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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자리

박상덕 2009. 11. 24. 오후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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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자리

  어릴 적 기억에
  큰집이 살았던 시골동네
  동구 밖으로 나가면, 왕성한 생명의 소리에
  분주히 익어가던 7월의 초록은
  하얀 색실로 곱게 수논 연초록 클로버가
  은은한 색조로 싱그러움을 더하고 있었다.
  파르스름한 논벼너머
  농익은 한여름의 들녘 가운데를
  배 가르듯 시원스레 흐르는 실개천을 건너면
  멈춰진 그 시간에 이슬지는
  애들의 오붓한 놀이터가 떠올려진다.
  벼이삭 패는 소리에 설은 장단 맞춰
  부산스레 일렁이던 클로버는
  하얀색이 아롱진 점박이 숲을 이뤄
  참매미 소리 흉내 내다 함박웃음 재잘대던
  낮 익은 합창소리 느꺼운⑴ 그곳에다
  꽃동산을 야트막히 지었다.
  가끔은 행운을 나눠주려 하늘높이 꽃잎 띄워
  재촉하는 바람결 따라 드넓은 들판을 덮기도 했다.
  옹기종기 모여 놀던 가시나들은
  훈장 달듯 가슴에 매단 머슴아 하듯
  신작로 따라서 줄서있는 행운을 머리에 꽂으며
  다소곳이 멋 자랑을 하기도 했다.
  그 옛날 큰집이 있었던 작은 시골동네에는
  꼬마 애들과 행운의 클로버가 다정하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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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흐르자, 누대(累代)의 땅에서
  해괴한 일들이 벌어졌다.
  이악한⑵ 외지인들은 영절스럽게도⑶
  온갖 것으로 동네 사람들을 꼬드기고
  사람들은 덩달아 영험(靈驗)한 땅을 뒤엎기 시작했다.
  땅을 뒤집는 것이 자연을 살리는 길이라고 부추기자
  속악(俗惡)한 추임새에 온 동네가 화답 춤을 추었다.
  그런지 얼마 후에는
  하릴없이⑷ 내친 황소의 워낭⑸소리 뒤로하고
  험상궂은 불도저의 굉음에 천년의 한(恨)을 아는지
  깊게 베인 삶터는 맥마저 끊어진 흉물로 변했다.
  판치는 질시와 불신, 인색을 가무리지 않는 날벼락
  강퍅한 욕심벼락에 혼 빠진 시골동네는
  아귀(餓鬼)만이 들끓는 삼악도(三惡道)가 되었다.
  그리고 오래지않아
  멱감던 실개천은 구린 냄새 진동하는
  시커먼 시궁창에 들끓는 각다귀로 뒤덮였다.
  그 너머 클로버동산의 신비로움마저
  돋운 단지의 흙더미에 뒤섞여 잡스럽게 사라졌다.
  개발이란 이름은 톡탁치듯⑹ 쓰였고
  시골동네에 어디에도 행복을 주던
  애들의 오랜 친구는 볼 수가 없었다.
  웃음소리 사그라진 아이들의 멍한 얼굴뿐이다.


  내남없이 원한 행복의 길은
  땅을 뒤집는 것이었다. 그동안 수없이
  행복이 샘솟는 지름길을 짐벙지게⑺ 찾아 헤맸다.
  도시나 농촌이나 똑같이 홀진⑻ 그림을 그려놓고
  모질게 닦아세워 얻은 것은 무엇일까?
  천년숨결 가로막고 욱여넣은
  무채색 사회(死灰)의 생명 없는 구조물이다.
  이제는 찾을 길 없는,
  느끼한 회색의 빛바랜 색깔로 걸러내고 버무려진
  백치(白痴)의 도시다.
  자연을 살리자는 개발로 얻은 것은
  초록의 땅도, 맑은 공기도, 깨끗한 물도 아니다.
  풀밭에 누우며 느꼈던 어머니의 품 같은
  포근함이 사라진 아픔이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허공에 날렸다는 후회와
  행복의 원천을 파묻은 자괴감에 밀린 괴로움이다.
  넌더리가 나는 서글픈 현실이지만
  우리 스스로가 선택하고 우리 자신이 만든
  천년을 이어갈 자리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깊은 숨으로 본심에 호소해보지만
  아직도 가는 길에 한 치의 저어함도 없다.
  태초에 신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무채색이 전부인
  흑암(黑暗)이 깊음 위에 있었다.

* ⑴ 느껍다 : 어떤 느낌이 사무치게 일어나다.
* ⑵ 이악하다 : 자기 이익에만 마음이 있다.
* ⑶ 영절스럽다 : 말로는 그렇듯 하다.
* ⑷ 하릴없다 : 어찌 할 도리가 없다.
* ⑸ 워낭 : 마소의 귀에서 턱밑으로 늘여단 방울.
* ⑹ 톡탁치다 : 옳고 그름을 가릴 것 없이 다 없애 버리다.
* ⑺ 짐벙지다 : 신나서 멋지고 푸지다.
* ⑻ 홀지다 :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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