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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환상)

주몽의 활 2011. 06. 13. 오후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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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독서 습관은 동화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드 넓은 세상으로 날개를 저어면서 자란다. 아주 어릴 적부터 가공의 이야기들을 읽어서 그런지 아이들은 소설과 동화나 현실을 오랫동안 분간하지 못한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때라고 기억된다. 여름휴가차 해운대를 갔었다. 아이들은 처음으로 바다를 보았다. 발 밑에서 출렁이는 바닷물은 파랗다고 하기엔 너무 더러웠고 온갖 찌꺼기와 무언지 모를 기름이 둥둥 뜨는 물을 바라보면서 인어공주와 심청이를 생각했나. 얼마나 깊이 들어가면 용궁이 있을까요? 실제 한 번 들어가서 알아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아이들은 나에게 속삭인다. 아이들에게 들은 나는 아연실색하면서 동화는 지어낸 이야기라고 일깨워 주었다. 나는 아름다운 아이들의 상상의 세계를 순간에 '허무'로 무너뜨렸지만 아이들은 허상의 세계에서 바로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온 듯하다. 중3이된 아이들은 읽고 상상하고 꿈꾸었던 세계와 전혀 다른 세상을 살면서 그래서 그런지 너무 힘들어 하는 모습들을 자주 보이곤 한다. 나는 어린이를 위한 아동문학이 따로 있다는 현실을 아름답게 생각하지 않는다. 안데르센 생존 당시에도 빛나는 그의 명작들을 향해 '아이들을 현혹하는 조잡한 글'이라고 비난한 평론가를 상기하지 않더라도 나와 아이들의 경험만으로도 있지 않아도 좋을 문학의 장르라고 물리치고 싶다. 아동문학가는, 어린시절에 읽는 동화나 동시의 영향으로 꿈을 키우고 용기를 북돋운다고는 하지만 꿈이란 욕심으로 변질되기 쉽고 용기란 공격이라는 형태로 바뀌기 쉬운 감정이기도 하다. 꿈이란 무언가? 보다 돋보이는 나를 바라는 것이 아닌가. 어쩌면 그것은 다른 사람과의 차별을 원하는 것과 같은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의 편견이 너무 비약된 것이라고 인정하더라도 어린 시절에 키운 꿈이란 동화의 세계에서는 쉽게 이루어지지만 현실에서는 대단히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 평생을 소진하면서 살아야 할지 모른다.거기다가 꿈이라는 것은 '자아실현'이라는 다른 말로 변하면서 자신을 채찍질한다. 그러나 자아실현은 순순히 이루어지는 만만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제도가 차단하고 경쟁자가 밀어낸다. 그렇게 좌절하면서 어른이 된 사람은 내 부모와 자식도 잊은 채 \"내가 왜 사냐?\"고 묻는다. 왜 살아야 하는데? 인간은 부모를 공경하고 자식을 키워야 하는그 한 가지 이유만으로 살아도 충분하지 않을까. 이루어지지 않는 환상과 용기에 집착하기보다는 그 한가지의 도리에 맞추어 사는 게 나을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인간의 도리를 배우고 인성의 기본을 다져야 할 나이에 꿈과 용기를 키우느라 마냥 어린이로 남는다. 인생에서 적어도 10년은 성숙을 멈춘 채 꿈을 먹고 산다. 그러나 자신을 아직 어린이니까 어른이 이해해 줘야 한다고 심리적으로 버티는 아이와 자신도 빨리 어른을 이해하는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아이의 성숙해 가는 속도는 매우 다르다. 어른이 되어가는 속도를 늦추는 이유가 아동문학 탓이라고 하기엔 억지일 것이다. 가족제도와 교육제도, 그리고 사회제도가 어린이의 성숙을 억제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많은 이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동문학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크다는 사실을 느낀다. 우리 조상들은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이면 서당에서 천자문부터 시작해서 명심보감, 대학 등을 읽게했다. 거기서는 단지 한자라는 문자만 깨우치는 것이 아니라 깊은 뜻이 담긴 문장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인성을 다듬고 도리를 깨달았던 것이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보다 빠르게 성숙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동화보다는 실제 이야기를, 동시보다는 윤동주와 이육사 시대의 시를 만나게 하고 시경에 나온 옛시를 소개 한다. 또 내가 아는 범위 안에 있는 '논어'의 구절을함께 읽는다. 또 도종환, 김수영, 안도현등 시인들의 시나 현실에 일어난 현실을 읽고 토론하기도 한다. 그러면 아이들은 당연히 그 나이만큼 이해하면서 받아들인다. 쉬운 언어로 썼지만 아이의 머리로는 따라 갈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는 어른이 쓴 동화나 동시보다 좋아한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동문학을 보는 나의 시각은 더욱 부정적으로 변한다. 그렇게 의견이 멀쩡한 아이들을 위한 아동문학이 따로 있다는 사실에 찬성하고 싶지 않게 된다. 피터팬이나 신데렐라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무슨 증후군과 신드롬이라고 일컫는 병도 없을 것이다. 세상 어린이들을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아동기'라는 시기로 분류하고 그들의 문학을 따로 두는 것보다 사물에 눈뜨는 아주 어린시절에 가공의 이야기를 처음 만나게 하지말고 모든 이치를 바로 깨닫게 하는 책을 읽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내가 당시에 손쉽게 구할 수 있었던 이야기책을 읽지 말고 할아버지 앞에 꿇어 앉아서 천자문을 읽었다면 아이들의 인생은 훨씬 달라졌을 것 같다.

댓글 2개

김문숙 2011. 06. 16. 오전 03:07

저의 친정 모친은 옹난파 선생님 봐요린을 한국 최초로 연주하실 때 피아노 반주를 하시면서 저 비싼 봐요린을 사 줄수는 없어도 어린이의 천진한 목소리 속에 노래를 꿈을 만족의 소망과 위로를 심어 주시겠다 작정하고 한국 동요 보금에도 일생 노력하셨읍니다 노인대학을 가셔셔도 노인들이 어릴 적의 동요를 부르면서 소외된 가족 사랑을 어느정도 완화 시킬 수 있다고 늘 역설 하셨지요 어린이의 꿈을 기억하면 손주손녀들과 사이가 좋고 그들을 더 사랑하게 되니 며느리나 사위들에게 더 소중한 존재가 되실 수 있음을 자각 하셔야 한다고 --졸리는 시작이라 맘대로 글이 안되네요 ㅎㅎㅎ

주몽의 활 2011. 06. 25. 오후 12:05

댓글들이 지워지니 참 이상하네요. 댓글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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