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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브리카이 1

박성실 2011. 07. 08. 오전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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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브리카이 1
= 박성실
내가 앰브리카이를 기억하는 것은 순전히 그 병원에서 만났던 보호자 때문이었다.

2003년 8월, 인도 타밀나두주 앰브리카이는 더웠다. 황색 모래바람이 사막에만 부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도레라지 박사가 내려 주고 간 그 병원은 몇 채의 구멍가게와 가정집들이 들어선 마을 한편에 홀로 우뚝 서 있었다. 색색의 옷을 두른 사람들을 잔뜩 구겨 넣은 버스와 노란색 오토택시들이 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갈 때 마다 병원은 지표면을 타고 올라오는 열기 속에 환영처럼 하얀색 건물에서 마른 모래를 겹겹이 뒤집어 쓴 화석으로 변해가는 것 같았다. 차에서 내려 병원 입구에 남겨진 나와 키리바티에서 온 쓰와니와 서사모아에서 온 마우토는 병원에서 마중 나온 직원과 인사를 나누다 병원 입구까지 차가 밀고 들어오는 바람에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인도에는 불가촉천민(the untouchable)이라 불리는 이들이 있다. 인도는 카스트제도가 아직도 통용되는 나라다. 표면상으로 제도는 없어졌다고 해도, 실체는 인도인들 안에 여전히 존재한다. 카스트제도는 사람을 브라만(승려)부터 크샤트리아(왕, 귀족), 바이샤(상인), 수드라(피정복민 및 노예, 천민)까지 4계급으로 구분하며, 인도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다른 신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다른 계층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나는 인도에 가기 전, 이 이야기를 들으며 불합리한 제도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미묘한 환멸감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동정심을 느꼈다. 그러나 불가촉천민, 곧 달릿(Dalit)이라고도 불리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도착하고 나서야 안 사실이지만 달릿은 카스트제도의 최하층인 수드라에도 속할 수 없는 부류를 말한다고 했다. 이들은 인격을 존중받아야 마땅한 사람이 아닌, 말 그대로 닿기만 해도 부정해 지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는 또한 다른 계급과 같이 자손에게 전승되는데, 태생이 불가촉천민인 사람들을 제외하고도 힌두교외에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은 달릿이 된다고 했다. 따라서 달릿이 다수 거주하는 앰브리카이에 기독인 의사들이 설립했다는 그 병원 앞에 기독교 자원봉사자로 서 있을 때 나는, 밝은 피부에 작은 눈을 가진 달릿이 되어 있었다.

  그러고 나니 병원에 가기 전 방문했던 달릿 마을이 생각났다. 달릿 출신으로 지금은 목사이자 교수가 된 도레라지 박사님은 본인이 태어나 자란 동네라고 하면서 우리를 안내했다. 마을은 좁은 길을 따라 들어간 후미진 곳에 있었다. 쪽방 같아 보이는 시멘트 집들이 촘촘히 늘어선 그곳은 어스름이 짙어지는 시간에도 좀처럼 밝아지지 않았다. 그러자 안내하던 박사님은 마을 한편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모닥불 주변으로 둘러 선 그들을 훔쳐보고 있자니 누군가가 몸 깊은 곳으로부터 소리를 끌어올렸고 이에 여럿이 함께 북을 치기 시작했다. 도레라지 박사님은 어릴 적부터 달릿 마을의 사람들은 불빛 하나 없는 암담한 밤을 춤과 노래로 시작하고 마무리 해왔노라고 중얼거리듯 말해 주었다. 모닥불이 바람에 번뜩거릴 때마다 마을은 술렁이고 그들의 삶이라는 것은 내가 차마 닿을 수 없는 저 너머에 있는 듯 아득하게 느껴졌다. 달릿 마을에는 가정 내의 화장실은 고사하고 공동화장실도 없다고 했다. 고작 있는 것이 요즘 생겨났다는 공동 수도시설이었고 전기가 들어온 지도 불과 몇 년 되지 않아 전기시설을 가진 집이 몇 가구 되지 않는다 했다. 놀라운 것은 10억 인도인구 중에 달릿이 차지하는 비율이 무려 25%나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랜 세월 그들은 제도에 속한 이들이 정해 놓은 구역, 곧 그들이 거주하고 통행하는 지역에는 거주할 수도 다닐 수도 없었으며 노동에 대한 합당한 보수를 받을 수도 없었다고 했다. 그뿐인가, 몇 년 전에는 달릿 출신 중 한 사람이 달릿 국민의 지지를 받아 지역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는데 대낮에 길에서 암살되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경찰에서는 조사조차 하려 하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고 했다. 마하트마 간디 이후 1955년 차별법이 금지되었고, 최근 들어서 교육받은 달릿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사회적 위치가 신장되었다고 해도 그들은 여전히 ‘핍박받는 자’라는 뜻의 달릿으로 스스로를 부르고 있었다.

 


댓글 9개

별안개 2011. 07. 08. 오후 07:00

아련히 떠오르는 인도에서의 카이스트제도의 기억. 가이드를 하던 그는, 누군가의 업신여기는 시선을 느꼈는지 자기는 크샤트리아 계급이라며 눈을 부라리던 그 청년이 떠올려지는 지금이예요.^^ 박성실님의 \"엠브리카이 1\"덕분에 그 때의 그 시간속으로 들어갑니다. 왠지 핍박을 받아도 햇살처럼 웃던 그 나라의 신비로움속으로 들어가요.

박종영 2011. 07. 09. 오전 05:45

인도의 카스트제도 즉, 4계급으로 구분하는 나라 인도, 앰브리카이1 을 읽고 많은 세상을 배웁니다. 좋은글 감사드리며, 장마가 중부와 남부를 섭렵하며 귀찮게 합니다. 눅눅한 시간에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김현배 2011. 07. 09. 오후 04:51

앰브리카이의, 인도의 불평등, 그것의 의미, 진실은 무엇일까? 묻게 된다. 카스트 제도의 진실은 있기나 한 것인가? 정말로 내새와 전생은 있고, 그들이 믿는 대로 우리 존재는 흐르는 것인가? 중요한 것은 내세와 전생이 있고, 그것이 이어진다 해도, 우리는 그렇게 강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모두가 아픔이 있고, 고통이 있다. 그렇다면 그 고통을 이겨내게 하는 사랑, 그런 것을 막아서는 안되는데 ... 카스트 제도는 사랑을 막고 있다. 그러니 카스트제도는 자체적으로 진실이 없을 뿐더러 더 큰 진실을 막고 있는지도 모른다. 생각하게 하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박성실 2011. 07. 11. 오전 11:44

신비로움, 어쩌면 그 단어가 인도를 매력있게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왠지 저도 그 청년을 본 것 같네요.

박성실 2011. 07. 11. 오전 11:44

며칠 비가 계속 될 거라고 하는데, 오랜만에 뵙습니다. 건강 유의하세요. 눅눅하지만 마음만은 뽀소하게요^^

박성실 2011. 07. 11. 오전 11:45

카스트제도가 사랑을 막고 있다. 그런지도 모르죠.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날 되세요.

미오새 2011. 07. 11. 오후 12:06

*성실님.. 인도 빈민가, 처절한 삶의 모습들을 화면을 통해 볼 수 있었던 \"슬럼독 밀리어네어\"라는 영화를 보셨는지요? 세밀하게 표현된 글에서 그 영화의 장면들이 오버랩되는 느낌이였습니다. 엠브라카이를 다녀오신 2003년 쯤이면 성실님은 무척 앳되어 보였을 것 같은데, 대한민국을 동방의 빛이라 노래했던 타고르처럼, 그 곳 주민들도 성실님을 동방에서 온 천사의 모습쯤으로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신에게 점수를 따는 방법은, 그의 창조물을 사랑하는데서 부터 비롯된다는 걸 성실님은 알고 계시는 것 같아요. 그 부조리한 계급제를 태생적인 한계처럼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습은 운명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비굴한 체념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불의에 저항할 수 있어야 인간이라는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지요. 지금 시간이 12시 5분 쯤 되었나요. 점심 맛있게 드시고, 창밖의 비오는 풍경 바라보시며 커피한잔의 여유도 즐겨보시길...

박성실 2011. 07. 11. 오후 02:28

커피 한잔 하면서 들어와 보니, 미오새님이 다녀가셨네요. 슬럼독 밀리어네어 봤어요. 그 아이에 대한 기사도 읽었죠. 인간의 파렴치함과 인간 사회의 부조리함에 몸서리를 치다가도, 내가 똑같은 그런 인간이라는 것 앞에 한 없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있어요. 인도는 저에게 그런 곳이었답니다. 이야기는 한동안 계속 될 것임으로 더 말하면 안되겠네요. 그냥, 예전에 써 놨던 기록을 뒤적이다가 왠지 이 글을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네요. 참고로, 2003년도에 혹자의 말에 의하면 저는 앳되고 예뻡답니다. ㅋㅋㅋ

김문숙 2011. 07. 14. 오전 12:40

앳되고 예쁜 시절에 비록 잠간의 시간이지만 험한 세상을 맛보셨고 체험해 보셨네요. 앞으로 더 길어진다고 하셨는데 2편부터 읽었는데 이제 3편 기다릴께요 요즘비움의 철학이 유행인데 저는 오히려 이 글에서 떠나고 또 떠나고 또 떠나갔던 이스라엘 민수기의 시절를 생각합니다 약속된 땅 그 땅을 향하여 대오를 짓고 질서를 잡으며 떠나는 민족성 그 고독과 외로움을 향하여 친척과 이웃에 안주하지 않고 오히려 전능자를 바라며 떠남으로 오히려 더 고독해 지는 민족 아마도 그것이 오늘 강력한 유대인의 실질적인 세계 경제 혹은 문화의 실권자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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