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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나를 부를까 」

유민자 2010. 11. 25. 오전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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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나를 부를까 」
                                 
                                                                                       유 민 자
 
     
   어둠이 빠져나가는 새벽이 좋습니다. 밤새 잠겼던 마음이 밝은 해가 뿜어내는 햇살 속으로  빠져드는 아침이 좋습니다. 창을 열어 들숨과 날숨으로 아침의 숨결을 들이 마십니다.
   내 호흡 속으로 연둣빛 잎새와 꽃향기가 들어와 앉아 재잘거립니다.  순박한 작약 꽃이 붉으레헤진 함박웃음으로 나를 보며, 그 자주빛속으로 부릅니다. 청아한 부채붓꽃이 그리운 얼굴빛으로 나를 보며, 그 보랏빛 속으로 얼른 들어오라 합니다.

  나들이 나선 꽃빛들이 살곰거리고 들어와 저벅저벅 소리를 내며, 여기저기 내 몸을 마구 부벼댑니다. 이렇게 어리광을 피워대는 녹음의 봄이, 참 좋습니다.  봄빛 따라 흘러들다가 피곤한 내가 풋잠이 사르르 듭니다. 


   ‘누가 나를 부를까?......’


   길 따라 발길 따라 영혼을 파고드는 메아리 따라 원시적인 나그네 한 사람이 보입니다.  지리산 곁에 내 몸을 슬쩍 포개며, 산자락의 흙냄새를 맡으며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까지 엿듣습니다.  황현고택 한옥 매천사, 산고요속에  매천 황현의 매서운 눈빛이 홀연히 나타나 내게 손짓 합니다. 바로, 역사의 숨입니다. 바로, 내게로 움트는 축복입니다.

  저 너머 물소리 나는 돌 언덕에  앉아  하늘 한 번 쳐다보며 맑은 물에 한 발을 담급니다.  그 물에 마냥 철없는 천진스러움으로 되돌아가 첨벙첨벙 내 마음을 철썩입니다. 이렇게 내가 나에게 맑음이란 언어 곁으로 다가서는 자리가, 나라사랑을 실천한 충절의 곁입니다.  올곧은 선비정신 앞입니다. 향긋한 삶은 이런 것일까요?


  앎의 욕구를 키우는 좋은 자리를 서성이면, 역사속의 조상의 얼이 가슴을 파고듭니다. 지식인의 눈으로 바라본 개화와 망국의 역사, 황현의  \"매천야록\"을 읽습니다.  갑오년 1894년 고종 \"운현궁 왕기가 서리더니 임금이 태어나다\" 부터 경술년 1910년 순종, \"군청에서 합방령이 반포되자 그날 밤 아편을 먹고 이튿날 운명했다. 시 네 수를 남겼다.\"까지 조근조근 소리 없이 읽습니다. 매천이 순절한 대월헌( 待月軒)에 내가 앉습니다. “달을 기다리는 집”이라는 그의 서재에서 돌비석에 아롱진 세 번째 연을 읊조립니다.


   새와 짐승도 슬프게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

   무궁화의 온 세상이 이제는 쓰러져 가노라.

   가을 등불 아래에서 책을 덮고 지난날을 생각하니

   인간세상에서 글을 아는 사람의 노릇이 참으로 어렵기만 하구나! 


   鳥獸哀鳴海岳嚬 (조수애명해악빈)

   槿花世界已沈淪 (근화세계이침륜)

   秋燈掩卷懷千古 (추등엄권회천고)

   難作人間識字人 (난작인간식자인)


                                                                            -   절 명 시 (絶命詩)부분 3수/ 황현 -


 

  화사한 생명력으로 차오르는 산과 강. 그 강산이 찡그려지고 온 세상이 쓰려져가는 어두운 앞날을 나타낸 절명시가 처절함으로 통곡하는 듯 우리네 앞에 섭니다.  귓가를 어른대며 사각거리는 봄소리가 황현의 비탄에 젖은 심장소리로 뒤바꾸어  그의 절명시가 되어 가슴을 타고 줄줄 흐릅니다. 조선왕조가 명운을 다한 날. 우리들의 모든 통치권을 합법으로 가장한,  경술국치일로 시간을  돌립니다.


  저 멀리, 고독한 그가 가물거립니다. 그 시대의 황현은 한 개인의 죽음이었을까요? 그는 아들의 죽음을 보며 울부짖던 한 어머니의 장남이기도 했고,  한 아내의 지아비이기도 했고 자식을 둔 아버지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지켜낸 것은 개인욕심을 선뜻 버린 채 민중의 가슴을 흔들어내려는 민족정신이기도 하고, 고향 사람들의 가슴에 높이 메어달 저항정신입니다.

  그의 용기가 이루어 낸 자결은, 영혼의 부활입니다. 황현 고택에서 매천의 붓끝으로 마음샘을 모아 촛불을 밝힙니다. 황현의 매천야록 그리고 절명시가 현세의 화석이 되어, 허술한 내 머리로 둥둥 떠 다닙니다. 먼저 내 머릿속 생각의 넓이를 키운 후에, 가슴샘에 대인배 의리 한 동이를 넘치도록 붓습니다.


   \"인간세상에서 글을 아는 사람의 노릇이 참으로 어렵기만 하구나!\"  


  글은 썩지 않습니다. 웬일인지, 암울한 조국의 운명 앞에서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며 비장함을 나타낸 싯귀를 읽으며 서정적인 희망을 품습니다. 그 처연한 절규 앞을 서성대는 역설적인 희망은, 내일을 바라보는 새로운 자각입니다. 

  사람육신은 썩습니다. 하지만 영혼은 한 시대를 넘나들며 우리네 정신을 어루만집니다.  어리버리 살아가는 부끄러운 세상이 보이고, 시계추처럼 이리저리 흔들거리는 사람모습이 보입니다. 그 옆에서 줏대 없이 살아가는 내 모습도 큰 바위 얼굴로 보입니다.


   나뭇가지마다 꽃망울을 열고 마냥 신나서 웃고 있던  어제의 봄날이 사계의 흐름을 타고 흐릅니다.  내가 어제의 봄이었으면 합니다. 하룻밤의 새순마다 꽃등을 밝히며 나를 먼저 보라고 재잘대는 그 봄, 콧망울로 들어서는 발랄한 공기가  현세와 역사가 실처럼 이어져 황현의 눈물 되어 가슴으로 스밉니다. 

  현세의 충신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하는 것일까요?


  매천 한시전시관의 황현은 역사를 사랑하려는  사람들을 향해 진지함과 엄격함을 지닌 책임지는 삶을 가리치는 듯, 매서운 눈빛으로 우리를 내려다봅니다. 기록속의 흥선 대원군은 고종 10년까지 온 나라가 벌벌 떠는 권세를 누립니다. 백성들은 서로 혀끝을 경계하며 조종의 일을 감히 말하지 못했으니, 언제나 귀신이 문 앞에 와서 두드리는 것 같았다 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위세에도 허망한 끝이 있었습니다. 역사서인 매천야록에 담긴 사건기록 보고서를  있는 그대로 보고 머리로 느낍니다. 

  옛 책을 읽으며 그 시대의 문화를 배웁니다. 문인의 고향 언저리를 매만지면서, 현세를 살아가는 지혜를 얻습니다. 옛 선인은 말없이 이 책 저 책을 무시로 손에 들게 만들어, 내 손안에 슬며시 글 힘을 얹져 줍니다. 현세의 충신을 생각하다가 옛 조상 결에 대한 매력인 그 풍성함속으로 빠져들어, 그 지역의 명당에도 발걸음을 옮겨 놓습니다. 


  전남 구례군의  운조루(雲鳥樓), “구름 위를 나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 으로 온정이 강물 되어 흐르는 집이 있습니다.  문화 류씨의 300년 된 10대 종갓집 뒤채에는 쌀 한가마 반이 들어가는 허름한 뒤주가 놓여있습니다.  그 나무 뒤주아래 쪽에 \"타인 능해“라는 글이 흐릿하게 보입니다.

  식구가 아닌 다른 사람이 뒤주의 덮개를 열수 있다는 그 말의 풍미는,  누구나 이 집에 와서 쌀을 가져가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또한 그 뒤주를 뒷채에 두었다는 것은 쌀을 퍼가려는 사람들에게 운조루 식구들과 눈치를 살피지 않도록 배려한 것입니다.  뒤주의 뚜껑을 열어 내 열린 마음을 집어넣고, 뒤주 아랫부분에 새겨진 타인 능해정신까지 내안으로 가져옵니다.


  누가, 똑똑 불러 세웁니다. 벌써 전설인양 우리네들의 뇌리에서 잊혀져가는, 매천야록 역사서 그리고 절명시가 나를 부릅니다. 민족의 자존감이 흠씬 배인, 유자제서(遺子弟書)의 글소리도 나를 부릅니다. 

  \"내게는 가히 죽어야 할 의리(義理)가 없으나 이 나라가 오백 년 동안 선비를 길렀는데, 나라가 망하는 날 한 사람 죽는 이 없다면 어찌 애통하지 않겠는가! “

   유형 문화 재산들. 역사에 남겨진 그 사실적인 기록은 과거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비장한 몸짓으로 자신의 글에 책임을 지는 매천 황현의 진지한 태도는 오늘이 본받아야 할  몫입니다. 그 몫은 어제의 엄격한  이야기되어 세상을 움직이는 낮은 목소리로 내일을 만들어 갑니다. 


  기억속을 흔들어대던 그 어떤 목소리너머로, 살얼음을 깨고   일어난 노란 복수초가 보입니다. 
  한 시대의 울림이 풋잠을 깨고 일어나 똑바로 앉으라 합니다.  나는, 두 손 두 팔을 벌리고 조상의 은혜로움을 등에 업고 나비잠을 편히 잘 것입니다.  
   가끔은 성큼성큼 때로는 느릿느릿 내 곁을 스치는 조상의 낭창거리는 글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그 울림 속에서 나는 , 소곤대는 꽃망울처럼 낮은 목소리로 피어납니다.  
  
-복수초-

                                                                                                                                                   - 끝-


       - 운조루(雲鳥樓), “구름 위를 나는 새가 사는 빼어난 집”- 

         글과 영상/ 유민자드림

댓글 14개

정상근 2010. 11. 25. 오후 12:10

'누가 나를 부를까' 저는 유민자님 안불렀어요??...ㅋ^^ 아마도 내면 속에 있는 무엇인가가 잠든 '나'를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닐지, 사회관, 국가관 그리고 사생관,,, 삶이 워낙 복잡다난하여 '수신제가'하기에도 급급하니 '치국과 평천하'는 감히 생각도 못하고 사는 것이 이 시대의 삶의 모습 아닐까 싶습니다. '사색의향기'를 열기전 인터넷 홈페이지의 뉴스라인에 언듯 눈에 띄이는 글귀가 있더군요. '늙어도 방아쇠 당길 힘 있다' 이외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라고 되어 있는데 아마도 어제의 연평도사건에 대한 격분한 마음을 담음이 아닌가 합니다. 잊고 있다가도 무엇인가가 닥치면 깨어나는 내면 속에 내재되어 있는 그 무엇,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유민자 2010. 11. 25. 오후 08:42

선인의 울림속에서 낮은 목소리로 피어날 수 있도록, 부족한 자아를 메만져요. 이렇게 저를 불러주시는 정상근선생님덕분에, \"늙어도 방아쇠를 당길...\" 그 힘을 지닐 수 있도록 노력해요. 우리는 그 노력이 모여 열정을 만들어가고 마음갈피마다 희망이라는 언어를 훅 불어넣지요. 왠지 연평도 사건으로, \"깨어나는 내면\"을 지닌 채, 사회적인 배려가 필요한 시점인 듯 합니다. 아마도 사회적 기업 의식처럼....^^

박성실 2010. 11. 26. 오전 09:48

생동력 있는 봄날 아침의 고요네요! 그래서 소리를 들었을까요? 요즘 궁에 가면 궁궐길라잡이가 있어요. 창경궁에 갔을 때 였는데, 사도세자의 뒤주가 놓였던 마당이라는 말을 들었죠. 사람들이 빠져나간 그 마당에서 발을 떼지 못했던 것은 목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어요. 돌아본 마당은 비었는데 세자를 보았다는 이들의 목소리인지 세자의 목소리인지 분간하기 힘들었죠. 헤헤 무슨 공포영화냐고 하실지 몰라도...ㅜㅜ 어느 장소를 가든, 그곳에 깃들어 있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한답니다. 그것이 결국 나의 내면으로부터 온 것이라할지라도 말이죠. 작가님, 추워지는 오늘같은 날 봄날의 표정과 목소리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햇살을 기억하니 훨씬 따듯해졌습니다.

유민자 2010. 11. 26. 오전 11:57

그 목소리, 잠자는 내면세계를 다듬고 싶은 욕구때문이었을까요. 아련함으로 물드는 그 빈자리의 기억들. 사도세자의 그 뒤주처럼 ,휭한 자리마다 왠지 알수없는 그 무엇이 있는 듯 다가서요. 지금은 영하 5도라고 하는 겨울날씨예요. 봄날의 햇살 한웅큼을 듬뿍 담아 박성실님께 드리고 싶은, 정겨운 오늘!

박종영 2010. 11. 26. 오후 04:10

유민자 작가님 2005년 부터 이곳 문학의 향기방에 좋은글을 올려주시어 우리 모두 즐거운 시간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누가 나를 부를까' 의 글에서 다시 한번 우리 역사의 빛난을 높이 찬양합니다 귀한 글 감사드리며 더욱 큰 문운을 빕니다. 건승하십시오

유민자 2010. 11. 26. 오후 05:43

사색의 항기 이 자리에 졸고의 글을 한참을 올리지 않았는데요. 이렇게 예전의 저를 좋은 기억속으로 떠올려 주시다니, 황송함으로 고개를 떨구어요.^^ 이제는 부족한 제가 한결같은 마음결로 사색의 향기를 돋보이게 해 주시는, '박종영시인님표 품성'을 찬찬히 배우려 합니다.

주몽의 활 2010. 11. 26. 오후 11:16

제가 불렀어요...ㅋㅋ 오랜만에 뵙네요. 건강하시죠.^^*

포아풀 2010. 11. 27. 오후 12:28

맨 위 사진이 참 좋네요. 저 안으로 들어서면 누군가 반겨줄 것도 같고... 설혹 아무도 없다해도 반가운 햇살이 내 그림자를 데리고 나올 것도 같고... \"내 호흡 속으로 연둣빛 잎새와 꽃향기가 들어와 앉아 재잘거립니다\"

유민자 2010. 11. 27. 오후 03:58

\"거짓희망과 꿈을 벗어나 자연속에서 살아 숨쉬는 지금과 살아 숨쉬는 오늘을 소중히 여기며...\" 졸고의 글을 향해 살아 있는 글이라고 선뜻 말해 주시던, 정겨운 주몽의 활님을 기억해요. 고마운 분!

유민자 2010. 11. 27. 오후 04:05

가끔은 성큼성큼 때로는 느릿느릿 내 곁을 스치는 조상의 낭창거리는 글소리를 이렇게 들어요. 그 울림 속에서 소곤대는 꽃망울처럼 낮은 목소리로 피어나기를, 내일에게 소망해요. \"누가 나를 부를까\" 졸고의 글 앞에서 함께 재재거려 주신 화사한 포아폴님!

윤고방 2010. 12. 02. 오전 01:33

유민자 선생님, 문학의 향기 방에서 다시 뵙는군요. 그 동안 정신 없이 쫓겨 사느라 못 들렀더니 유선생님의 수필 한 편이 눈과 머리를 온통 환하게 그리고 푸른 물 출렁이게 만들었습니다. 매천의 가슴 저린 선비 정신을 이렇게도 섬세하게 애잔하게 저며 낼 수 있는 유선생님의 감성과 글 솜씨에 놀랄 뿐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읽을 기회 많이 부탁 드리겠습니다.

유민자 2010. 12. 03. 오전 06:57

졸고의 글을 향한 윤고방시인님의 말씀에 고개를 푹 숙입니다. 행여나,\"매천의 가슴 저린 선비 정신\" 을 오독하며 제 감성의 긑만을 건드려 본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선 부족한 글입니다. 무궁화의 온 세상이 쓰러져 간다며 사람노릇을 보여주셨 분, 큰 바위얼굴이신 그 분. 잠시나마, 그 그늘에 앉아 사색하는 자리였으면 했습니다.

주몽의 활 2010. 12. 13. 오전 01:27

기억해주셔서 감사드려요 ^^*

유민자 2010. 12. 14. 오전 07:10

가끔은 이렇게 오래된 사람이 귀한 마음으로 다가서요. 진심어린 주몽의 활님의 그 어떤 마음결이, 아침이슬처럼 맑게 전해지는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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