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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난 두 번째 여행길
푸른 하늘만 봐도 그리움이 물밀 듯이 밀려와 가만히 내 귓가에 맴도는 바람 소리만 들어도 어디든 가고
싶어진다. 자꾸만 찾아드는 외로움에 가만히 있으면 더 우울해질 것 같은 요즘 지방에 다녀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한번 가려면 큰 맘 먹고 가야 하는 곳인데, 오전부터 길을 나서면서 처음에는 기분이 좋았다.
나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하면서 익숙하게 보았던 것도 다시 한번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어릴 적 놀던 뒷동산에도 다시 올라보고 싶었고, 여름이 지난 바닷가도 가보고 싶었다. 짧은 일정이라도
나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으리란 생각에 조금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하지만 버스에서
전철로 갈아타면서 점점 안 좋아지는 몸 상태 때문에 혹시라도 아침 먹은 것이 탈이 날까 싶어 소화제를
꺼내어 입에 넣어 삼켰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서 두 눈을 감았다. 점점 전철을 타는 사람이 많아지고 또다시
자극적인 냄새가 날 것 같아 걱정되었지만, 터미널까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시간 동안 예전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잠시 밖에서 맑은 공기도 마시고 조금은 진한 커피 한잔에 상쾌한 기분이 들었는데 서울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머리가 무거워지면서 영혼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떤 말이라도 해야 했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차마 입을 뗄 수도 없었고 그렇게 한 시간가량 잠이 든 것도 아니면서 마치 죽은 듯이 있었다. 그러다 휴게소에
도착해서야 서서히 내 영혼이 깨어나는 듯했고 답답했던 가슴도 조금씩 풀리고 머릿속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어둠이 찾아들고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허기가 짐을 느꼈고 따뜻하게 배를 채우고서 동생 집에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혼자 집에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밤에 일을 나가는 동생네는 안 그래도 넓은 평수의 아파트가 더 넓게
느껴졌다. 일찍 잠이 들었다가 일찍 깨어서 한참을 깨어 있다 잠들기를 반복하다 겨우 아침을 맞았다.
부모님께서 계신 시골집으로 가니 이미 추수를 시작하시어 벼를 말리고 계셨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
나갔는데 들녘을 걸어 다니며 한층 기분이 고조되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아직도 남아 있는 집 안의 우물 속도
엿보고, 집 뒤의 감나무는 다시 감을 매달지도 못하는데, 집 앞에 새롭게 자란 감나무에서는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이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재작년에 내려갔을 때만 해도 가을이 되었을 때 몇 개 남아 있지
않았고 크기도 너무나 작았는데, 이번 해에는 바람에 심하게 흔들려 다 떨어진 줄 알았더니 제법 많이 매달려
있는 감을 보니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쌍둥이 조카와 잡은 메뚜기를 놓아주면서 잘 가라고 인사도 하고, 해맑게 웃는 쌍둥이의 모습도 카메라에
담고서 그렇게 즐거운 오후를 보내고, 저녁을 먹은 후 함께 일찍 잠이 들었다. 많이 잤다고 생각했는데 겨우
두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깨어서 오래도록 다시 잠들지 못했다. 유난히 크게 들리는 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가 더 신경에 거슬려서 어쩔 수 없이 시계의 건전지를 빼어놓고 바닥에 내려 두었더니, 아침에 일어나
쌍둥이가 하나같이 왜 시계가 바닥에서 죽어있는지 궁금해하기에 찬찬히 설명을 해 주었다.
아침밥을 겨우 몇 술 뜨지도 못하고 신물이 넘어올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쌍둥이와 잠시 시간을
보내다 뒷산에 다녀오겠다고 하고 밖으로 나왔다.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큰 은행나무 한 그루를 보았다.
어릴 적에 엄마께서 바닥에 떨어진 은행 몇 개를 주워오셔서 깨끗이 씻은 다음, 가지고 놀아라고 주시던 때가
생각났다. 바로 그때 은행을 주워오신 그 은행나무 아래를 지나면서 추억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고, 죽순이
올라올 때쯤이면 대나무 숲에 들어갔던 때도 생각이 났는데 어느새 대나무는 산 아래까지 내려와 있었다.
더운 여름이면 '시원한 산'이라 이름 붙인 소나무가 둘러싸인 곳에 올라가 놀던 생각이 났다. 그래서 아지트
같은 그 시원한 산이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 싶어 올라갔더니 양쪽으로 소나무가 늘어서 있었다. 마치 안으로
들어가는 문인 양 서 있는 소나무를 보니 세월의 흐름이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네를 매어서 타던 소나무는
가지가 꺾여 있었다. 어쩌면 지난여름 강했던 태풍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산 아래 내려다보이는 들판을 보며 새삼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내 키보다 훌쩍 큰 억새들과
곳곳에 둘러싸인 소나무들이 어른이 되어 다시 찾은 나를 보고 미소 짓는 것 같았다.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곧게 자라는 나무와 풀들은 나에게 열심히 살라고 힘을 주는 것만 같았다. 세월이 지나도 언제나 같은 자리에
변함없이 서 있는 소나무들은 한층 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나도 그 소나무처럼 변하지 않는 곧은
마음가짐과 함께 내 꿈을 향하여 끝없이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늦은 오후에는 경전철과 지하철을 갈아타며 한 시간가량 걸려 도착한 바닷가를 거닐며 마음이 차분해짐을
느꼈다. 다시 찾고 싶은 바닷가였다. 구름 가득한 하늘에 내 마음을 잔뜩 깔아두고 그리운 누군가를 떠올려
보았다. 불러도 오지 못할 사람이지만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 위에 내 마음을 다시 실어 보내고서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늘 내 마음속에 있는 변하지 않을 사랑을 위하여, 진정으로 나 자신을 찾아 새롭게 거듭날 나를
위하여 끝없이 생각하고 다짐하면서 바닷가를 거닐고 또 거닐었다. 그러다 멀리서 들리는 음악 소리에 발길이
향하여 사람이 모인 곳으로 가보니 처음 보는 악기를 연주하며 알아들을 수도 없는 노래를 부르는 외국인
한 사람을 보게 되었다. 낯선 땅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면서도 미소 짓는 그분의 얼굴은 너무나
평온해 보였다. 그곳에서 서너 살 되어 보이는 꼬마 한 명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니 악기를 연주하는 분이
더 신이 나서 끝없이 노래를 부르게 되고 발길이 머물면서 잠시나마 덩달아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혼자서 걷는 길이 전혀 외롭지 않았고 어느 순간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가
지려는 해를 바라보며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붉게 물든 노을이 바닷물에 비치고 바람에 물결이 일렁이니
더욱 예쁘게 보였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몇 번 더 셔터를 눌렀는데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다 담아
내기에는 내가 가진 카메라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한순간을 담아내었다는 자체만으로도 뿌듯해졌다.
바닷가에서 아름다운 일몰을 본 것은 난생처음이어서 나는 오래도록 그 모습을 잊지 못할 것이다.
시골집 비어 있는 방에서 책장 가득히 먼지만 쌓여가는 책을 그대로 둘 수 없어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을
골라내면서 다 가지고 올 수는 없었지만, 나중에 새로 이사를 하고 책장을 다시 마련하면 그 책들을 모두
가지고 오리라 마음먹고 이번에는 스무 권가량의 책만 가지고 왔다.
이번 여행에서 나의 몸 상태는 영 아니었지만, 떠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떠돌지만 다 풀어내지 못했는데 조금씩 풀어질 것 같다. 늘 밝은 미소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절대 서두르지 않고 차분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며 차마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과 앞으로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풀어내면서 헛되지 않을 삶을 살아가리라 마음먹었다. 내가 생각하는 그날이 머지않았음을
느끼며 조금씩 성숙해지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은 약해지지 말자고 다짐하며 마음속에 일렁이는
그리움에 가슴이 아파져도 그 아픔마저 사랑할 수 있는 내가 되려 한다. 인내는 쓰지만, 그래도 인내하며
살리란 나의 신념은 변함없으리라.
비꽃(瑜眞 이은숙)
댓글 2개
그래요ᆢ신념ㆍ♬ 믿음은 힘이예요.^^
네 감사합니다. 예전에는 무조건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살았지만, 지금은 '인내는 쓰지만, 그래도 인내하며 살자'라는 신념으로 살아갑니다. 삶에서 겪는 슬픔, 외로움, 아픔, 기쁨, 행복... 모든 것들은 다 오전히 자신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댓글 주셔서 고맙습니다. 깊어가는 가을처럼 고운 하루 열어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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