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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이별

박종영 2010. 10. 22. 오후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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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이별

                               -박종영-

한 포기 배추처럼 꽝꽝하게 여물어 가는 늦가을,
투명한 생각을 안고 떠나는 빛깔이 곱다
나무들은 소담한 열매를 얻기 위해 한 해 
구슬땀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는 것인가
갈증으로 숨차던 날 빗방울 한 개의 영롱함으로 오늘,
잘 다듬어진 한가락 풍년가를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을 바라본다
황량한 들녘 덩그러니 잘려나간 벼포기,
아픔의 밑동에 속울음으로 돋아난 초록 웃음이 슬프고
저 멀리 굽은 논둑에선 검불 태우는 하얀 연기가 하늘길을 연다
물기 잘박한 웅덩이엔 꼭사리떼가 얕은 물 위를 헤엄치며
다가올 시간의 무덤을 향해 여린 숨을 고른다
나지막한 산기슭,
산국, 그리운 향기 피워내느라 가늘어진 허리 짠하고,
혼자 사는 순덕이 어머니의 오래된 가슴에도
풋풋한 추억을 붙들고 새움이 돋아난다.
이토록 절묘한 시절에, 잘게 부서지는 햇빛을 뒤로하고
남은 시간, 행복한 이별을 위하여
시린 발 다스려 남루한 겨울 강을 건너야 하느니.


 

댓글 4개

윤고방 2010. 10. 24. 오후 11:28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허허롭지만은 않군요. '남루한 겨울강을 건너야 할' 온갖 생명의 중생들에게 힘을 실어 주시나요?

김경은 2010. 10. 25. 오전 10:22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가슴 아픈 이별이 있을 뿐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은 없다. 눈물 나는 이별이 있고, 가슴 아픈 이별이 있을 뿐이다. 웃으면서 손 흔드는 노래가사 같은 이별은 꿈도 꾸지 말자. 내 가슴에 대못을 박은 그를 어떻게 미워하지 않고 웃으며 보내줄 수 있을까. 더 좋은 사람 만나서 잘 살라고 빌어주는 이별은 없다. 내가 만져주던 그의 부드러운 머릿결, 내 입술이 닿던 그의 여린 입술, 나를 안아주던 그의 뛰는 가슴이 나 아닌 다른 사람의 것이 될 걸 알면서 어떻게 좋은 사람 만나라고 빌어줄 수 있을까. 매일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며,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영화를 보고 같은 노래를 들으며 같은 세상을 나누던 우리를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찢어놓는 이별이 어떻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은 만나지 말기를 기도하고, 나보다 더 행복한 건 용서 못하고, 나 때문에 울면서 나보다 더 아파하기를 바라는 게 진짜 이별의 모습이다. 이별 여행을 다녀온 뒤 쿨하게 한 번 뒤돌아보지 않고 갈길을 가는 영화 같은 이별은 없다. 조진국 『내가 누군지 알아봐줘서...고마워요, 소울메이트』中 그냥 책의 이 구절이 생각나네요..ㅠ

박종영 2010. 10. 28. 오후 04:01

갑자기 찾아든 한파로 매우 춥습니다. 작은글에 과분한 댓글 감사드리며 고르지 못한 날씨에 건안하십시오

박종영 2010. 10. 28. 오후 04:03

좋은글을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겨울같은 바람이 불어 쌀쌀합니다. 건승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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