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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바람
고추바람
“거기서 뭐해욧!\"
앗. 들켜버렸다.
무안함이 가슴에 돌돌 회오리친다.
강원도 광덕산 광덕계곡 깊숙한 그 곳.
야생화를 따라 들어섰던 내가 자신의 고향땅에 우뚝 솟은 복수초 한 송이를 뿌리채 캐고 있었다.
야생화촬영을 하던 다른 무리가 우리 일행을 힐끔거리며 혀를 찬다. 나도 이러지 않으려 했는데, 정말이다. 여기저기서 피어오른 노오란 그 꽃이 너무도 탐스러워 '한 송이쯤이야' 하며, 살아있는 생명을 지우려한 것이다. 아름다운 것을 집에서도 즐기려 했던 이기심이다.
풀꽃사랑은 이런 것이 아닌데, 내가 바보다. 지천의 겨울냉기를 이겨낸 설련화 복수초, 하늘을 날지 못하는 박새, 연인을 부르는 보랏빛 얼레지, 신선인양 말뚝박은 앉은부채, 바람결에 나부끼는 갸냘픈 너도바람꽃, 꿩의 바람꽃들이 눈에 띈다. 살얼음을 넘어선 들풀들은 수줍게 피어올랐다.
내가 봄이 되어간다.
무심히 걷다가는 내 발굽에 밟혔을지도 모를 너무나도 작은 꽃들을 애써 비켜간다. 확트인 산자락 황홀경 안 계곡 바위 밑에는 아직 굵은 고드름이 매달려 있다. 차가운 물 속에 손을 담근다. 청량함이다. 햇볕을 쬔 내 마음 하나를 또 담금다. 해맑음이다. 내 몸 속의 허기가 말간 물에 여과되어 생기로 채워졌다. 거칠었던 마음이 투명해지고 따사로워졌다. 내곁에 살며시 피어있던 바람꽃 하얀 송이에 빠져든다.
미쳐도 좋을 세상이다.
가슴에 맺힌 맑은 이슬은 하늘거리는 꽃 그림자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에 아름다운 겹눈을 만들어주었다. 땅에 솟은 수선화를 마주하면 내가 노랑꽃이 되고, 산그늘에 놓인 목련을 마주하면 내가 팡팡 터지는 폭죽이 되어 목련 송이송이 따라 하늘로 차오른다. 진한 봄꽃. 하늘 꽃, 땅 꽃, 아련한 마음꽃은 봄을 빛으로 이끈다.
봄과 연애하는 내 마음을 향해 얼레지 꽃 한송이가 나를 보며 얼래리 꼴래리 놀린다. 커다란 연두잎맥에 쌓인 작은 보랏빛 미치광이 풀 한 잎을 입에 문다. 신경마비를 일으킨다는 독초라서 조금 먹어도 멍해진다는데, 입꼬리를 살짝 올린 내가 괜시리 맹해진다.
미쳐가는 봄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스러져가는 겨울들풀마저 그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 눈 속에 피어났던 하얀 꽃맥의 강인한 겨울풀, 하양 모데미풀도 마른 풀섶에 앉아 햇볕을 쐰다. 아직도 못다한 꿈을 지으러 봄싹으로 일어서는 새순 새싹의 움직임, 그네들의 생의 순환이 가만가만하면서도 활기차다.
내가 봄이 된 듯 황홀하다.
계절은 폭설이라는 징검다리 하나를 더 건너뛰며 이제사 겨울을 떠나왔다. 뜸들이던 4월의 봄은 색동옷을 입고 단숨에 행차한다. 새순마다 꽃등을 밝히며 나를 먼저 보라고 재잘대는 봄. 눈을 감으면 콧망울로 들어서는 발랄한 공기, 귓가를 어른대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가슴을 타고 졸졸 흐른다. 그 봄은 내 어릴적의 소풍갈 때, 졸망거리며 웃고 떠들던 아이다. 나뭇가지마다 꽃망울을 열고 마냥 신나서 함박웃음이다.
봄의 서정, 그 황홀함에 대하여 나만의 그림액자를 만든다.
꽃내음을 끝없이 흩뿌리는 그네에 올라타고 마음의 눈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연두빛 휴식이 되는 봄. 저기 산에 숲을 앉히고 종달새 두어 마리 생강나무 가지 끝에 놓아 꽃물을 들이고 여기저기 야생 풀향을 뿌린다.
화려한 꽃들은 조용히 봄빛으로 엉겨든다. 그러나 예쁜 꽃빛들은 결국 그 특별함을 잊고 일상의 시듦으로 돌아선다. 액자 속의 핀 꽃들이 지는 꽃 흉내를 내며 울상이다. 시름시름 고개를 푹 숙이 들풀들의 몸이 메말라가고 얇아져 간다.
‘봄내음의 황홀함이 지나친 것일까.’
울창한 숲에는 젖은 낙엽, 마른 잎이 뒤섞여 새순이 땅을 뚫고 오르지 못한다. 욕심껏 그린 내 그림은 울긋불긋한 그림감옥에 갇혀 평형을 잃어버렸다. 선과 선을 연결하여 면을 채색하고 그 면마다 빽빽히 꽃을 앉혔더니 빈자리를 잊었다.
여백, 나는 그 자리를 남겨놓지 않았던 것이다. 서둘러 여기저기를 지운다. 다시 자유로운 선이 보인다. 숨을 쉴 수 있는 여유를 찾는다. 듬성거리는 나무 숲길일수록 긴 햇살이 투명하다.
갸륵한 봄이다.
풀꽃 말발도리 무리는 구겨진 철조망사이로 자신의 꽃말인 “애교”를 피우며 눈부신 흰빛으로 여기저기 솟구친다. 깽깽이풀은 거친 세상을 향해 “안심하세요” , 나를 향해 ‘쉿, 안심하세요’, 스스로의 꽃말을 수없이 외치며 사랑의 눈빛을 쏘아댄다. 여기저기 빈자리는 마른 풀숲사이로 현호색속인 자주괴불주머니의 싹이 서서히 움트며 사랑주머니를 키우는 중이다.
구태의연하지 않은, 따뜻하고 늘 새로운 봄. 더디게 왔지만 수많은 꽃망울을 자꾸만 피어올린다. 바로, 봄의 태아다. 그 봄의 카리스마는 새순의 신선함으로, 꽃송이의 화사함으로, 고추바람을 이겨낸 당당함으로, 황홀하게 피어나는 꽃이다. 바로, 새벽녁의 붉디붉은 해다.
내가 봄이다.
미친 듯 아름다운 봄. 미쳐도 좋을 세상.
자연, 그 황홀함에 대하여 나만의 수채화를 만든다. 또 다른 봄꽃에게 벗인양 내가 다가선다. 나만의 봄을 써내려 간다. 겨울 봄 여름 가을. 봄은 ‘겨울이라는 계절의 문’을 활짝 열어 제낀다. 선과 선 사이에 시간이라는 간격을 채우고 경계선마다 삶의 변화라는 나만의 야생화를 기다린다.
다가서는 여름. 봄꽃의 앉은 부채는 빨간 열매로 익어 갈것이고 꽃범의 꼬리는 바람부는대로 하늘로 향한 꼬리를 흔달어대며 맴맴 돌 것이고, 참좁쌀풀은 사이좋게 다닥다닥 붙은 자잘한 노란꽃망울을 수없이 메달고 수줍게 웃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꽃처럼 낮은 목소리로 피어날 것이다.
그렇게 또 나는, 한 계절을 지나 드디어 여름이 될 것이다.
* 고추바람/ 살을 에는 듯 독하게 찬 바람
* 야생화의 향연/ 야생화 얼굴 하나 또 하나를 클릭하여 주실래요?
글과 영상/ 유민자드림
댓글 6개
환희와 감동의 봄의 태양. 이에 맞추는 봄꽃들의 자랑. 역동적인 새벽과 아침을 담은 그들은 진정 이 세상의 희망이 아닐까. 그러함으로 새로운 시대 여름을 여는 것 같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유민자님 심성처럼 고운 글 고운 사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사색의 향기 임원이 되신 후로 더욱 바쁘신것 갘습니다 건강 관리도 잘 하시구 요 따끈따끈한 유민자님의 새 서적이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다니기를 유민자 님의 향기처럼 아름답게 펴지기를 축춴합니다
가끔은 야생화 그늘속으로 숨어요. 쉬어가는 자리이지요. 땅밑에 깔리는 작디작은 새순으로 일어서, 꽃순을 피워올린 그 야생화들. \"세상의 희망\"을 심는 꽃 미소가 계절을 열어요. 진정, 김현배님 말씀이 맞는걸요. ^_^
들판에 있어야 할, 야생화의 얼굴. 오늘은 그 야생화 꽃빛을 함께 맡으려해요 행여, 김문숙시인님께서 그 꽃빛에 취하지는 않으셨는지요? 토요일 그 자리.< 내일은 괜찮을거야, 라온하제> 졸고의 첫 수필집을 드리게 되어, 제가 더 영광이었어요. ^&^
독하게 찬바람을 맞고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알리고자 산화한 많은 사람들 그런 상황들 그러한 사람들에게 부끄러워서 도저히 견디기 힘든 내자신에게 순수하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것이 낫다.\" 라는 심정으로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 저의 마음이 저의 양심이 저에게 그렇게 시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을 만드세요.^^*
오늘은 왠지, 졸필의 제가 몹시 찬바람인 '고추바람'을 뒤로 한채, 나무가지가 움직일 정도로 선들선들 부는 바람인 '건들바람' 곁으로 다가섭니다. \"자신들에게 처한 그 상황\". 삶의 희.로.애.락은 늘 정지선에 있지않고 뱅그그르 재미나게 돌지요. 혹시요. 늘 정겨움으로 다가서는 주몽의 활님. 행여 삶이란? 조용조용히..... 어제의 슬픔 하나를 지우고 행복 하나를 건드리며 기쁨을 줍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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