 시사랑으로 마치 단청처럼, 색동저고리처럼, 아름다운 조화와 풍성한 화음을 내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세 분 모두 존경합니다. 아직 회복이 남아 어기적 거리고 컴에 왔다가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갑니다.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또 , 우리 모두 또 좋은 작품 많이 써 지는 해이기를, 기원합니다.

돈다 뭐하꼬 2009. 01. 27. 오전 01:45

남이 헐벗고 고통스러워하는데 자신이 어떻게 즐겁고 기쁠 수 있을까요. 남의 고통을 외면하게 되면 자신이 고통 받을 때 세상이 돌아서게 됩니다. 이러한 상식을 느낄 필요가 있지요. 사회 약자에게 열린사회는 모두에게 열린사회이고, 사회 약자도 편한 사회는 모두에게 편한 사회 아닌가요.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윤화진 2009. 01. 27. 오전 10:17

돈이 뭐고님; 약자을 돕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지요. 더울어 살라고 공자는 大同사상을, 부쳐는 자비를, 예수는 사랑을 가르처 주려 했지요. 그렇게 사랑을 일러도 못알아 차리니까 내가 죽어야 너이들이 알거다 하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어요. 반시적 표현은 독자를 오해시기는 것이 아주 흔한 일이지요. 그리고 무었이 그래 하고 무시하기도 하지요. 신파성 낭만도 없고... 풍자나 일상어의 토속적 희극성, 진솔한 냉소의코메디, 깊은 은유나, 황당한 불일치성, 저돌성은, 은유나 풍자가 약한 우리 고장에서는 종종 오해를 낳을 수 있읍니다. 달이나 구름, 별과 나비의 속삭임은 우리의 감성과 심성을 달래주니 중요한 시적재료이고 고전적 서정적 문학형식임을 부인할 수 없읍니다. 중요한 역활을 했지요. 소월의 진달래가 그렇지요. 그러나, 돈, 병든 거지, 타죽은사람, 빈부의 양극화, 부동산투기 사채업자, 소리없는 자선사업, 문근영의 슲음 등은 달이나 별이나 날아 다니는 나비 만 으로 그릴 수는 없지요. 그래서 타투어도 웃으며 타투라고 풍자와 희극을 빌려 온 것입니다. 반시는 그런 문제에 오히려 우회적이지만 속어로 쌍말로, 혹은 직설적으로 결사적으로 닥아 가고 있지요. 흉기를 들고 개그 콘서트에서 만세를 부르면, 꽃 다발을 한아름 들고 지나간 유행가를 불으면 신파극이, 웃음을 content로 우끼지 옷하고 웃기는 사람의 몸 개그와 웃기는사람의 웃는소리로 하면 질이 잇는 풍자나 희극이 되지 못하지요.좋은 기술인데, 곧 지루해질 거에요. 저속한 코메디에 익숙한 곳이 우리가 사는 곳이지요. 차라리 흥부전의 선악의 풍자나, 심청전의 눈물겨운 판소리기 반시적 성향과 잘 어울려요. 춘향전은 재미있지요. 반시도 재미가 있어야 해요. 鼓手의 추임새는 말할수 없는 금상첨화지요. 반시의 표현 기법에 \"얼쑤\" 추임세를 넣어야 겠어요. 독자의 오해는 비극적 가설의 해체( Dissimulation)를 그리고 비열한 후퇴(cowardice)를 불러오지요.Parra는 이렇게 스스로 를 옥죄던 감옥에서 벋어나려 발버등쳤고 감성과 육신의 처참한 갈등을 격어야 했어요. 자신아 어절수 없이지닌 두 괴물을 분리 하려 (Psychic Distance) 를 유지하려 했읍니다. 위의 \"하느님 안녕 하셨어요, 제 2신\" 도 공교롭게도 비슷 한 사항이 벌어져서 아, 그렇구나 하고 내심 즐기고 있어요. 시는 이렇게 재미도 있구나 놀라지요 최고의 독자를 많은 인구와 더블어 잃어 버리지요. 최고의 선하고 선한 서정적 가수는 신파극을 불러오기에 충분 하지요. 타협하고,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는 계속되야 합니다. 보안 개작한 것 이 오히려 현장성을 잃은 듯 하고요. 흥부전, 심천전을 들으면서 낭만도 즐길만 해요. 청자 하느님은 화자의 코믹한 넉두리를 어덯게 들으실 넌지... 독자의 오해는 계속 될런지...,거기에 서투른 평론은 기가 막히지요. 시인은 개성을 먹고 사는 인간이 아니라 진 선 미를 찾아 나선 구도자 이지요 어찌됬던, \" 반시의 반면은 시극적인 진솔한 농담\" - Comical Joke 로 이해하면 편하실 것 입니다. 얼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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