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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박성실 2011. 02. 09. 오전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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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 끝 715호에서 울음이 시작됐다. 울음이 복도를 달려 순식간에 복도에 있던 모든 사람의 몸과 마음을 정지시켰다. 딱 한 사람, 체구가 작고 흐물흐물해진 파마머리 한쪽으로 눌린 715호 보호자, 엘리베이터 앞에서 간병인들과 인사를 나누던 차에 울음이 그녀에게 와서 멎자 그녀는 병실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왼 손에 들려있던 성인용 기저귀가 자꾸만 그녀의 휜 다리를 친다. 휘청거리던 그녀가 결국 넘어진다. 기저귀를 놓지 않고 일어서다 또 다시 비틀거린다. 비둔한 기저귀가 무엇인가를 예감한 그녀를 막으려 몸싸움을 벌인다. 간신히 일어난 그녀 그만 기저귀를 잊고 어깨를 들썩이며 병실을 향해 걸어간다. 그때 병실에서 걸어 나온 가족과 얼굴을 마주하고 그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어떤 이들은 715호를 기웃거렸고 어떤 이들은 자신의 환자가 있는 곳으로 재빨리 사라졌다. 울음이 잦아든다.

날이 바뀌면, 슬픔 속에서 작은 소리가 들릴 것이다. 이제 자유다. 햇살마저 지루한 이 병동에서 그렇게도 원하던 자유, 흰 천 머리까지 끌어 올린 남자와 함께 그녀는 병원을 떠났다.

댓글 8개

정상근 2011. 02. 09. 오후 04:47

모든 인간은 언젠가는 세월을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넘어지지요. 저의 어머님도 그 세월을 무게와 싸우시면서 요즈음은 자주 서러운 눈물을 흘리신답니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의 우시는 모습을 옆에서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자면,, \"세상과 작별을 하는 과정을 지나고 계시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어머니의 눈물이 아픔으로 내 가슴에 닿기보다는 오히려 편안해지는 느낌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를..^^

포아풀 2011. 02. 10. 오전 02:01

죽음은 삶의 연장이라고 누구는 말하지만 그것은 철학일뿐 뭐라 정의할 수 없지만 슬픔이네요. 그러나 그것은 성실님의 글처럼 자유일지도 모르겠어요. 삶이 고뇌라고 한다면... 자유와 떠났다라는 말이 동의어처럼 들리네요. 홀가분하면서도 뭔가 아쉬움을 담는 그런 말이네요. 성실님이 요즘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고 계시는군요. 늘 뭔가를 하고 계시는 창의성이 참 멋집니다.

박성실 2011. 02. 10. 오전 09:45

아버지의 몸부림을 엄마가 함께 하고 계시죠. 엄마도 아빠도 멍들어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돌아서면 삶의 구질구질함에 대하여 보다는 희망에 대해서 이야기 하십니다. 오래된 병상에서 저는 불효라고 생각함에도 그 자유에 대해서 생각하고는 합니다. 그것은 정말 슬픈 것이지만, 인간이 어떤 형태로든 겪게될 것이겠지요. 정상근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박성실 2011. 02. 10. 오전 09:59

네 슬픔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한 편에서 들려오는 이 소리는 어찌해야 할까요, 처음에는 죄책감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런 저를 받아들여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새로운 형식을 시도하는 창의성이라고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상사가 출장을 또 가신 이유로, 책상 머리에 앉아 컴퓨터를 뒤적거리다 눈에 띈 글입니다. 삶의 한 장면을 포착해서 의미를 담아낸다, 뭐 그런 꿈이 저에게 있습니다만, 헤헤 저의 게으름이나 친절하지 못 한 습관은 글에서도 잘 드러나네요. 긴 병상 생활을 한 아주머니에 관한 이야기인데, 흐물흐물 풀린 머리 옆으로 눌려 있다, 엘레베이터 앞에서 간병인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비둔한 성인용 기저귀와 씨름한다, 가 대변해 줄 수 있을지 알았습니다만, 남편 왈, 부족해.병원 생활 안 해본 사람은 알 수 없는 코드라는 것이죠. 게다가 화자가 바뀌는 단락에서 비약이 심하다고...ㅜㅜ 창피해서 혼났습니다. 아래 시에 달린 박종영님의 댓글에 칭찬해 주시니.. 반성하게 됩니다..하셨죠? 저도 그렇습니다. 더 열심히 해 보아야겠어요.. 감사합니다!!

박종영 2011. 02. 10. 오전 10:54

715호 병동, 가족의 우환에 간병은 엄청난 슬픔과의 싸움입니다. 죽음앒에서 울지않는다는 것, 간병의 인내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비근한 예로 몇 년전에 친구가 사망하여 병원 장례식장에 조문을 갔을 때, 친구의 처와 그 자녀들이 모두 즐거운 표정을 보고 놀랐습니다. 3~4년간의 지루한 간병생활에서 해방되었다는 자유! 가 역력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현재 우리들이 인정해야 하는 세상의 내용 입니다. 잘읽었습니다. 박성실 문우님.

박성실 2011. 02. 10. 오후 02:28

아마도 그들이 즐겁지는 않았을 겁니다. 다만, 준비했던 작별에 홀가분한 기분이었을 수는 있을테죠. 그렇게 돌아간 삶의 자리에서 그들은 돌아간 아비와 남편을 기억하며 쓸쓸해 할텝니다. 이것이 세상의 내용인지 인간사의 내용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작게 내 안에 들려오는 그 소리를 지나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그것은 가족을 사랑하고 잃고 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일 겁니다.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윤리의식 그것보다 먼저 있는 생과 사에 대한 본질 말입니다. 시인님, 들려 주셔서 감사하고요^^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안개꽃* 2011. 02. 15. 오후 12:51

님의 글에 아픔이 몰려옵니다 아직도 병상에 누워계시는 엄마 모습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못난 자식들은 그저 지켜보고만 있네요......

박성실 2011. 02. 15. 오후 05:25

네 안개꽃님, 지켜 보는 과정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그 병상에서 유독 내 시간만 가지 않는 것 같다고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아빠는 그 때보다 회복되셨지만 여전히 몸이 불편하십니다. 그러면서 한 편, 더 힘들지 않으시고 가시면 좋을 것을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다가도 아빠의 존재가 무엇인지 새삼 느끼고 그렇게라도 살아계신 것이 감사하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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