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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는 악몽이였지만, 이제 다시 꾸고 싶은 꿈.

미오새 2012. 10. 16. 오후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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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는 악몽이였지만,
        
이제 다시 꾸고 싶은 꿈.


국적 / 대한민국
성별 / 남자
나
이 / 18세,
상기의 조건을 충족한 사람은 법으로 규정한 정당한 사유외에는,
누구라도 예외없이 대한민국 병역법 제 8조에 의거하여 병역의 의무를 치러야 합니다.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범법행위가 되는데,
기상천외한 갖가지 편법을 동원하여 징집면제의 특혜를 받는 소수의 사회지도층 자제들을
\"신의 아들\"이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투자의 귀재라는 \"워렌 버핏\"은 권력이나 재력가의 자녀들을 일컬어
\"행운의 정자클럽\"이라는 표현을 썼지요.
14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 중, 프랑스의 항구도시 칼레에서 시작되었다는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은 아니더라도,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고결한 사명감같은
거창한 뜻은 예외로 하더라도, 최소한의 준법정신이라도 갖추었다면,
\"신의 아들\"이라는 조소섞인 비아냥은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징집 신체검사 결과, 심신에 결격사유가 없어 입영대상자로 확정되면,
훈련소에 입소하여 신병훈련을 마치고 근무지에 배치되어
이등병의 계급으로 군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어릿보기같은 꺼벙한 모습으로 시작한 병영생활은 *짬밥 한 그릇
늘어날 때마다 눈치와 요령만 생기는지, 서서히 신참의 티를 벗으며
군인의 길에 익숙해져 가고, 몸에 맞춘 옷처럼 군복이 어울릴 때 쯤이면,
아쉬움과 후련함이 교차하는 형용키 어려운 야릇한 기분으로 병영생활을 마치게 됩니다.
남녀의 대화중에서 여성들에게 재미없고 따분한 취급을 받는 축구이야기,
그 다음은 군대이야기, 그 중에서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에 여성들이 가장
식상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습니다.
제대를 하고 예비군아저씨가 되면, 홀로 혁혁한 전공을 세운 것처럼
온갖 무용담을 늘어 놓기도 하고, 자기가 없으면 군대가 곧 마비 될 것처럼
허풍을 떨기도 하고... 그저, 듣고 있자면 따분하고 지루 할 수 밖에 없지만,
직접 병영생활을 겪어보지 않고서야 어찌 그 애환과 고충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병역의 의무를 치르지 않은 사람들에게 군대이야기는 실감나지도 않고,
공감하기도 어려운 고루한 이야기에 불과하겠지요.

시간은 누구에게나 정확하고 공평하게 흘러 가겠지만, 전역 날자를 받아 놓고
일상생활로 돌아 갈 기대에 부풀어 있으면, 시간의 흐름이 무척 더디게 느껴지는지,
\"국방부 시계는 멈출지라도, 위병소 바리케이트에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고참의 시간은 흘러간다\" 고, 제대 30여일 전쯤의 전역대기자들은 너스래를 떨기도 합니다.
\"차렷, 경례, 신고합니다, 병장 미오새,
OOOO년 O월 O일부로 전역을 명 받았기에 신고합니다\"
이발소의 거울 앞에서 바리캉에 밀려나가는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바라보며 비장한 다짐으로 시작했던 30개월여의 병영생활은 부대장님께
전역신고를 끝으로 민간인 신분이 됩니다.
이력서의 병역란에 \"만기전역\" 이라고 기록할 때마다 가슴 뿌듯하고
스스로 대견했던 느낌은, 어떤 불합리한 상황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온갖 애환속에서도, 병역의 의무를 정상적으로 마친 자 만이
느낄 수 있는 성취감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
그리고, 이마에 솜털 보송보송한 시절에 입대하여,
세상에 적응하는 힘을 기르고, 나름대로 생존전략을 터득하였으니,
사회로 돌아가면 불가능이란 없을 것 같은 사기 충천하여 제대하였지만,
군 생활 3년여의 사회공백기 탓에 뜻하지 않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겪으며
일상생활에 적응해 가는 과정을 거치면서, 누구라도 한 번쯤은
공통적으로 꾸게 되는 꿈이 있습니다.\"
\"당신은 행정착오로 인하여 다시 입대하여야 합니다\" 입영통지서를 다시
받는 꿈이지요.
꿈이였으니까 다행이라는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면서 깨어나기는 하지만,
과거의 경험이 연상되어 놀라게 되는 조건반사처럼, 한 낱 꿈속에서도
재입영소식에 간담은 서늘해지고,
가위에 눌린 듯, 놀란 가슴은 쉽게 진정이 되지 않는걸 보면,
병영생활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인 듯 싶어요.
\"제대증도 있고, 또한 행정착오이니까 순서를 밟아 해명을 하면 잘 될꺼야\" 이런
차분한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재 입영소식에 미리 기겁을 하는 걸 보면,
통제된 환경에서 집단적 사고에 동화되며, 타율(他律)에 길들여져 가는 과정이
고달프고 힘들었기 때문이겠지요.
\"사제옷을 벗고 군인의 옷을 입었으니, 이제 너희들은 인간이 아니다.
주면, 주는대로 먹고, 까라면, 까고, 때리면, 맞고,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는 군바리다. 알았나..!
밤은 깊어 사위(四圍)가 고요한 시간, 고참들의 집합명령에 불안하고 두려운 표정으로
모여있는
햇병아리들은 고참들의 과장된 객기에 주눅들고 기가 질렸지만,
집합과 엄포의 과정이
몇 번 반복되다보니, 곧 귀에 익숙해지고 체질화 되어가는
무감각한 소리가 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단체생활의 규율을 잡기위한 고참들의 치졸하고 과장된 그 표현속에는 어찌보면,
그 시절 군대생활의 한 모습이 함축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지휘관의 시선을 피하기 위하여 야심한 시간에 신참들을 집합시켜 억압적인 폭언으로
졸병들의 기를 죽이던 고참들도, 시키면 시키는대로, 까라면 까야하는 졸병생활을 거쳤을테지요.
며느리 나이들어 시어미 된다더니, 누구라도 고참이 되면, 상하간의 위계질서를 바로 잡기 위하여,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같은 내용의 엄포를 같은 방법으로 신참들에게 반복하는 것이
그 시절 병영생활의 한 모습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가장 혈기왕성하고 자유분방한 시절에, 엄격한 기강과 온갖 제약에 얽매여
감정의 온도계가 고장난 인간으로 3년여의 세월을 보냈으니 그 생활로 다시 돌아 간다는게
싫고 두렵기도 하겠지요.
그리고,
계급장도, 이름표도 붙이지 않는 유격훈련장에서는 계급의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모두 \"올빼미\" 로 통일하여 부릅니다. 그리고 숫자가 이름을 대신합니다.
절벽과 절벽을 밧줄로 연결하여 외줄타기를 한다든가, 로프에 걸린 도르래를 타고
강을 건너는 등, 위험한 유격코스의 특성상 자칫 방심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서,
유격훈련은 담력과 근성을 키우는 주 된 목적 외에도, 긴장된 마음을 늦추지 않도록
피티체조와 혹독한 기합으로 이루어진 극기훈련이지요.
백여명의 부대원이 모여 훈련을 받다보면, 단체기합의 빌미가 되는,
팔각형의 빨강모자를 쓴 유격장조교들의 의도된 함정에 빠지는 대원이 반듯이 나오게 됩니다.
제식훈련중에 \"우로 돌아\" 구령에 좌로 도는 대원이 꼭 몇 명있기 마련이고,
피티체조의 마지막구령은 생략하라는 조교의 지시를 새겨듣지 못한 몇 명 때문에
전체 부대원이 기합을 받기도 합니다.
기합의 종류와 용어가 일반인들에게는 아주 생소하겠지만,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원산폭격,
선착순 달리기,오리걸음으로 연병장돌기 같은
기합을 받다보면, 몸은 기진맥진 탈진 상태가
되어가지만, 정신만큼은 일당백(一當百)의
근성과 투지로 충만한 경지에 이른 듯 합니다.
명목은 몸풀기 준비이지만, 단체기합의 성격이 짙은 피티체조를 마치고,
이제 담력과 기술을 요하는 암벽타기, 외줄타기, 도하, 도강같은 코스훈련을 시작하지요.
외줄타기코스 앞에 서서 두팔을 양옆으로 곧게 뻗고 차렷자세를 취한 44번 올빼미.
빨간모자를 쓴 유격대의 조교를 향해 발악하듯 목청을 높여 외칩니다.
\"44번 올빼미 도하 준비끝\".
조교 : 죽어도 좋습니까?
44번 올빼미: 예, 죽어도 좋습니다.
조교: 애인 있습니까?
44번 올빼미 : 예, 있습니다.
조교 : 애인 이름 세번 복창하고 도하실시!
44번 올빼미 : 영자야, 영자야, 사랑한다, 영자야!


전장에서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받게되는 힘들고 어려운 유격훈련을 받으면서도,
그 이름 지켜주고 싶어서 목이 터져라 부르고 불렀건만...
어느 날, 영자가 변심하여 떠났다는 소식에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배신감으로
앞뒤 상황을 살필 경황도 없이, 한 걸음에 고향으로 달려가서 변심한 까닭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던 강열한 충동도, 철조망을 넘어 부대를 무단 이탈하는
탈영만은 안 된다고 이를 악물며 참아야 했던, 그 시절 군대는
청춘을 묻어야 하는 곳이기도 하였습니다. 
똑딱거리는 시계 소리가 마치 세월흐르는 소리처럼 초조하게 들려서
벽시계의 작동을 멈추게 했을지라도, 시간은 흐르고 흘러 갔는지
어느 듯 지나간 시간들이 그리워지는 세월에 이른 어느 날...
영자도 전성시대가 끝났는지 친정으로 돌아와서 두문불출, 은둔자처럼
지내고 있다는 유쾌하지 못한 소문이 어디에선가 들려 올 때는,
\"그래, 십리도 못가서 발병 날 줄 알았다\"고 고소한 생각이 들기 보다는,
고무신 거꾸로 신고, 사나이 가슴을 아프게 하였으면, 보란듯이 행복하게나 살 것이지...
씁쓸한 연민의 정이 앞서고, 그 시절의 분노도 어느 세월에 사그라 들었는지,
그 때를 생각하면 헛 웃음만 나오고, 기필코 갚아 주리라 다짐했던 배신에 대한 응징도,
한 때의 치기어린 감정쯤으로 치부할 수 있을 만큼, 세상이치 깨달아가는 세월에 이르고보니.
행정착오로 재 입영통지서를 받는 악몽 같았던 그 꿈도 이제 다시 꾸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꿈 다시 꾼다면, 비록 꿈 속일지라도 자신있게 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재 입대로 짬밥 3년 더 먹는것이 무슨 문제이겠습니까?
행정착오여도 좋으니, 제발 그 시절로 돌아가게 만 해 주십시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태어나서 단 한번도 엄마와 아버지께
기쁨을 드리지 못한 불효도 만회하고 싶고,
\"잘 있어요, 잘 가세요\" 군악대의 환송곡이 흐르는 플랫폼에서 입영열차가 떠나는 모습,
지켜보고 계시던 엄마에게 눈물이나 흘리는
나약한 모습 보이지 않고 보무 당당하게
입영열차에 오르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은데...
그리고 무엇보다도,
격식을 갖춘 전역신고도 엄마 앞에서 제대로 한 번 해보고 싶은데...
\"차렷, 엄마에게 경례, 예비역 육군병장, 미오새,
엄마의 기도와 염려에 힘입어 3년 군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귀가하였으므로 이에 신고합니다. 경례\" 
그리고, 열에 여덟쌍은 실패로 끝났다는 첫사랑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성공확률을 높일 자신도 있는데...그 시절로 다시 돌아 갈 수 있다면,
어찌 재입대가 문제이겠습니까.
미움도 정이라더니, 고통스런 기억도 추억이 되고, 세월따라 꾸는 꿈도 다른 것인지,
지난 시절의 꿈들이
그리운 세월에 이르고 보니, 행정착오로 재 입영통지서를 받는 꿈.
그 때는 악몽같았던 그 꿈, 이제 다시 꾸고 싶은 꿈이 되었습니다.

입대하면서 나이세기를 잊었지만, 그렇게 잊었다고 세월이 멈추는 것도 아닌 것을...
아무래도, 세월은 결코 되 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아가는 까닭이겠지요.
지나고 보니, 회한만 남는 세월탓이겠지요.


*후기.
제대 후, 가끔 꿈속에서 놀래키던 행정착오로 인한 재입영통지서 이야기는
병역의 의무를 필한 대한민국 남자, 거의 대부분이 일생에 한 번쯤은
꾸게되는 꿈이라고 합니다.
사진은 이름표와 계급장을 붙이지 않는 유격장의 전통에 따라
상의를 뒤집어 입고, 한 가닥 밧줄에 의지하여, 날개 없는 한을
다독이고 있는 44번 올빼미의 모습입니다.
*짬밥은 일본식 한자어 표기 잔반(殘飯)의 일본식 발음에서
비롯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짬밥 그릇 수가 많다는 것은 관록이 붙은 사람을 지칭하는 것 같습니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어찌 재입영영장을 받는게 문제이겠습니까.
준비하고 기다리는 44번 올빼미 여기 있으니 널리 소문 좀 내주십시요.
그 때 그 시절로 돌아 갈 수 있도록...
감사합니다.

댓글 8개

박성실 2012. 10. 16. 오후 05:32

그 시절로... 미오새님, 이야기가 재밌어서 훅~ 읽었습니다. 그리고 공감이 되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또 저 44번 올빼미가 미오새님일까 싶어 궁금하기도 했습니다만(저 부대 이름 전에 이야기하셨던 그 부대인 것 같은데) 번번히 기대를 저버리시는 신비주의에 의거, 묻지 않겠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퇴근시간! 더 쓰고 싶으나 이만 해야겠습니당.. 아래서 뵜으나, 또 보니 반갑습니다! 그럼 전 갑니다.. 헤헤

김문숙 2012. 10. 17. 오전 12:34

모처럼 재미있는 얘기 같은 얘기 감사드립니다. 마음이 한 결 푸근 해 졌거든요. 두째 아들 면회를 끝내고 문을 확 열였을 때 그 캄캄했던 화천의 밤 면회소 언덕을 내려 오는 건지 굴러 오는 건지 그 황당함 이제 또 그립네요. 군복속에서 아들이 아들답게 아들다워 보이던 날 . 긴 기다림 짧았던 만남 고맙습니다 즐거운 회상 기회ㅡㄹ 주셔서 더욱 행복 하시기를

박종영 2012. 10. 17. 오전 12:40

재 입영, 군대생활 두 번, 44번 올빼미 미오새 인가요? ㅎㅎㅎ 참말로 재미나게 쭉 읽었습니다. 하기야 50여년 전의 내 군대시절은 축에도 끼지 못하겠습니다 대한민국의 병역법은 모병제가 아니고 징집제로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재 입영은 없습니다. 그런데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싸이'는 군대를 두번 갔다고 하데요 즐거운 날 되십시오, 미오새님/

김현배 2012. 10. 17. 오전 06:45

아픔도 모르고 아팠던 그 시절 이미 지나버렸고 돌아갈 수 없음을 알기에 가슴 깊이 감동할 수 있다 지나간 꽃다운 날들... 감사합니다. 미오새님

미오새 2012. 10. 17. 오후 10:53

*성실님.. \"외국인 학교에 자녀 \"부정입학\"...재벌가 아들, 며느리 줄소환.\" 2012 년 9월 14일., 어느 일간신문 사회면의 기사 제목입니다. \"행운의 정자클럽\"은 사회 곳곳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서 그 기사를 읽는 내내 소태씹은 뒷맛처럼 씁쓸했습니다. 요즘 대선 후보 몇몇분이 군복무 시절의 사진을 공개하는 걸 보면서, 44번 올빼미도 샘이 났던가 봐요. 왜냐면, 아직 초등학교 입학도 하기 전, 대여섯살 무렵의 어린 시절, \"너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냐\"는 동네 어르신들의 질문에 어깨 으쓱하며 \"대통령\"이라고 대답했던, 한 때는 44번 올빼미도 대통령 지망생이였거든요. 대통령이 무슨일을 하는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그저 우쭐대는 마음으로 대답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코흘리개 시절이라고는 하지만, 동네 반장감도 못 되면서 감히 대통령을 꿈꾸었던 44번 올빼미...헤헤! 성실님의 웃음소리에는 묘한 흡인력이 있어요. 그래서 따라 해보기는 하지만 성실님만큼 상대를 유쾌하지 만들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언제인가 퇴근길에 우리 서로 마주 치면 집으로 곧장 가지 말고, 커피라도 한 잔 하실까요, 성실님!

미오새 2012. 10. 17. 오후 10:57

* 김시인님.. 30개월여의 군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열차안에서는 어머니 앞에 서서 차렷자세로 경례를 하고 절도있고 우렁찬 목소리로 전역신고를 하리라 마음먹었는데, 막상 어머니 앞에 서니 얼마나 어색하고 부자연스럽던지... 결국은 그 때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했던게 두고두고 후회가 됩니다. 기회가 다시 올리는 없겠고, 어찌하여 사람은 세월속에 회한만 남기는지... 시인님 다녀가신 흔적으로 남겨주신 글속에서 하늘 가신 엄마를 바라봅니다. 감사합니다.

미오새 2012. 10. 17. 오후 11:00

*박선생님.. 입대하기 전에 듣던 살벌하고 엄격한 군대이야기에 두려움도 있었지만, 실제로 입대하여 직접 겪어보니 군생활은 낭만도 있었고 보람도 있었습니다. 놀라는 꿈을 꾸면, 키가 클려고 그런 무서운 꿈을 꾸는 것이라고 옛 어른들은 말씀하셨지요. 그런데 행정착오로 재입영영장을 받는 꿈은 키가 크는 보상도 없이 괜히 꿈만 무서웠지요. 감사합니다.

미오새 2012. 10. 17. 오후 11:10

*현배님.. 남자친구를 군에 보내 놓고 전역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못하고, 여인이 변심하는 것을 왜 고무신 거꾸로 신었다고 하는지, 혹시 그 유래를 현배님은 아시는지요? 힘든 훈련중에 자주 불렀던 군가 중에 \"진짜사나이\"가 있지요, 그 가사 중에 \"훈련과 훈련속에 맺어진 전우야\" 라는 귀절이 있습니다. 그 전우가 고무신 거꾸로 신은 여인의 변심 때문에 힘들어 하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군요. 현배님의 말씀처럼, 아픔도 모르고 아팠던 그 시절로 돌아 갈 수 있다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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