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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그를 미행하다\"

이남희 2009. 02. 07. 오전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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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그를 미행하다

                                                         이 남 희

1973년 그날 이후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공간.


  상봉슈퍼에서 길을 묻자, 나이든 여인이 가파른 계단을 가리켰다. 겨울 햇살을 등지고 층층계단을 돌아 오르니 허름한 가옥이 절벽처럼 서 있고, 빛바랜 지붕이 안쪽으로 올려다 보인다. 짙은 청색 대문을 열고, 오래된 사진첩을 들여다보듯이 집 안팎을 조심스럽게 살핀다. 마당에 깔린 징검돌을 딛고 그의 작업실로 들어가는 허연 중문에는 줄기만 남은 담쟁이가 음각처럼 달라붙어 있다. 오후 햇빛이 남아 있는 데 인적 없는 아틀리에는 늪지처럼 축축하고 어둑하다. 시간마저 멈춘 듯 적막하고, 내 기척에 놀란 먼지가 유리창 안에서 햇살에 부유한다. 남겨진 그의 유품들은 주인의 손길을 놓친 자리에서 무심히 세월의 궤적을 긋고 있다. 작업실 미닫이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거미줄이 따라서 옮겨졌다. 거미가 조금 움직였다. 잇대어진 작은 창문들이 밀폐된 공기를 흔들면서 그동안 갇혔던 시간을 울림으로 연다.


  창이 없는 벽 쪽에 거무스름하게 얼룩진 거울이 하나 걸려 있다. 회벽을 타고 흘러내린 빗물 자국이 산화된 눈물처럼 짙은 회색 스트라이프 무늬를 만들었다. 거울은 뒷벽을 비추면서 동시에 앞에 있는 나를 비춘다. 언뜻 스트라이프 무늬와 나 사이에 무언가 비치는 느낌이 든다. 얼른 뒤를 돌아보았지만 환영은 오간데 없고 울림이 끝난 공간은 처음처럼 고요하다. 오래된 거울 속 검은 얼룩 때문에 그렇게 보인 것일까?

  그가 손수 지었다는 작업실은 꽤 높다. 시골의 작은 수도원 같기도 하고, 오래된 물건이 담겨있는 대형 고리짝으로도 보인다. 내 자신이 사물이 되어 커다란 고리짝 안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순간 그를 미행하고 있다는 묘연한 의식이 마른 침을 삼키게 한다.

  미완성에 머문 조각들이 여기 저기 나부러져 있고, 테라코타를 굽던 가마 옆에는 아직도 물이 마르지 않은 우물이 있다. 33년간이나 물을 퍼 올리지 않았음에도 물길이 바뀌지 않은 것은 아직도 떠나지 못하는 그의 영혼 때문은 아닌지. 그가 즐겨 앉았던 낡은 의자 옆에 다소곳이 미완의 돌조각 인물상이 놓여있다. ‘ 인생은 空과 破滅 ’ 이라고 단정한 그의 의식처럼 해 그림자 속에서도 또렷하고 묵직한 느낌이 난다.

  말간 그의 영혼과 초점을 맞추어 볼까 싶어서 찬찬히 그 거울 앞으로 다가선다. 문득 잠자던 마음을 헹궈낸 나의 모습이 얼룩 속에서 비친다. 나도 그도 아닌 듯하다. 셀 수없이 하얘진 머리카락과 거뭇거뭇한 점들이 언제 와 박혔는지 모르게 많다. 손으로 빗어 넘긴 희끗한 머리칼이 아무래도 낯설다 그의 모습처럼. 희고 단호한 그의 얼굴 윤곽이 상상되면서 거울은 과거와 현재를 뒤섞고 있는 것이다.

  거울 속 인물이 사라진 후에도, 거울은 작업실에 들어찬 그의 손길을 여실이 비춰내고 있다. 그의 부재를 빛과 공기로 채우고, 꾹꾹 눌러 짜다만 수채화 물감의 찌그러진 몸통들과 안료를 풀어 놓은 접시들이, 남겨진 영혼의 그림자 크기를 늘려가고 있다. 주르륵 물감이 흘러나올 듯 팽팽한 긴장감이 쌓인 먼지를 털어낸다. 문득 미세하게 물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따라가니 우물 속 거울이 또 하나 있다. 그 우물거울 속에서 물은 잔잔한데 그가 출렁이고 있다. 幻이다.


  그가 낡은 의자에 나와 앉으며 작은 고리짝 옆으로 몸을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 지난 기억을 고스란히 비춰내는 것은 거울 뿐이 아니다. 진흙이 묻어 있는 그의 등산화와 검정구두, 사그랑이 된 누비이불이 그의 뼈 속처럼 아픈 과거를 허옇게 드러내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몇 가지의 단서를 기억하며 구체적 미행을 시작한다. 그는 화실 안에 여섯 자 깊이의 우물을 파 놓고, 뒤뜰 쪽으로 기다란 문을 내었다. 일본 유학시절 만나 살았던 여인. 그녀가 그리울 적마다 불콰해진 얼굴로 우물에 아린 눈물을 빠뜨렸을 그 사람을 떠올리니 눈시울이 뜨겁다. 끝내 왜 며느리는 받아 드릴 수 없다는 어머니의 매몰찬 결기를 거역하지 못 한 그가, 눈을 감은 채 벽에 기대서 있는 듯하다. 결국 홀로 귀국하여 어머니의 권유로 결혼을 하지만 곧 헤어지고 말았다는 그. 그의 외로움이 바람의 파장으로 공간을 떠돈다. 그는 중첩된 상실감을 견디기 위해 돌을 쪼아내면서 결핍을 메워갔을 것이다. 작은 흙방에서 참담함을 토하다 더 이상 작품을 거두려 하지 않았다. 결핍은 그의 영혼을 담는 그릇이 되어 버렸는지.


  갑자기 천정에 매달린 굵은 쇠사슬 두 줄이 눈앞에 멎는다. 결국 그의 감성은 덧 상처를 이기지 못하고, 그는 손수 지은 작업실에서 파멸의 끝에 서 있는 자유로움과 악수를 하고 만다. 쇠사슬은 그를 세상에서 탈출시키는 유일한 통로가 되어주었고, 청조(靑鳥)가 되어 날고자했던 그의 영혼을 자유롭게 날게 한 것일까. 퇴색된 테라코타의 거푸집이 고리짝 옆에서 그의 분신인양 뿌옇게 앉아있다. 부러진 발목과 끊어진 몸통 조각, 팔에서 잘려 나온 석고조각들이 아직도 울고 있는 듯이 작업대 밑에 엉켜있다. 그때 의자 옆에 놓인 축음기에서 누군가 거울 속에 비친 그림자에게 나직이 말을 건네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거울 속 검은 얼룩이 아른거린다.


‘말이 없는 당신, 오랜만입니다.
당신은 조센징이어서 나는 니혼징이어서
봄날의 꽃잎처럼 허망하게
바다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인연의 줄을 놓아야했습니다.
나도 내 아버지를 미워 할 수 없었고
당신도 당신 어머니를 원망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신이 떠난 후 찾아온 겨울은 춥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지금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도 진심으로 당신의 예술성을 존경합니다.
내년에는 당신을 만났던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당신을 위한 전시회도 계획하고 있구요.
제가 당신의 빈자리를 채우면서
오래토록 당신 일을 거들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당신이 먼저 세상마중을 떠났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저도 걸음이 시원치 않습니다만
가뭇없이 당신 생각이 나면 괜스레
당신과 함께였던 언덕을 걷고 싶어집니다.

무서리 내린 뒤라서 곧 밖은 추워지고 눈이 내리겠지요.
한 두 자 쯤 하얗게 눈이 쌓이면
어둠별로 떨고 있을 당신을 위해서.
오타루 마을에서처럼 눈꽃 등을 달고 싶네요.
그런데 올 겨울 추위를 제가 잘 견디어내려는지 걱정입니다.
그래도 당신 기다려 보아요.
서리꽃 피는 당신 작업실 창 너머로 눈발이 날리는
그때 저는 눈꽃 등에 불을 켜겠습니다.


 아! 그녀일까? 거울에 서린 영혼을 깨우듯 가벼운 바람이 적요한 아틀리에 뒷문을 두드린다. 미망인의 역할을 지금도 하고 있다는 도모상의 옷자락 끌리는 소리인지, 어느 가을날 무심히 떠나버린 여인의 방문인지 미완의 인물상을 스치며 문 사이로 가벼운 바람이 인다. 여전히 작업실은 고요하다. 미완의 돌덩이들이 널브러져 있는 곳으로 가만히 다가간다. 인물 조각상 하나가 살아있는 듯 실눈을 하고, 엷은 미소를 띤 채 다소곳하다. 콧날이 높지 않아 느낌이 편안하다. 가만히 먼지를 털어내고 햇살이 드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앉혀 놓는다. 조각상은 여전히 정지된 시간 속에 남았다. 돌과 진흙 덩이는 작가의 손을 타면서 차츰 내면을 드러내고, 작가는 자기의 영혼을 빼내어 작품 속에 가둬 버린다. 그러나 주인 잃은 미완의 작품은 남은 누군가에 의해 새로이 상상되고, 쪼아내고 빚어낸 낸 작가의 고통만큼 새롭게 완성되어 가리라.


 한 사내가 예술의 혼을 불태운 이곳에서 불꽃같은 목숨을 놓아버린 연유를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물어도 될까.

미완의 사랑을 붙들고 인생마저 미완으로 밀어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었느냐고. 넌지시 묻지만 거울은 대답이 없고, 외롭게 버티어낸 담벼락의 흙만 스르르 부서져 내릴 뿐이다.

 -凡人에게는 침을. 천재에게는 감사를, 바보에게는 존경을-

 낙서처럼 적힌 그의 육필이 점점이 지워져 획을 잇지 못하지만 그의 선택은 결국 바보가 되는 것이었나 보다. 지금 우리가 그에게 존경의 갈채를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계단이 삐거덕거리며 흔들려서 잠시 작업실을 내려다본다. 미완의 인물상과 눈이 마주친다. 그는 인물상의 남은 볕 그림자를 뉘이며 얼룩진 거울 속으로 사그라져간다.

 아! 내가 그를 미행한 것이 아니라, 나를 미행한 것은 오히려 그였었나 보다. 아무리 둘러봐도 그가 없다. 작업실로 바람이 비켜든다.

**********

 어느 겨울 오후,
   조각가 권진규( 천재로 일컬어지는 21세기 테라코타의 거장)  작가의 아틀리에
      (성북구 동선동에 위치) 에서 
그의 오래된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2008, 11,12월호 수필시대 게재 , 월평작품>

댓글 2개

포아풀 2009. 02. 08. 오후 09:56

몇십 년간 신비감으로 싸였던 그의 죽음에 대한 의문이 얼마전 풀렸다고 하지요. 그가 사랑했던 여제자가 세상에 공개한 그의 편지... 그의 죽음의 의문은 풀렸지만 예술보다 더 간절했던 사랑에 그도 한 인간이었음을 알게되네요. 이남희 수필가님의 수필은 잔잔하면서도 깊은 감동을 주네요. 수필이면서도 마치 단편소설 한 편 읽은 듯해요.

이남희 2009. 02. 09. 오후 01:36

귀한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권작가 조카며느리가 친구여서 테라코타 작품 속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유족에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공개된 서한에 저는 잘 모릅니다.유족들도 의아해 하구있구요. 그냥, 저는 그곳을 방문할 때마다 제 나름대로 그에 대한 수필을 이어서 쓰고 있습니다. 동선동 아틀리에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활용되고 있고,. 일년에 한번 씩 작은 음악회도 열리고요. . 작년 5월 첫 개소식을 했 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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