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우주기원론과 창조신화)
- 2. 지난날의 자화상 - \"눈발이 휘날리는 추운 겨울날이었다. 영주의 성에서 산하나 너머에 있는 한적한 시골동네가 발칵 뒤집어졌다. 동네의 장로가 한 여자를 마녀로 지목하자, 영주의 병사들이 엉겁결에 마녀가 된 젊은 여자를 붙잡아 지하의 돌 감옥으로 끌고 갔다. 재판을 받기 전에 해오던 절차대로, 가장 추악한 인간의 모습인양 오르크(Orc) - 「반지의 제왕」에서 인간에게 적대적인 종족 - 가면을 뒤집어쓴 듯 험상궂게 생긴 심리관은 처음부터 혹독한 취조로 필요한 조서를 받아냈다. 인정머리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그들에게 잔혹한 고문을 당하여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그녀는 냉기가 살점을 에일 듯 파고드는 차가운 돌바닥에 쓰러져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가끔가다 환기를 위해 여는 환풍구로 들어온 한 겨울의 모진 바람이 벌거벗겨진 그대로 엎어진 채 짚 한 오라기로 겨우 몸을 가리고 있는 그녈 향해 날카로운 칼끝처럼 매섭게 덮쳐왔다. 그녀는 잠시 동안 파르르 몸을 떨다 더욱 웅크린 채 이내 조용해졌다. 잔인하리만치 가혹한 고문을 당하며 없는 사실을 시인할 때를 생각하면 그보단 고통이 훨씬 덜했다. 하지만 사탄의 자손으로 끝나야 되는 냉혹한 재판은 고통보다 더한 공포감을 주어 겨우 남아있던 인간성마저 뿌리 채 훼손시켜 사람을 짐승처럼 만들었다. 컴컴한 지하 감방은 정의로 가득하단 바깥세상과 단지 몇 걸음 분량에 불과했지만 자유의 숨소리가 흘러넘친다던 땅위의 세계는 절망의 나락에서 울부짖는 갈망의 소리엔 귀를 닫았다. 이악한 사고에 사로잡힌 그들에게 처절한 몸짓 따윈 소용이 없었다. 사랑의 팡파르가 눈발과 함께 하늘높이 날리고 눈처럼 쏟아지는 은혜가 세상을 감싸듯 충만하다고 떠벌렸지만 온정을 베푸는 데는 인색하였다. 은총의 노래 소리가 하늘땅에 가득히 울리고 메아리가 온 누리의 구석구석을 채워준대 해도 그들에게만 유효할 뿐으로 빛 하나 들지 않는 지하 감방엔 작은 자비조차 스며들지 않았다. 시대의 도덕은 가치를 놓고 저울질만 할 뿐, 하늘의 영광은 깊숙이 감춘 채 천박한 실체를 음흉하게 드러냈다. 아- 집단의 광기로 얼룩지고 위선의 극치를 보이는 그곳은 딴판인 세상이었다.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사탄의 후손으로 낙인찍어 자유를 빼앗은 그들로부터 베풀어지는 자애로운 손길은 오히려 주검뿐이었다. 그녀는 얼마 후에 신을 모독한 죄목을 뒤집어쓰고 대중이 보는 앞에서 처참한 화형을 당했다. 그녀와 풍비박산이 된 그녀의 가족은 마을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음모의 희생양이었다.⑴\" 하늘로 쏘아올린 로켓은 신을 향해 쏜 대포일까? 아닐까? 웬 뜬금없는 소리를 지껄이느냐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정도의 농담이라도 그 옛날 중세유럽이라면 불경죄로 화형을 당해야 했다.⑵ 사랑의 메시지가 흘러넘친다는 신의 시대에 수십 만 명이 넘는 무고한 사람들이 마녀사냥이란 올무에 걸려 희생됐다. 그들 모두는 뱀으로 분하여 하와를 유혹한 사탄의 자손으로 낙인이 찍혀 고문과 위협 속에 죄를 인정하고 화형을 당해야 했다. 주데카(Judecca)⑶의 얼음지옥에 처박힌들 이보다 다르겠나. 돌아보기조차 참담한 그 시대를 되짚어 떠올리기라도 하면 이슬지는 눈가에 더없는 인정은 눈꺼풀마저 파르르 떨리게 한다. 어찌 사람이 사는 인간세상이라 할 수 있는가. 그곳에 인간의 존엄이 있었는가? 아예 허락되지도 않았다. 인류의 역사에 오점을 남긴 오욕의 시대라고 눈을 돌릴 수는 없다. 가슴이 아프지만 지난 과거에서 뼈저린 교훈을 얻어야 반복되지 않는다. '너희는 자유롭고 스스로 행하는 것이 허락되었다.(힐 14:30)' 말씀은 어디에 있는가? 어찌하다 공허만 남아 맴을 돌고 있는가? 갈릴레오가 평생을 연구한 업적이 신을 조롱한 막돼먹은 짓일까? 그가 본 것은 하늘 밖 목성이었는데, 그가 만든 천체인가? 그것은 창조 때의 것인 본연(本然)이 아니었나? '보시기에 좋더라'였으니 오히려 주어진 소명을 다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한 시대의 정신적 지주였던 통제집단의 신관(神觀)은 탁류(濁流)⑷를 만드는데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종교 재판소는 하늘의 정의를 땅에 구현한다고 선언하였으나 갈릴레오는 하늘에 대한 정설을 정면에서 비판하며 막아섰다. 머릿속에는 33년 전 비슷한 가설로 화형이란 처참한 형벌을 당한 철학자 조르다노 브르노⑸가 떠올랐지만 용기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개인이 넘어서기에는 너무 큰 산이었다. 안타깝게도 순수한 열정과 번뜩이는 지혜로 얻은 결실은 이단의 칼날로 밀어붙인 위세에 눌려 창조의 존엄과 함께 뭉개졌다. 이념의 철갑을 두른 하늘왕국의 격렬한 여울물에 휩쓸려 진실을 추구하던 갈릴레오의 충정어린 진정은 무시되었고 일생을 공들인 탑마저 와르르 무너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에푸르 시 무오베(Eppur si muove)'라고 중얼대던, '그래도 지구는 돈다.'며 집으로 돌아가는 노 과학자의 진정은 불굴의 정신이 짙게 밴 발자국마다 영롱하게 빛을 발했다. 그것은 말할 수 없이 강한 빛으로 온 누리를 비추는 보석이었다. 갈릴레오는 눈을 감을 때까지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본연의 것을 보았기에 무르지 않는 의지를 가질 수 있었다. 여생을 연금 상태로 보냈지만, 끝까지 자신의 주장을 간직한 데에도 언젠가 진리가 세상을 아우르며 어느 것보다 더 높이 우뚝 서 모든 이가 진정으로 받아들일 날이 올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칠십 노인의 바람은 지금도 변함없이 유효한 진리로서 다가와 오늘 날처럼 미래의 불확실한 목적지를 가야하는 많은 이들에게 줄지 않는 용기와 꺾이지 않는 희망을 갖게 하는 영원한 유산으로 빛난다. 알맹이 없는 단테의 구천구옥⑹의 찬양과 왜곡의 시대에 걸맞은 〈천동설⑺〉이 지배하던 세상이었다. 그 시대가 요구하던 조화와 질서에 부합한 비틀린 이론은 한껏 부여된 신학적 권위에 힘입어 사회를 통제하는 잣대로 둔갑했다. 그 외에는 어떠한 이론도 성서에 반하는 신성모독으로 다스렸다. 과학이나 철학이나 하다못해 막일이나 장사를 해도 앵무새가 되어 따라 해야 하던 일은 물론이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하늘은 언제나 가짜로 설명되어야했고, 진실은 그 만큼 감춰져야했다. 그를 가로막은 자들은 진리를 설파한다며 큰소리만 쳐댔을 뿐이지, 오히려 구름너머 하늘엔 무지렁이였으니, 장님이나 같았다. 따지고 보면 그게 모두 인간세상의 불합리가 아닌가. 그렇게 하면 누가하던 그게 뭔 대수냐가 된다. 백정이 칼 잡았다고 의사노릇 할 수 있나. 빨간 장미나 흰 백합만이 꽃이 아니듯 세상은 다양함이 조화를 이뤄 갖가지 꽃을 아름답게 피운다. 하지만 독선이 세상을 다스린다며 강물을 거슬러 오르면 오히려 갈길 잃은 세상이 뒤죽박죽 어지러워진다. 철학자이자 과학자인 한 사람의 위대한 선구자가 앞장을 서서 과학을 통하여 창조 때의 것을 본(本)대로 입증했다. 그러면 본래의 모양대로 된 것이 아닌가. 그 후로는 세상이 바로서야 신의 말씀이 옳아지지 않겠나. 그런데도 그때에도 썩었던 고약한 냄새가 아직까지 코를 찌른다. 20세기까지 발목을 잡아끌던 혼란은 곡절도 많았지만 어려운 가운데 지나갔다.⑻ 오늘날의 과학은 생명공학연구와 우주탐사가 대세다. 이처럼 단 시간의 발전에는 창조론이 뒤덮인 시대에 〈지동설〉과 〈진화론〉과 같은 진리탐구에 목숨을 걸었던 지난 시대의 위대한 연구업적이 큰 힘으로 이끌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19세기 이전까지의 자연과학에 대한 염원은 신의 잣대를 내세워 전 방위로 사회를 통제하여 불가능했다. 하지만 수세기에 걸쳐 흑사병이 창궐하여 귀한 목숨을 앗아가도 손 한번 쓰지 못하는 무능력에서 보듯이 신의 시대는 오히려 인간문명을 뒤떨어지게 했을 뿐이었다. 기껏해야 창조과학처럼 성서에 합당한 이론만 옹호하고⑼ 나머지 과학탐구나 새 학설에 대해선 가차 없는 제재로 연구의욕마저 떨어뜨리고 그 만큼 과학발전을 더디게 했다. 병이 돌면, 한 지역을 통괄하던 최고위직도 교회를 버려두고 시골로 피난 가던 것이 당시의 실상을 대변하는 전부인 것에서 보듯, 스스로 만든 올무에 갇혀 어찌하질 못했으니 인류가 결과로 얻은 것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그만큼의 재앙이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인류를 이끌던 수많은 선각자들은 고착화된 관념의 세계에 싸인 채 이단이라는 신성모독의 위협 속에서 어이없게도 죽음을 담보로 연구에 매달려야했다. '예전의 세상은 모두 미치광이들로 가득 찼었다.⑽' 그런데도 그 교훈을 잊은 채 아직껏 변한 게 없다. 권태기도 없는지, 낡을 대로 낡은 자기도취에 빠져 있다가 과학자가 뭔가를 새롭게 발견하거나 발명하면 쌍심지가 돋는다. 너덜너덜해진 청동기기시대의 유물을 만지작거리며⑾ 특별히 무슨 보증이라도 받아내려는 듯 신의 이름과 자신의 표시에다 연필로 굵게 선을 이어놓곤 자기들만이 해야 한다는 억지소리로 과학이 신을 증명하려 한다며 수세기동안 버리지 않았던 구태를 들이대며 유치한 불만을 터트린다. 그들이 그토록 갈구했건만, 하늘이 한쪽 편을 손들어주며 응답을 주었다는 소리를 여태껏 듣고 보도 못했다. 오히려 나중에라도 하늘이 누구 편을 들겠는지 그것이 더 궁금하다.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서 뭐라도 트집을 잡으려고 하지만, 둘 사이는 추구하는 지향점이나 방법조차 다르니 연관이 없다. 과학의 고마움은 공기와 같다. 관심을 갖지 않으면 느끼지 못한다. 물속에서 허우적일 때, 한 방울의 공기가 생명줄이 되듯이 문명의 발흥이나 곤경을 당할 때마다 해결해주던 것은 과학이었다. 그 과학이 인간을 크게 키웠다. 종교가 키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커짐으로서 인간에게 맞는 종교를 발명하였을 뿐이다.⑿ 문화와 예술을 일으켜 풍성하게 해줬고, 종교도 살렸다.⒀ 그런데도 혜택은 고스란히 받으면서 허구한 날 튕기기만 한다. 어찌해서 비합리에게 합리가 우겨다짐을 당해야하는가. 이는 싸우자는 꼴이다. 어찌하여 영혼을 일깨워 새로 하진 못하고 가치도 없는 표상에 매달고는 현실의 삶에 적용하려고 하는가.
* ⑴ 저작권 문제로 어느 책의 내용을 직접 인용할 수가 없어, 마녀사냥을 다룬 여러 저서(소설, 보고서, 논문 등)를 보고 나름대로 구상한 픽션임. 한 통계에 의하면 최소 수십만에서 수백만 명에 이를 만큼이나 많은 인명이 살상되었다. 약자를 궁휼이 여겨야할 신의 이름이 오히려 그들을 죽이는 명분으로 이용되었다. * ⑵ 니체(Nietzsche Friedrich, AD 1844∼1900)는 《도덕의 계보(Zur Genealogie der Moral)》를 통하여 한 시대의 도덕성을 개탄하며, '도덕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진정으로 가지고 있었는지 중세의 정의를 물었다. 하나의 절대적 질서에 반(反)하는 것들을, 결과로서의, 징조로서의, 가면으로서의, 위선으로서의, 오해로서의, 자극제로서의, 또 한편 원인으로서의, 비판의 초월이라는 철갑으로 하늘왕국을 감싸고, 권력복합체들 사이의 투쟁의 수단으로의, 끝에는 폭력이란 결말로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비열함이 도덕이었는지, 그 시대를 준열하게 추궁하였다. 중세 가톨릭의 칠죄종(七罪宗)은 신성모독으로 간주하였으니 그 힘은 무소불위였다. 교회의 가치에 반하는 자는 누구든지 어김없는 처벌을 받았다. 이는 교황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였기에 더욱 가혹하였다. 얼마나 많은 자가 그 발치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겠는가. 그런데도 반성이나 후회가 없다. 1616년 이탈리아의 철학자 '루칠리오 바니니(L. Vanini)'는 인류가 유인원에서 유래되었다는 주장을 폈다가 3년 후에 툴루즈에서 산채로 화형을 당했다. 하다못해 보헤미아의 사제였던 얀 후스(Jan Hus, AD 1372?∼1415)는 신자들에게 단지 '성서를 읽으라.'는 권고로, 콘스탄츠공의회(AD 1414∼1418)의 결정에 따라 AD 1415년 7월 6일에 화형을 당했다. 그도 인간의 탈을 쓴 사탄의 자손으로 낙인 찍혔다. 신본주의(神本主義)에 휩싸인 세상에서의 인간이란 존엄조차 그렇게 전락되어야 했다. 인류는 자유의 쟁취와 존엄을 지키기 위해 너무나 많은 피를 재단에 받쳤지만, 귀중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19세기이후 진정으로 국민의 인권을 존중하는 국가에서는 헌법에 정교분리를 명문화하여 두 번 다시 같은 폐해를 국민 개개인이 당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있음은 그나마 다행이다. 사랑과 자비를 내세우는 종교라 해도 권력화가 되면 무소불의가 됨을 역사가 증거 해주고 있다. * ⑶ 《신곡》「지옥편 제34곡, 제 9옥」 주데카(Judecca) : 지옥의 최하등석을 할당받은 흉악한 망자들의 세계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이다. 유다의 이름 유다스 아스카이오테스(Iouvda\" Iskariwvth\") - 유다스 이스카리오트(Judas Iscariot) - 에서 연유했다. 그곳에는 예수를 배반한 유다를 비롯하여 카이사르를 배신한 브루투스(Brutus, Marcus Junius, BC 85∼BC 42)와 카시우스(Gaius Cassius Longinus, BC 85∼ BC 42)가 죄업을 받고 있다. 세 얼굴과 여섯 개의 날개를 가진 루치페르(Lucifer)가 입마다 죄인 하나씩을 물고 영원토록 이빨로 삼(麻)을 찧듯이 물어 으깬다. 입이 세 개인 루치페르는 얼굴도 세 개인데, 이는 삼위일체의 표상인 사랑, 권능, 지혜에 대치되는 증오, 무력, 무지를 표상하고 있다. 루치페르가 하늘의 뜻을 어기고 대항하다 추방당할 때에 남반구에 떨어졌는데, 이때 남반구를 덮고 있던 땅은 공포에 휩싸인 나머지 바다 속으로 숨어 북반구에 들어갔다. 또 정좌산은 루치페르가 지옥으로 내려갈 때에 맞닿을 것을 두려워하며 땅 밑을 떠나 남반구에 나타났기에 여기에 공터가 생겼다. 베엘제블(Beelzebouvl) - 바알세블(Beelzebub) - 은 루치페르의 별칭이다.(마 12:24) * ⑷ 《주역(周易》에 천지비괘(天地否卦)라는 좋지 않은 괘(卦)가 있다. 지천태괘(地天泰卦)와는 그 모양이 반대이고 뜻풀이도 거의 상반된다. 지천태(地天泰)는 위가 땅이고 아래가 하늘인 괘이다. 위에 있어야 할 하늘이 아래에 있고, 아래에 있어야 할 땅이 위로 올라가 있음이다. 이는 하늘의 기운이 아래까지 하강하여 땅을 두루 살피고, 당연히 땅의 소망이 하늘까지 닿아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천지의 기운이 잘 사귀어 음양(陰陽)이 소통하고 있으면서 하늘의 기운은 위로 오르고자 하고 땅의 기운은 아래로 내려오고자 하여 모든 것이 서로 어울려 형통한다는 괘이다. 그러나 천지비괘(天地否卦)는 반대로 땅위에 하늘을 올려놓은 형상이다.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으니 형상으로는 가장 자연스러운 모양으로 보여 오해하기 십상이지만, 이 괘를 비괘(否卦)라 이름하고 그 뜻을 '막힌 것'으로 풀이한다. 즉 비색(否色)으로 소통되지 않고 막혀 있는 상태로 천지폐색(天地閉塞)의 괘이다. 하늘의 기운(陽)은 위에서 반응이 없고, 땅의 기운(陰)은 제멋에 겨워 아래로 기울기만 하기 때문에 천지가 서로 형통할 수 없다. 그러니 천지가 불교(不交)하고 만물이 불통(不通)하게 된다. 이는 대왕소래(大往小來)이니 하늘은 저 혼자 높을 뿐으로, 땅마저 하늘과 아무 상관없이 저 혼자 아래로 향하여 하늘과 땅이 섞이지 못하여 만물은 생명을 받지 못한다. 천지가 섞여 그 안에서 만물이 태어나거늘, 그러므로 무릇 천지의 속에서 태어난 자는 모두가 인도인데, 천지가 불통으로 섞이지 않으니 만물은 태어날 수가 없다. 비지비인(否之匪人)이니 비인(匪人)은 인도가 아닌 것이다. 땅이 제멋대로란 하늘에 뜻에 반하여 천도(天道)를 벗어난다는 의미이다. 인간의 마음이란 단(端)에서 시작하여 무한에 흩어지고, 팔극(八極)에 두루 미치되 하나의 관(管)으로 다시금 모여든다. 근본을 보고 끝을 알고, 가리키는 곳을 보고 돌아갈 곳을 안다. 앞으로 해야 할 것을 알고, 가면 갈 곳을 아는 것도 그렇다. 그것이 우리를 바른 도리를 아는 사람으로 만들고, 귀감이 되게 하지만, 이것을 분별없이 접고, 본래 것인 천도를 대신하여 사람의 규범(人道)으로 가리고, 세상의 막힌 것을 풀고 어울리게 하는 데 소용되는 순리와 매듭(結繩)마저 가로막으니 땅이 저 혼자 아래로 향하는 것이다. 섬뜩하게도 그것의 하나가, 신(神)의 이름으로 선(善)을 내세우고, 마치 치열한 불꽃을 놓아 기러기 털을 태우듯, 태산을 높이 들어 새알을 짓누르듯이 뿌리마져 뽑아버리고 증오로 가득 차게 하면서도, 예나 마찬가지로 지금까지도 악(惡)을 응징한다고 변함없이 행하는 것이다. 더구나 겉으로는 '신의 사랑(Agape)'이란 포장으로 넉넉하게 덮어 씌워주고, '살리기를 좋아하고 죽이기를 싫어하는 것은 하늘의 깊으신 덕화(但以好生惡殺上帝深仁)'임을 내세웠다. 그러나 '법을 낮추어 은혜를 펴려는 것은 큰 조정의 어진 제도(屈法申恩 大朝令典)'이고, '어둔 길에 헤매는 자를 일깨우는 데는 진실로 바른 말을 하여 주어야 함(諭迷途者 固在直言)/최치원, 「격황소서」'이 도리를 따르는 바른 것임에도 하나같이 둘러댔다. 오히려 표징(標徵)을 높이 들고 자신들은 신의 선한 종으로서 소명을 다하는 것이라고 내세웠다. 그러나 세상의 이치는 작용에는 반드시 반작용이 언제나 같은 크기로 뒤따름을 잊고 있다. 그것이 끝내는 같은 믿음 속에서도 개혁을 불렀으니 못내 안타깝다. 본래의 하늘이야 미동조차 없지만, 인간이 세운 하늘이야 어디 그런가. * ⑸ 16세기 이탈리아의 철학자 브루노(Giordano Bruno, AD 1584∼1600)는 고대와 당시의 자연학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가톨릭 교리에 대한 회의를 품게 되었다. 자연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찬 그의 철학은 범신론적인 특징이 강하였다. 그는 지구 이외의 천체에 인간이 살고 있다고 처음으로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독자적인 우주관은 당시권력의 주체였던 교회에게는 큰 위협이 되는 선동적인 이론이었다. 결국은 모두가 하나의 틀에 갇혀 꼼짝도 못하던 지적 암흑시대에 맞지 않는 이단의 학설이 되었다. 베네치아에서 고발되어 신문을 받았으며, 결국은 로마에서 화형(火刑)이란 극형을 당했다. 저서로 《원인․원리 및 일자(一者)에 관하여》, 《무한, 우주와 제 세계에 관하여》, 《최소자론(最小者論)》가 있다. 진리를 받든다는 자들에 의해 진실을 말하려는 입은 그런 식으로 봉해졌다. 브르노는 지구중심우주론을 거부하며 코페르니쿠스의 우주체계를 옹호하고 그를 열렬히 지지했던 인물이었다. 이단으로 내몰렸던 대부분은 공개적으로 화형을 당했듯 단죄되었지만, 극히 일부는 갈릴레오의 예처럼 속죄라는 희극을 연출하며 용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단이란 잣대는 어디까지나 교리를 빙자한 정치적인 결정이었다. 그들은 교리를 해석하며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었거나 다른 의도를 가진 정치적 반대자였음으로 무소불위였던 '교만(Pride)의 죄란 잣대'에서 비껴가기는 불가능하였다. 이는 권력의 축이 된 이래도 교황권의 극대화에 더할 나위 없이 유용했다. * ⑹ - 단테의 천국(九天) : '만물을 움직이는 이의 영광은 온 누리를 꿰뚫어 빛나지만 어떤 것에는 강하게 어떤 것에는 약하게 빛난다.'로 시작되는 천국은 '영원한 장미의 노란 빛'에 둘러싸인 더 이상 오를 데가 없는 지고천(至高天)이 있고, 그 아래로 아홉 등급의 하늘이 있으며, 9품위의 천사들이 아래로부터 위쪽으로 등급에 따라서 자리 잡고 있다. 구천의 전체적인 구성은 달, 수성, 금성, 해, 화성, 목성, 토성이 순서대로 행성천구(heavenly sphere)에 붙어있고, 지고천은 항성천구(stellar sphere) 밖에 설정되어 있다. 이는 천상계의 가장 바깥쪽에 신의 세계가 있다는 아리스토탈레스의 자연관을 원용했으며, - 가장 가까운 천체인 달을 경계로 하여 그보다 아래쪽은 지상계(terrestrial world)이며 생성과 소멸이라는 변화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가멸적(可滅的)인 특성을 지니고 있고, 달보다 위쪽의 세계는 불멸성을 지닌 영구불변한 천상계(celestial world)로 구부지어 놓았다. - 구체적으로는 〈천동설(天動說,Geocentric Theory)〉에 따랐다. 9천 : 치천사(熾天使,Serafini)가 지키는 원동천(原動天) 8천 : 지천사(智天使,Cerubini)가 좌정하고 있는 항성천(恒星天) 7천 : 옥좌의 천사(座天使,Troni)의 토성천(土星天) 6천 : 통치의 천사(主天使,Dominazioni)가 지키는 목성천(木星天) 5천 : 권위의 천사(力天使,Vitudi)의 화성천(火星天) 4천 : 권력의 천사(能天使,Potestari)의 태양천(太陽天) 3천 : 주권의 천사(權天使,Principati)가 자리하고 있는 금성천(金星天) 2천 : 대천사(大天使,Arcangeli)가 다스리는 수성천(水星天) 1천 : 천사(天使,Angeli)가 다스리는 월천(月天) - 단테의 지옥(九獄) 1옥 : 림보, 신을 모르는 선한 자들(Limbo, Virtuous Non-Believers) 2옥 : 색욕 자들(Lustful) 3옥 : 탐식 자들(Gluttonous) 4옥 : 방탕 자들과 욕심쟁이들(Prodigal and Avaricious) 5옥 : 분노한 자들과 우울한 자들(Wrathful and Gioomy) 6옥 : 이단자들(Heretics) 7옥 : 광폭한 자들(Violent) 8옥 : 부정한 자들, 악의 많은 자들, 뚜쟁이들-위선자들(Fraudulent, Malicious, Panderers) 9옥 : 배신자들(Treacherous) 1원(Caina) : 혈족을 배반한자들 2원(Antenora) : 조국을 배반한자들 3원(Tolomea) : 손님을 배신한자들 4원(Judeca) : 은인을 배반한자들. 註⑶ 참조 * ⑺ 천동설(天動說,Geocentric Theory) : 클라우디우스 프톨레마이오스(Claudius Ptolemaeus, AD 2세기)가 편찬한 《알마게스트(Almagest), AD 140년경》의 1권에 포괄적인 개론으로서 〈천동설〉에 입각한 태양계의 개요가 실려 있다. BC 150년경부터 AD 16세기까지 거의 1400년간 태양계의 운동을 설명하는 유일한 이론으로 존속되던 고대의 우주 구조론이다. 우주는 구면체이고 맨 바깥쪽에 별들이 붙어있어 하루에 한 바퀴씩 도는 항성천구(stellar sphere)가 있다. 지구와 항성천구 사이에는 달, 수성, 금성, 해, 화성, 목성, 토성이 순서대로 있으며, 이들은 행성천구(heavenly sphere)에 붙어있다. 이 천구가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기 때문에 행성들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고 본 것이다. * ⑻ 스콥스 재판(Scopes Trial) : 일명 '원숭이재판'이라고 회자(膾炙)되기도 하였던 재판내용을 읽다보면, 중세유럽의 겸재(箝制)의 시대와 겹치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한다. 인간의 영혼과 실존에 관한 심각한 문제임에도 광기어린 집단의식에 사로잡히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으로 인간 존엄성에 대한 멸시의 표본이다. 그들이 하는 주장이 맞는다면, 우리의 인생은 오로지 신을 위한 것이며, 내 몫의 소중한 생명이 존재하는 귀하디귀한 이 세상이 우리를 속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신앙심을 갖는다고 해서 진실이 아닌 것을 무가지보(無價之寶)로 여긴다면, 그것을 어찌 믿음이라 할 수 있을까? 그것이야말로 지혼(智昏)의 결과로 인해 '이익이 지혜를 어둡게 했다(利令智昏)'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가 20세기가 맞는지, 가장 발전된 문명사회를 갖추고 있었으며, 그 시대의 어느 국가보다도 개방적이고 이성적이라고 일컫던 체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주장에도 큰 의문을 갖게 한다. 1925년 7월에 미국 테네시주(州) 데이턴에서 희대의 재판이 열렸다. 데이턴 고등학교 생물학 교사였던 존 토머스 스콥스(John T. Scopes)는 수업 중에 진화론을 가르침으로써 주법(州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4월 24일 주(州) 검찰에 의해 기소되었다. 그에 바로 앞서 그해 3월 13일에 테네시주(州)의회는 버틀러법(Butler Act)을 제정하고, 이후로는 신(神)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성서의 가르침을 부인하는 어떤 이론도 공립학교에서는 가르치면 안 되며 그것은 법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재판은 성서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려는 버틀러를 비롯한 근본주의자들과 성서를 유연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유주의 신학파가 맞붙었으며, 온 세인의 이목은 재판과정에 쏠렸다. 명망이 자자하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 Bryan)은 검찰측을 대표하고, - 그는 국가에 봉사한다는 명목으로 3번이나 대통령후보에 출마했었다. - 클래런스 대로우(Clarence Darrow)변호사는 자원하여 변호를 맡았다. 그러나 재판을 맡은 지방판사는 인류가 성서에 나온 대로 창조의 산물인가, 아니면 유인원에서 진화한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고, 법률(버틀러법)의 합헌성에 대한 위헌심사를 선행해야함에도, 이에 대해서는 일체 인정하지 않았다. - 버틀러법에는 성서를 지칭하고 그 내용을 따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1865년에 제정된 미국 수정헌법 1조(종교, 언론 및 출판의 자유와 집회 및 청원의 권리)에도 위반된다. 수정헌법에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 더구나 재판의 핵심인 다윈의 진화론이 과학적인 이론으로 타당한 것인가에 대하여 증명하려고 변론해도 이를 묵살하거나 제지했을 뿐만 아니라, 과학자를 증인으로 채택하려는 요구마저도 기각했다. 그는 스콥스가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진화론을 가르쳤는지의 여부에만 문제의 초점을 맞추어 재판을 이끌었다. 끝내는 스콥스가 학생들에게 진화론을 가르쳤다고 사실대로 인정하자 재판은 그것만으로 종결되었다. 판사는 유죄판결을 내리고 100달러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버틀러를 위시한 근본주의자들은 신을 외치며 환호성을 올렸다. 재판은 종교의 세계관이 종말을 고했던 19세기 대변혁기 이후로 한 세기 동안의 열세를 만회하고 오랜만에 종교가 과학을 이기는 것으로 결말지어진 것 같이 보였다. 그것은 판위에 신의 권능을 올려놓고 인간의 판단에 맡겨야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임에도 그들은 언제나 그러했듯이 개의치 않았으며, 오로지 재판의 결과에만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엄청난 반향이 되어 돌아왔다. 창조론을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은 몰지각하고 광신적인 집단으로 매도하는 사회적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재판과정에서 불거진 자기모순과 스스로도 종교에 대하여 얼마나 제한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지가 부각되었으며, 근본주의는 지독히 이기적이고 무지한 집단으로 비쳐졌다. 원숭이재판이라는 조소에서도 알 수 있듯이 창조론자들을 풍자하고 스콥스를 진화론 순교자로 묘사하기도 했다. 이후에 스콥스의 항소심이 진행되었다. 테네시주 대법원은 1925년에 제정된 법률의 합헌성을 확인했음에도 본질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비겁한 이유를 들면서 비껴나갔다. 엉뚱하게도 벌금이 너무 과중하다는 방법적인 문제로 스콥스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모든 재판절차를 끝냈다. 버틀러법은 1967년에 와서야 폐기되었다. 1987년 미국 대법원은 '과학적인 관점(scientific point of view)'이란 의미를 부여하며, 수정헌법 1조에 의하여 미국 내 어느 학교에서도 창조론과 진화론을 같은 위치에서 판단하고 다루지 못하도록 하였다. 드디어 60여년을 이어온 법률적인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참고자료] ◇ 레이 진저 著, 1958,《6일간인가 아니면 영원히인가?》 * ⑼ 19세기 초인 1811년에 프랑스의 박물학자인 조르주 퀴비에①는 '카논 요한 야콥 쇼이히처의 도롱뇽 사건'을 명확히 밝혀냈다. 의사가 사람의 뼈와 도롱뇽의 뼈를 구분조차하지 못하였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했던 이 사건은 스위스의 의사이자 '노아의 홍수'의 열렬한 신봉자였던 쇼이히처의 탐욕과 허무맹랑한 믿음이 만든 조작이었다. 쇼이히처는 1708년 취리히에서 출간한 《물고기의 한탄과 불평》이라는 책에서 '호모 딜루비이 테스티스(Homo diluvii testis, '노아의 홍수를 목격한 증인'이라는 뜻)'의 화석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교회는 노아의 홍수를 증명해줄 위대한 발견이라고 치켜세우며 열광했다. 교회는 그의 업적과 이론을 인정하고, 금과옥조로 삼아 1세기가 넘도록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똑같이 '노아의 홍수' 지지자였음에도 쇼이히처의 과오를 밝혀낸 쿠비에의 학자적 양심은 진리란 인간의 목적에 의해 바뀌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쇼이히처 사건'은 창조과학이 만들어낸 어처구니없는 많은 것들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 - ① 조르주 퀴비에(Georges Baron Cuvier, AD 1769∼1832) : 화석과 공룡을 연구하였으며 최초로 고생물학을 연구한 프랑스의 동물학자. 1709년부터 당시에 알려진 많은 척추동물의 화석을 연구하였다. 1812년에는 자신이 창시한 비교해부학의 이론을 기초로 한 《네발짐승의 화석뼈 연구》라는 명저를 출간했다. 19세기 초에는 아직까지 영장류(靈長類,primate)의 화석이 발견되지 않았다. - 최초의 유인원 화석의 발견은 1834년 프랑스 가스코뉴 지역에서 에두아르 라르테(Edouard Hippolyte Lartet, AD 1801∼1871)에 의해 발견되었다. 나중에 '플리오피테쿠스 안티쿠스(pliopithecus antiquus)'로 명명되었다. - 퀴비에는 '인류의 화석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탁월한 과학적 통찰력을 지녔던 뛰어난 학자였지만, 노아의 홍수 이론에 집착해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천변지이설과 종의 불변성을 내세우며 천변지이(天變地異)가 일어나면 전시대의 생물은 거의 절멸되고 새로운 종이 출현한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고인류(古人類,archeoanthropine)의 존재란 있을 수 없다고 부정하였으며, 이를 설명하기 위해 당시로서는 이치에 들어맞는다고 여겨지는 논거를 내세웠으나 결과적으로는 자가당착에 빠졌다. 첫 번째로 그는 자신의 몽마르트르의 석고 채석장에서 발견된 동물들의 뼈 가운데 인류나 유인원의 것을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그가 발견한 동물들의 화석 뼈가 묻혀있던 석고층은 에오세 말기인 4,000만년도 더 된 오랜 옛날의 것으로, 그 시대에는 당연히 인류와 유인원은 나타나지 않았음을 몰랐다. 두 번째는 그에게 태초 인간의 것이라고 가져온 뼈들은 모두 코끼리나 거북, 도롱뇽, 고래, 해양파충류 같은 다른 동물들의 것이었다. 그때까지 인류의 뼈는 고사하고 유인원의 화석조차도 발견되지 않았었다. * ⑽ 니체 著/최민홍 譯, 2006,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차라투스트라의 서곡 #5 * ⑾ 모세오경(五經, Tdrah, Pentateuch)을 저술한 시기가 주장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모세(Moses)시대로 잡는다면 후기청동기 2시기(LBA Ⅱ, BC 1400∼BC 1200)에 해당한다. * ⑿ 우리는 우주의 먼지로부터 왔다. 그러나 생명의 탄생이 우주의 먼지로부터 기원됐다는 지식이 상식이 된 요즘에도, 천지창조를 믿고 신을 따르는 것은, 그 전부가 오로지 전능한 신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다는 믿음 때문이다. '종교는 과학의 결과로 존재한 적이 없으며, 하느님과 영적 교통을 통해 인간의 마음과 존재가 흘러나온 것이다.'고 하는, 그런 믿음이 굳건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라고 생각되어진다. 다만 찰스 다윈이 '신에 대한 믿음은 종종 인간과 동물을 구분해 주는 가장 커다랗고도 완벽한 차이점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주지하고 있듯이 이런 믿음이 인간에게 타고난 것이라거나 본능적인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반면에 모든 것에 고루 미치는 영적인 힘에 대한 믿음은 보편적인 것 같다. 또한 이런 믿음은 인간의 이성적인 능력이 발달하고 상상력, 호기심, 두려움 등이 더욱 발달하면서 나온 것임에 틀림이 없다.①'고 한 분석에 방점이 간다. 믿음은 본능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는 신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우주를 창조한 자비로운 만유의 창조주라는 개념을 갖게 된 것은 인류가 오랜 기간 문명을 발전시킨 덕분이며, 이 또한 육체적 순응에 더불어 발전한 정신문명도 일취월장(日就月將)한 진화의 성공적 산물의 하나이다. 그렇다고 물이 높은 곳에서 얕은 쪽으로 흘러 한껏 채워주듯이 얻고자 하는 것을 바로 얻는 것이 아니다. 순리가 시키는 대로 매듭을 지은 가운데에, 진리를 비 진리가 난무하는 속에서 가려낼 줄 알아야 깨닫는 것이다. 내키든 그렇지 않든, 그런 인식과 자세를 가지고 객관적으로 살펴봐야 만이 그 속을 바로 볼 수 있으며, 말씀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기록의 옳고 그름을 가릴 수가 있으며, 말씀 속의 진리탐구에 한 발짝이라도 다가설 수 있다. - ① 찰스 다윈 著, 1871, 《인류의 유래》 * ⒀ 인간이 자유롭게 사유하고 행할 수 있음은 기본에 속하는 권리로 인간존엄의 상징이며 하늘이 내려준 천부권(天賦權)의 하나다. 그러니 이를 막으려는 생각이나 행위는 어떠한 변명이라도 하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 된다. 한때의 그릇된 사고와 행동으로 어둠에 빠져 허우적거렸던 인류는 이성을 되찾게 되면서부터 놀라운 역동성을 발휘하였다. 다방면에 걸쳐 새로운 진척이 이루어졌으며, 특히 과학을 이용하여 자연법칙(Law of nature)의 탐구에 더욱 매진하게 되었다. 드디어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AD 1473∼1543)의 〈태양중심설(지동설)〉이론이 AD 1543년에 발간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에 의하여 발표되어 우주의 본래 모습이 명확하게 들어나게 됨으로서 수천 년 이상이나 비 진리에 의해 뒤틀렸던 우주관은 천만다행으로 '태초에'의 본원으로 되돌려지게 되는 큰 획을 긋게 되었다. - 제 1 우주론혁명으로 규정했다. - 〈천동설〉이 깨진 이후로는 세상이 완전히 뒤집어졌으며, 인간의 창조적인 사유의 소산들은 인류문명의 도약을 위한 새로운 지평을 그때마다 열수 있는 기회를 자연스럽게 갖게 되었다. 이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조하고, 그 속에서 인류의 품격을 몇 단계나 끌어 올린 많은 것 가운데 하나인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AD 1809∼1882)의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과 같은 놀라운 발견이나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ödinger, AD 1887∼1961)에 의해 확립된 〈양자역학(量子力學,Quantum Mechanics)〉과 같은 과학의 경이로운 발전에 대해서도 보다 진실 된 각도로 볼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 BC 5000년경에 인류최초로 메소포타미아에서 수메르문명이 태동한 이후에 인류가 이룩한 모든 것의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은 다른 것이 아니다. - 수메르문명 이전은 '관행의 통합이라고 부르는 음(陰)의 역사'이고 그 이후로 '문명의 분화라 일컫는 양(陽)의 역사'이다.① - 오직 하나. 과학이 힘이 된 것이다. 과학은 창조의 본연으로 향하는 천도를 거슬리지 않고 천도가 만들어놓은 그 길을 그대로 탐구하며, 오늘도 제 할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 인류는 그 힘을 통하여 더할 나위없는 최고의 가치를 창조하였으며, 과학이 밑받침 된 문명은 '에덴동산 밖의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뒤엉킨 험난한 세계로 내팽겨진 위기에서(창 3:18)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 수 있음에도(창 3:17)' 그 난관을 용케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한 뜻 깊은 것이다. 이는 태초의 창조물을 바르게 찾는 것이기도 하기에 그것이 어느 집단이 가진 사유의 준거에 반한다고해서 결코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이를 모르는 어리석음은 그 마음이 단순하여 자신의 주관적 판단 없이 남의 말에 쉽게 설득 당한 것이나 다름없는 고갱이가 빠져 있는 꼴이나 같다. 과학은 문명의 발달에 든든한 후원자이다. 비록 겸손에 묻혀 뒷방차지로 만족하고 있지만, 문명의 생성과 성장에 필수적인 요소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중요한 토대가 되었으며, 그것이 낳은 문명의 빛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오이를 심으면 오이를 얻고, 콩을 심으면 콩을 얻는다.(種瓜得瓜, 種豆得豆.)'는 이치에 맞추어 남김없이 골고루 혜택을 미쳤다. 한 예로 수메르문명이나 이집트의 고대문명처럼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는 독립문명의 창조는 과학의 발전수준에 맞추어서 주도적으로 이루어졌으며, 주변의 여타 민족은 비록 거기까지 미치지는 못했지만, 그 문명의 영향으로 비슷한 수준의 위성문명을 이루었거나 복제형태의 주변문화로 작은 꽃이라도 피어냈다.② - 인류의 역사를 조명해 보았을 때에, 문화, 예술, 종교를 모두 포함하여 하위 문명권은 보다 발달된 상위 문명권에 의해서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았으며 다양한 형태로 새롭게 발생되고 다듬어졌다. 그러나 그것에서조차 멀어졌던 민족은 미개한 야만족이 되어 멸족의 길로 떨어졌다. - 이는 과학이 문명을 이끄는 한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인류문명의 태동은 물론이고 성장과정에서 비약적인 도약을 가능케 한 것은 불을 이용하여 금속을 다룰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고 부터일 것이다. 인류역사의 황금시대를 연 서막은 금속시대를 열게 된 것이고, 이는 1,000℃ 이상의 온도를 꾸준히 지탱시켜줌으로서 동이나 철을 마음껏 제련하고 필요한 용도에 맞추어 주조(鑄造)와 단조(鍛造)가공이 용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하게 된 것이다. 그에 힘입은 금속문화가 오늘날까지 수천 년을 이어오며 찬란한 문명의 꽃을 피운 토대가 된 것이다. 아니다. 인간의 문명은 금속문화의 꽃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요즘에 와서는 쇠를 녹이는 일 정도야 웬만한 시설만 갖추면 가능할 정도로 간단한 기술이 되었지만, 수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야하는 고대의 세계에서는 첨단기술이라 할 수 있는 대단히 놀라운 발명이었다. 용광로는 쇠를 녹이는 기계의 하나다. 노(爐)내에 고온을 꾸준히 유지키 위해서는 다량의 공기를 지속적으로 주입할 수 있는 장치가 있어야하며, 그 당시에 이미 오늘날의 공기주입펌프와 비슷한 자동화된 풀무장치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과학이 토대가 되지 않으면 만들어낼 수 없는 전문기술이다. 금속시대의 시작인 청동기시대에 인류의 기술적 진보를 상징하는 청동기의 제조에는 당시로서는 기술의 정점인 첨단공법이 망라되었으며 이를 실체화한 것은 신성시여기는 경전(經典,scripture)조차도 종이에 반듯하게 인쇄하여 아낌없이 보여주듯이 과학뿐이었다. 초기청동기시대였지만, 다량의 청동기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동ㆍ아연ㆍ주석 등의 자원이 필요하였으며, 채광(採鑛)을 비롯한 제련(製鍊)기술을 갖춰야 가능하였다. 이에는 금속재료학에 정통해야하고, 원료의 확보를 위해서는 지질학과 토목학도 필수적인 요소 중에 하나로 확보해야했으며, 당연히 고도의 주조기술과 야금학이 뒷받침 되어야하였다. 또한 노동자나 기술자의 수급과 내외에서 사업에 관여하는 인사들을 통제해야하는 인적관리체계는 물론이고 일관된 제조과정의 확립과 이에 필요한 체계적인 운영에는 통계학이 필수적이다. 이 모든 능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바로 과학의 힘이다. 우리 인간이 삶의 충만함을 얻는 대표적인 것으로 꼽는 것이 문화와 예술과 종교라고 말하지만, 이에도 마찬가지로 토대가 되는 것은 어김없이 과학이고, 우주시대에 돌입하는 미래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 거꾸로 종교가 과학의 토대가 되었다고 해보자. 이상하게 들리지 않는가? 종교는 지금까지 수시로 많은 부분에서 과학발전을 저해해 왔다. 한 예로 일부 병리학자들은 중세유럽에서 흑사병이 창궐하게 된 큰 원인 중에 하나가 과학의 발전을 방해한 당시의 종교세력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 이 의미는 과학의 진보에 힘입은 문명의 발전은 그것의 크기에 비례하여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감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사상의 다원화와 그에 따른 문화 예술의 다양화나 기술적 진보에 의한 환경의 발전적 변화를 만드는 등에 있어 완벽한 기초가 됨을 말한다. 〈지동설〉이 진실임이 밝혀졌으니 〈천동설〉을 폐기할 수밖에 없었던 개혁은 자연탐구라는 과학적 사유의 쾌거이고 인쇄술의 발명과 발달로 인하여 경(經)의 참된 의미를 재발견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로 과학의 힘에 의해 불이 지펴졌으며 거부할 수 없는 도도한 흐름이 된 것이다. 요란스럽게 보이는 것 같아도 그 속에 창의적인 발상이 가득한 전위예술(前衛藝術,avant-garde)이나 볼거리와 재미를 한데 섞어 비디오 아트(video art)라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장르를 창출하는 것이나 빨간 흙이나 다른 천연재료로 알타미라동굴 지하성소(地下聖所)의 암벽에다 그리던 원시예술의 단순함에서 첨단 그래픽기술을 도입하여 복잡다단한 인간내면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진일보는 과학이 가져다준 긍정적인 변화의 몇 가지 예일 것이다. 이와 같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지금껏 없었던 것을 창조해 내게 하는 힘은 과학이 제공해 주는 것이며, 이를 인간에게 유용하게 활용하는 것이 문화와 예술과 그리고 종교이다. 그러나 인간역사의 어느 한 시기에, 태초이래의 본연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오던 사회체계를 단숨에 몰락시키고, 알타미라동굴의 순수했던 기원은 오히려 정치적인 색채가 농후한 주술적인 의미를 담으면서 인간이 소중하게 다뤘던 것들이 한꺼번에 깨뜨려지는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③ 어찌하여 오월의 죽순처럼 걷잡을 수 없게 돋아난 이욕은 인간정신을 청명(淸明)케 하던 순수함마저 범람하는 격류에 휘둘리는 핏기 잃은 이파리신세가 되도록 만들었을까? 누가 이 모양이 되게 하였을까? 인간이 어쩌다 지혼(智昏,지혜의 어두움)에 빠져 헤매던 굴종의 시기인 어둠의 시대에는 인간중심의 체계는 물론이고 창조본연의 의미마저 부정되고 훼손되었다. 더구나 그것의 주된 목적이 어처구니없게도 교황권의 확립이었다. 희대의 아이러니라 불러도 어찌할 수가 없는 황당함이 전개된 것이다. 안타깝지만 잘못된 길로 들어섰으니 따라오는 불행이야 당연히 인류에게 가중되는 슬픈 역사가 되었으며, 신성(神性)을 필두로 하는 유일한 하나의 체계만이 세워져 '다수가 하나를 위해 희생되는 것이 진보'라는 신정(神政)질서체제가 호령하는 암흑시대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사회구조의 개방성과 개개의 인간마다 보다나은 내일을 위한 자기결정과 자유에 대한 내적욕구와 그리고 진리탐구와 같은 심오한 관심은 극히 제한되었으며, 창조의 깊은 뜻은 결코 그것이 아님에도 왜곡하게끔 유도하고, 오로지 관리에 놓이고 통제되는 범위에서만 허락되는 의사적(擬似的)자유만을 믿음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니 신성이란 이름아래 강제와 독려로 정제된 인간은 사고를 포함하여 모든 것이 어두운 속박의 굴레에 씌어 진 상태로 반전 없는 끝은 두뇌 크기만 어느 호미니드(hominid)보다 나을 뿐으로 멍청이가 되는 기형으로 수백 년간이나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하늘이 내려준 천부권을 인간 임의로 제한한 결과였다. 그런데 그 시대가 뭐가 그립냐. 꿈에라도 나올까 두렵다. 이제와선 시대가 용납하지 않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또 다시 같은 꿈을 꾸고 재현하려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하늘에 큰 죄를 짓는 것임을 확언할 수 있다. - ① 아놀드 J. 토인비, 1976, 《역사의 연구》 卷1 「문명의 발생, C-Ⅱ 생각할 수 있는 적극적 요인」 - ② 아놀드 J.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AD 1889∼1975)는 문명의 수에 대한 고찰에 있어서 슈펭글러의 '의사적(擬似的) 문화형성'과 필립 배그비의 '주변문명'개념을 도입하여 13개의 독립문명과 15개의 위성문명으로 인류역사를 구분하였다. - ③ 올리비에 크리스텡(Olivier Christin) 著/체계병 譯, 1998, 《종교개혁》/제 1장 내부혁신인가, 종교개혁인가? '前略/연옥을 믿는 사람들은 천국과 지옥의 중간에서 영혼이 머무는 시간을 최소화하기위해 다음 두 가지 사항을 지켰다. 유언장에 자선 기부금을 많이 적는 것과 면죄부를 구입하는 것이 그것이었는데,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것으로 죽은 후에 연옥에서 영혼이 머무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믿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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