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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을수록 향기로운 모과처럼
이른 새벽,
별을 보러 문밖으로 나섰다가 찬바람에 쫓겨 다시 방안으로 들어와
마음 안섶을 파고드는 냉기를 몰아내려고 모과차 한 잔 가슴에 들이부으며
문득 그대에게 모과꽃 한 송이 보여주고 싶어졌습니다.
저 화사한 연분홍의 모과꽃이 피기 시작하면
세상의 봄은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져
들로, 산으로 연초록의 불길이 봄불처럼 번져가곤 하지요.
세상의 하많은 꽃들 제쳐두고 하필이면 왜 모과꽃이냐고 반문하실지도 모르지만
굳이 모과꽃을 골라 걸어두고 편지를 쓰는 까닭은
지난 가을, 한 시인으로부터 건네받았던 모과 한 알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물안개를 무장무장 피어올리는
함께 새벽 호수를 보러 나선 이른 새벽의 산책길에서였지요
그 시인은 모과 나무 아래를 지나다가 바닥에 떨어져 있던
푸른 빛의 모과 한 알을 주워 내게 건네 주었습니다.
벌레 먹은 자리가 시커멓게 변색되어 마악 썩기 시작한 못 생긴 모과 한 알,
그땐 별 생각없이 받아 차 안에 던져 놓았었는데
언젠가부터 차를 탈 때마다 달콤한 향기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향기의 정체가 궁금하여 차 안을 뒤지다가 뒷좌석 한구석에서
노랗게 잘 익은 문제의 모과를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어둑한 한 구석에서
조금씩 익어가며,썩어가며 달콤한 향기를 피워올리고 있었습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사람을 세 번 놀라게 만드는 나무가 모과나무이지요.
처음엔 그 못생긴 모양에 놀라고,
두 번째는 그 향기에 놀라고
마지막으로는 그 떫은 맛에 놀라고 마는.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말이 생겨날만큼
나무참외란 뜻의 목과(木瓜)에서 비롯된 모과란 이름이
못생긴 것들의 대명사가 된 데에는 외양을 중시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시각이 결정적인 기여를 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처음 푸른 빛을 띠었던 모과는
벌레 먹은 자리부터 썩기 시작하더니
이젠 노란 색과 검은 갈색이 반반을 이루며
자동차의 문을 열 때마다 달콤한 향기를 안개처럼 피워 올립니다.
차 안에서 향기롭게 썩어가는 모과를 볼 때마다 생각합니다.
아름답게 나이 드는 법,
혹은 향기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에 대하여.
썩어가면서도 향기로운 모과처럼
사람도 나이 들수록 향기로울 수는 없는 것인지.
그 시인이 제게 건네준 모과 한 알 속엔 그런 깨달음을 제게 주려는
시인의 숨은 뜻이 담겨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합니다.
갑작스레 찾아든 추위가 반가울 것까지야 없지만
모처럼 겨울다운 추위가 이어지는 것이 싫지 않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성가신 북풍이 외출을 꺼리게 만들긴 해도
이 매운 추위가 많은 나무들로 하여금
돌아오는 봄엔 더욱 예쁜 꽃들을 피워내게 할테니까요.
향기로운 모과차나 아껴 마시며 진득하니 봄을 기다려야겠습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댓글 6개
전 예전엔 커피향은 좋아해도 커피는 즐겨 마시지를 않았습니다. 체질상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녹차, 보이차, 허브차, 백산차, 겨울이 되면 유자차, 생강차, 치커리차, 한방차 등 이렇게 즐겨 마셨는데, 사람들이 모과가 못생겼다는 말을 했을 때 저는 모과가 정말 그렇게 못생기게 보이나 싶은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볼 때는 전혀 못생기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사실 모과꽃은 직접 본 적은 없었고 모과 열매는 어디를 가든 자주 볼 기회가 있어서 보게 되면 언제쯤 모과가 익을까 하며 바라볼 때가 있었습니다. 오늘도 모과차를 드시며 생각에 잠겨 계실 선생님 생각을 하게 되네요. 어느 계절보다 겨울을 제일 싫어하던 저였는데 이번 겨울의 추위도 잘 이겨내야겠다고 생각하며 옷 따뜻하게 입고서 자주 외출을 감행합니다. 아직은 이 정도 추위야 별거 아니므로... 아무리 추운 날에도 찬바람만 아니라면 언제든 마음먹고 다니게 됩니다. 남은 시간도 기분 좋게 보낼 것 같네요. 편안한 저녁 시간 되세요. 감사합니다.
모과나무는 장미과에 속하는 나무답게 5월쯤이면 연분홍색의 예쁜 꽃을 피웁니다. 울퉁불퉁한 모과도 예쁘게 보아주시는 아름다운 심안을 가지신 비꽃님이 부럽습니다. 많은 나무들이 추운 겨울을 견디는 것은 꽃 피울 봄이 오고 있음을 믿기 때문이듯 옷깃을 파고드는 북풍이 조금은 성가시더라도 모과꽃 피는 봄이 올때까지 씩씩하게 겨울을 이겨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전 커피를 엄청 좋아하는데 참으로 많은 차를 다양하게 즐기시는군요. 오늘도 향기로운 차와 같은 멋진 하루 지으시길...
어머. 마침 모과차 한 잔 마시고 있는걸요^^ 님의 글과 함께라 더욱 향기롭습니다.
고맙습니다. 차 한 잔의 여유가 부럽습니다.^^
서울 토박이라 태어나 모과꽃 처음 보는데 너무 이쁘네요. 그리고 모과가 과일전 망신을 다 시킨다니 아쉽습니다. 향은 너무나도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데요...고맙습니다.
소연씨 여일하시지요?^^ 꽃에 관심이 많지 않은 사람에겐 잘 눈에 띄지 않는 꽃이 모과꽃이지요. 그래도 모과나무는 장미과에 속하는 수종이라 꽃 또한 장미에 못지 않게 아름답습니다. 나는 겹꽃보다 모과꽃처럼 홑꽃에 더 마음이 끌리곤 합니다. 모과가 과일전 망신을 시킨다는 말은 그릇된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은 하나지만 진실을 여럿이란 말처럼 보는 각도에 따라 그 모양의 미추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12월 기행에서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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