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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놀이
모처럼 만의 휴일, 며칠 전부터 오늘은 무엇을 할까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 중에 아침 9시부터 저녁 5시까지 할 수 있는 일들을 떠올렸다. 미술관 가기, 아이와 실컷 놀기, 결리는 등과 허리 마사지 받으러 가기, 친구와 만나 수다 떨기, 영화보기, 대청소하기, 반찬 만들기 등, 그러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볕 좋은 하루를 평정한 것은 꼼짝도 하고 싶지 않은 나의 게으름이다.
나는 세수도 하지 않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돌아왔다. 발바닥으로 방바닥 따듯한 부분을 찾은 후, 다리를 쪽- 가지런히 모아 펴고 누웠다. 오늘 하루 무료함을 달래 줄 책,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를 읽으려다 배 위에 두 손과 함께 올려 두고 천장을 본다. 구름 뒤에 갑작스레 찾아든 강한 볕이 가득 방을 메운다. 허공을 응시하고 있던 나는 실체가 사라지듯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무엇을 듣고 있는지, 어떤 냄새를 맡고 있는지 감각이 무디어진다.
이런 날이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것이 있다. 짧은 인생사에 서너 번 자진해서 걸어 들어갔던 어두침침하고 축축한 동굴, 어쩌면 그것은 동굴이 아닌 관이었을 수도 있다. 꼭꼭 어디에인가 숨기고 묻어버려서 외면하고 싶은 내 자신을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은 곳
그곳에 들어가면 어두움 뒤로 희끄무레한 무엇이 보인다. 날카롭게 번득이는 그 물체는 움직임 자체만으로 몸이 쑤시게 만든다. 내 안에서 솟았는지, 어디서 날아왔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그것이 나를 노리고 있고, 나는 그것이 낯설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이 꿈틀거린다. 점점 움직임을 더해 간다. 마침내 속도를 탄 그것은 장소를 바꿔 붉은 피가 여기저기 힘차게 흐르고 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이곳은 동굴이 아니다. 내 몸이다. 물체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것은 나를 향해 쏟아지던 말들이 빼곡히 감겨 있는 귓바퀴에 머물다 동공언저리에 들러붙어있는 잊고 싶은 날들의 수치스러움과 허망함을 뚫고 지나가더니 가슴 가에 스며있는 썩은 내로 움직인다. 그것이 나를 흔든다. 나는 몸서리를 치면서 그 놈을 제거하려 몸살을 한다.
“윙윙웅, 윙윙웅, 윙윙웅” 녀석은 큰 소리를 내며 나를 울린다. 그러다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진다. 나는 차갑게 생기 잃은 몸뚱이를 냄새도 소리도 실체도 없는 곳에 누인다. 항복이다. 몸이 늘어지고 녀석의 움직임도 잦아든다. 내가 살아있는지 확인한다. 나는 어느새 수술대 위에 누워 있다. 어디서인가 날아온 오동나무 향이 몸으로 잦아든다. 저 너머 관이 보인다. 감각이 살아난다. 이때 옆에 서 있던 기계가 소리를 낸다. “뚜뚜뚜뚜, 삐--”
띠리링~ 전화벨이다. 아 이런, 나름 심각한 내면의 일과 마주하고 있는 이런 순간에, 시체놀이의 절정인 죽음에 다다르는 중요한 순간에 꼭 이런 전화가 걸려오다니! 여기서 이런 전화란 대부분이 080혹은 070으로 시작하는 절대 받고 싶지 않으나 수신자 거부를 할 수 없는 전화이다. 나는 그들에게 걸려든 무작위 중의 하나이자, 무수한 경쟁을 뚫고 당첨된 한 사람이다.
나는 오늘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감각이 무디어진다는 이유로 그 동굴을 떠올렸고 그곳에서 내가 다 묻어버리지 못한 나와 대면했다. 그것은 어쩌면 내가 절대로 떼어 낼 수 없는 나의 일부이다. 혹은 인간이 가지고 있다는 면역체가 맹렬히 싸웠던 상흔일 수도 있다. 나는 앞으로도 사는 날 동안, 어쩌면 죽는 그 순간까지도 수도 없이 그 축축함과 괴로움을 수치스러움을 기억해 낼 터이고 새롭게 나를 쑤시는 그 물체와도 직면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이 무섭다. 그리고 끔직하다. 그러나 어찌 생각하면 그것이 무슨 대수라는 말인가? 그런 순간,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는 허기와 요의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 올 테고 그 사이 울리는 무작위 전화 따위에 마음이 흐트러지게 될 것인데 말이다. 어쩌면 내가 살아있는 한 상처라는 것은 이런 자그마한 욕구보다 못한 것이다.
댓글 16개
박성실님, 자신의 내면을 그렇게 냉혹하리만치 엄격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기에, 그 동굴 속에서 길어 올리는 샘물-작품은 더없이 맑고 깨끗할 수가 있는 것이겠지요. 맑고 깨끗한 영혼이 하늘 쪽에 있을 거라는 다른 사람들의 흔한 얘기보다는 깊은 동굴 쪽에 있을 것이라는 성실님의 탁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성실님~~저도 같이 시체놀이 하고 있는듯 ^^ 섬세한 내면의 세계에 경의를 표합니다 늘 나라는 존재의미를 파헤치고 다시금 혼란에 빠지곤 하는데 성실님의 글을 읽으면서 또다시 나를 떠올리게 하네요~~
박성실님, 새해 안녕하시지요 시체놀이 잘 읽었습니다 소한 절기에 전국이 꽁꽁 얼어 맥을 못춥니다. 행운을 빕니다.
윤고방님의 댓글을 읽으면서 내가 엄격한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윤고방님 들려 주셔서 공감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가끔 삶은 석경을 보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떤 것도 명확하지 않으나 어렴풋이 어려있는 모습을 자꾸만 들여다 보게 되니 말입니다. 윤고방님, 추운날 건강 조심하세요. 또 뵙겠습니다.
네 이것이 비단 저만의 일이 아니었군요. 의식의 흐름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싶은데, 그것이 잘 되지 않습니다. 존재의 의미를 알아가는 것은 어찌 보면 평생 숙제일테지만, 참 어렵기도 하고 쉽기도 한 것 같습니다. 들려주셔서 감사하고요, 추운날 건강 조심하셔요.
네 시인님, 새해 안녕하답니다. 안녕하시죠? 시체놀이 잘 읽었다는 문장이 왠지 재밌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도하신 의미와 상관없이 이제서야 별 생각 없이 쓴 제목, 시체놀이라는 말이 눈에 들어와서 말입니다. 소한 절기에 전국이 꽁꽁 얼었지만 마음은 얼지 않는 하루 보내세요^^
성실님~! 혹 은희경 작가님의 ‘새의 선물’이라는 책을 읽어 보셨는지요? 12살 이후 성장할 필요를 못 느낀 주인공 진희는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자신을 분리시켜 나름의 인생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아주 재미있는 성장소설입니다. (개인적으로 이외수 작가님의 ‘들개’ 이후 충격을 받은 소설이었지요.) 시체놀이를 읽으며 문득 그 소설이 생각나더군요. 자유자재로 나 자신을 분리시켜 해학적인 사고로 자신을 이해하고 혹은 보호하는... 성실님의 문장력을 보아하니 웬만한 작가들 뺨이 얼얼하겠는데요.. 단편 소설에 응모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성실님 혹 술 하시나요?? 만약 하시면 요 아래에서 방금 미오새님과 전진주로 건배하고 왔는데 한 잔 같이 하실래요.. 성실님의 왕성한 문예활동을 위하여~!
하하 과찬이신 걸요^^ 다시 읽어 보니 문제 있는 문장이 많은데요. 이럴 때는 그냥 같이 '건배'를 외치면 될 것 같은데...그 전진주 말이죠. 불행히도 제가 술과 도박을 멀리하고 있으니... 그러나 청해 주신다면 언젠가 한 번은 함께 건배를 하고 싶습니다. 미오새님께도 말씀 드렸는데, 우리의 접속 코드는 우리의 삶이자 글입니다. 2011년에도 자주 접선할 수 있게 되기를 빌겠습니다. 아, 그리고 은희경 작가의 '새의 선물'이라는 책 한 번 읽어 보아야겠네요^^ 저의 글 앞에 정성껏 자취를 남겨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해요. 저는 마음의 건배를 외칩니다. 인구님의 2011년을 위하여!
*성실님.. 인간은 누구나 고독하지만, 그러나 극복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지요. 어느 설교자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들이 잘못을 저질르면, 교도소내의 감방같은 독방에 수감되는 징계를 받게되는데 파렴치한 잡범들은 이 독방에 격리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가장 힘들어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양심수나 사상범같은 생각의 고수들은 잡범들과 섞여 한 방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오히려 독방에 홀로 있기를 즐긴다고 하지요. 이렇듯, 잠시라도 홀로 있는 시간과 권태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쾌락에 빠져드는 사람들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자기 신념이 확고하지 않고서야 어찌 이런 시체놀이를 염두에 두기나 하겠습니까? 인간은 누구나 의미를 추구하는 본성이 있다고 하더니, 이웃집 새댁, 성실님의 욕구는 이웃집 아저씨, 미오새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제목은 시체놀이이지만 글의 주된 내용은 자신의 깊은 성찰 쪽에 가까운것 같아요. 왜냐면, 진정한 나그네는 자신의 이름 석자까지도 잊어버리는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는 말처럼, 진짜 시체놀이가 될려면 석고상처럼 몸의 자세를 굳히는 것은 물론이고, 의식까지 하얗게 비워내야 할테니까... 마치 신춘문예에 응모하기 위한 작품처럼 격조 높고 의식 있는 글앞에, 서투른 댓글은 오히려 누가 될것 같아 망설였지만, 이웃집간의 정 때문에 또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고 가네요. *위에 다녀가신 인구님과 성실님.. \"전진주\"를 마시면, 후진기어가 없는 비행기처럼, 후퇴없는 오직 전진만 계속된다고 하지요. 그 원리를 우리들의 삶에 적용하면 후회없는 삶이라고나 할까... 인구님이 권하는 \"전진주\"에 화답하는 뜻으로 모두 함께 건배~ 그래서, 내년 이맘 때 쯤 한 해를 결산할 때, 우리 모두 승자가 되어 있기를 바라면서..
아저씨! 다녀가셨네요 헤헤 근데 이게 다 무슨 말이랍니까, 격조가 높다던가, 자기 성찰 그냥 시체 놀이를 하다가 쓴 글인데, 의미부여가 이렇게도 된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제가 요즘 느끼는 것인데요, 왜 사람들이 무제를 선택하는지, 소란스러운 가운데 침묵을 선택하는지 알겠다는 말입니다. 글마다 달리는 댓글을 보면서 제가 생각하고 느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진리탐구 혹은 통찰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가만이 있으면 그것이 모두 제가 느낀 것인양 보이니까요. 물론 정말 고수들은 해당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요. 요 아래, 미오새님이 윤고방 시인님의 글에 달아 놓은 댓글을 보면서 또 감탄을 했거든요 완전 저의 마음이라서, 그리고 인구님과 담소를 나누시는데 알게 모르게 보이는 끈끈함이 참 재밌거든요, 저는 이런 것들에서 더 많은 삶의 면모를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일종의 수다를 더하자면, 저는 요즘 제가 지고도 행복해지는 사람이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왜 저는 항상 성공이라는 말에 집착하게 되는 걸까요? 그래서 경쟁심이 막 발동하면서부터 시작되는 문제가 얼마나 많은지 말이예요. 이런 상담조차 하려고 하니, 이쯤에서 멈추겠습니다. 미오새님이 아이가 둘 있는 이웃집 편한 아저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음이 넉넉해 지는 오후입니다. 헤헤
시체놀이... 저희 세대는 잘 모릅니다만 언젠가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지요 제가 잠시 주인공이 되어 꿈꾸고 가는 것 같습니다
시체놀이...제목을 보고 연상하기는 아마 휴일을 맞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누워계셨나보다...했지요. 그러나 그 이상의 심오한 글이 있네요. 정말 위 어느 분의 말씀처럼 마치 어디에 응모하고도 남을 글입니다. 좀전까지 저는 마음의 모든 플러그를 빼버리고 '시체놀이'를 즐겼습니다. 정말 모든 힘을 다 소진한듯한 근간이었거든요.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성실님.
ㅎㅎ 시체놀이..오랜만에 들어봅니다. 윙윙웅..윙윙움,, 하는 이음(耳音)이 들리시는 경지까지.. 명상(시체놀이)도 상당히 도가 높으신 모양..ㅎㅎ 인간은 보통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을 때 많은 상(想)과,,,상(像)을 짓지요. 그런데 박성실님이 짓는 상은 그리 밝은 상은 아닌듯,, 음습함, 수술대 그리고 관.... ㅡ.ㅡ.. 다음부터는 시체놀이 하지마세요..ㅎㅎㅎ 스케치 북을 한 권 장만하셔서 그림놀이라도..ㅎㅎ
어쩌면 저도 따땃한 햇살한테 속아 깜빡 잠이 들었었는지도 모릅니다. 꿈인듯 사실인듯,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국밥 꼭 먹어 보고 싶네요.
그러게요, 마음의 모든 플러그를 빼고 시체놀이를 즐기는 날이 많아지고 있어요. 그래서 왠지 위태로운 것이 어디론가 여행이라도 다녀와야 할 것만 같은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무리 천장 보고 누워 있어도 채워지지가 않으니, 감각이 무디어지는 어느날의 나의 실존은 무작위 전화의 당첨으로 확인된다는 것이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듭니다. 포아풀님, 많이 바쁘실텐데 꼬박꼬박 들어오셔서 이메일도 보내시고 댓글도 다시고... 바쁜 것도 때로는 활력소가 되지만, 그래도 건강 조심하셔요. 날이 많이 추워요.
선생님 다녀가셨네요. 하하 저는 스케치북을 여러 권 가지고 있고, 가끔 그림놀이도 한답니다. 이 글처럼 곧잘 추상화로 빠지기 일수이지만요. 그러나 저는 이 동굴로 들어가는 것이 싫지만서도, 그 때는 그것이 필요했지 생각합니다. 수술을 하고 비워내야 감각이 다시 돌아오니까요..... 그럼 날도 추운데 건강 조심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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