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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없는 생각이 시의 정신입니다.

돈다 뭐하꼬 2009. 01. 31. 오후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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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시경』의 시를 한마디로 평하여 ‘사무사’思無邪라 하였습니다(詩三百篇 一言以蔽之思無邪). ‘사무사’는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특함이 없다는 뜻은 물론 거짓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시인의 생각에 거짓이 없는 것으로 읽기도 하고 시를 읽는 독자의 생각에 거짓이 없어진다는 뜻으로도 읽습니다. 우리가 거짓 없는 마음을 만나기 위해서 시를 읽는다는 것이지요.


『시경』에 실려 있는 시들은 대부분이 민간에서 불리는 노래를 수집한 것입니다. 민심을 읽고 민심을 다스려 나가기 위한 수단으로써 채시관들이 조직적으로 백성들의 노래를 수집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승인함으로써 전승되어온 민중시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따라서 『시경』에 대한 조명은 기본적으로 ‘삶과 정서의 공감’을 기초로 하는 사실성과 진정성(眞情性)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진정성을 통하여 현대 사회의 분열된 정서를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문화적 환경은 우리 자신의 삶과 정서를 분절시켜놓고 있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상품미학, 가상 세계, 교환가치 등 현대 사회가 우리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한마디로 허위의식입니다. 이러한 허위의식에 매몰되어 있는 한 우리의 정서와 의식은 정직한 삶으로부터 유리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소외되고 분열된 우리들의 정서를 직시할 수 있게 해주는 하나의 유력한 관점이 바로 시적 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적 관점은 왜곡된 삶의 실상을 드러내고 우리의 인식 지평을 넓히는 데 있어서도 매우 유용하다고 생각합니다. 시적 관점은 우선 대상을 여러 시각(視角)에서 바라보게 합니다. 동서남북의 각각 다른 지점에서 바라보게 하고 춘하추동의 각각 다른 시각(時角)에서 그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결코 즉물적(卽物的)이지 않습니다. 이처럼 자유롭고 투시적(透視的)인 관점은 사물과 사물의 연관성을 깨닫게 해줍니다. 한마디로 시적 관점은 사물이 맺고 있는 광범한 관계망을 드러냅니다.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란 시가 있습니다. 이 시에서 우리는 시인이 연탄이란 하나의 대상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가를 깨닫게 됩니다.“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정호승의 시에 「종이학」이 있습니다. 비에 젖은 종이는 내려놓고 학만 날아간다는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유연하고 자유로운 사유가 마치 학과 같습니다. 시의 정수는 이처럼 사실성에 근거한 진정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정서가 진정성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한 우리의 삶과 생각은 지극히 관념적인 것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사실성과 진정성의 문제는 위에서 이야기 하였듯이 우리들의 분열된 정서를 회복하고 나아가 올바른 사회인식을 키우기 위한 문제와 직결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허구와 가상과 판타지가 우리들의 감수성을 사로잡고 있는 오늘날의 문화적 환경에서는 시적 관점은 문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댓글 1개

이남희 2009. 02. 02. 오후 01:47

참 중요한 지적이고, 사유의 시각을 넓힐 수 있는 내용입니다. 사실성과 진정성은 문학만이 아니라 사화 문화 전반의 중요한 핵이 되어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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