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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지 않는 비결
한 해의
마지막 일몰을 보려고 찾아든
왜목마을 후미진 바닷가
좌판에 쪼그려 앉아
굴 한 접시 시켜 놓고 소줏잔 기울이다
생굴 까는 할머니 손에 눈길이 가닿았다
장갑 낀 왼손으로 굴껍데기를 움켜쥐고
쪼시개를 잡은 오른 손엔 장갑도 없이
굴 까는 할머니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얼뜬 호기심에 한참을 지켜보았던 것인데
주름투성이 손등은 소나무 껍질처럼 갈라지고
물에 젖은 손가락이 탱탱 얼어 불 켠듯 발갛다
맵찬 바람이 수없이 실금을 긋고 가고
소금끼 많은 바닷물이 그 틈을 조금씩 벌렸을
할머니의 얼어터진 손을 보고 있으려니
묵은 근심 걱정은 지는 해에 실어 보내고
가슴에 붉은 해 하나 품어 가려던 나의 생각이
넘치는 호사였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자리를 털고 일어설 때
공연히 미안해져서 할머니 손에
지전 한 장 얹어 꼬옥 쥐어드렸던 것 뿐인데
굴 한 접시, 소주 한 병에
만원이나 더 받는 것은 경우가 아니라며
한사코 뿌리치는 할머니와 옥신각신 하다가 그만
일몰을 놓치고 말았다
-나의 졸시 \"일몰을 놓친 이유\" -
리네트!
몇 해전, 해넘이를 보러 갔던 충남 당진의 왜목마을 바닷가에서 생굴 까는 할머니의 언 손을 보고 끄적였던 나의 졸시입니다. 해마다 섣달 그믐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산으로 ,바다로 묵은 해를 보내고 희망찬 새해를 가슴에 품고 오려 길을 떠납니다. 후미진 바닷가 모퉁이에 좌판을 차려놓고 해넘이를 보러온 들뜬 관광객들을 상대로 생굴을 까서 파느라 얼어 터지고 갈라진 할머니의 손을 보며 괜스레 가슴이 짠해졌드랬습니다. 산다는 게 뭔가 하는 값싼 감상에 젖어서 손에 쥐어 준 푸른 지폐 한장을 너무 많다며 한사코 잔돈을 거슬러 주던 할머니 앞에서 어쭙잖은 나의 측은지심이 얼마나 부끄러웠던지요.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새로 받은 삼백 예순 날이 덤으로 생긴 양 호들갑을 떨지만 실은 유장하게 흘러가는 강물처럼 지속되는 것이 우리네 삶입니다. 설령 해넘이를 놓쳐도, 새해 일출을 못보아도 아침마다 해는 떠오르고 흰 도화지 같은 새로운 하루가 어김없이 주어지게 마련이니까요. 시간의 눈금이란 우리 인간이 스스로 그어 놓은 것일 뿐 허투로 흘려보낼 짜투리 시간이나 덤으로 주어지는 시간은 애시당초 없는 것이지요. 생굴 까는 할머니처럼 비록 고되고 힘들어도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하며 분에 넘치는 것을 탐하지 않는 사람들의 손이 이 세상을 밀고가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남해를 여행할 때 들렀던 해오름 예술촌에 가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 상주리 석각을 모사해 놓은 서불과차(徐不過此)란 서각 작품이 걸려 있습니다. 그 옛날 진시황의 시종이었던 서불이 불로초를 구하러 이 곳에 들렀다가 자신이 다녀간 흔적을 남기려고 바위에 새긴 글씨가 바로 서불과차입니다. 불로불사는 모든 인간들의 희망사항이지만 생로병사는 목숨 가진 존재들의 숙명인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함에도 '늙지 않는 비결'은 있습니다. 그 비결이란 영원히 늙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늙는 속도에 관한 것입니다.
'산청 삼매'로 불리는 단속사지 정당매나. 남사 예담촌의 원정매, 그리고 선천재의 남명매 같은 수 백년의 세월을 건너온 고매화가 꽃을 피었다는 소식을 한두 번은 들어 보셨겠지요? 우리 인간도 하늘이 정해놓은 속도를 따라 살면 고매화처럼 천천히 늙어갈 수도, 늦도록 꽃을 피울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사람들은 서둘러 마음이 먼저 늙어 몸도 따라 빨리 늙습니다. 조급증 많은 사람의 속도를 버리고 하늘이 정한 자연의 속도를 따라 사는 것이 곧 늙지 않는 비결인 셈입니다.
옛사람들은 다음의 다섯가지만 경계해도 우리는 그 속도를 훨씬 늦출 수 있다 했습니다.
첫째는 박이후구(薄耳厚口) 입니다.
귀가 얕아져서 남의 말을 듣기 싫어하고 입은 두터워져 자기 말만 쏟아내게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둘째는 망집(妄執)입니다.
사소한 일에도 자기를 투사하여 고집을 피우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망집을 버리고 마음을 풀어 놓으면 늙지 않습니다.
셋째는 중언부언(衆言浮言)입니다.
말하고자 하는 욕심이 앞서 내용은 없고 말만 많아져 표현이 어지러워 지는 것을 경계해야합니다. 욕심이 없으면 언어가 간결해지게 마련입니다
넷째는 백우무행(百憂無行)입니다.
백 가지 근심만 할 뿐 아무 것도 행하지 않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걱정이 생기면 몸을 움직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리 하지 않으니 몸이 늙을 밖에요.
다섯째는 고안(故安)입니다.
옛 것에 기대어 안주하려는 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해 열려 있는 마음과 낯선 것들에 대해 관대한 태도, 그리고 끝없는 호기심이 불로의 비책인 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를 경계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 훨씬 젊고 아름다울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댓글 5개
구구절절 옳으신 말씀 입니다. 앞으로 나이들어 가면서 꼭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야 겠습니다.
제목만 보았을 때는 아무리 나이가 들어간다 해도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 것이라고 했던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란 시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세월은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지는 못한다는 것과 머리를 드높여 희망이란 파도를 탈 수 있는 한 팔십 세일지라도 영원한 청춘의 소유자인 것이다... 선생님의 좋은 말씀도 가슴에 새기면서 늘 마음 안에 좋은 것을 담으며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시를 읽으니 저는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발바닥을 보시고 까치눈이 떴다고 하셨거든요. 농사일로 거칠어진 손등에 바르시라고 사드렸던 화장품도 잘 바르지 않으셨던 어머니였는데, 말로 다 할 수 없네요. 어쩌다 길을 가다 장애인을 볼 때 그분들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는 도움을 받고 싶어하지 않은 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도와드려도 괜찮냐고 물어보고서 도와드릴 때가 있습니다. 작은 것 하나에도 누군가를 배려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추운 겨울 굴을 까서 생계를 이어가시는 할머니께서도 아마 자신이 노력한 만큼만 대가를 받으려고 하셨을 것입니다. 이제는 11월도 하루만 남겨두고 있네요. 어느 때 보다 빠르게 지나간 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는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것을 배우기도 하고 어린 시절 시골에서 놀던 때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뾰족한 가시에 피어있는 탱자꽃은 제 유년시절의 한 풍경입니다. 어느 시인의 글처럼 저도 가시를 침에 묻혀 코에 붙이고 동네 아이들과 놀던 때가 있었거든요. 지금도 시골집의 우물가 근처에는 앵두나무가 있는데, 봄이면 꽃도, 열매도 다람다람 열린답니다. 예쁜 표현 하나 배웠습니다. 개나리도, 코스모스, 도라지, 맨드라미, 채송화 등등 그 외에도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날들의 풍경을 떠올릴 수 있어서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오늘도 편안한 밤 되세요. 감사합니다.
마음 속에 설레임이 사라지면 그것이 곧 늙는 것이라하던 어느 시인의 말이 생각납니다. 소연씨야 아직 어리니 가슴에 새길 것 까지야 없는 이야기이지만 나이 들면서 옛사람들의 지혜가 새롭게 다가옴을 느낍니다. 언제나처럼 밝고 환한 모습으로 하루하루 고운 날 지으세요^^
탱자꽃 피는 마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셨군요. 저는 고향이 한수 이북에 위치하여 어렸을 땐 탱자꽃을 모르고 살았더랬습니다. 제가 한 권 선물해 드려야 하는 건데 책을 구입하신 모양입니다.^^ 마음 속에 꿈이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늙지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오는 세월을 담담하게 수납하면서 거기에 알맞게 살아가는 것도 늙지 않는 하나의 방편이 되겠지요. 상기한 시는 저 역시 어머니를 떠올리며 가슴이 먹먹해져서 썼던 시였습니다. 비꽃님은 타인에게 도움을 줄 때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지니신 분이시군요. 그렇게 고운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모든 게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글앞에 눈시울 붉어집니다.. 얼마전 고향을 다녀왔어요.. 고추장, 된장, 들기름, 참깨 등...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정말 감사함을 느꼈답니다.. 두 분 돌아가시면 이런 귀한 자연을 누가 챙겨주고 마음데로 갔다 먹을 수 있을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숙연해지더군요. 그 동안 아무 생각없이 가져다 먹었는데 많이 연로해 지신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하나라도 더 챙겨 줄려고 애써는 따뜻한 부모님의 마음, 아낌없이 품어 주시는 사랑에 얼마만큼 보답할 수 있을지.. 가슴이 먹먹해집니다..항상 멀리 있다는 이유로 자주 찾아 뵙지 못했는데 이제부터라도 자주 찾아뵙야겠어요.. 나이들면서 가장 무서운게 외로움이라 하는데 앞으로 얼마만큼 그 마음에 보답할 수 있을지 점점 추워지는 날씨 고향에 계신 부모님 생각이 간절해 집니다..... 선생님 좋은글 마음에 새기면서 늘 건필하시고 새해 향기로운 문기행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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