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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앓이
너무 먹었다. 내 이 사이에 씹히는 고기, 그 육질이 어떠한지, 어떤 놈이었을지 그런 것은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나는 그저 먹고 또 먹었다.
언젠가부터 아랫배에 큼지막한 녀석이 똬리를 틀었다. 그것은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사무실에서 일을 할 때도, 친구와 이야기하거나 전철에서 멍하게 있을 때도 심지어 깊이 잠든 새벽에도 녀석은 신호를 보냈다. 녀석이 꿈틀댈 때마다 나는 아릿한 비린내를 느꼈고 그럴 때마다 입을 틀어막고 허리를 구부려야했다.
무엇 때문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대체 어떤 음식을 잘 못 먹었기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같이 식사를 했던 사람들을 추적해 가며 ‘괜찮냐’고 묻고 ‘괜찮다’는 대답을 돌려받을 때마다 나는 이 원인모를 배앓이가 너무 많이 먹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새벽부터 신호가 온다. 녀석이 몸을 뒤튼다. 나는 재빨리 허리를 구부린다. 입을 틀어막는다. 녀석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움직인다. 급하게 아래쪽으로 쏠린다. 나는 허리를 곧추세우고 괄약근에 힘을 준다. 식은땀이 흐른다.
지렁이는 종일 흙을 먹는단다. 오염된 흙을 먹고 분토를 토해 땅에 사는 생물을 이롭게 한단다. 그런데 내 몸 안에 사는 이 녀석은 분토를 토하는 것이 아니라 꿈틀 거리면서 뭔가를 배출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작은 몸으로 몸부림치다 결국 정화시키기를 포기한 것 같다고 할까? 그것들을 정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은가, 자연은 자정능력이 있다. 그러나 그 능력을 넘어서는 자극이 들어 올 때 병이 생긴다. 그래서 생태계도 병이 난 것이 아닌가? 생태계까지 갈 것도 없다. 내 몸이 그러니까, 자연이 그렇듯 그 일부인 내 몸은 요즘 이상하다. 아랫배에 똬리를 틀었다는 그 녀석이 결국 몸을 부지런히 꼬아 보지만 장은 그것을 온전히 응집시켜 배출하지 못하고 묽은 액체를 시원하게 토해 내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것은 잘 나오지도 않는다. 다만 그 물질이 썩어가면서 발생된 가스만 조금씩 간신히 내뿜을 뿐이다.
새벽에 시작된 움직임이 조금 나아졌다. 오늘도 나의 일상은 다를 것이 없다. 7시쯤 일어나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빠른 걸음으로 버스정류장으로 간다. 그곳에는 왼쪽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무리가 저마다의 모습으로 서 있다. 버스가 오면 우리는 이미 만원인 버스를 타려고 경쟁한다. 간신히 버스에 오른다. 그러면 나는 지나고 나면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는 사람들과 몸을 맞대고 한 정거장을 간다. 버스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터져 나온다. 전철역에 오른다. 개찰구를 지나 승강장에 돌입한다. 전철이 들어온다는 신호음이 울리자 사람들이 일제히 뛰기 시작한다. 그 대열에 합류한다. 숨을 고른다. 문이 닫힌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리를 찾는다. 자리가 없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누가 먼저 내릴 것인가? 유리한 자리를 선점하려고 두리번거리다 갈색 가죽 가방에 눈이 멎었다. 부드럽게 마모된 그 가방이 이상하게 따듯한 온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옆에 앉은 젊은 여자의 무릎 위에 올라앉은 카키색 가죽 가방이 보인다. 옆을 본다. 그리고 옆도 본다. 가방뿐이 아니다. 어느 남자의 등에 매달린 가죽 가방이며, 어깨에 걸맞게 둘러앉은 가죽 재킷까지, 이렇게 많은 가죽들이 여기에 와 있다는 것이 마냥 신기하다. 이 가죽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어느 나라의 어느 숲의 어느 동물의 가죽일까? 그들은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언젠가 여행관련 서적에서 보았던 가죽 만드는 동네의 썩은 내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동물의 가죽을 가져와 말리고 색을 입히는 것을 반복하는데, 그 냄새가 어찌나 고약한지 이방인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것이라고 했다. 가죽에 달라붙은 파리들의 움직임이 마치 본 적이라도 있는 듯 눈앞에서 꿈틀거린다. 살이 썩어 들어가고 마을 사람들의 무두질에 가죽이 탄탄해 진다. 갑자기 녀석이 몸을 튼다. 배를 움켜잡고 허리를 구부린다. 순간 눈앞에서 소들이 넘어간다. 포클레인이 돼지들을 구덩이에 빠뜨린다. 비명소리가 갈 길을 잃는다. 어깨 너머로 이야기가 들려온다. 소 1500마리를 키웠으나 모두 살 처분했다. 투자한 것을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 그러나 국가 보조금이 있으니 다음에는 구제역을 철저하게 예방해서 기업형 축산을 다시 해 보리라. 녀석이 주름을 잔뜩 오므렸다 편다. 날카로운 통증이 아랫배에서 시작됐다. 통증은 나를 뚫고 지나가지 않고 가슴으로 파고든다.
성경에 따르면 태초에 신이 있었고 신은 세상을 창조했다. 인간은 신과의 약속을 어겼고 신은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면서 그들을 위해 가죽옷을 만들어 입혔다. 쫓겨난 인간들의 삶에 악의 만연함을 보고 신은 대홍수를 일으켜 인간과 동식물을 멸한다. 이후 신은 동물들이 인간을 두려워할 것이며 인간에게 생명의 근원인 피채 먹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육식을 허용한다.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주며 기꺼워하던 아담은 결국 원죄 이후, 가죽옷을 입었고 죄는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바꾸었다. 원죄, 그것은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선악과를 범한 것이었다. 세상 살면서 보암직도 먹음직도 한 것이 얼마나 많은가? 다국적 기업이 사들인 인도의 지하수로 만든 콜라를 마시면서 그 달콤함에 지하수를 얻지 못한 토착민들의 가뭄은 쉽게 잊는다. 내가 돈으로 사들인 인도네시아와 브라질의 나무는 사하라 사막을 마르게 했고, 북극의 얼음을 녹게 했다. 하루에도 수도 없이 출력한 여벌 종이들을 소모해 가면서도 6명의 1명이 기아로 죽는다는 사하라 사막의 부족 이야기에는, 얼음이 부족해 사냥하다 빠져 죽는다는 북극곰의 위기에는 시큰둥하다. 내가 내 삶으로 불러들여 나의 편의를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 가죽은 누구의 것인가? 그들이 뛰어놀고 있어야할 초원은 어디에 있는가?
썩은 내가 풍겨난다. 비린내가 진동한다. 녀석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구역질은 멈추지 않는다. 배출하고 싶다. 이제 그만 이것을 멈추고 게워내고 싶다. 그런데 이 비릿한 소동은 끝날 줄을 모른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댓글 19개
내 신체의 이상증후에서 구제역까지 두루 통찰하는 글의 힘을 봅니다. 글을 읽으면서 잠깐 스친 생각, 너무 많은 것을 껴안고 고민하는 성실님께 시원스레 버리라고 말씀드리고 싶은 마음까지... 이 세상 돌아보면 생각할 것, 고민할 것, 심지어 다 해결해야 하는데 도무지 어느 것 하나 내 힘으로 되지 않고 세상과 한통속이 되어 가야한다는 것... 너무 많네요. 주말입니다. 오늘은 만사 다 잊고 오로지 성실님만을 위하여 느긋하게 보내보세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배설작용 즉, 자연스런 관장이 없으면 우리는 포만의 충격으로 터질것입니다 아주 극명하게 표현한 장 다스링믜 글에 머물다 갑니다 날씨가 풀리고 기온이 올라기니 활동하기에 좋습니다 좋은 시간 되십시오.
사촌이 땅 사셨나???...왜 갑자기 배 앓이를????..ㅎ 아랫배에 꿈틀 거리는 건 꼭 장에 문제가 있을 때 뿐만 아니라 알지 못하는 사이에 氣가 축적되어서 그러는거 아닐까요?ㅋ..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면 보이는 것 마다 조금씩 삐뚫어져 있을테지요. 피사의 사탑도 원래 제대로 서 있는 것인데 사람들의 눈이 삐뚫어져서 삐뚤게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이야기도 있던데..ㅋㅋ 먹은 것 때문이건 기가 쌓여서 뭉친 것이던 또는 세상사의 삐뚫어진 모습에 배알이 틀렸던..불편함을 다스리는데는 그저 가만 그 불편함을 마음으로 바라보며 타협을 하는 것이 최상일 듯 싶습니다^^
사소한 일 하나에서도 우리들은 사리를 깨우칩니다 깊고 의미있는 글 좋은 감상 되었습니다
어린왕자의 사하라 사막이 생각납니다. 부푼 꿈을 안고 지구로 여행 온 어린왕자가 일 년 동안 보고 느낀 것은 한 마디로 ‘실망’이었습니다. 숫자에 연연하는 어른들, 한 송이 꽃을 하찮게 생각하는 어른들, 시간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바보들, 결국 어린왕자는 똬리를 튼 뱀에게 물리기를 자처합니다. 죽음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해 B612 행성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양 한 마리만 그려 주세요.” 여기에 담긴 의미를 성실 님과 되새기며 물러가옵니다. 저 내일 대학로 가요.ㅋㅋ
사물의 이치를 또 한번 깨우치게 하는 성실님~~늘 건필하시고 건강하세요~~^^
네 포아풀님 말씀하신덕에 느긋한 주말을 보내려했습니다만, 일본 열도는 넋이 나갔네요. 도무지 어느 것 하나 내 힘으로 되지 않고 세상과 한통속이 되어간다는 것, 에 좌절감을 느낍니다. 그렇다고 시종일관 고민하는 것은 아니예요. 망각이라는 기제가 생활할 수 있도록 저를 놔 주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 글만 쓰려고 하면 생각이 많아져요. 나라는 사람 개인의 내면으로부터 지구의 신음소리까지 그 에너지와 상호작용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어져요. 언젠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죠. 그것은 계속 좋은 사회를 바라고 적극적으로 생각하는 것이었어요. 결국 변화를 실천할 수 있는 고리를 만들기 위한 사전작업이죠. 그래서 다짐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느끼게될 좌절감이나 답답함은 보지 못했어요. 꿈 꾸는 것을 잊어버린 눈이 마모된 천사상의 모습은 되고 싶지 않은데, 저는 그런 모습을 닮아가고 있네요. 다시 월요일입니다. 잠시 생각을 덜어내고 일을 시작해야겠네요. 목소리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연스러운 관장이라, 생각도 그런 것 있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그것이 망각인가요? 포근해졌지만 스산한 날이네요. 일본 열도에도 평안이 깃들기만을 바랍니다.
하하 재밌습니다. 삐뚫어진 세상사와 삐뚫어진 인간, 기의 축적 기를 다루는 체조나 요가를 보면 기를 단전 부근에 모으는 것부터 시작하죠. 심지어 한의에서는 들숨과 날숨을 이용해 보하거나 치료하거나를 오가죠. 인간이 살면서 가장 기본적인 호흡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점이 참 흥미로워요, 그래서 流를 중요하게 여기는가봐요. 이상 증상이 왔을 때 어혈을 풀어주고 흐름을 활성화 해 준다는 원리, 양의로 이야기하면 혈액공급률을 높여서 영양공급을 높이고 내장이 활성화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그래서 면역체계를 높이는 것, 뭐 그쯤 될까요? 이 세상이 돌아가는데, 자정작용이 원활하기 위해서는 역시 흐름이 중요한 걸까요?
고맙습니다. 최근 들려주시는 시에서도 좋은 쉼을 얻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양 한마리만 그려 주세요. 아, 이 얘기가 이렇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습니다. 인구님, 감사합니다. 대학로에 오시는군요...^^ 벌써 오셨을라나? 하하 좋은 한 때 되세요.
감사합니다. 안개꽃님, 날이 많이 따듯해졌어요. 항상 따듯함이 풍겨나는 안개꽃님에게 별다른 봄 소식이 필요할까 싶지만, 즐겁기만하지 않은 이 봄날에 그래도 좋은 하루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실님.. 일상의 식탁에 올려진 고기에서는 무감각한 모습을 보이던 사람들이 그 가축들이 구제역으로 땅에 묻히는 모습을 보면서 측은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너무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의 먹거리를 위하여 가축이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도축장에서 전기충격으로 도살된 후, 가죽과 살, 뼈와 내장등으로 분류되고 샅샅히 해체되어, 식용으로 할수 없는 극히 일부분만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보면서, 어쩌면, 구제역으로 신체의 훼손없이 온전한 모습으로 매장되는 것이 가축들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잘된 일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릿한 소동을 겪고 있다는 성실님의 글에서 느끼는 것은... 동물들도 기쁨과 슬픔을 느낄 수 있다는데, 도살되기 전 도축장의 공포가 스트레스가 되어 육질에 축적되고, 그 육류를 섭취하는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먹거리에 따라 사람의 정신도 영향을 받는다는 어느 보고서도 있었던 것 처럼. 외국여행을 다녀 온 지인으로 부터 선물로 받은 반지갑이 있어요. 제조국가는 스페인, 재질은 소가죽, 그리고 대중적인 상표의 남성용 반지갑이지요. 그런데 이 가죽이 투우장에서 인간과 혈투를 벌이다 희생된 소의 가죽은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탓인지, 가끔 이 지갑을 열 때마다 투우의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듯 싶어요. 그럴 때마다 소의 영혼을 달래 듯, 지갑을 쓰다듬어 줍니다. 제목에서 오는 첫 느낌과 글의 처음 부분을 읽으면서는 입덧과 배앓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유쾌한 상상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아뿔싸 ! 그게 아니잖아요.. 성실님의 감각이 살아있기에 나은세상 좋은사회를 만들어가고 싶은 욕구도 생기는 것이겠지요. 성실님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다섯 사람만 있었다면 옛날 옛적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리고, 만지는 것 마다 금이 되었다던 마이다스의 손처럼, 생각을 집약시켜 글로 표현해내는 솜씨가 놀라워요.
언젠가부터 생명과 먹걸이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어요. 아직 풀지 못한 숙제예요. 제 친구 중에 채식주의자가 있어요. 왜 채식주의자가 됐냐고 물었어요. 원래 고기를 싫어했는지도 궁금했고요. 그랬더니 친구가 말하더군요, 자신은 주식이 고기래요. 그런데 어느 세미나를 갔다가 일년에 인류가 먹어치우는 숫자에 대하여, 그리고 한 사람이 일년에 먹어치울 수 있는 수에 대하여 들었다네요. 그래서 결심했다고요. 소나 돼지가 불쌍해서가 아니라 과다한 육식이 불러온 폐해에 자신의 몫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요. 오존층을 파괴하는 가장 큰 요인이 육축이라죠. 자연스럽지 못한 기업형 축산이 원인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말씀하신 것 처럼, 칼 날 앞에 한을 가지고 죽은 고기의 화가 우리 몸에 쌓인다는 이야기도 많이 하죠. 그러면 식물을 먹는 것은 잔인하지 않은가에 대한 대답, 그리고 자연의 약육강식의 논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직도 갈팡질팡입니다. 인간이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조화롭게 더불어 살아가는 것은 어떤 수위에서 지킬 수 있는 것인지 말입니다.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에 필요했던 저같이 생각만 많은 사람은 아니었을 거예요. 실천적인 사람이 없었던 것이겠죠. 저는 왜 이렇게 용기가 부족한 걸까요? 날마다 두려움 뒤에 숨어 있는 저를 봐요. 한결같은 격려와 공감 감사드려요. 미오새님.
험..험..한 수 갈쳐드려야 긋다..ㅋ 댐에 수위가 높아야 강에 물이 유유하게 흐르게 할 수 있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기던 혈이던 맥이던 몸에 있는 흐름이 여여하게 흐르게 하기 위하여는 기가 강해서 단전에 구슬모양으로 한뭉텡이 가지고 있으면 심신이 다 건강해질 수 있지요. 호흡에 의한 기는 단전에 모이고 정신에 의한 기는 미간에 모을 수 있어요. 절에 불상에 보면 미간의 중간지점에커다란 점이 하나 있지요? 그걸 心眼이라고 하는데..정신을 단전에 기 모으 듯 모으면 三世(과거 현재 미래와 우주)를 한번에 다 볼 수 있답니다.ㅋㅋ 불가에선 그걸 一隻眼(일척안-외눈이란 뜻)이라 하지요...화룡정점이 그림 속의 용에게 생명을 불어넣듯 미간에 심안이 생기면 우리네 마음 속에 신의 생명이 생기는 거지요. 에고..너무 많이 갈챠드렸네..돈받고 갈챠드려야 되는디...쩝...ㅎㅎㅎ..ㅋ
ㅎㅎ 감사합니다. 무료 수강을 했으니 저는 드릴 것이... 이 웃음밖에...헤헤 흐르기 위해서는 댐이 넘쳐야 하는 원리로, 기를 모아 넘치게 하여야 흐름을 여여하게 할 수 있다. 기를 모아 심안이 탄생하는 것, 마음 속 신의 생명... 그래서 명상이라는 것을 하는가요? 이 세상의 기를 모은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그것은 한 개인의 심안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인가요? 공존과 연대 한 개인이 추구하는 것이 오직 개인의 내면이고 그것을 통해 사회변활를 꾀하는 것은 반쪽일뿐이라고 생각해요. 개인과 사회의 변화를 동시에 추구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데..... 질문이 또 생기네요. 무료수강을 한 김에 질문까지...헤헤
부처님이나 예수님께서 현실세계에 계실 때에는 세상이 좀 덜 복잡했지요. 그래서 한 분의 聖人이 탄생하시면 그가 바꾸는 세상의 범위가 참 컸습니다. 즉, 성인 한 분이 세상의 기를 다스릴 수 있었던 거지요. 그런데, 현대문명 사회는 인구 뿐만 아니라 그 동안 사람들이 발전시켜온 문명의 思考들이 너무나 복잡해서 지금 왠만한 대학 졸업자의 수준의 지식이면 옛날 시절의 성인이 홀로 깨달은 그 모든 지식의 수준에 범접할 만큼 많은 양의 지식을 개개인이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물론 정신적인 부분은 특별한 깨달음의 과정을 거친 후에야 가능하겠지만,,,따라서, 聖人 한 두 분으론 세상 모두를 공존의 틀 속에서 살게 하는 것이 힘들지요. 그렇다고 성인을 무더기로 탄생시키는 방법도 없는 것이고,,(무더기로 성인을 탄생시켜보려는 노력이 조금 있기는 합니다.ㅎ) 그리고 무엇보다 현대 사회는 정신적가치 보다는 물질적가치를 우선적으로 삶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때문에.. 따라서, 박성실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인간의 정신적인 가치(진리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들끼리 그 가치를 공동으로 추구하고 공동으로 발전시켜서 계발된 자산을 공유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할 거에요. 그런데, 그것을 행해야 하는 대표적인 집단이 종교집단인데 현실에서는 그 종교집단마저도 이익단체 압력단체화 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라, 현실적인 문제가 매우 심각한 상태 입니다. 따라서, 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르네상스시대의 종교개혁 같은 대 변혁이 한 번쯤은 인류사회 전반적으로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충돌과 같은 적대적인 종교운동이 아니란 전제하에서..인류적 대재앙이 닥치기 전에..\" 만약에 다음 질문이 있으면 그땐 유료로 질문 받습니다..ㅋㅋㅋ
*성실님..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보다는 메탄이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메탄은 소의 트림과 방귀에서 대량 발생된다고 하지요. 인간의 먹을거리를 위해서 대량으로 사육되고 있는 소가 역설적이게도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되는 셈이지요. 닥쳐올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고 현재의 안락에 빠져있는 모습을 빗댄 \"가마솥속의 개구리\"라는 이야기가 있지요. 과격한 표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의 미래가 이와 같을지도 모르겠어요. 육식을 즐기면서 지구 온난화로 서서히 공멸하는... 그러나, 채식과 육식을 유난스럽게 구별하는 것보다는, 균형잡힌 건강을 위하여 자신의 식성과 적당하게 타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적당이라는 표현이 자칫 우유부단해 보이기도 하겠지만, 그 적당한 선을 지키기가 사실은 더 어려운 것 같기도 하지요. 국어사전마다 일치 되어 있지 않아서 정확한 설명이 어렵지만, 인터넷 사전검색에는 \"먹거리\"는 \"먹을거리\"의 잘못된 표기라고 되어 있네요. 그리고, 성실님이 쓰신 \"먹걸이\" 는 아예 검색이 되지 않는 단어같아요. 별걸 다 참견하는 오지랖넓은 아저씨처럼 보일 것 같아서 못본 척 넘어가고 싶었지만, 친절한 이웃집 아저씨가 되고 싶은 마음에 그만... N극과 S극이 있는 자석은 내재된 성질만으로도 나침반같은 용도로 쓰이는 걸 보면, 성실님 마음에 품은 뜻만으로도 세상을 변화시킬 때가 오리니, 생각만 많을 뿐이라고 스스로 괘념치 마시고, 마음에 품은 뜻, 변하지 않도록 굳은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지켜가시기를...
미오새님, 먹걸이라고 제가 썼는지도 몰랐네요. 역시 또 오타를 내고 말았어요. 먹거리라고 쓴다는 것을, 그러나 그마저도 틀린 표현이라니...ㅜㅜ 저는 참 여러가지 면에서 허술하네요. 남편이 아침에 비행기를 탔답니다. 이번 일을 통해서 깨닫는 바가 많습니다. 그것은 공존에 관한 것이네요. 모두가 살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 욕심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 그런 것 말이죠. 내 남편만 살린다고 되는 문제는 아니니까요. 그 갈등이 저를 놓치 않더군요. 인간이 살아가면서, 공의 혹은 정의와 사랑의 경계에서 갈등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럴 때 어떤 선택이 옳은가, 그것은 참 어려운 선택인 것 같습니다. 매 순간에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굳은 의지와 신념을 가지고... 그러나 연약한 저라는 존재의 한계는 늘상 올테죠. 그리고 무엇이 옳은지조차 알 수 없는 날들이 더 많은 것 같아 좌절감에 시달리는 날들이 많습니다. 미오새님, 무슨 일인지 몰라도, 미오새님께 댓글을 쓰다보면 자꾸만 길어지고 구구절절 말이 많아집니다. 이만 줄여야겠습니다. 만물의 아름다움이 지구상에 마음껏 창연할 수 있기를 바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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