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글
게시물 상세보기
불타는 어둠
불타는 어둠
진흙 한 줌을 싣고 물레가 돈다
원의 중심에서 피어 오르는
회오리 무늬 속에 풀밭이 보인다
거꾸로 선 버드나무
오두막은 땅을 짚고 기울었는데
잃어 버린 고향 풀밭 위에 우리는 누워 있다
돌아가는 물레 위에서 나는 무엇이 될까
강물 위를 날으는 하얀 새
초가을 여치 한 마리
노을빛 구름이면 어떠리
어떤 생명으로 태어나고 다시 태어나
길고 긴 잠을 자게 될까
그 언제 깊은 무명(無明)에서 일어나
길고 긴 잠에서 깨어나게 될까
천 삼백 도의 가마 속에서
어둠은 지금 불타고 있는가
땅의 혼백으로 빚은 항아리들은
지금 익어가고 있는가
목말라 더욱 깊은 밤
당신의 어둠을 데불고 이리 오시오
가마 속에 눈을 꼭 감고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막걸리 한 사발에 북어 한 마리 받쳐 놓고
사물 한바탕 신명나게 울린 다음
불을 지핍시다.
활~활 어둠을 벗는 소리
눈부시게 빛나는 고뇌의 도가니 속에서
아직 식지 않은 분청빛
새 하늘이 열릴 때까지
댓글 2개
올린 댓글을 지우고 다시 씁니다. 부분에 매달려 전체를 잃어버린 제 감상 때문이지요. 성급히 다녀간 흔적을 남겼다가 혼자 얼굴 붉어지는 제 모습입니다. 이 밤, 천천히, 다시 시를 읽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가슴이 뛴다는 사실이지요...
포아풀님, 안녕하세요. 방문에 감사드립니다. 윤고방이란 새 이름으로 인사드리게 되었군요. 이름을 자주 갈아치우고 왈가왈부한다는 게 보기 좋은 모양은 아닐 텐데요. 너른 아량으로 헤아려 주실 줄 믿습니다. 지난 번 댓글 달고 가신 후, 곧장 답을 드려야 하는 건데, 두 가지 결례를 한 것 같군요. 한 가지는, 올려 주신 댓글에 대한 감사와 함께 시에 대한 서로의 의견 교환을 짧게나마 가졌어야 하는데, 제가 게을러 머뭇거리다 때를 놓친 점입니다. 또 한 가지는, 감상자에 대한 예의로서 제목이나 내용에다 최대한의 감상 포인트를 남겨 두어야 하는 것인데, 그 점에서 제가 많이 부족한 점 깊이 사과드립니다. 시가 씌어지고나면 독자의 소유가 된다는 이치를 잘 알고 있습니다만, 제 불찰입니다. 사실 제 시에서 '붉게 타는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을 느끼셨다는 점에 대해 큰 감사를드립니다. 제 시가 가진 감응력의 영역을 넓혀 주신 데 대한 진정한 감사인 것입니다. 제가 포아풀님의 '무화과' 전반부에서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을 느꼈다고 말씀드리고 나서, 잘못 짚은 것은 아닌가 하고 가슴이 후끈거린 것과도 견줄 수 있지 않을까요? 여기 올린 시는 1990년에 낸 저의 첫 시집 '하늘 가리고 사는 뜻은' 속에 실린, <도방에서 >라는 작품인데, 최근에 제목을 <불타는 어둠>으로 바꾸어 실은 것입니다. 감상의 중요한 단서를 지워 버린 증거인멸죄가 성립되지 않겠습니까? 차차 말씀드릴 기회가 있겠지만, 저는 시에만 진득하게 전념하지 못하고 그림, 글씨, 도자기, 연날리기 등에다 힘을 분산시켜 놓고, 쩔쩔매면서 채 수습을 못하고 살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스스로 '운명적인 잡놈'이란 자조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자이기도 하구요. 이 글이 두 번째 또 날아갈까봐 오늘은 여기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연아와 민정이의 모습도 빨리 봐야겠구요. 포아풀님께 좀더 차분하고 진중한 모습 보여 드리지 못해 죄송할 뿐입니다. 용서하실 일이 많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