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글

게시물 상세보기

뚜슬랭

박성실 2011. 08. 16. 오후 05:28
3779

  2002년 2월, 붉은 모래바람이 가슴으로 날아들었다. 우리가 골목에 나타나자 길에 섰던 이들이 저마다 손을 내밀었다. 어떤 이는 다리가 없고 어떤 이는 팔이 없다. 살아남은 시간과 살아갈 시간의 무게, 그 두 가지만이 그들 안에 남아있는 듯 했다.

  1975년 4월 친미 론놀 정권에 반하여 크메르 루즈의 지도자 폴포트가 구데타를 일으켰다. 이는 1979년까지 3년 7개월간 계속되었으며 ‘농민천국’을 건설한다는 미명 아래 도시인들을 농촌으로 강제이주 시키고 사유재산 및 종교를 폐지했다. 당시 이주 과정에서 질병과 굶주림에 많은 이들이 죽었을 뿐 아니라 전 정권에 협력했다는 명목으로 지식인, 정치인, 군인은 물론 외국인, 노동자, 농민, 부녀자, 어린이까지 무려 총 인구 약700만 명 중 200여만 명이 학살되었다. 크메르 루즈는 사람들을 손쉽게 죽이기 위해 생매장 하거나 우물에 한꺼번에 200명가량을 집어넣기도 하였으며 농기구를 사용하여 쳐 죽이거나 비닐봉지를 이용해 질식시켜 죽이기도 하였다. ‘킬링필드(대학살의 희생자들을 한꺼번에 묻어놓은 밭)’라고 불리는 이 학살은 이미 20년을 넘어서고 있었지만 그 흔적은 그들 안에 오롯이 남아 있었다.

  뚜슬랭 박물관은 적막했다. 크메르 루즈는 발그레한 여고생들의 학교를 감옥으로 선택했다. 글월이 읽히던 교실이 지식인을 고문하거나 가두는 곳으로 개조되었다. 여고생들의 생기가 넘치던 뜰은 부지런히 겁에 질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실어 나르는 길이 되었다.

박물관에는 고문할 때 사용했던 도구들, 감옥과 고문의 흔적, 당시의 사진과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 속에서 고통 속에 앙상하게 타들어 간 사람들의 눈빛을 보았다. 그리고 발굴된 사체의 유골로 만든 캄보디아 지도를 보았다. 지식인 학살, 800명 의사 중 760명 사망, 545명 판사 중 541명 사망. 킬링필드 한 웅덩이에 400구의 시체 발견, 이런 종류의 통계수치로는 다 느낄 수 없었던 그 무엇이 지도 앞에 섰을 때야 가슴을 옭죄어 왔다. 그들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이들을 죽일 수 있었을까? 그들은 왜 죽어야 하는지 왜 고문당해야 하는지 또는 왜 고문해야하는지 죽여야 하는지 알고 있었을까? 사진 속 얼굴들이 나를 바라본다. 고문 침대에 누워 있는 갈비뼈, 허공을 향해 아이를 안은 여인, 두려움으로는 감출 수 없는 아름다운 소녀의 눈동자. 어디서 본 것일까?

언젠가 6.25 전쟁에 관련된 자료를 찾기 위해 사진집을 사두었다. 책 속에는 6.25 전쟁 중의 사람들의 모습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피난, 가족 잃은 이들, 타 버린 마을 앞에 쭈그려 앉은 이들, 부상으로 낙오된 병사, 그 안에 있던 것은 공포도 미움도 아니었다. 그것은 참혹한 현실 앞에 드러난 빈 마음, 절망이었다. 어떤 이는 북쪽에 살아서 죽고 어떤 이는 남쪽에 살아서 죽고, 어떤 이는 어떤 이의 아는 이라 죽고, 어떤 이들은 내가 죽지 않기 위해 그들을 죽였다. 그들이 모두 이념을 알고 이상을 꿈꾸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다만 살아남았고 살아가야했다.

  우리는 여전히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 그리고 휴전이라는 이름은 여전히 한반도에는 평화가 없음을 상기시켜준다. 임진강 너머 보이던 북한의 마을, 수해 당한 북한의 연평도 포격, 수도 없이 들려오는 북한에 대한 세대 간 의견차... 우리는 모두 알고 있는 걸까? 내가 움직이고 있는 방향과 내 의사결정의 영향력, 그리고 그것이 역사 속에서 가지게 될 무게, 책임감. 이 모든 것에 마음이 어지럽다. 사람들의 갑론을박이 귀에 감긴다. 나는 이 순간, 그 날의 조용한 뚜슬랭의 마당을 떠올린다. 박물관을 돌아 나오는 길, 한 어린아이가 마당 귀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이를 모를 풀에게 손을 뻗고 있었다. 그 아이의 웃음에는 근심이 없었고 아이의 손은 사심 없이 따듯했다. 아이의 보드랍고 통통한 살결을 떠올린다. 그리고 비무장지대에 잠든 지뢰와 함께 피어 있는 이를 모를 꽃들과 풀들을 떠올려본다.

댓글 11개

김정흠 2011. 08. 16. 오후 06:44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나라가 있어 내가 있고 나라가 있어 민족이 있고 나라가 있어 단체가 있고, 민족과 사회가 있어 내가 있다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줍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만세 우리나라 만세 ! 길이 길이 아름다울 대한민국 만세 ! 자신을 반성하게 해주는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문숙 2011. 08. 16. 오후 11:00

이글 언제 본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까딹을 잘 모르겠군요 바무장과 풀 풀꽃 그리고 어린아이 통통한 살결 -----잔인한 세월은 이제 그 그림자까지 다 씻어져야 겠는 데 살아 남았다는 사실 그것이 사람을 감격 하게 하지요 그리고 살아가야 하는 것 --그것이 우리 모두의 삶의제목인데 그들의 것은 억수로 큰 대문자 여야 겠지요

별안개 2011. 08. 17. 오전 09:35

평화로울 때, 평화의 소중함을 모르는 듯해요. 이렇게 새삼스러이 \"킬링필드\" 앞을 서성이며 나의 그림자를 뒤돌아봅니다. 나라도 세상을 보는 시선을 \"사심없이 따뜻한\" 아이의 손을 닮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참된 글속에는 마치 붉은 모래바람에 제 가슴으로 휙리릭 달려듯한 좋은 묘사의 글..... 매력적인, 박성실님의 언어집!

박성실 2011. 08. 17. 오후 02:38

네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딱히 드릴 말씀이 없네요..^^ 궃은 날씨에 건강하세요.

박성실 2011. 08. 17. 오후 02:44

네, 저도 어디서 본 것 같은 글이예요. 히히 아마도 소재가 단순하고 많이 회자된 것이라서 그런가 봐요. 저는 그런 분쟁지역에 가거나 그런 영상을 보면 항상 그런 생각을 하게 되요. 살아남았다.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어쩌면 그들이 풀어야할 삶의 숙제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러나 시인님 말씀하신대로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이 아주 큰 대문자여야 할 거예요. 박종영님이 언제가 삶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신 시가 있었는데 삶을 아름답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관조와 여유가 저에게도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었어요. 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어제 모임은 어떠셨나요? 생각만해도 즐겁습니다.

박성실 2011. 08. 17. 오후 02:47

네 망각이라는 놈은 제 삶을 점령하고 있어요. 평화롭게 살아가기란 치열한 싸움과 갈등 중재 그리고 화해가 필요하다는 이면의 진실, 그것을 회피하고 싶을 때도 많은 것 같아요. 별안개님, 어김없이 칭찬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제가 계속 글을 쓸 수 있도록 힘을 주시는 것 같아 에너지 충천입니다. 오셔서 나누신 시간 감사드리고, 비오는 날들에 건강하셔요.

박종영 2011. 08. 18. 오후 12:38

분단국가에서의 이념투쟁 보수와 진보세력의 양극화가 팽배한 대한민국에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수성은 별론으로 하고라도, 혹평하여 좌파, 우파의 논쟁이 있어서는 안되겠지요 6.25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 진보성, 즉 좌파가 투철한 사람들을 향하여 북한에 가서 살아보라고 하면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소담한 글에 잠간 즐거운 마음 내려 놓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김정흠 2011. 08. 18. 오후 12:51

*^^* 씨..익.. 똑같은 대한민국 사람이니까.. 쿡쿡..

박성실 2011. 08. 18. 오후 04:38

저는 개인적으로 다른 의견을 나누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탕에는 우리는 함께 가야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공존이라는 것을 모색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요즘들어 갑론을박이 저를 어지럽히는 것은 그 본질이 흔들렸기 때문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어디쯤에 마음의 깃발을 꼽고 서 있어야 하는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저 자신을 보기 때문입니다. 비난으로 변명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동족 상잔의 비극, 그것은 어쩌면 우리 안에 아직도 잠재되어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나눠주신 마음에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인님

주몽의 활 2011. 08. 19. 오전 12:09

\"갑론을박이 저를 어지럽히는 것은 그 본질이 흔들렸기 때문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어디쯤에 마음의 깃발을 꼽고 서 있어야 하는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저 자신을 보기 때문입니다.\" 정말 안타까운 사연들이 많죠. 예전에는 저도 우리의역사를 보고 진실이 거짓에 묻혀 여기까지 왔다는것을 알았을때 무지 흥분하고 개탄한적도 있었습니다. 어차피 살아가는 것이 꼭 진실만이 보여지는 것이 아니거든요. 우리나라의 역사만이 아니라 이세상 역사가 다 그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라 생각됩니다만 양극단은 실제로는 없는 것입니다. 위선僞善 또는 위악僞惡인 경우에만 상정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사회란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구조도 아니며 동시에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상태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대립과 모순이 있으며 사랑과 증오가 함께 존재하는 세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실상을 최소한 미화하거나 은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다음 글은 『맹자』 「진심 하」편盡心下篇에 있는 구절입니다. “내가 향원鄕愿( 마을 사람들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 을 싫어하는 것은 사이비似而非를 증오하기 때문이다. 자주색(紫)을 싫어하는 것은 빨강색(朱)을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진심어린 댓글에 머물다 갑니다.

박성실 2011. 08. 19. 오전 09:41

네 주몽의 활 님. 문득 이념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하여 생각이 미쳤습니다. 저는 신자유주의가 싫습니다. 인간을 값으로 매기고 자본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상, 그러나 돌아보면 이 사회 안에서 성장한 저 자신의 가치관도 그러하다는 말이죠. 남모르게 사람을 가치로 매기고 내 자리가 어느 계급쯤에 속해 있는지를 계산하고 가치를 환산하고 다른 이들에게 그것을 요구하고, 부익부빈익빈을 경멸하지만 나는 부에 속하고 싶은 마음.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면 등장하는 폭군 포조와 노예 럭키의 모습이죠. 말씀하신대로 양극단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른 의견이 받아들여지고 그 안에서 사리사욕을 조금만 떨치고 진정한 공존을 모색하는 일이 내 생활과 우리 사회에 일어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