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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 담장을 지나며

김봉길 2011. 06. 20. 오후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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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 담장을 지나며


   야반 도주 연습하듯 내려가는 이층 계단이 꼭 마흔 한 개란 사실을 기억해 낸 것은 아침마다 지나치던 담장을 톡톡 본 후였다. 잘 다녀오라는 아내와 아이들의 기다란 소리를 엇몸으로 자르던 골목 틈새. 담장에 매달린 나팔꽃이 제 얼굴을 곳곳이 세우고 내 곁눈을 찌르는 순간이었다.

흥, 담장이나 끼고 얼굴이라 뽐내는 주제에!

뭐, 뭐라구? 무슨 소리야? 이건 내 땅 내 집이라구. 너희가 보이는 곳마다 말뚝 박고 집 짓고 사는 거나 마찬가지라구. 뿌리 하나 반반하게 내리기 위해 자 보라구. 이 손이며 발, 머리 허리는 또 어떻구. 닿는 곳이면 끌어안고, 코 앞 어느 것이든 눈을 부라려 내 씨앗 것이라며 흘리는 이 땀과 피를 보라구. 밤마다 새 날 기다리는 일에 지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세우는 고개. 머리카락 움켜쥔 채 숨죽이는 내 몸뚱어릴 보라구. 울지도 웃지도 못해 떠도는 이슬이 찢겨진 얼굴 적시는 것쯤 뭐 대수겠어. 멈출 순간 찾지 못해 땀과 피 대신 움먹거리는 이슬이 훌쩍훌쩍 흘러 다니는 몸뚱어리를 어찌 숨 길쭉하게 내쉬고 내 것이라며 아침마다 한 번 제대로 볼 수 있었겠느냐구. 바라건대, 내 얼굴보다 찌그러진 그대 얼굴이나 잘 보라구.

나팔꽃마다 떨어질 번호를 새겨두었다. 꿈벼랑에서 비틀 먼땅 보던 버릇인양 삼키는 침이 꿈틀거렸다. 햇살 질끈 밟았다. 둘 혹은 셋으로 부서지는 그림자.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이빨 끙 물었다. 그래도 손잡아 앞서는 그림자. 나팔꽃도 처음엔 혼자였었다라는 흔적이 갈라진 담장 상처마다 딱딱한 먼지로 쌓이던 아침이었다. 

댓글 1개

김현배 2011. 06. 20. 오후 08:38

꿈벼랑에서 비틀 먼땅 보던 버릇인양 삼키는 침이 꿈틀거렸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도 앞으로 나갈 수 밖에 없는 존재의 상황을 잘 보여주는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존재는 꿈꾸며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거릴 수 밖에 없네요 좋은 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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