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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 밖에서 」

유민자 2010. 11. 08. 오후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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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밖에서  

 

                                                          - 유 민 자 -





  
   그
하늘은 어릴 적 보았던 우주를 닮아있다. 
 
  구름이 세상의 맑음을 안고 바닷가에 길게 누웠다. 바다 끝은 하늘가에 앉아 서로의 볼을 부빈다.  그 하늘가에는 바다가 있고 야자수가 살고 하늘 밖에서 놀던 내 우주가 있다. 하늘너머 무채색으로 그린 아름다운 집이 보인다. 
  그 집 근처에 햇살이 비치는 호수가 있다. 막 피어오른 나팔꽃 사이로 수줍은 호숫가에는, 막 쪄 낸 옥수수알갱이처럼 웃는 아이가 보인다. 호수 가득 아이는 당당하게  자란다. 훈훈한 향기로 채워진 내 어릴 적 우주다.

  지금. 남태평양은 행복이 만져지던 예전 우주와 똑 닮았다. 
 우리나라 변산반도 바닷가 모래땅에서 본 갯메꽃이 코코넛 나무 밑자락에 무리지어 피어있다. 나팔꽃을 닮은 윤기나는 풀꽃은 해풍에도 끄덕없이 바위틈에 보기 좋게 앉았다가, 나무를 타고 하늘로 오른다. 나는, 종일토록 웃고 있는 갯메꽃처럼 나무 그늘아래 잠깐 선다. 소낙비가 지나간 하늘뜰이 나를 수줍게 내려다본다. 뭉게구름사이로 높다란 나무가 하늘 길을 튼다.   
   팔라우 롱비치 모래사장은 여름이라는 계절을 달달하게 구워낸다. 
  하늘빛을 닮은 물빛, 그 물빛사이로 비치는 가오리, 거북이, 제왕조개, 독성이 없는 해파리떼 그리고 하늘에 맞닿을 듯 키 큰 코코넛 나무들이 짙푸른 하늘과 친한 벗이다.
 
세상이라는 끈으로 이어진 철창 밖 사람들은 지켜내야 할 규범, 예의, 배려라는 이름으로, 하루 또 하루의 마침표를 환히 찍으며 살아간다. 삶속에 지나간 어제를 이어붙이며 내일을 꿈꾼다. 내가 지켜내야 할 텅 빈 하루는 해말간 햇살 받으며 꿈 짓는 사람들의 하루와 어깨동무한다. 새 하얀 구름사이로 길을 트는 나무 곁에 서서 햇볕으로 지은 옷을 온몸으로 입는다.  

   
  하늘 밖으로 맑음과 흐림이 너무도 분명한 자리.  느낌표가 쉼표처럼
노래 부르는 자리. 누구의 고향일까?
  하루 종일 오선을 그어대는 강한 햇살과 후두둑 내리는 소나기가
내 곁을 휙휙 지나친다. 그 해변은 오염되지 않은 무인도를 닮았다.
   잔잔한 물빛 따라 빛이 너울거리는 곳.  고요를 떠메고 밀려 왔다가 인간이 버린 아우성을 다시 짊어지고 밀려가는 물결. 철썩이는 물결자리마다 누가누가 살고 있을까?  바다 곁을 찬찬히 걷는다. 
       

   순박한
바다는 그저 큰 숨으로 바다내음을 마시라는 듯 가녀리게 출렁인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소낙비처럼 퍼부어대는 스콜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새들의 날개짓이 힘차다. 먹잇감을 낚아채는 그 솜씨에 대왕조개의 숨소리가 우렁우렁 들려온다. 커다란 물고기는 청빛 지느러미를 물 언저리에 툭 내밀고 씽씽 내달린다. 바다 속 먹잇감을 찾아들고 쌩! 일어서는, 발랄한 몸짓들이 나까지 불러 세운다.

  그 발랄함이 다시 그리워 남태평양 한 가운데로 밤낚시를 떠난다.  쪽배로 나선다.
  깊도록 어둔 밤하늘에는 저마다 생을 터뜨리는 별들로 분주하다. 어느 별들은 바다의 뱃길을 총총히 지켜내기도 한다. 새까만 밤. 
배가
가르는 물살을 한참을 내려다본다. 언뜻, 거센 물결너머로 어스럼빛 아우라에 물든 바다물결이 내 눈으로 들어온다. 그 순간 하늘을 치켜본다.

  
 
   
   달무지개다. 무수한 별빛사이로 어스럼빛, 그 아우라가 보인다. 
 세상 밖에서 놀던 빨주노초파남보, 달무리가 보인다.  보름달의 겨드랑이에 날개를 달고 있는 그 빛은 어린 쌍무지개 인 듯 그 색이 옅고 가냘프다. 둥그런 달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무지개는 우리를 내내 따라온다. 달무리가 만들어준 쌍무지개는 한 낮의 산무지개가 그리워 달빛 곁에 서성이는지도 모른다.
  
그 신비의 빛속에는 행복이 놀다간 흔적이 보이고 기쁨으로 춤추다가 두고 간 웃음이 보이고, 그 웃음 속에서 즐거이 떠들고 있는 내 모습도 함께 앉아 있다. 달무지개는 내일의 희망에 앉아 캄캄한 어제의 모습일랑 지우라고 성화를 부린다. 내 호수에 고인 아픔이 있다면, 몽땅 잊으라고 재촉하는 하늘 밖의 세상이다.

  조용히 배를 몰던 선장이 갑자기 고함을 친다.
 
\"레인코트! 레인코트!!!!!\"
 
1분여 정도 흘렀을까. 순식간에 달려드는 빗줄기가 내 몸을 때린다. 드센 빗줄기가 내 몸에 휘감긴다. 그리고 거짓 없는 바다가 내게 말을 건다.
 “괜찮아. 비는 그칠꺼야, 괜찮아질꺼야. 소나기잖아.” 
  우울한 세상은 수시로 나를 부르곤 했다. 그 세상 밖에 놓인 견딜 수 없는 아픔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거친 현실도 소낙비처럼 지나가리라는, 의심 없는 답이 나를 스친다. 
  소낙비의 고향. 남태평양의 밤바다에서의 빗줄기. 한 낮의 태양을 잠재운 소낙비는 달무지개의 신비로운 비영을 지난다. 서서히 휘몰아치는 높바람을 연인처럼 끼고서, 짙푸른 바다를 후두둑 한 순간에 확 때리며 긴 말이 무수한 세상을 나무란다.

   이렇게 나의 우주에는 말간 세상과 키 큰 바람과 불꽃처럼 터지는 별들로 요란하다. 
  그렇게 낯선 나라의 벅찬 풍경 앞에 서면, 진실된 내가 서 있다. 어쩌면 여행은 꿈을 짓는 일인지도 모른다. 한 번쯤은 하늘의 신 우라노스가 되기도 하고, 또 한 번쯤은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되어 철창 밖으로 내몰린 세상살이를 푸른 축제마당인양 마음의 고향을 매만진다. 비루한 나는 발빠른 현실을 떠나 가끔은 이렇게 꿈의 고향에 선다.

 목화솜이 뿌려진 하늘. 크고 작은 하얀 꽃 천지, 뭉게꽃이 깔린 하늘가.  하늘밭의 뭉게구름은 힘겹게 달무지개를 찾아내기도 하고 ,먹구름을 좇다가 소낙비를 껴안기도하고, 붉은 노을에게 하늘을 내어 주기도 하며  얌전하게 피고 스러진다. 숨박꼭질하는 하늘세상이다.

   아이의 고운 낯빛 같은 하늘. 첫 사랑의 환희 같은 하늘. 사그라지는 모닥불의 불씨 같은 하늘. 
   내 비밀의 화원에 숨어든 하늘 밖 너머를 본다. 노을진 내가, 햇살과 소낙비사이에 끼어들어 부지런히 생을 팔딱인다.  하늘가의 높바람이 내 머리위로 맑음을 세차게 뿌려준다. 말간 내 머리 속을, 높바람을 따라 온 달무지개가 비영한다. 활기찬 내가 하늘밭을 올려다 보며, 다가설 가을생각을 자분자분한다. 내일을 원색으로 그리려는, 상기된 내가 보인다.

  사진을 찍는다. 행복이 만져지는 하늘을 찍는다. 그 하늘에 그리운 어제 모습도 찍힐까? 가슴 가득 하늘향기 머금고 사진을 찍는다. 그 하늘 밖에서. 훈훈한 향기가 촘촘히 채워진 사진 한방을 더 찍는다. 하늘 밖 저 너머 해묵은 내 집이 보인다.

   그 집 맨 앞쪽으로. 원색으로 그린 긴 초록 의자 하나를 내놓는다. 
   내가 내일에게 희망하여 키큰 나무로 만든 그 의자. 
 
  
그 초록의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앉아 내일을 꿈꾸는 자리다.  
  
누구나 한 발을 무릎에 포갠 채, 천천히 쉬어가는 자리다.  
  
 이제 막 눈뜨는 생명이 하늘 밖을 만나는 자리다. 
 
 
                                                                                                                                    
                     ( 끝 )글과 영상/ 유민자드림

댓글 10개

전수랑 2010. 11. 08. 오후 02:07

님의 아름다운 글과 영상으로 추운 날, 따뜻하게 쉬었다 갑니다^^

유민자 2010. 11. 08. 오후 02:14

진정. 정겨운 전수랑님이시네요. 월간 『 한국수필』2010년 11월호에 실린 따끈한 최근의 글이기에....^^ 글속에 앉아 \"따뜻하게 쉬어간다\"는 그대의 말에, 제 가슴이 뭉클해요.

포아풀 2010. 11. 08. 오후 11:38

저 아래 글에 댓글 달고 오니 요기도 예쁜 글과 영상이 있네요. 늦은 밤 마음만 내려놓고 갑니다.^^

유민자 2010. 11. 09. 오전 12:02

왠지, 포아폴님이 가슴으로 어른거려서 이 자리에 들어 왔지요. 역시...우리는 마음으로 소통하는 진한 사이...^&^

배재철 2010. 11. 09. 오전 11:43

\"..우울한 세상은 우리를 수시로 부르곤 하며, 세상밖에 놓은 견딜수 없는 아픔도 소낙비처럼 우리를 지나가겠지요\". 참 의미있는 말이며, 인생의 중반을 힘겹게 살아온 사람들에겐 가슴에 와 닿는 말이었습니다. 유민자님, 아름다운 글과 영상 잘 감상하고 갑니다.

김재원 2010. 11. 09. 오전 11:58

며칠동안 흐리고 가랑비까지 내려서 더욱 을씨년스럽게 하더니 조금은 쌀쌀하기는 하지만 오늘은 쨍한 햇볕에 마음까지 녹아내리는 듯 합니다 날씨 하나만으로도 오늘 하루가 행복해질 것 같습니다 오늘같은 날은 카메라들 들고 어디를 가도 좋은 풍경이 눈에 들어올 것 같습니다 \"목화솜이 뿌려진 하늘. 크고 작은 하얀 꽃 천지, 뭉게꽃이 깔린 하늘가. 하늘밭의 뭉게구름은 힘겹게 달무지개를 찾아내기도 하고 ,먹구름을 좇다가 소낙비를 껴안기도하고, 붉은 노을에게 하늘을 내어 주기도 하며 얌전하게 피고 스러진다. 숨박꼭질하는 하늘세상이다\" 주제넘은 평인지는 모르나 표현 하나하나가 참 예쁩니다 때론 한 줄의 글이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도 합니다 꼭 오늘 날씨처럼..... 글 잘 읽었습니다

연송 2010. 11. 09. 오후 06:32

부드러운 미소속에 많은 언어를 함축하고 계신 아름다운 여인 유민자선생님! 갈증속에서 신선한 샘물을 마시듯, 선생님의 글 속에서 갈증난 마음을 촉촉히 적시렵니다. 따스한 눈길을 ----

유민자 2010. 11. 10. 오전 12:07

세상살이는 행복이 만져지던 날을 그리워하는 속성이 있는 듯해요. 그 어떤 행복보다는 아픔이 더 크게 느껴지는 삶의 그늘. 그 아픔은 잠시 쉬어가는 삶의 징검다리.... 정겨운 눈짓, 배재철선생님. 혹, 소낙비는 흘러가는 힘겨운 순간을 안고 달리는, 100m 육상선수를 닮진 않았을까요?

유민자 2010. 11. 10. 오전 12:18

정겨운 인삿말, 졸고의 글을 향한 칭찬언어.... 부족한 제가 오랜만에 글을 올렸다고, 힘을 실어주는 김재원님께 감사인사 드려요. 때로는 이렇게, 한 줄의 글줄기라도 편안하다는 그 말씀에 가슴이 두근거려요. 고마움으로!

유민자 2010. 11. 10. 오전 12:23

저보다 더 사색이 깊으신, 울 연송선생님. 오늘은 왠지 하모니카 소리가 제 귓가로 쟁글거려요. 혹, 들어보셨어요. 하모니카에 묻어온 오래된 정. 그 정이 쌓이는 울림의 떨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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