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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이여 말하라

윤고방 2010. 04. 08. 오전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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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안함이여 말하라
                                  - 인당수에 고(告)함 -
              1
난데없는 꿈속이로구나
인당수 아련한 꿈속이렸더니
물결 사나운 바위섬 아래
웬일이냐 차가운 암흑 속이로구나
꿈이란 원래 아름답고 따스하련마는
눈먼 아비 사랑하는 마음이 한없이 뜨거우련마는
비원(悲願)이 아직 풀리지 않은 탓이더냐
차라리 꽃피우지 못한 처녀 가슴 속
차갑더라도 심청이가 품어 주는 아름다운 꿈속이기를
거친 바람, 검푸른 물결에 휩싸인 채
온 세상 바다 억만 근 쇳덩이에 눌려
그대들을 덮고 있는 무량한 어둠의 무게가
수천 만 우리들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멀건 대낮이.
가위 눌려 숨막히는 칠흑 밤중이 벌써 며칠이더냐
당신들과 우리들이 품고 사는 꿈이 다르지 않으니
이리도 차갑고 무거운 악몽 속에
그대들과 우리가 함께 던져졌구나
당신들이 생전에 지녔던
푸른 꿈은 그 얼마나 눈부셨더냐
창망(蒼茫)한 물굽이마다 넘실거리던 그대 모습
자랑스런 아빠의 꿈이 얼마나 가슴 벅차고
사랑스런 남편의  꿈이 얼마나 애틋이 그립고
아들의, 형님의, 오빠의 꿈은 또 얼마나 아름다웠더냐
청이의 어제 눈물과 그대들의 오늘 눈물이 어찌 다르랴
어버이를 향한 꿈과 어버이의 나라를 위한 꿈이 어이 다르랴
             2
그리하여 바다여
사나운 바람, 차가운 물결이여
이제 그들을 풀어 주시라
비원의 자물쇠를 풀고 놓아 주시라
당신의 손 끝에서 곧 따사로운 봄길 열리듯
그들의 못다한 꿈길 열어 주시라
아직 다 풀어 놓지 못한 눈물과 한숨
모두 후련하게 씻어 주시고
아직 다 불태우지 못한 사랑
 
모두 가득 채워 주시라
자애로운 하늘이시여
바다의 혼백으로 다시 태어날 그대들이여
당신들을 죽음의 깊은 수압에서 건져내지 못한
우리들의 무위무능(無爲無能)을 꾸짖되
차갑고도 너그러운 눈물로 용서하시라
단지 태만한 자 있거든
다만 교활한 자 있거든
물결 뒤에 숨어 웃는 자 있거든
결코 용서하지 마시라
정녕 눈 감지 못한 그대들이여
천만 근 가위꿈에서 이제 깨어나라
지엄한 귀대 명령마저 훌훌 벗고 가벼이 나오라
정든 선실 밑바닥 좁은 통로를 헤엄쳐 나와
지상의 꿈에서 천상의 꿈으로 이어진 환한 길로,
백옥같이 눈부신 치맛자락 날리며
앞서 갔던 심청이의 아름다운 꿈길을 따라
서녘바다 천 년의 연꽃으로 피어나거라
너울너울 장하게 걸어나와서
우뚝우뚝 천하지킴이대장군이 되거라
* 인당수 : 천안함이 침몰한 백령도 인근 해역은 고대소설 '심청전'에서,
              눈먼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심청이가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던졌다는, 물결 거센 바다임.
                               

댓글 7개

포아풀 2010. 04. 08. 오전 10:25

윤고방 선생님, 정말 오랜만의 반가운 글이네요. 심청은 아비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과 자신을 바꾸었다지만, 그들은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차가운 바다 속에서 아직도 나오지를 못하는 것일까요. 슬픔으로 지쳐버린 가족들... 누가 보듬어줄 것인지... \"정든 선실 밑바닥 좁은 통로를 헤엄쳐 나와 지상의 꿈에서 천상의 꿈으로 이어진 환한 길로, 백옥 같은 치맛자락 휘날리며 앞서 갔던 심청이의 꿈길을 따라 너울너울 장하게 걸어나오거라 우뚝우뚝 천하지킴이대장군이 되거라\" 염원을 슬프디 슬픈 노래에 담습니다.

윤고방 2010. 04. 08. 오후 08:12

포아풀 시인님 오랜만... 이번엔 철을 아는 모범 자연인으로 돌아가 봄냄새 풍기는 글을 실어 보려 했는데... 백령도쪽 소식이 하도 가슴을 짓눌러서 탄식 한 자락으로 한번 풀어 보려 했지만.... 하늘 땅이 온통 무너져내린 유족들의 슬픔이야 무딘 가슴으로 어디 어림이나 하겠습니까?

미오새 2010. 04. 08. 오후 08:29

*고막을 자극하는 곡소리는 허공중에 흩어져 그 울림이 멎을지라도, 애통하는 마음은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서라도 전해질 것입니다. 마음이 마음으로 전해지는 원리를 통해서. 윤선생님.. 공동운명체같은 한 배에 탔으면서도 한순간에 가는 길이 극명하게 바뀌는 그 운명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청이 돌아 오듯, 너울 너울 장하게 걸어 나오기를 우리 모두 빌고 또 빌어야겠습니다. 아직 저녁식사 전이라 오래 머물지 못하고 잠깐 다녀간 흔적만 남깁니다. 좋은 저녁시간 보내십시요, 윤선생님.

윤고방 2010. 04. 09. 오전 01:33

미오새님, 다시 반갑습니다. 마음이 마음으로 전해지는 원리로 세상이 좀더 맑아지고 좀더 따스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화두로 떠올려 주신 '운명'의 실체는 정말 무엇일까요? # 평생토록 헤매어 찾아가야 할 조물주 -> 조물주의 기밀문서 중 인간세상 운영 계획서 -> 그 계획서 속 XXX...페이지에 적힌 세부 계획 -> 지구>한국> 서울> 시시각각>아무개의 목숨... = ??? 미오새님 덕분에 제 인생 처음 '운명의 공식'을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절반이 넘게 언어 장난이요, 생각 희롱입니다만. 사색의 향기-시간의 부딪침-인연의 끈이 닿는다면, 놀라운 에너지의 소유자이자 정신과학자이신 민순호님의 '운명'에 대한 명쾌한 답변도 기대해 봅니다.

미오새 2010. 04. 14. 오후 10:38

*윤선생님.. 군함 772함의 이름이 어디서 유래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천안함\" 그 이름에서 \"이별의 천안삼거리\"가 연상되어서 왠지 처연한 느낌이 드는군요. 삼거리길이라 만남 또한 자주 이루어 졌을텐데 유독 이별만 부각되는 \"이별의 천안삼거리\"가 되었을까요? 기적처럼 생존해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이제 진혼곡으로 바뀔 순간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차가운 날씨에 건강조심하시기를 바람니다.

포아풀 2010. 04. 27. 오전 09:17

윤고방 선생님, 만나뵙게 되어서 참으로 반가웠습니다. 세상은 참 우연의 연속인 것 같아요. 선생님의 '천안함이여 말하라'가 모 일간지에 게재됨을 축하드립니다.

윤고방 2010. 04. 28. 오후 07:22

어쩌다 보니 실리게 되었습니다만, 시 쓰는 사람의 본래 모습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단,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몹시 괴로웠을 뿐 거짓 꾸밈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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