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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강아지판

윤고방 2010. 05. 16. 오후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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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강아지판


목하(目下) 세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개판이다

그래도 그 중에

내가 사는 세상은

귀여운 강아지판이다


아침마다 저녁마다

싱싱한 잡풀밭에서

내가 강아진지

고놈들이 난지 분간 모르고 

나는 강아지들하고 논다


세월이 버리고 간 길목

시장 바닥에서 주워 온

시(詩) 화(畵) 서(書)에다가

도(陶) 연(鳶)이라는 놈들까지

귀여운 내 *가히삿기들


세상 사람들은 나를 보고

더러는 개판 인생이라 하고

더러는 불쌍한 잡탕 인생이라지만

나는 바깥세상을 보고

그래도 참 아름다운 개판 세상이다

허허 웃으면서 돌려주고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오직 당신만을 사랑해요

당신 없인 못 살아요

신파조 사랑가를 불러대며

오줌을 줄줄 싸는 *강아지들과

나는 행복하게 산다     

                     
* 가히삿기 : 개새끼의 고어
*
강아지들 : 우리집 옥상에서 키우는 세 마리 강아지


댓글 9개

포아풀 2010. 05. 16. 오후 11:17

한 우물만 파지 못하는, 뭔가 새로운 일을 해야만 하는 모험가적 기질, 창의적 기질이시겠지요. 여러 무물을 파서 그 우물에서 다른 이들이 실컷 물맛을 보게 하는 재미...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우둔한 머리로 재미라고 말씀은 드렸지만 윤선생님의 가시는 그 길에 응원과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오늘은 강아지와 오래도록 걸었습니다. 매번 저만 나가서 산책하는 미안함에...

윤고방 2010. 05. 17. 오전 01:40

어느 새 제 속내가 몽땅 드러나 버려서 감출 것이 없이 돼 버렸습니다. 밑천이 짧아서이기도 하고 깊이가 얕아서이기도 하지요. 거리가 가까운 여러 우물들의 벽을 허물기는 너무 무모하고 우물 아래쪽에다 두더쥐 굴을 파서 물맛이 서로 만나게 한다면 힘 좋은 우물 주인들한테 몰매 맞아 죽기가 십상이겠지요? 옥상에 갇혀서 애꿎은 하늘만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우리집 강새이들은 참 불쌍합니다. 저희 놈들 몫까지 더 자주 산책하시길

미오새 2010. 05. 17. 오후 10:59

* 윤선생님.. 혹시, 고산 윤선도님이 고방 윤선생님의 조상 할아버지가 되시는 건 아니신지요. 시,화,서,도,연의 다섯 벗과 즐기시는 모습에서 고산의 오우가가 연상되었기 때문이지요. 선생님 스스로는 이것 저것에 묶여 잡화점같은 인생이라 하셨지만, 시,화,서,도,연의 다섯 가지 기예로 오히려 개판같은 세상을 신명나는 세상으로 바꾸고 싶으셨던 깊은 뜻을 숨기고 계시는 건 아닌가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스스로 잡류라 칭하시는, 선생님이 바라보는 세상은 개판인데, 정작 개판속 사람들은 선생님을 잡탕인생이라 구시렁거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혹시 세 강아지가 서로 주인의 사랑을 독점하기 위해 오줌의 량으로 서열을 정하고 있는건 아닐까요. 사람은 크게 놀랬을때 경련을 일으키며 소변을 질금거리기도 한다지만, 공주강아지들이 오줌을 질금거리는 연유가 반갑다는 이유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한것 같고, 그렇다고 그들에게 물어 볼수도 없고, 아무튼 그들의 애정공세가 이상 야릇한 정서를 불러 일으키는 것 같아요. 윤선생님.. 시의 형식을 빌려 아주 간략하게 정리한 자서전의 한 부분을 읽고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고명하신 선생님의 글에 잡자를 써가며 글을 올린다는게 여간 부담스럽고 조심스러웠지만 문장의 필요에 따라 불가피한 선택이였음을 해량하여 주시기 바람니다. 창밖에 빗소리 들리는 봄날의 밤이 깊어갑니다. 안녕히 주무십시요.

윤고방 2010. 05. 18. 오전 12:23

미오새님께서 이렇게 길고도 깊은 마음을 담아 써 주신 글을 대하고 보니, 지난 번 '다코모 소동'이 생각나 무안함으로 얼굴이 다시 화끈거리려 하는군요. 고산 선생과 저의 오우를 함께 연상하시는 일은 감히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고산도 저희 문중 선조이시긴 합니다만 저는 윤봉길 선생과 핏줄이 더 가깝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 시가 부드럽기보다는 뻣뻣하고 고집스러워 맛이 덜한 편일 겁니다. 제가 세상을 개판이라고 언뜻 지칭한 것은 일반인들의 냉소조 비하칭만은 아닙니다. 저는 강아지도 귀여워하지만 당연히 개도 참으로 좋아하거든요. 그러니까 긍정이죠. 제 눈엔들 개판 세상이 왜 안 보이겠습니까마는, 그래도 세상은 숨쉬고 살 만하고 무한수 생명체 중 한 생명체로서 그들과 함께 부대끼고 고민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그들 중 몇몇과는 깊은 인연을 맺고 사는데 그 중 매우 가까운 놈들이 가히들입니다. 미오새님의 표현대로 고 놈들의 애정공세에 한 주먹 사료와 쓰다듬기 정도로만 화답할 수밖에 없는 종(種)의 한계가 아쉽기는 하지만 너무 고맙기만 합니다. 저의 잡탕인생에 지지표를 던져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평생 끌고갈 화두거든요. 얄궂은 운명일 뿐이죠. 철부지가 어쩌다 무시무시한 호랑이 등에 올라탔는데 뛰어 내리자니 낙상에다 잡아 먹힐 게 뻔하고, 그냥 타고 가자니 몸이 못 견디겠고...... 그런 위기상황이 삼십 년 넘게 계속되다 보니 그저 맨날 진땀에 목욕하고 사는 꼬락서니라니......웬 넋두리가 이렇게 꼬리를 무는지 원......미오새님의 마술에 걸린 듯(죄송)

캔디 2010. 05. 18. 오전 11:18

강아지가 커서 개가 되는 것이므로! 그 모든 것이 한판 세상살이일뿐인 것이겠지요? 자연과 동물과 어우러져 사시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어차피 살아나가야하는 삶이라면, 이렇듯 긍정의 눈으로, 자연과 동물과 함께 사랑하는 가슴으로...^^

미오새 2010. 05. 19. 오전 11:14

*윤선생님.. 둘째 연, 세번째 행의 \"내가 강지진지\" 에서 \"강지\"는 강아지의 귀여운 줄임말인가요. 아니면 강아지의 아字가 주인 몰래 가출한 것인가요? 학창시절 항상 우호적이지 못했던 영어선생님들과의 관계 때문인지 영어라면 지금도 경기를 하는 수준이지만 \"개새끼\" 만큼은 항상 \"dog baby\" 라고 영어를 빌려 썼어요. 이제 선생님의 시를 통해 새롭게 배운 \"가히삿기\"로 불러야 겠습니다. 선생님께서 윤봉길의사쪽에 더 가까우시다는 말씀에 문득 윤의사가 남기신 말중에 기억나는게 하나 있습니다. \"사나이가 집을 떠나 뜻을 이루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으리...\" 선대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투박하고 뻣뻣하고 외고집의 성격이 짙다고 선생님의 시를 자평하셨는데요. 아무래도, 보통사람으로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호랑이 등에 올라타신 담력과, 잡탕인생이라 폄하하는 세상을 향해서도 결코 굴하지 않는 기개와, 그리고, 뜻을 세우면 반드시 실천하는 의지까지도 좋은 덕목으로 물려 받으신 것은 아닌지요. 선생님의 다섯 벗 중에서 이제 시는 그 맛보기를 보여주셨으니 그 외, 선생님의 품성이 고스란히 배여있을 화,서,도,연의 기품있는 자태도 감상할 수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려 봅니다.

윤고방 2010. 05. 20. 오전 02:09

미오새님, 자주뵙게 되는군요. '강아진지'를 '강지진지'라고 잘못 쓴 걸 지적해 주셔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원체 허둥대기 잘하고 실수 많기로 유명합니다만, 몇 번 본 것 같은데 또 실수...... 볼때기에 밥풀 묻히고 다니는 바보라고 비웃기만 하지 않고 웃으며 일러 주는 , 남다른 특별 우호감각을 가지신 미오새님께 아주 넉넉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피란시절, 김해중학교 어느 첫 수업 시간이었다고 기억됩니다. 칠판에다 큼직한 글씨로 쓰셨어요. (한자가 다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남아입지출향관(男兒立志出鄕關) 학약불성사불환(學若不成死不還) 기억력이 특별히도 좋지 않은 제게 송곳처럼 꽂힌 한 구절이었지요. 일찌감치 떠돌이길에 나선 한 아이에게 이를 앙다물게도 했지만, 공연히 여린 어깨를 경직되게 만들게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호랑이 등 운운 한 것은 그저 저의 어설픈 운명론일 뿐이라서, 미오새님이 추켜 주시는 저의 덕목은 무거워서 내려놓고 싶습니다. 화서도연은 제 잡기들입니다. 지난 어느 글에서는, 뗄래야 떨어지지도 않고, 버릴래야 버려지지도 않는 지긋지긋하고 사랑스러운 첩이라 했더랬습니다. 한참을 부족해도 시-문학은 제 조강지처라는 강변이기도 한 것이구요. 첩(여성들께 본의 아니게 죄송)을 감상용으로 공개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미오새님, 미오하지 마시고 용서하십시오.

윤고방 2010. 05. 20. 오전 02:22

캔디님의 방문에 인사가 늦었습니다. 먹고 살기도 바쁜 세상에 강아지 얘기로 날을 지새우는 듯해서' 이것이 과연 올바른 모습인지 돌아보게도 됩니다. 단지 있는 그대로 느끼고 자유스럽게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 앞에서 별로 변명거리가 없는 좀 무안스런 저 자신이 뻔히 보입니다.

미오새 2010. 05. 25. 오후 11:48

*윤선생님.. 오타는 처음 부터 눈에 띄였지만 바로 말씀드리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왜냐면, 작품 속의 오타여서 선생님께서 발견하실 때까지 기다리는게 예의일 것 같았고, 또한 \"제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끌만 본다\" 는 유대인들의 경구가 생각 났기 때문이였지요. 작품속의 오타여서 누구라도 쉽게 발견하고 귀띔이라도 있을 줄 알았는데, 수일이 지나도 가출한 \"아자\"아가씨는 돌아올 줄 모르고...그래서 야단맞을 각오를 하고 어렵게 말씀드렸는데, 허물하지 않으시고 넉넉한 마음으로 품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산들바람님께서 몇년 전 올린 글에 꼬리처럼 붙어 있었던 \"미오\"이야기를 읽으셨나봐요. \"미오\"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알고 계시는걸 보면.... 선생님께서 쓰신 \"미오\"를 오타로 오인하는 분이 혹시 있을지도 몰라서 밤이 깊었지만잠깐 들렸다 갑니다. 곧 자정에 이르는 깊은 밤..불현듯 인기척을 남긴 미오새를 미오하지 마시고, 안녕히 주무십시요, 윤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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