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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다시 생각하며

윤고방 2011. 03. 26. 오후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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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을 다시 생각하며>


천안함이여 말하라
- *인당수에 고(告)함 -



1


난데없는 꿈속이로구나

인당수 아련한 꿈속이렸더니

물결 사나운 바위섬 아래

웬일이냐 차가운 암흑 속이로구나

꿈이란 원래 아름답고 따스하련마는

눈먼 아비 사랑하는 마음이 한없이 뜨거우련마는

비원(悲願)이 아직 풀리지 않은 탓이더냐

차라리 너의 꽃피우지 못한 처녀 가슴 속

차갑더라도 심청이가 품어 주는 아름다운 꿈속이기를


거친 바람, 차가운 물결에 휩싸인 채

온 세상 바다 억만 근 쇳덩이에 눌려

그대들을 덮고 있는 무량한 어둠의 무게가

수 천만 우리들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멀건 대낮이,

가위 눌려 숨 막히는 칠흑 밤중이 벌써 며칠이더냐

당신들과 우리들이 품고 사는 꿈이 다르지 않으니

이리도 차갑고 무거운 악몽 속에

우리가 함께 던져졌구나


당신들이 생전에 지녔던

푸른 꿈은 그 얼마나 눈부셨더냐

창망(滄茫)한 물굽이마다 넘실대던 그대 모습

자랑스런 아빠의 꿈이 얼마나 가슴 벅차고

사랑스런 남편의 꿈이 얼마나 애틋이 그립고

아들의, 형님의, 오빠의 꿈은 또 얼마나 탐스러웠더냐

청이의 어제 눈물과 그대들의 오늘 꿈이 어찌 다르랴

어버이를 향한 꿈과 어버이의 나라를 향한 꿈이 어이 다르랴


2


그리하여 바다여

사나운 바람, 차가운 물결이여

이제 그들을 풀어 주시라

비원의 자물쇠를 풀고 놓아 주시라

당신의 손끝에서 곧 따사로운 봄길 열리듯

그들의 못다한 꿈길 열어 주시라

아직 다 풀지 못한 눈물과 한숨

모두 후련하게 씻어 주시고

아직 다 불태우지 못한 사랑

모두 가득 채워 주시라


자애로운 하늘이시여

바다의 혼백으로 다시 태어날 그대들이여

당신들을 죽음의 깊은 수압에서 건져내지 못한

우리들의 무위무능(無爲無能)을 꾸짖되

차갑고도 너그러운 눈물로 용서하시라

단지 태만한 자 있거든

다만 교활한 자 있거든

물결 뒤에 숨어 웃는 자 있거든

결코 용서하지 마시라


정녕 눈 감지 못한 그대들이여

천만 근 가위꿈에서 이제 깨어나라

지엄한 귀대 명령마저 훌훌 벗고 가벼이 나오라

정든 천안함 밑바닥 좁은 통로를 헤엄쳐 나와

지상의 꿈에서 천상의 꿈으로 이어진 환한 길로,

백옥같이 눈부신 치맛자락 날리며

청이의 아름다운 꿈길을 따라

천 년의 연꽃으로 피어나거라

너울너울 장하게 걸어나와서

만고불후(萬古不朽)의 지킴이 되거라




*인당수에 고함
; 천안함이 침몰한 백령도 인근 해역은 고대소설 ‘심청전’에서,

효녀 심청의 전설이 깃든 물결 거센 바다임.


< 중앙일보 2010. 4. 14일자 게재>



댓글 10개

김경환 2011. 03. 27. 오후 11:03

천안함 46용사와 한주호 준위의 삼가故人의 명복을 빕니다.

포아풀 2011. 03. 28. 오전 10:07

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네요. 자칫 잊고 갈 것을 다시 상기시켜주시네요. 감사합니다, 윤고방 선생님.

정상근 2011. 03. 28. 오전 10:54

아까운 젊음들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논쟁들이 그들을 편안하게 잠들지 못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해야 하는 것인지.. 그들의 죽음은 과연 역사에서 어떤 교훈을 남길 것인지..

안개꽃* 2011. 03. 28. 오후 12:57

벌써 1년이라는 세월이 무심하게 지나가 버렸네요 콧잔등이 시큰하여 읽다 조금 쉬었다 다시 읽었습니다 젊은 그들의 명복을 빕니다.... 마음이 자꾸만 아파옵니다...

양미선 2011. 03. 28. 오후 09:36

숙연해집니다. 천안함 46용사들의 참사...벌써 1주기가 되었네요... 용사들의 희생정신은 온 국민 가슴속에 살아있습니다. 다시는 이 땅에 이런 슬픔이 없어야겠죠...

윤고방 2011. 03. 28. 오후 10:27

불현듯 그때의 슬픔이 다시 복받쳐 재탕이지만 올려 보았습니다. 오늘의 이름으로 오늘의 시를 영전에 바쳐야 되는 건데...... 김경환님, 포아풀님, 정상근님, 안개꽃님, 양미선님 들의 성함을 오랜만에 문학의 향기 자판 위에서 뇌어 봅니다. 고맙습니다.

우복희 2011. 03. 30. 오후 01:05

그날의 충격이 되살아 납니다. 무심히 세월속에 잊혀져 가는데 벌써 1년이 되었네요..젊은 영혼들의 명복을 빌면서 회장님의 글 잘 읽고 갑니다.

박성실 2011. 03. 31. 오전 11:01

꿈이라면 원래 아름답고 따스하련만은, 가슴이 아픕니다. 암담함, 개탄이 느껴지네요. 그래도 그들의 영혼을 노래해 주는 한 사람의 시인이 있어 그들이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실 이 노래마저도 슬프지만, 말이죠.

문희 2011. 04. 07. 오전 09:02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슬픔, 자연이 만들어 내는 슬픔, 그 위에 또 사람이 가증시키는 슬픔들, 한반도와 이웃에 이런 슬픔이 계속 벌어지는군요. 역사는 이렇게만 흐르지는 않지만요.

윤고방 2011. 04. 11. 오후 10:41

우복희님, 박성실님, 문희님의 방문에 감사 드립니다. 엊그제는 영주 문학기행, 어제는 하루 종일 낮잠으로 비실거리다가, 오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삽질에 고무래질, 고단한 농부로 지냈기에, 짧은 글로만 여러분께 인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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