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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적 무지와 조반유리가 없는 사회

박종영 2011. 01. 06. 오전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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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적 무지(多原的 無知)와 조반유리(造反有理)가 없는 사회


                                                                      글 / 박종영
작금의 시대적 배경은 우리가 미쳐 생각하지 못하는 사고의 집적이
순간적으로 변화하고 있어서 스스로 자기관리를 게을리 하다보면
뒤처지게 되는 경우들이 곤혹스럽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느 경우에는 자기착각으로 인해 다가가지 않아야 할 현상에 치우쳐
몰입하는 경우, 더욱 자괴감으로 마음 아픈 경험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해오면서 판단해 보면 사람마다.생각하고 보고 느끼고
판단하는 과정에서 무엇이 정의이고 어느 것이 부정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망설여지는 경우가 있음도 판단의 정의가 부적절 하기 때문
에 생겨난 경우라고 부인 할 수 없습니다.
규범에 보면 다원적무지(多原的 無知)라는 어휘가 있습니다.
즉 어떤 선거에서 갑,후보를 지지 하지만 을,후보가 당선될 것이라는 답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결국 대중적착각현상 또는 집단적 오해 ( Pluralistic Ignorance ) 라고
정의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는 어떤 사건 또는 어떤 이슈에 대한 소수의 의견을, 다수의 의견이라고
잘못인식하거나. 그와 반대로 다수의 의견을 소수의 의견으로 잘못인식 하는
것을 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족구성원이 아버지의 가부장적 권위에 도전했을 때,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는
권위가 있기 때문에 반발의 무지를 생각하는 자식의 의견에 동조하는 어머니의
도전이 결국 집단적 오해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면 한 가족의 평일이 깨지고 나아가 더 큰 불행이 예견되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 가족의 변천사라고 판단해 보는 것입니다.
좀더 부드러운 사랑과 스스로 양보하는 미덕이 보일 때 어떤 구성원이던 어떤
조직이던 적합하게 깨우쳐 주는 미덕이 보일 것입니다.
이제 좌고우면(左顧右眄)하는 현상은 없어야 하는 사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의지력과 결단력이 응집되는 사회가 바로 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금 결정하지 못한 일은 바로 처리하여 바르게 가는 것도 일면 사회에 봉사하
는 작은 일일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예를 들어보면 논어의 학이편(學理編)에 보면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과칙물탄개(過則勿憚改)란  고사성어가 나옵니다.
즉,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는 뜻이 담긴 말입니다.
공자는 일찍이 군자의 수양에 대해 언급하기를 자기보다 못한 자를 벗으로
삼으려 하지말고.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가르쳤고
이를 군자의 덕목으로 삼으라 했습니다.
우리는 잘못된 습성이나. 버릇을 오랫동안 지녔기 때문에 고치지 어렵다고
치부하기 보다는 자신을 올바르게 바라보고 잘못된 행동을 개선할 수 있는 마음
가짐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중국대륙 10억 인구의 정신적 지주이고, 공산주의 통일을 이룩한 모택동 비록에 보면
조반유리(造反有理)라는 어록이 나옵니다. 이는 모택동이 문화대혁명 초기때
반대세력을 숙청하고 홍위병의 활동을 옹호하기 위하여 쓰인 말로 \"기존질서에 대한
항거에는 마땅한 理致가 있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마땅한 이치를 부여하여 항거를 만들어준 기존질서가 비난당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의 대항과 항거를 양보해야 합니다.
이와 반대로 조반역리(造反逆理)라는 반대적 이론이 있습니다.
즉, 기존질서를 바꾸는 것은 이치에 어긋난다는 것입니다.
결국 조반유리와 조반역리의 이치는 상충되는 의미로 마땅한 항거세력과 이를
받아 드리지 못하는 대항거세력이 공존하면서 괄목하는 현상이 나오게 되는 것이
현실사회입니다.이또한 대화와 화합으로 풀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들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갖가지 사회적 모순의 제거는 오직
조반유리나 조반역리를 강조하는 집단적 세력이 스스로 양보하고 겸양의 미덕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현실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의 길로 정해져 있다는 명제가 우리들에게 깊이 인식 되고 있다면
밝은 마음으로 평등하게 공존하고 손실이 없는 사회가 성립될 것입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좁은간격에 서기 위하여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2011. 1. 3. 전남인터넷신문 칼럼기고.

댓글 7개

박성실 2011. 01. 06. 오전 10:40

어려운 말이 많이 나와서 여러번 한자를 읽었습니다. 읽고보니 전체를 꿰 뚫는 단어가 있네요. 공존, 양보, 겸양 이것이 요즘 저의 화두이기도 합니다. '연대'라는 것 말이죠. 너무 쉽게 좌절하는 저를 보면서 정말 한 사람의 힘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세뇌를 스스로에게 하고는 합니다. 그리고 무뎌지는 귀와 가슴을 진심으로 여는 훈련을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새해에 신문에 실릴만한 덕담인 것 같습니다. 그럼 오늘 하루도 새해에도 우리에게 우리나라에 공존을 위한 연대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봅니다.

김정흠 2011. 01. 06. 오후 07:11

중간에 쓰인 어휘 가운데 논어에 나오는 말은 \"과즉 물탄개\"입니다. 옳다는 것은 절대적이죠. 상대적인 숫자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 그래서, 옳다는 것을 정의하는 사람스스로가 그 정의에 대해서 서릿발처럼 엄한 깨우침이 있어야합니다.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요구한다는 것.. ^^ .. 정말 알고 깨우친 자에게 그 몫이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진리와 진실을 아는 사람의 몫. 수많은 대중이, 침묵하거나 방관하더라도 말이죠. *^^* 잘 읽었습니다. 행복하세요. *^^*

박종영 2011. 01. 07. 오전 01:12

현실 사회에서 공존과 양보 겸양이 필요한 사회라고 보아 감히 생각해본 글입니다. 함께한 시간 감사합니다. 박성실 문우님.

박종영 2011. 01. 07. 오전 01:17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가 옳은 표기법인데 과칙물탄개로 잘못 표기한 지적 감사합니다. 이곳 문학의 향기방에 올린 글은 댓글이 있으면 수정이 불가하기 때문에 수정도 할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양해 구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정흠님.

포아풀 2011. 01. 09. 오전 10:38

요즘 향기방의 달라진 특징 하나는 박종영 선생님의 반가운 댓글행진입니다. 그래서 더욱 반갑고 기분이 좋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시인님.

박종영 2011. 01. 09. 오후 09:13

나의 존재를 빛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 대한 추켜새움이 더욱 나를 발전시키는 일임을 압니다. 문학의 향기방에 댓글 행진을 전개하므로서 더욱 활성화 되고 글방의 문우들이 모두 동참하는, 아름다운 동행을 위하는 길입니다. 포아풀 시인님 감사합니다.

정상근 2011. 01. 10. 오전 09:23

'조반유리'건'조반역리'이건 간에 우리네 사회엔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라는 웃지도 못할 그런 말이 실제하는 현실이니.. 그저 세상을 바라보기 안타까워 간섭도 할 엄두를 못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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