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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하다
밤에 잠을 자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잠이 오지 않으면 억지로 잠을
청하기보다 잠이 들지 못할 때는 일어나 책을 읽기도 했고, 머릿속에 든 생각을 글로 풀어내곤 했다.
그런데 무더운 여름 동안은 제대로 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잠을 잘 수도,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는 기간이 2주나 계속되었고 정신을 잃은 채 살았다. 그러다 더위가 어느 정도 물러가고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여러 차례 내린 후, 나는 다짐한 것이 있다. 그것은 늘 생각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혼자만의
여행을 계획하고 떠나는 것이었다. 가을이 오면 언제, 어느 때라도 내 마음이 움직이는 대로 여행을 가리라
마음먹었다. 짧은 하루 동안 여행이 될 수도 있겠고, 며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며칠 전에 비가 내릴 때 무작정 우산을 펼쳐 들고 거리를 떠돌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익숙하게 보았던 사물들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고, 준비했던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찰칵'하며 사진이 한 장씩 찍힐 때마다 추억이 한 가지씩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날의
풍경들이 되살아났고, 말할 수 없었던 아픔마저도 한 장의 사진이 찍힐 때 경련처럼 일었다. 잃어버렸던
꿈도 기억이 나고, 그리워했던 것들,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인생마저도 한 장의 사진이 찍힘으로 인해서 다시금
되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언제나 함께 했던 나 자신, 특히 아프면서도 잘 버텨주는 내 발에 고마움이
느껴졌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내 발을 내려다보며 사진을 한 컷 찍었다. 며칠째 통증이 느껴지던 발이었다.
뚜렷하게 눈에 보이는 상처도 없었고, 병원에 가도 엑스레이 상에 별다른 것이 보이지 않아 특별히 치료받을
것도 없어서 가끔 발목 보호대를 하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 이틀 후 주말, 짧은 하루 동안의 여행을 계획했다. 편안하게 잠을 자야 다음날 가벼운 걸음으로 길을
떠날 수가 있는데 좀처럼 잠이 들지가 않았다. 최대한 마음을 편하게 가지려고 노력했고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도 눈을 뜨지 않았다.
몇 시간 동안 눈을 감고서 나는 내가 잠들었다고 생각하며 눈을 뜨지 않았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순간 허기가
느껴졌고 배가 부르면 잠이 들 것도 같아서 일어나 밥을 먹었다. 포만감이 느껴졌고 정말 잠이 들 것만 같았다.
누워서 바로 잠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한 시간도 채 자지 못했었다. 그래도
일어나 아침밥을 했고 도시락을 만들었다. 물을 끓여서 보온병에 하나 가득 담아두고, 다시 물을 끓여서 내가
좋아하는 헤이즐넛 향의 원두커피를 내려서 다른 보온병에 담았다. 사과 하나와 과도도 챙겨 넣었다. 그랬더니
종이 가방 하나 가득하였다. 옷장 문을 열어 뭘 입어야 할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나에게는 많은 옷도 없었고
그저 평범한 옷들이 대부분이다. 바지를 입을까 하다가 날씨가 더 쌀쌀해지기 전에 예쁘게 입고 한번 외출하고
싶은 마음에 원피스를 골라 입었다. 언제 이 옷을 또 입고 외출할 일이 있을까 싶어 거울 속에 나를 비춰보면서
허전한 목에는 안 하던 목걸이도 걸었고, 낮에 기온이 올라가면 다소 답답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그래도
스카프를 한 장 둘렀다. 짧은 머리는 풀기보다 바람에 날릴 수도 있어서 머리핀으로 단정하게 고정을 하고,
원피스 색깔에 맞춰서 갈색 스타킹보다는 검은색 스타킹을 신고서 다시 거울 앞에 서니 단아한 모습의 한
여자가 웃고 있었다. 그래 이 정도면 합격이야 생각하고 집을 나섰다. 다소 허기가 지는 것 같아 사과 반쪽을
먹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아 가슴 속이 답답해지면서 체기가 느껴졌다. 이제 길을 나선 것인데, 혹시나 하루
동안의 여행을 망칠 수도 있겠다 싶어 미리 준비해 두었던 소화제를 하나 먹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조금 피곤하기도 했고 예정된 여행을 포기할 수도 없어서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기 위해 나 자신에게
속으로 '괜찮다 괜찮다 괜찮아질 거야'라며 마법의 주문을 걸고 있었다. 그랬더니 답답하게 느껴졌던 체증이
조금씩 풀리면서 머릿속이 한결 맑아지는 것이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해가 질 때까지도 물만 조금씩 마실
뿐 도시락은 먹지 않았다.
주말도 평일과 별다를 바 없이 지냈었는데, 이번 주말은 많은 사람을 구경했고, 허브 식물이 있는 곳으로
향하면서는 많은 향을 온몸으로 받았다. 그래서인지 오랫동안 내 몸에서는 좋은 향이 풍겨 나오는 것만 같았다.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는 조금 높은 곳에 올라서서 아래를 내다보니 우물 안의 개구리 마냥 살았던 내가
떠올려졌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혼자가 아니란 것이 느껴졌고 많은 사람이 스치고
지나갔던 때도 생각났다.
작은 마을을 품에 안은 듯 산들이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 소박하고 정겹게 느껴졌고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해는 구름 속에 가려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했고 바람은 구름을 몰고 와서 여러 가지 형상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때로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기도 하고, 귀여운 강아지들이 하늘에서 뛰어놀기도 했다. 나는 하늘을 보면서
바다가 생각이 났다. 옛날에 자주 찾았던 해운대 바닷가가 문득 가보고 싶어졌고 두둥실 떠도는 구름을 보고
있노라니 사람이 많이 찾는 광장으로 보이기도 했다. 답답한 마음을 푸른 바다에 실어 보내고서 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처럼 바다 대신 하늘을 보면서 차분한 마음이 들었다. 두르고 있던 스카프를 풀어 풀밭에 내려놓고
가만히 앉아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노래도 불렀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나의 노랫소리를
들을 리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고 내 노래는 끊이지 않고 나왔다.
초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께서는 교과서에서 나오지 않는 노래도 몇 곡 가르쳐 주신 일이 있었다. 나는 그 노래도
떠올려서 부르기도 했고, 합창부에 있을 때 부르던 노래도 불렀다. 쌍둥이 조카들을 재울 때 부르던 노래도,
흘러간 가요도 모두가 자장가 마냥 잔잔하게 불렀다.
어느덧 해는 지고 어둠이 찾아들었다. 그래도 전혀 무섭지 않았다. 가로등이 하나씩 밝혀지고 나무들에 걸려있던
조명등에도 불이 들어오는 순간 낮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빨강, 파랑, 노랑, 분홍, 초록
각각의 다른 색깔의 조명등이 함께 어울려서 어둠을 밝히고 있는 모습이 마치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세상이 펼쳐
지는 것만 같았다. 현실이 아닌 꿈속에 들어와 있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꽃은 없지만, 어둠이 내려서 향기가
더 은은하게 퍼지는 라벤더밭 한가운데서 나는 한 편의 영화를 찍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두 눈을 감고서 어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사랑하는 두 연인이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을 떠올렸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을 가슴에 안고
살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내 마음의 달력에 추억의 풍선 하나를 걸어 두었다. 세상이 더는
추하지 않고 아름답게 보일 수 있어서 하루 동안의 여행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마음 안에
좋은 것을 품고 살아가리라 마음먹었다. 못했던 경험을 한 가지씩 해 보면서 나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도 계속
할 것이다. 늘 생각만 하고 용기가 없어서 할 수 없었던 것도, 홀로서기에는 두려워서 포기했던 것마저도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느끼고 두 다리로 당당히 설 수 있게 노력해야겠다.
아직 나는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가. 그리움만 가득했던 날은 조금씩 떠나보낼 것이다.
비꽃(瑜眞 이은숙)
댓글 2개
훌훌 던져버리고 떠나는 하루치 여행 옛사랑과 다가올 사랑의 절묘한 만남 그리움을 가다듬어 길을 찾아 가는데 굳은 마음은 오랜 고통을 긍정한다고 감사합니다. 비꽃님
전 늘 엇갈린 인생만 살았던 것 같습니다. 지난 일들은 세월 속에 묻혀서 아무런 일도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과거의 일로 더 이상의 고통은 받지 않습니다. 새롭게 저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계속할 것입니다. 늘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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