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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개 1호 발령

윤고방 2010. 12. 02. 오전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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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실님 오랜 만이군요. 전쟁의 후유증을 심각하게 겪는 사람들에 대한 부드럽고도 섬세한 연민, 지극한 안타까움, 평화를 위한 간절한 염원이 담긴 성실님의 시 한 편은 저의 무딘 가슴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합니다. 싸움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 그것이 어디 노랫말 속에만 머무르거나 둘도 없이 훌륭한 경전 속에만 새겨져서야  되겠습니까?  당연히 우리가 성취해야 할 가장 신성하고 가장 절실한 과제요 화두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어리석은 분노에 대한 분노, 부질 없는 욕심에 대한 질타, 무엇인지 정체 모를 두려움에 대한 억눌림 이 모든 감정들을 잠시 가라앉히고 좀더 냉철하게 나 자신이나 사람들이나 사회나 국가라는 실체에 대해 객관적인 눈길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연평도의 검은 연기, 파평면 금파리의 탄식, 삶과 싸움, 턱 없이 부질 없는 부덕한 싸움. 그러나 그 삶과 싸움이 서로 다른 것일까요? 물론 저 역시, 싸움의 빛깔들이 워낙 다르고 그 어떤 싸움이든 더없이 비정할 뿐만 아니라 거칠기 짝이 없어서, 부질없는 것이고 무가치한 것이라고 부정하고 싶긴 합니다.
그러나 쉬운 한 예로 우리 생명체들의 혈관 속 흰피톨들은 무한대의 적군들과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잊고 살게 마련이지요. 그 싸움에서 지면 곧 패혈증 또는 치유불능의 죽음 상태에 이르고 말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오후 어떤 작업장에서, 60대 초반의 아주머니가 며칠 전 그 분의 딸과 주고 받았던 이야기를 좌중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깔깔대고 서로 웃다가, 나중에는 흐흐흐 하고 모두 허탈해지고 말았습니다.
 \"얘야, 진도개 1호(혹시 2호인지도) 발령이라는 게 도대체 뭐냐? 어머니 그것도 모르세요? 적들이 몰려 오니까 진도개를 확 풀어 놓겠다는 거 아니겠어요? 아 그래 맞다. 며칠 전 TV에서 연평도 화면을 보니까 진도개들이 막 돌아다니더라. 그래서 그런 거구나.\" 
 
이 대화는 결코 코미디의 한 토막이 아니고 실제 상황입니다. 증인들도 여럿이 있습니다. 물론 여성들 대부분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남편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그것이 군대의 암호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하시더군요. 그 분들은 평균 이상의 상당히 높은 교육을 받은 여성들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싸움이란 것이, 영화도, 코미디도, 낭만도, 소설도, 농담도, 환상도, 단지 공포의 대상도, 기피할 수 있는 그 무엇도 아닌, 그것을 포기하고 기피하는 순간 우리의 목숨과 삶은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만다는 걸, 그래서 결국 그것은 우리 모두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저는 불행하게도 절실하게 느껴가며 살고 있습니다. 
살아 갈수록 더욱 분명히 깨달을 수밖에 없다는 게 슬프긴 하지만 저는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싸움이란 용어가 너무 거슬린다면 마음에 드는 다른 말로 바꿀 여지는 있는 것이겠지요. 

댓글 3개

박성실 2010. 12. 02. 오전 09:30

윤고방님 반갑습니다. 정말 여기에 시를 올리니 시인님과 만날 수 있네요, 좋습니다. 더더욱이 이렇게 의견을 주시니 너무 좋습니다. 네, 싸움과 삶... 흔히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내 가족과 삶을 지키기 위해 싸움을 한다. 내가 평화를 얻기 위해 다른 이들에게 폭력을 가한다. 1연에 마지막 절이 하나 빠졌습니다. '부둣가 남겨진 그물에는 바닷게가 파닥이고 있었다' 저는 그 바닷게를 보면서 그들이 남기고 간 것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이 싸움이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것일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쓰게 된 시죠. 저는 항상 싸워야 한다(갈등에 직면)고 생각하죠. 회피는 독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삶에 있어서 '화'를 잘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서로를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더욱이 말이죠. 화해의 기술 말입니다. 저는 이 '화'를 다루는 것이 모든 관계에 적용된다고 봅니다. 너무나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그것이 그저 저의 생각입니다. 그래서 시에 나오는 것일테죠. 싸움의 목적은 화해이고 삶을 살리는 것이지 죽이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리고 싸움을 하도록 만든 사람과 싸움을 직접 하는 사람과의 이유가 다른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말입니다. 아 여기서의 싸움이란 무력충돌 혹은 전쟁이라고 다르게 명명해야 하겠군요. 말씀하신대로 이 상황에 대하여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옳습니다. 그래서 점검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진도개1호 발령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헤헤헤 왠지 변명같네요. 운영자의 글에 정치적 종교적 내용은 삼가하라는 말이 있어 여기까지 하렵니다. 입장이 다른 사람들과 살아가기 때문에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야 삶은 풍성해질테고 한 방향만으로 가서 균형이 깨지는 일은 없을테니까요. 그리고 언젠가 저도 달라질 수 있으니 말입니다. 오늘은 휴가라 아침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면서 불암산자락을 조금 걸었습니다. 좋습디다. 흙의 질펀함과 고슬함, 매끈함과 까슬함을 마주하며 그 향을 한참 들이마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미생물이 우글우글한, 사람들이 수없이 밟고 지나간 생의 냄새인 것 같다고 맘대로 생각했습니다. 겨울이 금새 올듯하더니 쉬엄쉬엄 저만치 오네요. 건강하세요~

윤고방 2010. 12. 03. 오전 12:05

성실님, 감정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성실하게 답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삶은 우리들 앞에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닥쳐져 있고 영위하는 방법도 각기 다르며, 영위하는 방법에 대하여 스스로 인식하는 방식도 다르게 마련일 것입니다. 제가 앞의 글에서 '싸움'이란 표현을 간판처럼 내놓았다고 해서 기분이 좀 상하신 것 같은데, 성실님의 답글에서 '무력 충돌' 혹은 '전쟁'이라고 명명해야 하겠군요'라는 표현이 혹시 저에게 전쟁(?)을 선포한다는 듯한 뜻은 아니시겠죠?(농담).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핵심은, 비단 연평도 또는 천암함 혹은 북한의 호전성만을 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삶이란 보편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좀더 터 놓고 얘기해 보는 게 좋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보편성을 염두에 두고 얘기하자면, 남성과 여성이 삶이라는 현실에 마주쳐서 대응하는 생각이나 방법은 매우 다를 수 있다고 봅니다. 많은 인류학자들이나 철학자들이 갈파한 대로, 남성은 삶이란 현실에 대하여 대체로 개척적이고 도전적인가 하면 여성은 삶의 평온한 유지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된다는 이론이 그다지 궤변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정의 문제에 있어서도 남성은 외부로부터의 침범이나 도전에, 신체의 힘이거나 지혜를 동원하여 더욱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나서야만 그 존재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으며, 여성도 물론 힘을 합해 외적에 대항하는 한편으로 아이들과 식구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지요. 그렇게 집안을 지키고 생활을 지키고 향상시키려는 노력들을 통칭하여 \"싸움'이라고 속시원히 말해 본 것입니다. 시쳇말로 막가파처럼 싸움을 일삼고 시비를 밥 먹듯 하는 자를 옹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당장 사색의 향기 밖으로 나가야겠지요. 저는 싸움이란 말 대신에 젊잖은 말로 아놀드 토인비가 썼듯이 '도전과 응전'이라고 해고 좋겠고, '분투 노력', 또는 '정진 수행'이라 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부도덕함이나 비겁함이나 부정직함을 증오하고 철저히 물리치기 위한 '통성 철야 기도'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런 폭 넓은 범주의 대응 과정들이 \"싸움'이라고 표현될 수도 있다는 일반론을 말씀 드린 겁니다. 곱고도 부드러운 성실님의 정서 정감에 잠시라도 파문을 일으켰다면 죄송한 일이긴 합니다만, 저는 원체 너무도 혹독한 삶의 도전 속에서 힘 겨운 응전을 하며 살아 온 터라 아마도 평정심을 지키기가 어려웠던가 봅니다. 양해하시길 바랍니다. 정신 없이 바빠서 헤매고 살다가 고향 찾듯이 오랜 만에 향기방에 들어왔는데 제가 공연한 분란만 일으켰나요? 이쯤하고 저는 도망갑니다. 성실님, 비겁(?)하게 꽁무니빼는 저를 끝까지 잡으러 오지 마시길......

박성실 2010. 12. 03. 오전 01:05

어머나! 아녜요. 저 전혀 전혀 상하지 않았어요. 그 문장이 맘에 걸리셨군요. 그 문장을 쓴 것은 앞서 말씀하신대로 싸움의 이름을 다르게 써 보아도라고 하셔서 답을 쓰다보니 의미가 구체적이지 않아서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붙인 것이었어요. 네 싸움이라는 단어보다는 도전와 응전이라는 말이 분투와 노력이라는 말이 더 좋습니다. 헤헤 그러나 이 시에서 제가 소재로 삼고 있는 것이 전쟁이나 무력충돌이기 때문에 써 놓은 것이라는 것을 밝힙니다. 오해 마셔요. 그리고 끝까지 잡으려고 쫓아온 것도 아니니 염려 마셔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이런저런 이야기 해 주신 것에 대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삶이 달라서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반응은 다를 수 밖에 없죠. 들려주신 이야기에서 삶에 대한 힌트를 얻습니다. 사실 제가 요즘 비폭력에 대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는 체제와 가치의 충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것이 꼭 전쟁이이나 분쟁이 아닌 우리 삶의 소소한 부분까지도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죠. 간디는 그런 말을 했답니다. 비폭력을 선택할 용기가 없다면 차라리 폭력을 선택해라. 그 말인 즉슨, 어떤 쪽도 선택하지 못하고 방관하는 자세보다 폭력이 낫다고 이야기 한 것입니다. 그런 용기를 요즘 갈구하고 있습니다. 윤고방님, 언제든 오셔서 이야기 들려주세요. 무슨 이야기를 하셔도 의도를 곡해하지 않으려하니까요^^ 글자로 이야기하는 것은 마음을 전달하는데 충분한 것은 아닌가 봅니다. 에효 밤이 늦었네요. 벌써 시간이...ㅜㅜ 편안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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