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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얼마나 컸을까

박동수 2011. 08. 14. 오후 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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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얼마나 컸을까 - 어느 날 푸념에서 - 내가 얼마나 성장 했을까 나는 늘 그렇게 생각을 하곤 한다 하루아침에 부쩍 늘어난 나팔꽃 넝쿨이 담장을 넘어서는 일이라던가 밤사이에 활짝 피어버린 해바라기의 긴 목이 해를 향한 시간 나는 얼마나 컸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것을 알아 저 해바라기처럼 태양을 한 점 부끄럼 없이 처다 볼 수 있을까 생각 한다 어느 날 먼저 가버린 친구가 내게 말 했다. 술은 왜 먹는 건지 아냐고 나는 술을 잘 못한다 그 친구는 매일 술기운에 사는 것 같아 여러 번 내가 왜 술을 그렇게 마시는 거야 했기에 그 답인 것이다. 술을 많이 먹는 것은 술기운에 의지하여 내가 얼마나 자랐는지 알고 싶지 않기 때문 이란다 내가 얼마나 자란지 알면 그만큼 많은 것을 해야 하고 아니면 그만큼 작아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두렵거나 그것이 부끄러워서 술을 마사는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맞는 말인 것 같다 세상엔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것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우리의 얼을 주워야 하는데 줍는 방법을 모른다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우리 백의민족의 예(禮)를 주워와 사람들의 가슴 가슴에 꽂아주고 태양을 바로 보게 해야 하는데 그 방법을 모른 단다 그래서 술을 먹어 버린 단다 그래서 못난 친구라고 했더니 어느 날 나 먼저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저 혼자 가버렸다 지금은 어디 주막에서 한잔을 하는지 아직도 그 방법을 모를까 아니면 영영 찾을 수 없는 그 방법 찾아 어느 허공을 해매고 다닐까 나는 아직 내가 얼마나 성장 했는지 모른다 친구의 아픔을 가슴에서 느끼지 못해서 일까 아 태양은 쉼 없이 노을을 향해 달려가는데... - 淸鶴 박동수 - />

댓글 7개

김현배 2011. 08. 14. 오후 06:22

성장이 아픔인 이유는, 술을 마시는 이유는, 저 깊은곳으로 돌아가려는 의지는 아닌지. 맨 처음 있던 곳에 있으려는 자아의 몸부림이 아닌지. 그럼에 처음은 약간의 향기를 내어주다가, 노을과 함께 영원히 밤에 묻힌다.

김정흠 2011. 08. 14. 오후 06:27

자신안에 있는 두려움이 가장 큰 적이지요. 두려움은 남이 주는 것 보다 자신안에 있는 것이 더 크고 그것이 가장 나 자신을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술>이란 망각하게 해주는 것 같지만, 한 순간 잊은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지 모르지만, 정작 의식이 깨어오면, 의식이 명석해지면, 문제는 여전히 정면에 보입니다. 그 문제와 정면으로 부딪혀 깨지든가 깨부수든가 , 둘 중 하나죠. 언젠가는 반드시 그 문제와 정면으로 부딪혀야 하니까요. 저는 깨부수는 쪽을 선택합니다. 말짱하고, 아주 아주 또박또박한 정신으로! 정말 정말 멋지고 , 정말 정말 아름다운 시입니다. !

김문숙 2011. 08. 14. 오후 06:59

살음이란 성장을 내포하고 성장이란 성숙을, 그리고 영원에 이르려는 염원, 그 본성을 가지는 게 아닐까요? 아이들의 키 자람, 성숙한 후배들의 삶의 자리, 그들이 훌적훌쩍 넘어온 세월들을 셈해 볼 때, 그때에 나의 키 자람표가 당신 껀 예 있소 하고 가슴 속으로 디밀어 내는 성적 표가 있지요, 가나다 이건 수우미량가이건 백분율이건 -----울거나 웃거나 씁쓰레 했거나 흐믓 했거나 -우리가 받았던 그것들 이전에 이미 누구든 자기 스스로를 점검하는 나름의 견적표- 마음 속에 차곡차곡 자동화 되는 기록들이 았을 테지요 성장은 어쩌면 출생보다 더 중요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 또 다른 성장의 한 모습이 있읍니다 \" 그 분과 함께 다시 남의 선언\" 그것을 늘 새롭게 되새기며 삶을 다졌던 이들, 그것으로 삶의 진로와 향방을 역전시킬 뿐만 아니라 , 그 결국 얼마나 풍성하게 자신의 놀라운 삶의 월척들을 거두어 들였던 지요!

박동수 2011. 08. 14. 오후 08:45

내가 영원히 있어야 할 곳. 그곳은 내 영혼의 평안을 주는 곳. 모두가 그곳을 동경하고 가려는 노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곳이 우리에게 주어 졌지만 성경에는 인간은 그곳을 버리고 탈 에덴을 했다는 겁니다. 오직 개적인 욕망으로 말입니다. 즉 그것이 탕자의 비유입니다. 자신의 자람을 과신한 타락한 아들의 이야기. 그러나 어느날 스스로의 성장을 깨닫는 날 돌아가려 했지만 부끄러움이 앞서서 돌아 설 수가없다는 탕자의 비유. 그 중심에 서 있는것이 우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망각을 하는 일에 집중을 했지만 돌아가야 하는 곳은 바로 그곳 저 높은 곳이 겠지요 김현배님 감사합니다. 언제나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고마움........

박동수 2011. 08. 14. 오후 08:52

가장 두려운 것은 자신이라고 합니다. 깨어나고 또 몽롱해 저봐도 언제나 스스로의 적에겐 벗을날 수없는 것이 사람이지요 그래서 성서에 가장 현명한 왕은 솔로몬 왕이라고 합니다. 시편을 쓴 왕 현명한 왕이였지만 그는 기도 중에 가장 많이 구한것이 지혜라고 합니다. 어떤일이 부닥쳐도 지혜있는 자는 영혼의 중심을 읽을 수 있는 눈이 생긴다는것이지요 김정흠님의 혜안이 즉 또록또록할 수있는 정신이 바로 그 지혜가 아닐까요 부럽기도 하고요. 감사 합니다. 김정흠님

박동수 2011. 08. 14. 오후 09:10

인간의 삶이란 무엇을 위하여 자라나는 성장의 고리일뿐인 듯 합니다. 나팔꽃이 하늘을 향해 커가 듯 해바라기가 해를 향해 커가 듯 그것이 삶의 한 단면이라면 어디엔가 부끄럼없이 도달하여야 할 곳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곳이 우리가 온 처음의 그곳 아가페사랑의 원천이지요 그래서 사는 동안의 거듭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기를 몸부림 한다고 생각이 됩니다 기독교에서 말 하는 바로 \"중생\"이지요. 잃고 버려진 것들의 애착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적 삶을 깨닫는 다면 한점 부끄럼 없는 영안의 영역을 볼 수 있&#51248;지요. 즉 존재의 원천을 말 합니다. 그곳에는 있어도 없어도 풍성함이 있는 곳이 아닐까 생각 합니다. 김문숙님 감사 합니다. 물론 저는 종교인이긴 하지만 이곳에서는 종교적 편향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혜안으로 보는 생각을 그저 푸념처럼 늘어 놓을 뿐입니다. 좋은 날 되시기를 바랍니다.

별안개 2011. 08. 15. 오후 03:07

가끔은 마음이 취하고 싶을 때, 키 큰 나무가 늘어선 가로수 길을 걸어요. 걷다가 나무그늘에 편히 앉아, 하늘을 우러르지요. 우리가 살면서 꼭 마음으로 우러러야 할 것이 있다면, \"한국의 얼\"이고 \"우리 백의민족의 예(禮)\"인 듯합니다. 아, \"태양이 노을을 향해 달려가는데...\" , 박동수님의 신비로운 시어 앞에서 , '생각의 키'를 키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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